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의 인류학적 고찰 쯤 되는 줄 알았네...★★☆
이상하게 최근에 본 미국 영화들이 주로 기존 헐리웃 영화의 자기 복제에 충실한 영화들이다. <이글 아이>, <남주기 아까운 그녀>, 거기에 <내니 다이어리>까지. 사실은 똑같은 얘기를 조금 변주해 뻔뻔하게 내 놓는 것도 상품을 팔아먹는 기술이라고 인정해야 할런지. <내니 다이어리>는 마치 유모라는 직업을 통한 상류사회의 인류학적 고찰을 다루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연사 박물관에서 거창하게 시작한다. 그렇지만 유모와 말 안 듣는 아이가 나오는 순간, 이 영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말로 갈지를 예측한다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 된다.
일단 한국에서는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브리트니 머피, 다코타 패닝 주연의 <업타운 걸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여배우의 위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유모와 아이가 티격태격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유모에게만 맡겨놨던 아이의 성장에 부모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흐름은 대동소이하다. 부모가 금지한 음식 먹기, 전철타고 놀러 나가기 등 규칙을 어기고 둘 만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소통하기 시작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당연하게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에 대한 연민의 정서까지.
<내니 다이어리>와 비슷한 영화를 하나 더 들자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류의 영화들이다. 촌스러운 (초반 스칼렛 요한슨의 정장에 하얀 발목 양말 입는 센스를 보라!) 여성이 상류 사회 속에서 부딪치며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는 최종적으로 상류사회를 수용하지 못하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지만, 스칼렛 요한슨은 나름 상류사회의 시스템을 수용하고 자신도 그 속으로 들어갈 충분한 마음가짐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곳 출신의 애인) 이런 점에서 보면 <내니 다이어리>는 확실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퇴행 버전이라고 할만하다.
더 하나 첨언하자면, 고작 그 정도의 훈계에 변할 사모님이라면 애니를 만나기 전에 수십 번도 더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다른 유모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비백인이라서 대화의 기회가 없었나? 그렇다면 애니가 유모로서 인정받은 이유는 영어 잘하는 백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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