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은 저에게 영화적 상상력에 대한 새로운 장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만약 볼거리 없이 밋밋했더라도 그만큼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요? 물론, 두 편 모두 그 뒤에 담겨있는 속 깊은 내용과 역동적 화면이 결합한 매우~ 훌륭한 케이스지만요. 어쨌든, 이제 와이어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중 요한 효과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영화 속에 와이어 액션의 현주소를 알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화산고]로 학교탐방을 가시죠.
벌써 딱 보기에 범생이는 절대 아닐 것처럼 생긴 전학생 김경수. 화산고에 등교하던 첫날, 하늘도 그를 알아본 듯 폭풍우로 환영하 는군요. 오자마자 재채기 몇 번으로 1인자인 송학림을 긴장시키는 그. 왠지 그의 얼빵한 행동을 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데 송학림의 신경과민이 아닌가 싶죠. 하지만! 교무실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그 의 학생부를 온갖 이유로 뻘겋게 찍힌 여덟 번의 퇴학 도장. 학주 앞에서 주먹을 굳게 쥐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과 연?? 역시나 오자마자 학내 2인자인 장량에게 찍혀서 묵사발이 되 는 고행의 학교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위안은 단아하고 예쁜 미소녀 유채이. 그는 과연 아홉 번째 학교 화산고에 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너무 쎄서 슬픈 사나이 경수의 학교생활은 이제부터 시 작됩니다. 내가 만약 그런 쎈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안하무인 이 되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황당하게 얻은 공력이긴 하지만 학교 짱이 된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이 아닐까요? 경수도 아버지 만 아니었다면 벌써 오만방자 날라리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무협지 와 코믹만화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겹쳐지는 모호한 공간의 고등학교로 끌어다 놓는다는 발상은 꽤 성공적입니다. 인물들 캐릭 터도 더도 덜도 말고 딱 만화 캐릭터 같으니까요. 무협지와 만화를 다 좋아하는 저로써는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나 와이어 액션 과 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사운드는 제 예상 이상으로 좋았거든요. 담당자들의 막노동이 정말 절절히 배어나오더군요.
보고 오신 분 중에는 별로였다고 많이들 하시지만 “예고편이 다였 네.”라는 소리는 안 나옵니다.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만큼은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었거든요. 물론.... 안 나와도 별반 상관없을 장면 때문에 시간이 너무 길어진 것도 있습니다. 신인 배우들이 캐릭터 를 잘 살렸다면 영화가 더 재미있었을텐데 좀 아쉽더군요. 장혁의 경우 코믹과 진지를 아주 극단으로 보여주었다면 캐릭터가 잘 살았 을텐데 애매한 경계선에서 어정쩡했던 게 단점이었고, 유채이는 < 냉옥(冷玉)>이라는 아호에 맞는 이미지를 그다지 잘 살리지 못한 것 같네요. 조역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무척이나 싱거웠을 것 같습 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에서 잔가지를 쳐내고 타이트하던가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면 더 멋진 [화산고]가 될 수 있을텐데.....
교육현실에 대해 비꼴 생각이 있었다면 더 통쾌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놓기만 하고 마무리를 못 짓는 게 단점이더군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 이런 단점을 다독이며 볼 정도로 괜찮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만화책을 넘긴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즐겼거든요. ‘한번쯤 저렇게 강하면서도 정의를 실현하는 멋진 학생이었다면~~’라는 허무맹랑한 공상(--;; 망상에 가깝죠.)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엔 어림도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