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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24 광명CGV 22:40 민선이
왠지, 영화보기 전에 느낌이 그랬다. 이 영화는 혼자 못 보겠어. 그래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늦은 밤, 나는 극장으로 스며들었다. 영화 시작 전 대기홀에 앉아 기다리면서 앞에 걸린 밀양 포스터를 계속 보고 있었다. 전도연이 앞에 허망하게 서고 송강호가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포스터였다. 그들 사이 틈새에는 머리끝에서 발가락까지 누구라도 따뜻해지고 마는 노오란 햇빛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감싸 앉을 듯 지그시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한참동안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그 빛은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혼자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파란 하늘
고개를 들어 보면, 거기에 언제나 하늘이 있다. 행복한 사람이 봐도 상처입은 사람이 봐도 똑같은 하늘이 머리 위 아득한 곳에 있다. <밀양>에서는 신애(전도연)의 시선으로 화면 가득 파란 하늘이 두 번 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 신애(전도연)가 밀양으로 들어올 때, 그리고 신애가 아들의 사체를 확인하러 간 곳의 차 안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은 아무런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한 개인의 고통이란 누구나에게 똑같이 열려 있는 저 파란 하늘과 다를바 없을지도 모른다. 여지없이 푸르르고 저 멀리서 아득한.
용서
그래서 신애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식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든 죽을때까지 저주하든 비정하지만 그건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종교인이라도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라도, 사실 뭐, 저녁 뭐 먹을까, 정도의 무게도 안 될지 모른다.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일지라도.
주변인
<밀양>은 철저히 주변인의 영화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개체의 고통이란 본인에게는 모든 것일지라도 주변인에게는 무심코 올려다 보는 빛 좋은 날의 파란 하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은 이에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신 역시 그러했다. 신애의 바닥을 치는 고통을 보면서 같이 울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울음이 터져주질 않았다. 신애는 저렇게 가슴을 치며 울고, 토하며 울고, 미쳐가도록 우는데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설령 위로를 한다 해도 나는 절대 신애의 고통을 몸소 체험할 수 없다. 그녀의 고통이 점점 그녀를 잠식해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저 함께 간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같이 울고 싶었다.
종찬(송강호)
그런데 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울기보다 웃기를 더 많이 했다. <밀양>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써 있다. "5월, 울어도 좋습니다...웃어도 좋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뭔 얘긴가 했는데 보고 나니 아하- 알겠다. 이 영화는 무지하게 아프고 무지하게 슬프고 무지하게 괴롭고 무지하게 고통스러운데, 꽤 웃긴다. (마이 히어로...)송강호가 나올 때마다 입가에 싸악 웃음이 지어지는 것이, 그의 껄렁껄렁함이, 속물근성이, 실없는 웃음이, 처절하리만큼 단순함이, 그리고 신애를 좋아하는 마음이, 전도연이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아닐까! 종찬 뿐 아니라 여러 밀양주민들의 맛깔나는 대사들이 어찌나 웃기던지 이 영화의 섬세한 주름은 참 재미있다. 영화를 보아가면서 점점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속을 짓누르는 틈틈이...웃어도 좋습니다.
신애(전도연)
그러나 어쨌거나 이 영화는 신애, 전도연의 영화다. 전적으로 신애의 영화이기도 하고, 전적으로 전도연의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두 인물을 도저히 같이 생각할 수가 없다. <밀양>에서 무섭도록 고생했을 배우 전도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어떤때는 영화를 보고 나서 두서없이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때가 있는데, <밀양>은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그냥 영화를 보고 있으면 생각의 싹이 터 올라 서서히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오아시스>이후 이창동 감독이 거의 5년여 만에 내 놓은 이 영화에 대한 마지막 최종결론! <밀양>은 이창동의 영화다. 전도연의 영화도, 송강호의 영화도, 칸영화제의 영화도 아닌 이창동의 영화다. 배우의 연기와 작품자체의 완숙미와 작품에 대한 담론을 이렇게나 밀도있고 아름답게 끌어낼 수 있는 이창동 감독님. 고맙습니다. 보는 내내 힘들고 괴로웠지만 위로받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혼자 짝짝짝짝 박수를 쳤다. 내 좌석 왼쪽의 여자애는 시종일관 몸을 배배 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 "재미없어"라고 제법 큰 소리로 결정타를 날렸고, 오른쪽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계속 팝콘바닥을 긇어댔고, 앞줄에 나란히 앉은 나보다 어린 여자애들은 영화도중에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는 영화가 끝나자 나가며 뭐야 이거 재미없잖아라고 툴툴대며 나갔다. 흥행은 애초에 물 건너간 것 같지만 최소한 한편의 영화를 굳이 자기 돈 내고 보러 들어왔다면 좀 성의있게 보아주면 안 되는 걸까. 이분들, 집에 가서 영화싸이트에 들어가 "뭐냐. 이게. 졸라 재미없다. 보지마라"고 하며 영화평점을 한없이 끌어내리겠지만 그거야 본 사람의 자유로운 의견이고, 그 영화가 졸작이든 대작이든 영화를 만든 사람과 그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 관객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하지 않냐구.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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