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영화로써의 핵심인 '재미'를 빼먹은 SF / 한국 / 15세 관람가 / 125분 / 봉준호 감독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틸다 스윈튼.. / 제작비 450억 / 개인적인 평점 : 5점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목 이틀에 걸쳐 대구칠곡CGV에서 내리 관람하고 온 봉준호 감독님의 「설국열차」이야기를 해볼려구요. ^^ 웬만해서는 평일에 상영관이 꽉 차는 법이 없는 대구칠곡CGV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극장을 찾은 수요일, 목요일 이틀 모두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설국열차」를 관람하러 극장에 오셨었는데요. 그렇게 많은 분들의 기대감 덕분에 개봉 이틀만에 100만명을 돌파한 「설국열차」.
"이 기차에 관객들이 많이 타서 폭주하면 어떨까 싶다"라는 기대감을 솔직하게 말씀하신 봉준호 감독님의 바람처럼 「설국열차」가 폭주할 수 있을만한 영화였는지 지금부터 제가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한 번 말씀드려볼께요.
얼어 붙은 지구를 쉼 없이 달리는 한 대의 열차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79개국의 정상들은 인공 냉각제인 CW-7을 대기 상층권에 살포하기로 합의하고 2014년 7월 1일, 대량 살포를 시작하죠. 하지만 CW-7의 부작용으로 인해 엄청난 한파가 들이닥치게 되고 지구는 더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얼음 행성이 되고 마는데요.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 숨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438,000km의 레일을 따라 1년 주기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윌포드 인더스트리의 운명의 열차뿐이죠. 하지만 열차에 탑승한 최후의 인류는 맨 앞의 엔진룸에서 시작해 맨 끝의 꼬리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신분이 나뉘어져 있는 계급사회인데요. 열차의 황제 윌포드(에드 해리스)에서부터 노예나 다름없는 꼬리칸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균형이라 외치는 메이슨(틸다 스윈튼) 총리와는 정반대로 꼬리칸의 젊은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열차의 황제 윌포드가 살고 있는 열차의 맨 앞, 엔진칸까지 돌진해 꼬리칸 사람들을 해방시킬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기회!! 그렇게 꼬리칸 사람들의 분노의 진격이 시작된답니다. ^^
리뷰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설국열차」는 450억원이라는 제작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4년만에 연출작, 여기에 「어벤져스」의 크리스 에반스, 「케빈에 대하여」의 틸다 스윈튼 등 다국적 출연진과 스텝이라는 여러 요소가 결합해 수 많은 영화팬들로 하여금 엄청난 기대감을 품게끔 만들었는데요. 그러한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개봉 이틀 만에 100만명이 넘는 관객(103만7,345명)분들이 극장을 찾으셨죠. 하지만 「설국열차」가 보여주고 있는 흥행 질주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의 평점 또한 떨어지고 있기도 한데요. 저 또한 「설국열차」를 두 번 관람하는 동안 영화에 대해서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답니다. ^^;;
수요일, 목요일 이틀 연속 관람하는 동안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분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내 생애 최고로 지루한 영화', '말보로 라이트만 생각나는 영화' 등 「설국열차」에 대한 호평보다는 혹평 아니 악평이 주를 이루고 있던데요. 여러 영화 전문 기자분들이나 파워 블로거분들께서 「설국열차」를 두고 쏟아낸 찬사의 말과는 정반대로 말이죠. ㅎ
사실 「설국열차」속에 담겨 있는 체제와 인류의 역사에 관한 메타포(은유)들은 추상적이고 복잡한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대신 영화 속 캐릭터들의 대사와 열차라는 특수한 공간을 십분 활용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요. 그런 까닭에 관객분들께서 봉준호 감독님이 전하고자한 메세지를 알아차리는데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다분한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집중력만 잃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죠. 대신에 봉준호 감독님께서 「설국열차」를 통해 말씀하고 계시는 체제에 갇혀버린 인류에 대한 메세지가 대다수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즉, 관객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메세지라는게 「설국열차」의 여러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 「설국열차」의 문제점은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님 특유의 유머가 상실되었다는 것이었는데요. 「마더」 때 이미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번 「설국열차」에서는 영화 속 인물들의 말마따나 봉준호 감독님 특유의 유머가 'Extinction(멸종)'되다시피 했더라구요. 물론, 「설국열차」에서 봉준호 감독님의 유머가 멸종되긴 했지만 거의 매 장면마다 담겨져 있는 메타포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푹빠져 재밌게 관람하신 관객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봉준호 감독님이 그동안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데에는 특유의 유머가 큰 역할을 했었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이번 「설국열차」는 대중성을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
