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부터 주구장창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버지 에드.
모든 이들은 경청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 합니다. 아들 윌이죠.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기본적인 부자간의 관계 부재를 넘어서,
아버지의 방식과 아들의 방식이 대립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우회적이고 비유적인 아버지와 직설적인 아들의 방식의 차이는 3년간 둘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를 만들죠.
아버지의 이야기는 뭔가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거인 친구, 샴 쌍둥이 자매, 3년간 어머니를 쟁취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 거인병에 걸렸던 아버지,
그리고 큰 물고기를 잡았던 아버지까지...
도대체 진실은 저 어딘가에 묻어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점차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아들 윌은 그런 아버지의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언제나 사교적이고 매사에 밝았던 아버지 에드는 자신이 겪었던 시련과 고난 마저도
앞으로 자라날 아이, 듣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아릅답고도 기괴하게 포장을 했던 것이죠.
물론,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늘 앞뒤가 맞아야 되는 분명한 논리관계에 입각한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아버지의 임종 직전, 이런 아버지의 방식은 자연스레 아들 윌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윌은 아버지를 머나먼 고향으로 보내는 여정을 그가 했던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라구요.
아버지는 죽어서 물고기가 됩니다.
영화 처음에 말했듯, 제목과도 같은 '빅 피쉬'는 물의 흐름을 따르지만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거침 없는 아버지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나치게 아버지 중심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또, 허구와 진실을 구분할 수 없다해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건, 아버지가 거쳐왔다는 그 진실 하나 아니겠어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인생에 대해 좌절하는 이는 어느 누구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자살을 꿈꾸는 이도 없었고, 경제 공황의 충격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전쟁의 공포마저도 해학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아버지가 거쳐온 인생에 대한 이러한 달관적 태도는
윌의 아들, 딸들에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자식 나아봐야 부모님 마음 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윌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자로서의 윌을 만들었듯이
새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바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목표이자 단 하나의 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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