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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고통의 예술.. ★★★★☆ 블랙 스완
ldk209 2011-02-28 오후 8:19:29 1198   [1]
육체와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고통의 예술.. ★★★★☆

 

※ 영화의 결론을 포함한 중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선배 발레리나 베스(위노나 라이더)가 은퇴하게 되자, <백조의 호수>의 주역을 뽑는 오디션에 도전하게 된다. 발레단 단장인 토마스(뱅상 카셀)는 니나를 주역으로 뽑긴 했지만, 흑조의 표현이 미흡하다며 계속 불만을 내비치고, 공연이 다가올수록 니나의 중압감은 정신 분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신입단원으로 흑조로 더할 나위 없이 관능적인 릴리(밀라 쿠니스)가 등장하면서 니나의 정신적 압박은 더욱 심해져만 간다.

 

극장 입장에서 보자면 블록버스터들이 대거 개봉하는 여름이 흥행 성수기인 반면, 늦겨울과 초봄이 엇갈리는 요즈음은 분명 비수기일 터이다. 그러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 보면, 일 년 중 요맘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비수기를 틈타 평소 보기 힘든 유럽 등 다양한 대륙의 영화들과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작품들이 대거 개봉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블랙 스완> 역시 그 중 한 편이다.

 

미국 헐리웃 시스템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흥행성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영화와 작품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작가주의 영화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돌아간다는 것, 그리고 배우는 물론이거니와 연출자도 꾸준히 교류되고 있다는 건 우리 영화계를 돌아봤을 때, 어쨌거나 부러운 현실인 건 사실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블랙 스완>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작품의 질은 훨씬 더 좋아지기는 했지만, 감독의 전작인 <더 레슬러>의 여성 버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또는 거울에 반영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비슷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시종일관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했다는 점이나, 특히 끝맺음에서 그러하다.

 

먼저 두 영화는 모두 육체로 표현되는 것들(!)에 대한 뒤안길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레슬러>가 외형상 화려한 쇼로 불리는 프로 레슬링의 세계가 사실은 엄청난 육체적 고통 속에 치러진다는 점을 보여주었듯이, <블랙 스완> 역시 아름다운 예술을 상징하는 발레가 발톱이 빠지고 뼈가 뒤틀리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준비되어지고, 거기에 육체의 고통을 뛰어 넘는 정신적 고통이 수반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이 단지 배우의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이시키고 있어 관람을 하는 관객입장에서도 상당한 고통이 따르는 경험이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의 전이에 핸드헬드 기법이 능수능란하게 활용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이 공히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었지만, 동일한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더 레슬러>의 핸드헬드 기법은 다큐멘터리적 느낌의 강화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그러니깐 실제 존재하는 인물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느낌. 이에 반해 <블랙 스완>에서의 핸드헬드 기법은 정신 착란 상태를 외연화하고 보는 관객에게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긴장감의 고조 및 유지를 위해 주로는 활용되고 있다. (액션 영화에서 핸드헬드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현장성의 강화를 위해 이 기법을 활용한다)

 

만약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발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아마도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에겐 발레의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애당초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시종일관 인물의 근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카메라는 시야를 좁힘으로써 카메라 밖의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배우의 고개가 돌아가며 보게 되는 상황을 관객이 공유함으로서 스릴과 공포의 극점으로 몰아가는 연출은 그저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한다. (니나가 침대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엄마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더 레슬러>의 마지막 장면. 의사로부터 조금만 무리해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랜디는, 아니 미키 루크는 링 위로 몸을 날린다. 완벽한 피날레를 위해 죽을지도 모를 위험에 목숨을 내던지는 것, 제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몸짓이다. <블랙 스완>에서의 니나, 아니 나탈리 포트만 역시 마찬가지다. <블랙 스완>은 <더 레슬러>의 반영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일종의 거울의 이미지와도 같은 영화다. 영화 속엔 거울을 이용해 연출한 장면이 자주 활용되고 있다. 거울을 이용한 장면들은 대체로 묘한 공포의 기운을 내뿜는다. 이런 차원에서 니나에게 부족한 관능미를 갖추고 있는 릴리(밀라 쿠니스)라는 인물에 대한 의혹이 솟구치게 된다. 결국 릴리는 니나의 어두운 면 아니겠는가. 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이를 교묘하게 활용해 반전을 제공하고는 했다. (<파이트 클럽> <머시니스트> 등등등) 그러나 <블랙 스완>은 이와는 다른 차원의 영화다. 거울의 이미지가 왜곡된다고 해도 결국 거울에 비친 모습은 자기 자신이다. 그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의 가장 놀라운 점은 주연배우를 위한 최고의 맞춤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최고 정점에 올랐다가 육체와 정신이 파괴된 랜디라는 인물은 바로 미키 루크, 자신이었다. 무난하게 성장했지만 결코 최고가 아니었던, 뭔가 열정적인 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니나 역시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라면 누구나 <레옹>을 떠올린다. 94년에 만들어진 17년 전의 영화를 떠올린다는 건 배우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다름 아닐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탈리 포트만이 배우로서의 길을 쉬거나 멈췄던 것도 아니다.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언제나 <레옹> 만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현실에서의 그녀 역시 진보적이고 반듯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역시 배우들은 극중에서나 현실에서 너무 반듯하고 착한 이미지는 무난하긴 하지만 강렬한 매력을 던져주진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의 틀을 깨야만 성장해서 날 수 있는 새처럼 아마도 나탈리 포트만에게 가장 절실한 것도 자신의 틀을 깨는 것이었으리라. 마치 <블랙 스완>의 니나가 결국 자신을 해침으로서 완벽한 흑조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 이런 점에서 <블랙 스완>은 나탈리 포트만의 자전적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며,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이상해져 버린 여배우들 명단에 들지 않기를. (이를테면 킴 베이싱어, 할리 베리, 샤를리즈 테론 등)

 

※ 발레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입증하듯 이 영화에서 음악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기본 이상을 해주고 있다. 특히 뱅상 카셀은 누가 봐도 발레단 단장이라고 할 만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프랑스 배우들에게 예술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몸에 달고 다니는 인장과 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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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2010, Black Swan)
제작사 : Phoenix Pictures / 배급사 : (주)영화사 그램
수입사 : (주)퍼스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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