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선발대회 중계 녹화를 보며 그녀들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7살 소녀, 화장실에서 홀로 문을 걸어잠근채 헤로인을 복용하는 할아버지, 삶은 성공과 실패만이 존재한다며 성공하는 법을 자신있게 강의하지만 정작 그 이론을 듣는 수강생은 몇명에 불과한 강사 아버지, 거기에 말한마디 안한지 9개월이 되어가는 아들과 자살을 시도했던 삼촌이 끼어들면. 이 가정의 모습은 두말할 것 없이 콩가루로 정의된다. 과연 이 집안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2주째 닭튀김으로 줄곧 식사를 해야한다고 육두문자 섞인 불평을 늘어놓는 할아버지 에드윈(앨런 아킨 역)과 밥상에서 우연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그로 인한 실연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과거담을 고백하는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 역), 그리고 그를 비꼬며 자신의 동기부여론으로 성공과 실패의 흑백논리를 밥상머리에서도 유감없이 주장하는 아버지 리차드(그렉 키니어 역)의 이야기들이 단란한 가족식사의 정겨운 대화를 대체한다. 그와중에 세상에 대한 증오가 심해져 소통단절을 위해 공사입학전까지 묵언수행을 하지 않겠다는 빌미로 9개월째 말을 하지 않는 드웨인(폴 다노 역)과 미녀선발대회에 집착하는 깜찍한 동생 올리브(에비 게일 브레슬린 역)까지..정말이지 평범할 수 없는 가족의 식사는 이렇게 극적인 상황을 견뎌내며 이뤄진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 가족에게 하나의 미션이 주어진다. 막내딸이 원하는 소녀미인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에 출전하기 위해 그 콩가루같은 가족들을 우여곡절끝에 대륙횡단으로 인도한다.
그 여정역시 순탄치 않다. 좁은 고물 밴 안에 모인 여섯식구들은 서로를 비꼬고 할퀸다. 할아버지는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손자에게 한살이라도 어릴때 여자 한명하고라도 더 자라고 조언하며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동기부여론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그런 그를 외삼촌은 비웃으며 둘은 서로를 비꼰다. 그와중에 드웨인은 여전히 침묵하고 올리브는 자신의 대회우승을 꿈꾼다. 그런 난장판속에서 어머니는 그나마 어지러운 가족의 기운을 잡아보려 애쓴다.
그 어지러운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구닥다리 밴이 자신의 노후된 성능을 드러낸다. 클러치 고장으로 뒤에서 밀고 3단기어로 시동을 건 후 달리는 차를 전력질주해서 따라잡은 후 올라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 정말이지 이 가족 너무나도 험난하다. 과연 그 미인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이 영화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웃음에 있다. 그 어지러운 가족간의 웃지 못할 법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황당한 시츄에이션들의 돌발성은 하나하나가 웃음으로 치환된다. 무엇보다도 그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황을 엮어나가는 스토리 텔링의 탁월함은 이 영화의 뛰어난 장기이자 날카로운 칼날이다. 그리고 그 웃음이 기반으로 쥐고 있는 가족의 사연은 단지 그 웃음을 한낱 킬링타임용 재료로 간과하게 만들지 않는 진득함이 된다.
가족은 예기치 않았던 여행으로 인해 자신들의 분열된 현상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토록 믿고 있던 꿈의 붕괴를 마주해야 하고 자신의 비통한 과거를 다시 대면하기도 하고 우연찮게 찾아오는 이별도 감당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통함을 느끼고 끝없는 좌절감을 만끽하지만 극중 아버지 리차드의 말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믿음이 그들을 전진시킨다. 그 믿음은 붕괴되고 흩어져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남은 자그만한 희망이다. 그 작은 희망이 그들을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지탱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원인 셈이다. 꿈이 무너지고 이별을 겪고 서로를 증오해도 그 부질없어보이는 영역안에 치유를 꾀하는 희망이 존재함을 이 영화는 역설적인 어조로 재치있는 비유를 통해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들은 불법행위까지도 과감하게 행하며 목적지를 향해 밀고(?) 달린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로부터 가족은 변화한다. 원망스럽던 자동차의 고장마저도 그들에게 유쾌한 에피소드가 된다. 특히나 올리브의 공연에서 보여지는 가족의 단결은 상황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위에 훈훈함이 얹혀진다. 여섯으로 출발한 여행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어 돌아온다. 그 작고 보잘것없던 영역이 소중하고 단단하게 엮어져나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투명한 원석같은 미덕이다.
또한 풍자는 이영화의 비주류같은 재미인데 영화는 은연중에 세태를 비꼰다. 특히나 아이들의 미인대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런 풍자의 노골적인 면모인데 아이들이 아닌 어른 흉내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보일 수 없는 끔찍함의 나열일뿐이다. 이는 결국 상업적인 엔터테이너 문화가 아이들의 순수함마저 잠식해가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오히려 할아버지의 조기교육으로 노골적인 어른흉내를 내는 올리브의 천진난만한(?) 무용에 어른들이 불쾌감을 표하는 것 역시 그런 상황의 역설적인 풍자에 가깝다. 그 상황에서 리차드가 던지는 한마디는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차피 어른 흉내내는 것은 마찬가지아닌가!'
되는 것도 없고 앞길이 막막한 가족이지만 그들은 그 여행으로 미녀 딸을 얻진 못했어도 자신들이 잊고 있던 울타리의 소중함을 건진다. 물론 그들이 앞으로도 여전히 다투고 서로를 비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자동차 경적의 고장도 클러치의 고장도 가족의 귀가에서 드러나는 행복함을 방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콩가루 같기만 하던 가족이 하나의 계기로 가족이라는 반죽으로 빚어나는 소박한 감동이 이 영화의 웃음을 먹고 자란 탐스러운 열매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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