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을 재난영화의 '귀재'라고 할 수는 있어도 '거장'이라고까지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영화는 매우 뛰어나게 만들어도 재난'영화'는 잘 못만들기 때문이다. 재난 시퀀스를 영상화하는 데 있어서는 현존하는 할리우드 영화 감독들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손이 크고 능숙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가 보여준 것은 그렇게 입이 떡 벌어지는 재난의 영상화 정도에서 멈췄을 뿐, 재난 속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20세기말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디펜던스 데이>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이러한 재능과 한계를 함께 확실히 드러냈고, 이 영화의 성공은 곧 후에 나온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공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할리우드 재난영화는 나름 진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우리 미국이 최고입니다'하는 식으로 뻗대는 영화를 찾기 힘들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난을 그려내면서 안전한 흥행영화보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만한 도전적인 선택이 나온 경우가 많다.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이나 에이브럼스(제작)의 <클로버필드>, 프로야스의 <노잉> 등이 그렇다. 이런 상황인데, <투모로우>로 다시 재기하는가 싶더니 <10,000 B.C.>로 우렁차게 말아먹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또 재난영화를 들고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여전히 먹힐까 싶었다. 그러나 그의 신작 <2012>는 예고편에서부터 턱관절을 마비시킬 만한 볼거리를 내놓음으로써 제대로 작정했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결과물은 정말 그러하였다. 그저 넋을 놓은 채로 볼 수 밖에 없는 볼거리를 갖춘 건 분명한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2009년. 인도의 한 젊은 과학자가 처음 지구에 다가온 심상치 않은 징후를 감지한다. 태양계의 행성이 일렬을 형성하면서 태양의 강력한 폭발을 유도하는데 그것이 지구를 전자레인지처럼 구워삶으며 안에서부터 끓게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고대 마야인들이 2012년 지구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과 일치하는 시나리오다. 과학기술정책부의 지질학자인 에이드리언 헴슬리(치웨텔 에지오포)는 이 사실을 정부에 알리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들 간의 비밀 프로젝트가 이뤄진다. 그리고 3년 뒤 2012년. 글 쓰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가족에게 소홀해 이혼하게 된 무명 작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아내 케이트(아만다 피트)와 사는 두 아이와 오랜만에 캠핑을 떠난다. 그러나 그 무렵 곳곳에서 이상한 기후현상, 강력한 지진 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잭슨과 케이트, 케이트의 남편 고든(톰 맥카시)은 급히 짐을 챙겨 집을 떠나려는데 그 순간 문자 그대로 땅이 갈라지며 집들이 모조리 주저앉고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거대한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 커티스 가족은 갖은 수를 써가며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정부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그 누가 봐도 절대 막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천재지변이다.
어차피 재난영화에서 강조되는 건 배우들의 연기보다 재난이 어떤 모습으로 선보여지는가이고, 특히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는 더욱 그렇다. 그의 첫번째 망작이었던 <고질라>의 홍보 문구로 '중요한 건 크기다'라고 강조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일단 배우들의 면면부터 살펴본다면 꽤 튼실하게 짜여 있다. 존 쿠삭, 아만다 피트, 치웨텔 에지오포, 올리버 플랫, 탠디 뉴튼, 대니 글로버 등 인지도도 어느 정도 있으면서 연기들이 모두 받쳐주는 중견급 배우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재난영화를 보면서 응당 느껴야 할 감동과 안타까움을 충실히 전달한다. 폭발적인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단 기능적 역할에는 충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성격의 재난영화에서 배우들이 '기능적 역할'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역시 중요한 건 크기다. 곧 나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망의 복귀작 <아바타>보다도 2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더 들어간(2억 6천만달러) 이 영화는 시각적인 면에 있어서는 가히 재난영화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일단 큰 설정이 '지구 멸망'이라는 매우 두루뭉술한 소재이다보니 그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담겨 있다. (재난영화이기 때문에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경우는 생략한다.) 지진, 화산 폭발, 홍수, 해일, 배 침몰 등 우리가 그동안 재난영화를 통해 한번쯤 만나봤을 거의 모든 소재가 총망라되어 등장한다. 그래서 두 시간 반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이지만 좀 루즈하다 싶으면 금방 또 새로운 재난이 덮쳐 정신 차리라고 한다. 게다가 이 재난들을 표현하는 수위도 대책이 없어서, 마치 이 영화가 에머리히 감독이 만들 마지막 재난영화라도 될 것처럼 사정없는 융단폭격이 이어진다. 도시는 지반 자체가 내려앉으며 지옥의 문이라도 열리듯 온갖 고층 건물들이 쓰러지고 산산조각이 되며 부서지고 무너진다. 도저히 물이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해일이 덮치고, 땅이 판자처럼 부러지고 가라앉으며 바다와 육지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말 그대로 '지각변동'이 이루어진다. '멸망'이라는 단어를 실감케 하는 재난의 묘사는 비록 상상력 면에서는 부족할 지라도 규모 면에서는 관객들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초반 커티스 가족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탄 비행기 시점으로 부감에 가깝게 LA가 파괴되는 순간을 훑고 가는 장면, 옐로우스톤의 화산이 폭발하며 핵폭발과 같은 효과를 드리우는 장면은 숨이 넘어갈 정도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재난 시퀀스의 표현에 있어서만큼은, 역대 최고라 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재난이 나오는 '영화'다. 