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팀버튼의 영화라고 믿고 싶지 않은 영화 빅 피쉬
cocteau 2004-04-12 오전 1:20:09 1391   [0]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전 감독 팀 버튼을 정말로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전 <배트맨 2>을 보며 펭귄 복장을 뒤집어쓴 것이 홀랑 드러나는 그 수공업적인 특수효과에 실소했었구요, <가위손>이 미국 중산층의 허위를 좀 더 신랄하게 비아냥대지 않는 것에 실망했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학살하고 군인과 전문가를 바보로 묘사하던 <화성침공>의 공격적인 전복성은 흥미로왔지만, <혹성탈출>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가슴만 흔들고 다니는 에스텔라 워렌을 보곤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팀 버튼이 감독한 것이 아니더군요.

가족에 대해 말하는 팀 버튼의 영화라니, 이건 또 얼마나 이상한가요? 팀 버튼의 영화에서 '가족'이란 관심 밖의 소재이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지요. <배트맨 2>에서 펭귄맨의 부모는 아이가 못생겼다고 하수구엔가에 아기를 버렸고, <가위손>의 과학자는 아버지라기보다 괴물(?)을 창조해내는 프랑켄슈타인이었을 뿐입니다. 정신분열증자들의 자아도취를 묘사하고 타자를 박해하는 보수적인 가치관과 주류사회의 허위에 반감을 드러내던 팀 버튼이니까, 그가 '가족 사이의 공감과 이해'라는 착하고 지루한 얘기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가족은 소중한 거고, 팀 버튼으로선 그런 얘기를 할만한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디즈니'를 제 발로 걸어 나왔다던 그가 이렇게 근사하고 매끈한 '디즈니표' 영화를 만들었다니, 실망이랄까 당혹이랄까, 복잡한 기분입니다.

디즈니의 예정조화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피부색을 감지하는 필터라도 있는 걸까요? 영화에서 젊은 블룸이 방문했던 초현실적으로 해피한 마을 'Spectre'에는 흑인이 한 명도 살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팀 버튼의 영화에서 흑인이 비중있는 역을 맡았던 기억이 거의 없군요. <화성침공!>에서 퇴물 복서로 나왔던 Jim Brown 정도가 고작. 하긴 그도 힘쓰는 거 말고는 특별히 한 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화에 대사 있는 흑인을 등장시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우디 알렌이야, 자신의 실제 삶에도 흑인은 없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담 팀 버튼은 무슨 변명을 할까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이 영화의 공간도 제겐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배트맨>의 고담시티나 <비틀쥬스>의 그 이상한 공간이 매력적이었던 건, 그것이 팀 버튼의 순수한 창조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엔 만들어지지 않은 전혀 새로운 세계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혹성탈출>이나 <슬리피 할로우>처럼 SF나 고딕 호러에서 영감을 받은 경우라도 거기엔 팀 버튼 특유의 음침함과 웅장함이 있었습니다. <가위손>의 성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할로윈 마을은 말할 것도 없구요. 기실 팀 버튼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음침하면서도 환상적인 영화적 공간이었는데, 이 영화 <빅 피쉬>는 미국의 옛모습을 배경으로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발생할 따름이라, 새로운 공간의 창조,라는 그의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블룸이 어떤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공연장에 침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대에선 중국어로 공연을 하는데 막사안에는 인공기가 걸려있고, 막사 안의 두 병사는 지들끼리는 중국말인지 뭔지로 대화를 하다가 막사안으로 들어온 블룸에게는 '너는 누구야"라는 또렷한 한국말로 고함을 지릅니다. 그러곤 텀블링을 한 바퀴 하며, 얼빠진 미국영화에서 동양인이 항상 그러하듯 무술의 달인처럼 곡예를 하는군요. (가령 스탠릭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에 나오는 그 소매치기처럼 말입니다.) 더 웃긴 건, 무대 위의 샴 쌍둥이 자매는 중국인인지 북조선인민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요. 이런 황당한 장면은 뤽 베송의 <잔다르크>에도 나왔었지요.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모든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잔다르크가 적국의 언어로 프랑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웃기는 상황이 만들어지죠. 미국분들이 영어를 사랑하는 건 충분히 잘 알겠지만, 자막 읽기 싫어하는 관객을 위해 영화의 현실감 같은 건 주저없이 무시하는 서비스 정신은, 저같은 약소국의 백성에겐 '오만' 내지 '무식함'으로 보입니다. 미국 영화는 저런 면에선 누가 만들어도 차이가 없군요.

이 영화에는 웃으라고 넣은 장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블룸이 서커스단에서 고생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팀 버튼이 좀 더 신랄하고 비틀린 유머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면들은 꽤 재밌있었지만, 고작 몸으로 때우는 코미디라니, 실망스러웠습니다.

