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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앞에 떳떳할 자신 있는가 매치 포인트
jimmani 2006-04-12 오전 1:30:46 1353   [9]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은데 하고 싶은 건 참 많은 게 이 세상이고, 사람 마음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진리인지라, 어느 방향으로 확실히 마음을 잡고 그쪽으로 가다가도 어느 순간 어느 방향에서 그 마음을 뒤흔드는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욕심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하고 싶은 것 모두 할 수가 없기에 사람은 그 중에서 자신한테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인지를 잘 측정을 해보고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좀 계산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게 삶의 방식인걸.

그런데 이렇게 럭비공같은 욕망을 소유한 인간이라는 동물에 있어서 그 "운"이라는 것도 적잖이 적용하는 법이다. 혹시 아는가, 공교롭게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호재를 맞이할지. 이 영화 <매치 포인트>는 이렇게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는 인간의 욕망과, 그 한가운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잠재력을 발휘하는 행운이라는 것의 상관관계를, 인간의 욕망의 모습처럼 럭비공마냥 때론 정색하면서 때론 우스꽝스럽게 펼쳐놓았다.

배경은 런던.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 윌튼(조나단 리스-마이어스)은 전직 테니스 선수였으나, 테니스투어라면 아주 학을 뗄 지경에 이르러서 선수생활은 때려치고 강사 일을 막 시작한 참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야망도 많은 그는 테니스 교실 상류층반을 맡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게 된다. 교습생으로 집안이 극도로 빵빵한 톰 휴잇(매튜 구드)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의 친분으로 인해 그의 집 식구들과도 친분을 쌓게 된 것이다. 크리스는 크리스를 마음에 둔 톰의 동생 클로이(에밀리 모티머)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약혼자가 된다. 빵빵한 재벌가의 예비사위가 되었으니, 이제 그의 성공문은 활짝 열린 셈. 그런데 이런 그에게 또 한명의 매력적인 여인이 다가왔으니, 그녀는 바로 톰의 약혼녀인 미국인 배우지망생 노라 라이스(스칼렛 요한슨). 한눈에 그녀와도 불같은 사랑에 빠져버리지만, 크리스의 저울 양쪽에는 두 가지 가치가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짱짱한 인생의 성공을 위해 클로이를 택할 것이냐, 마음이 허락하는 사랑의 감정을 위해 노라를 택할 것이냐.