그만큼 재난에 휩싸인 인간들의 이야기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2>의 이야기는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많이 나아간 흔적은 보인다. <인디펜던스 데이> 때 미국 대통령을 일인전사로 묘사한 답 안나오는 세계관에 비하면 이것은 가히 장족의 발전이다. 우선 영화는 재난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꽤나 자조적이거나 현실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예전처럼 세계평화를 도모하는 영웅적인 미국 정부의 모습은 사라진 채, 현 정부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해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다가올 재앙을 알리지 않고 선택된 극도로 부유한 일부에게만 생존의 기회를 제공하며 예산을 버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까지 꾸민다. 대통령의 위치를 놓고 권력에 눈이 먼 장관급 간부는 경솔한 선택으로 국민들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영화 속의 윌슨 대통령은 현재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를 반영한 듯한 캐릭터라는 것도 눈에 띄게 느껴진다. 우스갯소리처럼 지나가는 부분 중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연설이 '이제는 안전하다'고 하니까 '안전하다고 하면 도망쳐야 한다'는 식으로 비꼬는 장면이 있는데, 주지사의 억양이나 그가 배우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부분으로 보인다.
나아가 영화는 미국의 위상이나 태도를 한층 낮추는 자세를 보여준다. <투모로우>에서 재난 앞에 무력한 대통령의 모습과 미국인들이 결국 멕시코로 피난을 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부터 이미 예상된 것이긴 하나, <2012>에선 그 양상이 한층 다양하다. 미국 대통령은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긴 하지만, 말도 안되는 전사적 이미지가 아니라 겸손한 희생의 이미지다.(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대통령 아래 있는 정부에서 앞서 얘기한 기막힌 일들을 벌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이미지도 허상에 불과하다.) 물론 미국의 주도 아래 비밀 프로젝트를 전개하긴 하지만, 그 장소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고, 중국의 무지막지한 인력에 미국 정부 관료가 감탄하기까지 한다. 또한 중대 사안에 있어서 미국 측의 독단적인 결정보다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판단에 대번에 승복하는 의외의 겸손함(?)도 보여주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아프리카가 언급된다. 물론 이것을 미국의 독선적 이미지를 개선시키려는 고도의 정치적 마케팅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이전의 미국제일주의에 비하면 확실히 더 보기 편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재난에 휩싸이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능력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넓게 다루려는 것은 보이는데, 그만큼 깊게 다루지 못한다. 욕심을 낸 나머지 확실한 만족을 주는 에피소드가 없다. 사실 <2012>에는 다방면으로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제법 있다. 지질학자 헴슬리는 본인은 특출난 능력과 기여도 덕분에 정부로부터 수월한 피난의 혜택을 받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런 혜택을 바랄 수 없는 위치에 놓이며 갈등을 겪는다. 그러면서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둘러싸고 정부가 보이는 행태에 분노해 이를 규명하고자 한다. 러시아 졸부 유리는 거만하다 싶은데 또 선의도 베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아버지를 둘러싼 헴슬리의 갈등에서 꽤 호소력 있는 가족드라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정부의 행태나 러시아 졸부 유리의 경우에서 풍자적인 시선 내지는 스릴러적 면모까지 보여줄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결국 천착하는 건 뻔하디 뻔한 가족주의다. 결국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어느덧 미국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커티스 가족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이 가족을 보며 정말 박수치며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이 가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족사는 매우 전형적인 수준에서 설명해놓고(일에 매달려 가정에 소홀해 이혼했다는 식) 대뜸 가족애를 강조해 쉽게 감정이 이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가족이 생존하고자 만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를 생각하면 이 가족을 마냥 두둔하기도 힘들다. 이들이 살고자 결국 인명 피해가 생기고 마는, 그야말로 '민폐가족'인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게 이 가족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리타분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건드렸으나 결과물은 결국 여전히 보수적이다.
물론 재난이 얼마나 소름끼치게 관객들에게 보여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덕목일 재난영화 장르에 있어서, 그리고 감독이 아예 그러한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는 영화에서 이야기 구조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독이 여전히 이러한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가 앞으로 만들 재난영화에서도 그저 시각적으로만 사정없이 덮치는 파도를 경험할 수 있을 뿐, 감성을 시원하게 적시는 파도는 경험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호소력 있는 드라마까지 받쳐 줬더라면, <2012>가 보여준 전무후무한 스케일은 몇 배 더 확장되어 관객들에게 다가왔을텐데 말이다. 그게 아쉽다. 그나저나 이 감독은 이 영화 다음에 또 만들 재난영화가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