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현서를 죽였을까?
가까운 미래, 한 남자가 한강을 보면서 직장동료들에게 뭔가 꿈틀대는 게 보이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나 동료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그러자 비소를 날리며 “둔해빠진 새끼들, 그럼 잘들 살어”라고 말하며 한강으로 투신자살을 한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때는 ‘밑에 괴물이 있는데 이 남자가 괴물에게 먹혔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니까 문득 그날의 날짜가 떠오른다. 그 남자가 한강으로 떨어진 날은 2006년 10월. 왜 하필 10월인가? 개봉날짜는 7월이었고 제작은 더 전이었을 텐데. 굳이 가까운 미래로 설정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 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10월의 비극적인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그렇다 94년 10월은 성수대교가 붕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까 꽃다운 여고생의 사망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 후, 가상의 미래에서는 한강괴물사건으로 꽃다운 나이의 현서가 죽게 된다. 그냥 우연이었을까? 어쨌든, 여고생은 부실공사로 죽었지만 그 부실공사 뒤에는 욕심 많은 어른들이 있었듯이, 현서를 죽인 건 괴물이지만 그 괴물 뒤에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현서를 죽인 건 누구였을까? 첫 번째 추측은 ‘한국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어설프게 한강출입을 금지하고 바이러스 위험이 있다니까 소수의 군인들과 방역회사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다 철퇴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말 한마디에 속수무책인 한국의 시스템. 거기에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통행료를 받으려는 사람이나 괴물보다는 멀쩡한 사람들을 더 위협하는 정부나 무지하기 짝이 없다. 괴물은 불에 탄 후 쇠꼬챙이에 맞아 어이없이 죽는데, 왜 정부는 그런 약한 괴물을 방치해두고 더 많은 희생자들을 둔 것일까? 세주가 아플 때 현서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군인들, 의사들 다 데리고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믿을만한 군인들, 의사들은 현서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괴물에게 신경 쓰지 않고 외부로 출입하려는 사람들,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한다. 아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서민들이 믿고 있는 정부기관이 괴물을 만든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추측은 ‘미국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처음 괴물이 생긴 것도 미군의 포름알데히드 방출이 원인이었고, 그들은 바이러스가 있을 것이라며 평범한 사람의 뇌세포를 실험하기도 한다. 또 마지막에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살포기계는 처음 괴물이 한강에 매달려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에이전트 옐로우’는 사람들 귀에서 피가 나고 재채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에게 해가 되는 물질들일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전혀 해가 없는 무해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소란을 떤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단서는 ‘괴물’ 등에 박혀있던 물고기에 있다. 마지막 그 물고기는 괴물과 분리된다. 그때부터 괴물은 힘을 쓰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더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그 물고기가 항간에는 북미산 ‘큰 입 베스’라고 한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The Host>. 즉 숙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에게 지배된 한국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세 번째 추측은 그냥 ‘인간’이다. 송강호는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아주 평범한 서민이다. 그는 성인임에도 잘 엎어져서 현서를 놓치게 되고, 총알을 잘못 세서 아버지를 괴물에게 죽임 당하게 한다. 나중에 현서를 찾으러 갈 때도 방해하는 건 인간이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타락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현서의 죽음으로 많은 걸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리멸렬><플란다스의 개><살인의 추억>으로 교수·형사·논설위원·직장상사 등을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비판했다. 이번영화 <괴물>에서도 스케일은 커지고 상업적인 측면이 강화되긴 했지만 어쨌든 인정받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힘없는 대한민국의 부조리함을 캐묻는다. 누가 현서를 죽이고, 누가 여고생을 죽였는지 신경도 안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준호는 비소를 날린다. 그리고 입을 연다. “둔해빠진 새끼들, 그래 잘들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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