감독은 우디 앨런, 내공이 장난이 아닌 감독이나 배우들은 파릇파릇한 젊은 배우들이다. 그러나 이들 배우들의 연기 내공도 만만치 않다. 먼저 크리스 역의 조나단 리스-마이어스. 뭔가 초롱초롱 꽃미남같이 곱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연기력은 생각보다 아주 농익은 듯 했다. 소심한 듯 모범적인 인상을 보이려 하면서도, 뒤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위험한 도박도 서슴지 않는 크리스의 모습은 무뚝뚝하면서도 세심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그의 표정, 부드러우면서도 딱딱 끊어내는 영국식 말투에서 왠지 모를 냉혹한 이미지가 배어나오는 그의 대사 소화력을 통해 그대로 화면에 드러난 듯 보였다. 때론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폭발하는 울음을 참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포커페이스 모드로 돌아오는 크리스의 모습은, 대체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을 소유한 조나단 리스-마이어스의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스칼렛 요한슨 역시 나이에 맞지 않는 아주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조나단 리스-마이어스가 맡은 크리스와는 달리 그녀가 맡은 노라는 매우 도발적이고 대범하고 한편으론 충동적이라 살짝 위험하기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가 갖고 있는 특유의 육감적 이미지와 어우러져 딱 맞춘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에 그저 몸을 맡긴 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노라의 모습이,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뿜어져나오는 요염한 분위기와 직설적이고 때론 폭발적이기까지 한 대사에 힘입어서 제대로 표현된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가 사랑과 성공을 놓고 아슬아슬 줄다리기를 하듯 나름의 독자적인 흡입력과 폭발력을 가지고 아슬아슬 연기대결을 펼치는 두 배우의 모습만으로도 영화가 가진 강렬한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가 다는 아니지. 이 영화가 중요한 건 감독이 우디 앨런이라는 거다. 난 우디 앨런의 영화를 꼬박꼬박 챙겨본 편도 아니고, 사실 제대로 본 영화도 많지는 않지만 그의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미국의 복잡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남녀들의 인간군상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때론 냉소적으로 그려내기도 하는 감독 아니던가. 그런데 이 영화는 예고편으로 봤을 때, 치정극을 소재로 한 것도 그렇고, 사건이 결말로 치달을 수록 뭔가 스릴러적인 느낌을 풍기는 게 이전 영화들과는 좀 달라보였다. 뉴욕을 애용했던 지난 영화들관 달리 유럽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천상 우디 앨런의 영화다. 이 영화는 치정극이라는 매우 말초적인 소재를 놓고도, 근본적으로는 욕망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인간의 우스운 모습을 신명나게 비꼬고 있다. 주인공 크리스는 두 가지 차원의 욕망을 놓고 심하게 갈등한다. 하나는 "사랑"이라는, 어쩌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간절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욕망이고, 또 하나는 "성공"이라는, 어쩌면 인간만이 추구할 수 있을 보다 고차원적이고 영리한 욕망이다. 사람이 "사랑"만 갖고 삶을 살 수 있다고 멜로드라마같은 데서 강조를 하긴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회색빛 빌딩들만큼이나 콧대도 높아지고 심장도 차가워진 요즘 세상에서, 사랑만으로 세상을 산다는 건 어딘가 꽉 막힌 생각이라는 걸 잘 안다. 크리스 역시 이 사실을 얄미우리만치 잘 알고 있고. 회사에서의 승승장구, 하루가 멀다하고 달라지는 자신에 대한 대접을 융숭하답시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만큼 내가 운이 좋은 걸, 뭐"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운이라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약간은 불법적으로 채워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욕망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이를 묵묵히 인정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한편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사랑이라는 원초적 감정에도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뭔가 머리를 쓰거나 경계할 필요 없이, 그저 순수한 열정으로 온몸을 채우고 마음을 흥분시키는 사랑의 마력도 인간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창창한 미래를 앞에 놓고도 심장을 불사르는 사랑 앞에 눈이 멀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도대체 어느 쪽을 바라봐야 하느냐 갈팡질팡할 수 있겠지만, 대개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둘 다 추구할 수 있는 방향, 이를테면 성공을 위해 재벌가와 접촉을 했는데 그 집 딸을 죽도록 사랑하게 되는 식의 방향이라면 망설일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민은 꽤 복잡해진다. 크리스 또한 그렇다. 성공을 위해서인지 상류층과 기꺼이 접촉하는 대범함도 보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야심 많은 청년처럼 보여도, 어느덧 다가온 걷잡을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욕망의 딜레마로 인해, 우리는 자연히 양쪽에 떳떳하지만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둘 다 쟁취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될 때, 한쪽을 속이면서 다른 한쪽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러면서 다시 다른 한쪽을 슬슬 유인한다. 바쁜 일이 있다, 약속이 있다면서 수시로 전화 받고 자리를 피하는 크리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꽤 우습다. 자신의 양쪽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 욕망 앞에서 정작 그 주체인 나 자신은 떳떳하지 못하고 도둑처럼 숨어다니기 바쁘니 말이다. 영화 내내 클래식, 오페라가 깔리면서 상류층의 고고한 모습을 보여줘도, 그렇게 깔린 음악 아래 크리스가 하고 다니는 일들은 두가지 욕망을 모두 잡기 위해 아슬아슬 숨어다니는 다소 치졸한 모습들 뿐이다. 제아무리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끼고 살고, 소포클레스의 대사까지 인용하면서까지 나름 고상한 모습을 보여도 결국 남는 건 치졸하게 욕망 뒤에서 숨어다니는 작은 인간의 모습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어도, 정작 그걸 읽는 자신은 죄로부터 구원같은 걸 받을 생각도 안하는 듯하고. 그러다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그 상황을 애써 무마하려고 자기는 어떻게 돼도 모른다는 식으로 무모한 수습 계획이나 세우고.

그런데 영화는 이런 욕망의 한 가운데에 선 인간의 모습에, "운"이라는 주제까지 끼워넣음으로써 아이러니한 코미디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앞으로 보실 분들의 재미를 위해 결말을 절대 발설할 수는 없지만, 결말을 보고 나면 이 영화가 그전까지 아무리 무게를 잡고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얄밉고도 어리석은 모습에 절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코미디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욕망 앞에서 참 보기에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도, 영화 속 크리스는 시작부터 "운"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어느 정도 합리화시키려든다. "행운을 논하는 것은 인생을 안다는 것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공이 네트에 걸려 상대편으로 넘어갈지 내 편으로 넘어올지 알 수 없듯, 인생 또한 이런 작은 차이, 운빨로 결정나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영화 시작 부분, 네트에 걸린 채 멈춰진 테니스공의 모습과 함께 나온다. 이는 매우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진리인 동시에, 크리스의 자기 나름대로의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는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잘도 피해다니며 온갖 일을 하고 다니면서도 "운"이라는 것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는다.(그 도움이 끝까지 갈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시길)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 "운"의 힘과 더불어 더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며 상류층 생활에 익숙해지는 그의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한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운은 따르려면 언제든지 따를 수 있다는 씁쓸한 진리를 보여주면서도, 이런 운의 도움에 힘입어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좇아도 될 줄 아는 인간의 우스운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잇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결국, 욕망의 그늘에서 이리저리 숨어다니는 인간군상을 냉소적으로 풍자하면서도, 이에 때론 얄미울 정도로 절묘하게 적용하는 "운"에 대한 세상의 섭리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그러나 대개는 같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걸 꺼려하는지 서로 정반대로만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있어서, 이들이 절묘하게 합치점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 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천운이 여기에 따라준다면 어쩌다가 여러 소득을 얻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운을 타고난 영화 속 크리스의 경우는 극히 일부의 경우도, 그런 그의 모습도 실은 상당히 우습다. 정작 운에 힘입어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고 나면 인간은 거기에 끊임없이 의기양양해져 죄의식마저 마냥 무뎌지니 말이다. 결국 인생에 있어서 딱 한 점으로 승부를 가르는 "매치 포인트"란, 욕망끼리 갈 데까지 대결을 붙여 피를 보게 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재량으로 욕망을 조절해 나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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