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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연속으로 점철된 뻔히 보이는 스릴러... 10억
ldk209 2009-10-05 오후 6:25:42 1214   [0]
우연의 연속으로 점철된 뻔히 보이는 스릴러...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장PD(박희순)가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 잠깐 비친 뒤, 호주에서 부상을 입은 채 경찰에 발견된 조유진(신민아)이 한국에 들어와 병원에서 경찰에게 진술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호주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조유진의 진술이 영상으로 재연되기 시작한다. 한 인터넷 방송국이 실시한 10억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쇼에 최종 선발된 8명의 참가자가 호주의 오지에서 게임쇼를 벌인다. 게임인 줄로만 알았던 경기는 첫 번째 탈락자 최욱환(이천희)이 시체로 발견되고 두 번째 탈락자 이보영(고은아)이 장PD에 의해 살해되면서 리얼 죽음의 경주로 돌변한다. 도대체 왜 장PD는 죽음의 경주를 벌이는 것일까?

 

장PD가 살인자이고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 8명이 살인의 대상임은 굳이 스포일러라 하지 않아도 영화 초반부에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는 이미 해결되었고, 남은 것은 ‘왜’와 ‘어떻게’이다. ‘왜’는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유도 없이 무작위로 뽑힌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이 영화 장르가 사지절단이 난무하는 슬래셔 무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도입부는 일단 무작위 살인을 배제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일단 세워놓고 출발하자.

 

결론적으로 말해 아무리 ‘왜’라는 방점에 뒤통수를 칠만한 반전이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적 재미는 ‘어떻게’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스릴러의 재미는 반전이 아니라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억>은 ‘왜’도 부실하거니와 ‘어떻게’를 통해서도 별다른 긴장감이나 재미를 주지 못한다. 탈락자 한 명이 실제로 죽어 나가는 경기에 참가한 이들의 얼굴이나 표정에 공포는 별로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이들을 꼭 죽여야 하는 살인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가자들의 죽음은 대체로 우연에 맡겨져 있다.

 

최욱환의 죽는 모습은 결과로만 제시되어 있고, 두 번째 이보영은 눈앞에서 활로 죽인다. (이러한 모습을 목격하고서도 조력자로 남는 서기사(정석용)의 심리가 이해되는가?) 그 다음 죽음부터 장PD의 역할은 별로 없다.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한 명이 죽고(만약 이 과정에서 두 명이나 세 명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게임의 룰이 깨지는 셈인데. 물론 아무도 죽지 않았다면 장PD가 죽였을 것이다), 보트를 타고 가다 한 명이 죽는다(큰 배가 뒤집혀 다 죽고 홍수연(유나미)만 살아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더라면? 아님 전원이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더라면?) 물론 이 모든 것을 연출한 건 장PD가 맞다. 그런데 혼자서, 또는 서기사와 둘이서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진행하기에 장소는 너무 넓고 예기치 않은 상황은 통제를 벗어날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을 제외하고(그런데 그 한 번의 반란도 너무 어설프게 진압이 된다) 모든 참가자들의 동선은 몰래 카메라를 벗어나지 못하며, 항상 최악의 선택만을 되풀이 한다.(그것도 평소 똘똘한 이미지의 연기자들이) 정말 웃겼던 건, 남은 네 명의 참가자가 서기사가 남긴 흔적을 찾아 베이스캠프로 올 때, 장PD는 항상 참가자들의 행동을 감시해야 할 컴퓨터 모니터를 꺼 놓는다는 것이다. 이거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 않은가. 살인자의 통제를 벗어나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발생했을 때 주어지는 영화적 재미를 <10억>은 관객에게 선사하지 않는다.

 

과정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사막을 건너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밀림을 헤쳐 나가는 이들이 그다지 체력적 고갈 상태에 접어들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연출의 문제라고 보인다. 이들은 사막의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쌩쌩해 보이며, 언제나 활기차다. 도무지 힘든 기색이라고는 보이질 않으며, 심지어 숙소를 떠난 이후 먹고 자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영화는 아무런 팁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니 영화를 보면서 긴장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덧붙여 이 상황에서 사랑놀음이야 그렇다치지만, 호주의 멋진 풍경을 보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칠 생각을 하다니. 난 그래서 혹시 조유진이 장PD와 한 편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결국엔 그러긴 했지만.

 

아무튼 다시 ‘왜’라는 문제를 얘기하자면, 누군가는 비슷한 일을 겪은 다음에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면(<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장PD는 방관한 자들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꽤나 많이 지나다니는 그런 골목길의 편의점 앞에서 그런 식의 범죄가 저질러지기 힘들며, 일부 인물들의 캐릭터는 그런 범죄를 방관하는 모습과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사실 '왜'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좀 웃겼다. 아무튼 이 부분은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한 데 모으기 위한 방법으로 10억을 내걸고 참가자를 모집한다니, 계획부터 너무 우연에 기댄 것 아닌가? 차라리 100억이면 어땠을까? 그러면 좀 나았을까? 또는 장PD는 단지 화면에서 스쳐지나가는 이들을 어떻게 알아내어 (특히 히키코모리까지) 호주에 집결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 의미에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으로만(!) 진행된다고 느껴질 정도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20 23:57
jhee65
평이 대체로 별로더군요   
2009-10-10 11:31
1


10억(2009, A Million)
제작사 : (주)이든 픽쳐스, 스폰지 / 배급사 : 싸이더스FNH
공식홈페이지 : http://www.1000000000.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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