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탱한 긴장감이 흐르는 라켓을 떠난 공의 운명은 행운과 불운을 가르는 네트의 잔인한 냉소에 의해 정해질 뿐이다.
네트는 허공에 매달려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공의 초조한 떨림을 그저 차갑게 바라볼 뿐, 어떤 선택을 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흔들리는 바람과 초조한 공의 떨림이 만나 우연이 빚는 결과를 그저 말없이 지켜 볼 뿐이다.
행운의 여신의 미소도, 불운의 싸이렌도 운명을 가르지 않는다. 다만 차가운 냉소를 따를 뿐…
불운에 우는 그대여! 그대의 목을 틀어 쥐고 있는 이는 다만 우연의 실타래를 짜고 있을 뿐이니……
삶 속에 내던져진 우리가 거창하게 운명이라 부르는 것도 이리저리 굴러가며 우연을 반복하다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는 그런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우연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행운과 불운을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우리는 온전히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며 그리곤 결국엔 체념하게 된다. 삶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운과 불운이 단지 우연한 선택의 결과라면 인간의 선하고 악함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수다쟁이 뉴요커 우디 앨런의, 삶에 대한 비아냥과 냉소적 유머가 담긴 치정극 <매치 포인트>는 자신의 삶이 늘 행운으로 가득했다는 크리스 (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상류층을 상대로 테니스 교습을 하던 크리스는 부유한 상류층 집안의 톰과 만나 친하게 되면서 그의 여동생 틀로에와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클로에가 잘생긴 테니스 강사 크리스에 반하면서 둘 사이는 더욱 친밀한 관계로 변하게 되고, 톰의 집안과 가깝게 된 크리스는 아름답고 섹시한 톰의 약혼녀 노라를 만나 육체적 욕망에 빠진다.
그러나 가난한 아일랜드 출신의 청년 크리스는 신분상승의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노라에 대한 욕망을 품은 채 클로에와 결혼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며 꿈꾸던 영국상류사회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톰과 노라는 헤어지고 우연히 노라를 만난 크리스는 노라와 불륜에 빠지며 불안한 애정행각을 이어간다.
권태롭지만 안락한 미래를 보장하는 클로에와 달콤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라와의 사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크리스는 어느 한가지도 포기하지 못한 채 벼랑에 몰리게 되고 드디어 위험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매치 포인트는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한 점’을 말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크리스는 행운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한 점을 따내기 위해 아니 지키기 위해 일생일대의 커다란 모험을 선택하고, 크리스의 위험한 모험은 운명의 선택을 받는다.
신분상승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클로에와 결혼하고 결혼생활과 동시에 애인과의 불륜을 즐기는 크리스는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다. 손에 쥔 부와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지만, 그의 운명은 끝까지 행운으로 가득하다.
언뜻 젊은이의 양지, 태양은 가득히 와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매치 포인트>는 욕망이 불러온 파국적 운명의 당연함을 한껏 조소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행운과 불운을 결정짓는 것은 순간의 선택과 단지 우연에 의해서일 뿐이라는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냉소로 가득하다.
우연에 의해 선택 받은 삶에 윤리적 가치관이 설 자리는 없다. 운명을 희롱하는 것은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찰나의 선택과 그로 인한 우연일 뿐이다.
<매치 포인트>의 우디 앨런의 주장에 따르면 도스토 예프스키의 ‘죄와벌’ 따위의 윤리적 고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윤리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지독한 냉소다.
<매치 포인트>에는 우디 앨런 특유의 수다스러움은 덜하지만 곳곳에 그만의 냉소적 유머가 배어 있고, 또 관객의 예상을 깨는 짓궂은 장난과 같은 반전이 들어있다.
불운에 우는 그대여! 김소월의 시구와 같은 위로는 주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불운에 의문을 가진 이들에겐 한줄기 희미한 답을 혹시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답답해질까?
'다요기' 시네마 살롱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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