자초했기에 섬뜩하고, 어이없이 시작되었기에 웃기고, 피할 수 없기에 무섭다! 김지운 감독과 임필성 감독이 바라 본 멸망의 3가지 징후 <인류멸망보고서>
신약 성서의 요한계시록 이래 ‘멸망’의 화두는 인류와 늘 함께 해 왔다. 종말론에 입각해 구원을 약속하는 신흥 종교가 득세하고,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2012년 지구 멸망설 등 끊임없는 묵시록적 경고가 이어져 온 것은 거꾸로 ‘인류 멸망’이라는 화두가 가진 위력을 보여준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자 멸망 직전에 극대화 되는 공포와 스펙터클 등 있을 법한 미래를 그리는 SF 장르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소재로 수 많은 영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인류멸망보고서>는 한국 영화 최초로 ‘멸망’의 화두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품으로 인류에게 멸망이 다가오는 3가지 징후를 로봇 SF, 코믹 호러 SF, SF 코미디의 다양한 장르 변주를 통해 선 보이는 작품. 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어떤 귀신 영화보다 더 끔찍한 호러일 수 밖에 없고, 인간성의 근원을 질문하며 거꾸로 멸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스스로 불러 들인 멸망으로 이르는 길을 웃지 못 할 코미디 속에 소묘한다. 멸망과 관련된 시제 또한 ‘근 미래’-‘멸망의 현재 진행형’-‘멸망, 그 이후’로 시간 차를 두고 입체적으로 다룬다. 또한 멸망의 징후를 짚는 당사자인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 늘 새로운 장르 영화를 선보여 왔던 김지운 감독과 데뷔 이래 ‘파멸’의 소재를 꾸준히 탐색해 왔던 임필성 감독이라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인류멸망 SF <인류멸망보고서>는 더 흥미로워진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라. 그렇지 않으면 먹어도 배 부르지 아니하고 그 날에 이르러, 죽고 싶어도 죽음조차 너희를 피할 것이다” 욕망 만을 쫓다,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인류에 대한 섬뜩하고 웃기는 경고 인류멸망보고서#1-임필성 감독의 코믹 호러 SF <멋진 신세계>
전 인류에게 불가항력으로 닥치는 멸망은 본질적으로 가장 큰 공포다. <인류멸망보고서> 중 두 번째 작품인 <멋진 신세계>는 현실에 토대한 가장 섬뜩한 경고를 보여준다. 가축의 사료로 가공될 음식물 쓰레기 통에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먹지 못 할 쓰레기를 섞어 버리고 그것이 돌고 돌아 소고기를 포식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일용할 음식에 감사하지 아니 했던 인간들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오직 공격 본능 밖에 남지 않은 좀비로 화한 인간들은 서로를 물어 뜯으며 서울의 거리를 공포로 물들인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끔찍한 근 미래의 어느 날의 풍경은 욕망을 쫓아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한 재앙인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부메랑의 화살처럼 인간을 겨누는 현재와 가장 닮아 있어서 더욱 섬뜩한 멸망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영화 속, 멸망을 앞두고도 대책 마련보다는 서로를 공격하기 바쁜 정치권의 행태 또한 우리가 맞닥뜨린 멸망의 징후다. 좀비 호러의 외피 속에 어떤 욕망이든 인간의 필요에 따라 그 즉시 충족할 수 있어 멋져 보이지만 사실은 멸망의 시계를 앞당기고 있을 뿐인 현재에 대한 리얼해서 더욱 섬뜩한 소묘 <멋진 신세계>는 역설적인 제목을 통해 멸망을 경고한다.
“나는 무엇입니까?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피조물인 로봇이 던지는 가장 인간적인 질문, 로봇을 통해 성찰하는 멸망의 징후 인류멸망보고서#2- 김지운 감독의 로봇 SF <천상의 피조물>
존재에 대한 고민을 가진 유일한 생물체, 그것이 인류다.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겨우 300만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생물 종임에도 지구의 맹주임을 자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인류가 가진 이성의 힘이었다. 하지만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스스로 ‘창조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인간은 잊어 버리고 있는 존재의 근원과 의미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로봇을 통해, 인류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거꾸로 질문한다. 로봇일지언정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로봇을 한낱 기계로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인간이 로봇의 기능을 정지시킬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로봇의 절멸을 둘러싼 승려들과 제조업체 사이의 공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망각할 때 멸망은 이미 한 발 가까워 진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로봇의 운명을 둘러싸고 관객이 가슴 졸이는 신기한 경험을 약속한다.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너희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 하고 땅속에 거할 것이다” 멸망도 부활도 모두 인류로부터! 다시 태어날 인류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인류멸망보고서#3-임필성 감독의 SF코미디 <해피 버스 데이>
빙하기 후에 지구가 부활했듯이 <인류멸망보고서>는 ‘그 날 이후’의 인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 또한 잊지 않는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당구공 파손 사태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괴 혜성으로 직결되고 이는 곧 멸망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희망을 준비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다. 산 꼭대기의 방주로 피신해 종을 보존했던 노아와 반대로, 지하의 방공호로 대피해 살아남은 소녀 민서의 가족은 7년 뒤 폐허 속 지구로 성큼 올라서면서 ‘그 날 이후’ 재건의 주역이 된다. 섬뜩하기만 한 인류 멸망이란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 낸 <해피 버스데이>는 “내일 멸망이 닥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해 장사 속으로 멸망까지 상품화하는 홈쇼핑과 막말을 서슴지 않고 속내를 털어 놓는 뉴스 앵커 등의 모습을 통해 유러머스한 답을 내어 놓는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던 삼촌이 정작 가족을 구하고 당구공을 주문해 혜성을 불러들인 소녀가 그 당구공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향하는 <해피 버스데이>는 멸망을 불러 들이지만 그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이자 믿음을 전하는 독특한 코미디다.
류승범-김강우-송새벽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로봇의 목소리를 연기한 박해일 김규리-고준희-김서형-진지희 그리고 배두나까지! 멸망의 보고서를 함께 쓴, 젊고 빛나는 배우들의 박람회! <인류멸망보고서>
<인류멸망보고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개성과 연기력으로 한국 영화의 현 주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젊은 재능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천상의 피조물>에서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열반에 드는 로봇 인명의 목소리는 박해일이, 상부의 명에 맞서 그의 해체를 막는 로봇 엔지니어를 김강우가, 오직 조직의 논리에만 복종하는 냉혈 상사 역에는 김서형이, 인명을 로봇이 아닌 스승으로 모시는 용감한 여자 승려 역은 김규리가 열연한다. 도를 구하는 박해일의 나직하고 조용한 성찰과 김강우와 김규리의 하이 톤의 분노는 또렷한 대조와 코러스를 오가며 드라마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한편 솔직한 청춘의 대표적 아이콘인 류승범이 <멋진 신세계>에서 욕망에 충실한 연구원을 연기,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첫 번째 희생자인 류승범의 파트너를 순진한 퀸카, 고준희가 열연한다. <해피 버스데이>는 코믹 캐릭터의 지존으로 떠오른 송새벽이 특유의 어눌함으로 웃음을 발생시키고, 진지희와 배두나가 멸망과 부활을 동시에 책임지는 아이러니한 소녀 민서의 아역과 성인 시절을 연기했다. 놀라운 호흡과 재능과 개성이 만나 서로 주고 받고 북돋아주며 극의 재미를 끌어 올리는 <인류멸망보고서>는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책임질 배우들의 재능, 그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보고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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