※ 이 단락 이후의 내용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스포가 걱정되시는 분들께서는 읽지 않으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
캐릭터 속에 담겨져 있는 수 많은 의미
「설국열차」가 비록 대중들이 기대하던류의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 설정,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까지 봉준호 감독님께서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셨는지가 저절로 느껴지는, 다시 말해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열정 하나만큼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였었는데요. 그런 까닭에 영화 속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 열차라는 공간의 상징성 등을 하나하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125분이라는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러닝 타임 안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태고적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사, 여기에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젼 제시까지,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놀랄만큼 심플하고 또 명확하게 축약해 놓은 봉준호 감독님의 천재성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더라구요.
인간의 본성.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틀어 절대선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는 단 한명도 없는데요. 열차의 사악하고 비열한 2인자 메이슨(틸다 스윈튼) 총리는 두말할 것도 없고, 광기에 휩싸인 식인귀에서 꼬리칸의 리더로 거듭난 커티스, 꼬리칸의 성자임과 동시에 윌포드의 가장 오래된 협력자인 길리엄(존 허트),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열차에 탑승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의사와 안전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남궁민수(송강호), 그 외에도 저마다의 정의를 내세워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열차안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본디 악한 본성을 타고 태어난다고 말했던 순자의 성악설이 맞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되는데요. 이렇듯 「설국열차」는 열차안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성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관객들에게 선사하죠. ^^
권력 지향과 체제 전복. 「설국열차」는 또한 영화 속 캐릭터들의 행동을 통해 인류가 역사를 통해 수 없이 반복해왔던 투쟁의 두 가지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열차)은 유지한체 열차의 통제권(권력) 획득을 통한 자유를 꿈꾸는 커티스를 비롯한 꼬리칸 사람들을 통해 권력 지향적인 투쟁의 역사를, 인화성 물질인 크로놀을 모아 열차의 외벽을 뚫어 커티스 일행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자유를 꿈꾸는 남궁민수를 통해서는 체제 자체를 전복시켜버리는 행태의 투쟁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전 「설국열차」속에서 표현된 서로 다른 투쟁의 역사를 지켜보다가 문득 '권력 지향이든 체제 전복이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체제안에 갇히는건 마찬가지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코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뭐할려고 이렇게 심각하게 하고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
현실 세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류 역사를 통해 몇 번이고 반복되어 모습을 나타냈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는데요. '우린 앞으로 가도 저런 짓 안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커티스가 막상 엔진칸에 도착해서는 마치 태아 때 엄마 뱃속에서 듣는 심장소리처럼 느껴지는 열차의 엔진 소리에 안도감과 평화 혹은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굴복 직전의 상태에 다다른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등을 담아낸 눈물을 흘리며 순식간에 엔진칸에 동화되어 버리는 모습은 현실 세상에서 숱하게 봐왔던 혁명가들의 변절을 보여주고, 무력 앞에서 너무나 쉽게 커티스에게 굴복하고 마는 메이슨 총리의 모습을 통해 강자 앞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절해 버리는 기회주의자들의 모습을, 윌포드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길리엄의 모습을 통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젊었을 때 가졌던 뜨거운 열정은 온데간데 없이 잊어버린체 체제와의 씁쓸한 타협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기성 세대의 모습, 이 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저마다 묘사하고 있는 인간 군상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요.
