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세느 강이 바라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이국의 정취를 얹은 커피 한모금. 어쩌면 파리는 그런 감상에 젖어도 좋은 낭만으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로마에 이어 관광객 소매치기가 많은 세계 2위의 도시라는 점을 상기하자면 그 낭만의 기운은 잠시 잊고 자신을 노리는 위험한 현실에 주머니속의 지갑 유무를 한번쯤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젊은이로서 파리에 살아보게 될 행운이 충분히 있다면, 그렇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A moveable feast)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中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국내 출판 제목, 원제는 'Paris est une Fete(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에 따르면 파리는 20대가 저물기 전 한번쯤 머물러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을 부여한다. 물론 그것이 인생을 위한 투자라기 보다는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젊은 날의 통과의례적 방편으로써 말이다.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낭만성은 세계의 수많은 도시를 제치고 파리를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사랑해, 파리'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마치 파리에게 던지는 고백같기도 하고 파리를 사랑하라는 명령조같기도 하다. 물론 중간에 자리잡은 쉼표의 여운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다. 물론 원제인 'Paris, Je' Taime.'를 보아도 그렇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파리라는 도시에 바치는 애수적인 고백 혹은 헌사에 가깝다. 이 작품은 18편의 에피소드를 묶어 만들어 낸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군상의 모음집이다. 사실 5분에서 10분 내지의 이야기들은 관객에게 저마다 충분한 만족을 주긴 어렵다. 이야기의 끝과 함께 관객은 입맛을 다시며 다음 이야기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짧막한 에피소드들은 사건이 발생하여 무언가가 이루어질 때 즈음 눈을 감아버리거나 혹은 하나의 사건이 고조되어 다음 상황이 궁금해질 때 즈음 막을 내려버린다. 물론 간단 명료하게 그 짧은 시간을 가득 메우거나 궁금할 필요도 없이 애초에 개인의 느긋한 일상을 채우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수많은 군상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긴 런닝타임을 한땀한땀 기워가며 파리를 완성해간다는 것이다.
일단 무질서하게 늘어선 듯한 일사불란한 영화의 에피소드들이 일렬 종대로 질서정연하게 따라가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파리라는 도시의 로맨스, 그 이국의 낭만적 질서가 가장 적합할 것만 같은 도시 파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랑. 떄론 그것들이 우발적이기도 하고 순간적이며 파렴치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의 모티브는 하나같이 순수하고 나직하며 미워할 수 없게 사랑스럽다.
18편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제목을 파리의 구석구석의 지명으로 대신한다. 몽마르뜨 언덕의 빽빽한 주차행렬 속에서 외로움을 한탄하던 남성의 운명적인 만남(브뤼노 포달리데 作), 세느 강변의 젊은 프랑스 청년과 이슬람 숙녀의 마주친 시선에서 발견한 사랑(거린더 차다 作), 마레 지구의 두 청년간의 첫만남, 그리고 기묘한 이끌림(구트 반 산트 作), 튈트리 역에서 파리의 매혹적인 눈웃음에 호되게 당하는 미국인 관광객의 기구한 사연(코엔 형제 作), 16구역의 이민자 여성이 매일같이 아들과 이별해야 하는 사연(월터 살레스 作), 차이나타운에서 중년의 세일즈맨이 중국인 미장원 원장과 얽힌 와일드한 핑크빛 이야기(크리스토퍼 도일 作), 바스티유에서 아내에게 이혼을 전하려던 남편이 아내의 얼마남지 않은 죽음을 통고받는 사연(이자벨 코이셋 作), 빅토아르 광장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맞이한 아들과의 마지막 재회(스와 노부히로 作), 에펠 탑을 떠돌던 비호감의 마임 아티스트가 자신의 아내를 만나게 된 사연(실뱅 쇼메 作), 몽소 공원을 거니는 젊은 어머니가 된 딸과 그녀의 아버지간의 대화(알폰소 쿠아론 作), 앙팡 루즈 구역에서 찾아 온 미국인 배우와 마약 딜러의 은밀한 호감(올리비에 아사야스 作), 축제 광장에서 끔찍한 린치를 당한 흑인 남성과 응급 구조원 흑인 소녀의 인연이 남긴 커피 두잔의 사연(올리버 슈미츠 作), 피갈 거리에서 벌이는 권태에 빠진 중년 부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리처드 라그라베네즈 作), 마드렌느 구역에서 미국인 관광객이 맞이한 뱀파이어와의 러브스토리(빈센조 나탈리 作), 페레 라세즈를 찾은 여행중이던 연인이 다투고 화해하게 된 사연(웨스 크레이븐 作), 생 드니 외곽에서 자신의 연인과의 만남부터 오늘까지를 되돌아보게 된 시각장애인의 사연(톰 티크레버 作), 라탱 구역에서 만난 이혼을 결심한 노부부의 대화(프레데릭 오뷔르탱 & 제라드 드파르디유 作), 14구역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주부의 도피같은 파리 여행의 마지막 하루(알렉산더 페인 作).
파리의 구석구석을 훑고있는 이 작품은 파리와 함께 세월을 보내는 파리지엥들부터 파리를 찾은 타향의 이방인들, 잠시 파리를 머무는 여행객들까지 파리라는 도시적 영역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사연들을 콜라주하고 있다. 금발머리에 푸른 눈의 프랑스 청년은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아랍계 처녀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처음 만난 인쇄소의 견습공 청년에게 운명을 느끼는 청년은 전화번호를 건넨다. 파리를 찾은 젊은 연인은 목소리를 높여 다투다가 화해의 키스를 하고 권태에 빠진 중년의 부부는 홍등가에서 은밀하게 밀회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사랑을 옛 추억의 공유로 확인하고 자신의 외로운 삶을 한탄하던 남성은 운명같은 여성과 조우한다.