팀 버튼은 뛰어난 감독이고 거대자본으로 지독히 개인적인 취향의 영화를 만드는 그의 작업방식은 나름대로 통쾌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팀 버튼 영화와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팀 버튼 영화 특유의 아우라가 사라지고 대신 '감동'만 잔뜩 쌓아올린 평범한 영화입니다. '감동'을 주는 영화는 좋은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루하죠. 적어도 팀 버튼은 저렇게 지루하고 착한 척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안그래도 많으니까, 팀 버튼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http://cocteau.pe.kr


(총 0명 참여)
1


빅 피쉬(2003, Big Fish)
배급사 : (주)팝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주)제이브로, 포레스트 /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88096 [빅 피쉬] 동화적인 이야기 kooshu 10.10.07 982 0
77828 [빅 피쉬] 뻥쟁이 아빠와 그를 의심하는 아들 (8) happyday88ys 09.12.20 1684 0
64700 [빅 피쉬] 큰 물고기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이야기 <빅피쉬> (1) gion 08.02.04 3071 1
62337 [빅 피쉬] 재미와 감동의 영화 (1) remon2053 08.01.01 1919 1
55015 [빅 피쉬] 코코의 영화감상평 ## excoco 07.07.19 1820 7
51575 [빅 피쉬] 코코의 영화감상평 ## excoco 07.05.01 1334 7
51526 [빅 피쉬] 빅피쉬 (1) ppopori486 07.04.30 1432 5
43660 [빅 피쉬] 거짓도 믿으면 진실이된다 chati 06.11.10 1270 5
39803 [빅 피쉬]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enemy0319 06.10.03 1431 3
34969 [빅 피쉬] 어른을 위한 동화 beoreoji 06.06.25 1121 5
30348 [빅 피쉬] 팀버튼답지 않은 감동 (5) batmoon 05.09.14 1565 9
23077 [빅 피쉬] [찌루박] 빅 피쉬 - 인생에 대한 진리에 도달하기. pjwwoo 04.08.07 1330 2
22546 [빅 피쉬] 역쉬 팀버튼이에여~!! 짱이여~!! ssnmovie 04.07.23 1202 2
22117 [빅 피쉬] 팀버특 특유의 성인을 위한 동화. 따듯한 감동 keidw 04.07.09 1445 1
21843 [빅 피쉬] 좋은 영화예요 yuriduna 04.06.29 1264 1
21597 [빅 피쉬] 꿈쟁이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ioseph 04.06.21 1211 1
21572 [빅 피쉬] [빅 피쉬] 믿는다면... 세상은 훨씬 신비롭고 아름다워질 거야... callisto 04.06.20 1277 3
20851 [빅 피쉬] 팀 버튼의 빅 피쉬라는 타이틀에서 주목할만한 것이란.. neho1 04.05.30 1457 4
20488 [빅 피쉬] 나에겐 다소 어려운 영화.ㅡ.ㅡㅋ younjini 04.05.18 1215 4
19738 [빅 피쉬] [J/y] 대어를 낚다 kaminari2002 04.04.22 1140 5
19655 [빅 피쉬] 팀버튼의 아름다운 동화! iris172 04.04.17 985 1
현재 [빅 피쉬] 팀버튼의 영화라고 믿고 싶지 않은 영화 cocteau 04.04.12 1391 0
19549 [빅 피쉬] 거짓말 같은 진실, 진실 같은 거짓말 lemonshake 04.04.10 1019 0
19425 [빅 피쉬] 사람들이 팀버튼 팀버튼 하는 이유가 있나부다,,, mingbba 04.03.31 1184 4
19132 [빅 피쉬] 재밌다 happymay19 04.03.17 1167 3
19119 [빅 피쉬] 마음이 행복해 지는 영화 빅피쉬 skj123 04.03.15 1319 1
19039 [빅 피쉬] 보고나서 울었던..새록새록 감동이 전해져 오는 영화 m41417 04.03.08 1423 2
19037 [빅 피쉬] 때론 거짓이 진실보다 나을때가 있다.. reesews 04.03.07 1245 4
19029 [빅 피쉬] 두 시간 동안 꿈꾸고 나온 것 같아요" nugu7942 04.03.07 1101 2
19018 [빅 피쉬] <아키>[빅 피쉬] 과연 emptywall 04.03.05 3071 9
18994 [빅 피쉬] [유격의 R.M.D.] 빅 피쉬.. ryukh80 04.03.02 1201 4
18990 [빅 피쉬] 따뜻한 웃음과 감동으로 풍덩 뛰어든 큰 물고기 한마리!! julialove 04.03.01 1678 3

1 | 2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