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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물’은 어떤 영화인가?
처음부터 ‘괴물’은 작품의 ‘표면적’ 의도를 드러내면서 시작된다. 첫 장면, 포름알데하이드가 한강으로 방류되는 시작 부분에는 ‘미 8군’이라는 뚜렷한 자막을 누구도 놓칠 수 없도록 새겨놓고 있다. “괴수 영화”라는 항간의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괴물은 초두부터 현실참여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 듯이 보인다. 과연 이 영화는 현실참여적인 영화인가, 아니면 어떤 영화인가?
2. ‘괴물’의 3가지 기본 골격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골격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정치적 함의인지, 기득권 혹은 사회적 강자,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력에 대해서 일관된 비난과 조소를 보낸다. 미국의 오만함에 의해 괴물이 탄생하였고, 또 그들은 바이러스 가설을 내세워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인권을 유린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의 의료진은 지극히 불손하고 오만한 태도로 피해자들을 대하고 있고, 경찰은 딸이 살아있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오히려 미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구청 공무원과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피해자 가족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영화는 사회적 약자를 속박하고 착취하는 여러 가지 권력의 형태를 조롱하고 비난한다. 또한 대졸 실업자인 삼촌이 노숙자의 결정적인 도움을 얻어 화염병으로 괴물을 넘어뜨리고, 아버지가 쇠파이프로 괴물을 처단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여러 방법들이 괴물을 물리친다는,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의 대표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둘째, 가족간의 애정과 휴머니즘. 정치적 진보성에 비하면 문화적으로 이 영화는 매우 보수적이기도 하다. 와해될 듯 하던 가족은 딸의 사고로 결합되고, 가족애의 무한한 능력이 결국 괴물을 처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혈육간 애정의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소영웅주의과 결합시키고 있다.
셋째, 컴퓨터 그래픽의 적절한 활용.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괴물은 한국영화로서는 매우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빛의 각도에 대한 반사광이나 전체적인 콘트라스트가 약간씩 부조화스런 면도 있지만 몰입하여 즐길 만 한 효과는 충분히 발휘한다.
3. 영화에 있어서 작품성의 조건
영화의 기능 중 가장 큰 부분은 주제의식의 전달이다. 미학적인, 혹은 오락적인 주제를 표현할 수도 있고, 정치적인 의미 전달을 할 수도 있다. ‘괴물’이 지향하는 듯 한 정치성, 혹은 사회적 현실 참여영화는 우리 주위에 많다.
‘전함 뽀템킨’ 같은 영화는 전형적인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정치 영화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라든가 ‘대부 1편, 2편’ 시리즈도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함 뽀템킨’의 경우, 이 영화가 그렇게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은, 정치를 이야기했다는 이유가 아니다. ‘몽따쥬’식 편집방법을 최초로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역사적인 것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나 ‘대부’는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는 인간의 본성을 사용한다. 두 영화는 우리가 영화의 작품성, 혹은 예술성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중의적, 함축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관능적이면서도 철학적이며, ‘대부’ 시리즈 또한 폭력적인 느와르 영화이면서 자본주의의 속성을 고발하고 있다.
4. 괴물의 작품성, 정치성
과연 ‘괴물’의 현실 참여적 장치는 진정 심각하게 정치적인 사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위에서 예를 들었지만, 관객이 정치권력에 대해 되씹어 보기에는 그 표현이 너무도 직접적이고, 표면적이다. 우리가 단세포적인 영화로 폄하시켜 마지않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서 볼 수 있는, 적은 항상 음흉한 소련으로 표현되는 정도의 ‘정치성’과 전혀 틀릴 것이 없을 정도로 피상적이며, 인상적인 표현이나 깊은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가족간의 애정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공포영화의 장치를 빌려 오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주장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이 ‘괴물’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 ‘흥행’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듯 보인다. ‘표면적인 정치성’은 정치와 권력에 대해 사유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386세대, 혹은 더 젊은 세대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름대로 헐리우드 영화와 차별성을 두고자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결국 특수효과에 진 빚, 누구나 보기 원하는 소영웅주의의 채택, 그리고 관객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무시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괴물’은 ‘오락영화’의 주체할 수 없는 가벼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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