물론 영화는 남녀의 핑크빛 사랑의 완결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바람을 피고 이혼을 결심한 남편이 아내에게 그 사실을 통고하려던 날 아내가 백혈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게 됨을 되려 알게 되는 남편의 아이러니한 사연과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아들과 재회하는 초현실적인 하룻밤의 사연이나 매일같이 자신의 아들과 이별을 반목해야 하는 젊은 이민자 여성의 사연은 심금을 울린다. 때론 파리를 찾은 관광객의 낭만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위험한 마주침과 맞닥뜨리기도 하고 유색인종으로써 린치를 당해 길거리에 쓰러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도발적인 짜릿한 키스를 전리품으로 얻기도 하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성과의 커피 한잔을 목전에 두기도 한다. 또한 미국인 여배우는 촬영을 위해 들른 파리에서 마약 딜러와 호감을 교감하지만 짧은 기대를 삭혀야 하고 이혼을 결심한 황혼의 부부는 여전히 잔존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미 선택한 엇갈림의 운명을 돌이키지 않는다.
때론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연을 지니기도 하는데 미국의 관광객이 맞이한 뱀파이어와의 끔찍한 만남은 뜬금없이 그로테스크한 로맨스로 완성되고 비호감이라 박대받던 마임 아티스트는 철창안에서 자신의 연분을 만난다. 중년의 세일즈맨은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과격한 미용실 원장과 불현듯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 작품의 제목을 그대로 대변한다. 주부로써 지루한 삶으로부터 도망쳐나오듯 파리로 여행을 온 미국인 여성은 그 도시에서 홀로 지내며 그 도시의 모든 것을 관조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도시의 아름다운 일상과 풍경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은 자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파리는 그렇게 그 도시를 지키는 이들과 그 도시를 스쳐가는 이들의 수많은 기억과 추억들을 머금으며 낭만과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실 세계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우리는 종종 이국의 도시를 선망하고 그 곳에 머무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파리의 낭만을 유난히 그리는 건 그 도시가 지닌 유구한 역사속에서도 잃지않는 젊은 감성덕분이다. 마치 그 섬세한 감성이 세느강을 타고 흘러 에펠 탑의 꼭대기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 부유할 것만 같은 도시. 그 도시가 머금고 있는 수많은 추억들은 그 도시의 낭만을 풍성하게 만들고 무르익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 도시가 지닌 개별적인 사연들은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각자의 소리를 내지만 결국 파리라는 도시안에서 모여 하나의 교향곡처럼 낭만의 화음을 빚어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기쁨에 환희하기도 하고 슬픔에 눈물흘리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안에서 지긋지긋한 권태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일탈같은 탈출을 꿈꾼다. 먼 이국으로의 도피적 갈망. 우리가 만나는 파리는 그 지점에 있다. 마치 무언가가 이뤄질 것 같은 낭만과 자유의 도시. 하지만 그곳을 채우는 것은 짜릿한 이색적 경험보다는 일상적인 삶의 다양한 군상들이다. 어쩌면 그 곳의 낭만은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만남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인연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설레는 기대감이 만들어내는 파리에 대한 환상은 사실 그 도시가 지닌 꿈과 같은 현실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18개의 소박한 낭만으로 채워져있다. 물론 이 영화가 파리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째서 파리를 동경하는 파리의 솔직한 답변은 될 수 있다. 비단 그 도시가 아름다워서 혹은 그 도시는 모든 이들에게 낭만을 보장하기 때문도 아니다. 솔직하고 다양한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다채로운 향연. 인종을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그 안에 머물며 오랜 사연을 만들어가거나 잠시 그 곳을 찾아 짧은 사연을 남기거나 관계없이 그 아름다운 추억들이 유유히 기억속에 흐르는 곳. 파리라는 지정학적인 매력을 채우는 다양한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감정과 사연들. 소박한 사연들이 만들어내는 낭만의 결정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파리를 동경하게 만드는 신기루같은 낭만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파리는 언제나 가치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준 만큼 틀림없이 무언가를 돌려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몹시 가난하고 무척 행복했던 시절, 우리 젊은 날의 파리였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中
파리는 젊은 도시다. 그 유구한 도시의 역사와 무관하게 젊음의 특수를 누리는 비결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소박한 사연에 부여하는 특별한 낭만적 갈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파리를 꿈꾸며 낭만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어쩌면 그 먼 이국에 낭만을 부여하며 특별한 꿈을 꾸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각박하고 외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파리를 예찬이전에 그 영역안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이 지닌 사연들의 소박함을 이야기한다. 결국 그 다양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갈구하는 낭만을 확인하고 싶은 관객들이라는 것을. 그 평범한 영화속의 사연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것은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며 우리가 갈구하는 꿈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낭만은 결코 우리와 멀지 않다. 다만 그 낭만같은 꿈을 저 먼 도시에 대입한 채 현실을 각박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낭만은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옆에 혹은 그 주변에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작은 도시속에. 당신이 꿈꾸는 낭만이 잠재되어 있다. 비단 파리가 아니어도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그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낭만에 머물 수 있다. 물론 그렇지만 이 영화가 파리로 떠나고 싶은 욕망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건 필자도 감출 수 없는 영화의 매혹적인 손짓과도 같았다. 마치 뱃사람들을 매혹하는 세이렌처럼. 그 도시에 한번쯤 홀린 듯 떠나보는 무모함이야말로 진정 낭만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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