이렇듯 봉준호 감독님께서는 「설국열차」속 캐릭터 설정 하나에서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에 수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천재성을 보여주고 계셨는데요. 하지만 위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결코 답이 있을 수 없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만을 담아내고 계셔서인지 전 딱히 와닿지가 않더라구요. ^^;;
거대한 인류 사회의 축소판인 운명의 열차
「설국열차」가 워낙에 개봉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대규모 홍보를 벌였던 까닭에 운명의 열차가 거대한 인류 사회의 축소판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계시리란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접한 「설국열차」 속에서 설국을 달리는 열차에 내재된 체제와 인류사에 관한 이야기 또한 상상 이상으로 방대한 분량을 다루고 있어 정말 놀랍더라구요. ㅎ
인류 사회의 발전. 「설국열차」는 열차가 설국을 달리기 시작한 17년의 세월 속에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축약했을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접목까지시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요. 최초 꼬리칸에 탑승한 1,000여명의 사람들이 자행했던 카니발리즘(식인 행위)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잡아 먹었던 원시 인류의 모습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꼬리칸에서 출발해 검역칸, 감옥칸을 지나 군인들의 숙소칸에서 처음 창 밖의 빛을 접하게 되고 물공급칸 직전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와 그 이후에 접하게 되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온실칸,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리움칸, 각종 육류를 보관하고 있는 냉동칸 등의 모습을 통해 인류가 동굴 생활에서 벗어나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또 인류 최초의 전쟁이 기본적인 의식주로 기인한 것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죠.
인간의 오만함과 대자연의 위대함. 「설국열차」는 또한 인간의 오만함과 대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도 관객들에게 들려주는데요. 마치 신이라도 된마냥 지구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노라 호언장담하며 CW-7을 살포한 인류가 그 오만함으로 인해 대재앙을 맞게 되고 멸종의 위기에 처한 것과는 달리, 대자연은 인간으로 인해 상처 받은 몸을 비록 더딜지라도 서서히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고 마침내는 꿋꿋하게 살아남은 대자연의 모습을 북극곰을 통해 최후의 인류 앞에 보란듯이 드러냄으로써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죠.
영화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관객 스스로의 몫
수요일 첫번째 「설국열차」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설국열차」에 대한 한 가족의 감상평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 가족의 아버님께서는 "말보로 라이트 밖에 생각이 안난다"라는 말씀을 어머님께서는 "봉준호 감독 영화가 원래 이렇잖아.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그냥 좋던데??"라는 반응을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은 "난 싸우는 것 밖에 생각 안난다. 난 계속 싸우기만 했으면 좋겠더라."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전 그 가족의 대화를 들으면서 영화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관객 스스로의 몫이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는데요. 어떤분들은 CW-7을 Capital World로 또 윌포드의 W마크를 월스트리트로 해석하시기도 하시던데, 누군가에게는 CW-7이 단순한 Cold(Cool) Weather이고 W마크가 Winner등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 처럼 영화에 대한 감상평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혹시 또 누가 알아요?? 실제로는 CW-7이 봉준호 감독님이 박찬욱 감독님에게 보내는 익살스러운 메세지일지?? ^^
어떤 영화이던지 자신이 보고 느낀 것과 다른 감상평을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영화사 알바냐?' 혹은 '당신 수준에 이런 영화는 안 어울린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요. 위에서 말씀 드린 한 가족의 에피소드처럼 매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집에서 잠을 자는 가족들끼리도 같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느끼는 감상평이 저렇게나 다른데 하물며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감상평은 얼마나 더 다르겠어요?? 그러니 타인이 비록 나와는 전혀 다른 감상평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줄 아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
어쨌거나 저에게 있어서 「설국열차」는 인물과 공간 하나하나에까지 꼼꼼하게 의미를 담아낸 각본과 연출은 돋보였지만 정답이 없는 주제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장황하기만한 이야기를 늘여 놓았던 까닭에 딱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던 그런 영화로 기억될 것 같네요. 쉽게 말해 천재의 궤변같은 영화랄까요?? ^^;;
그럼 이쯤에서 「설국열차」 리뷰는 마치도록 할께요. 모두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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