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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한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번, 나라가 망하면 또 한번. 이렇게 남자는 일생동안 세 번 운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남자는 언제 허풍선이가 될까요. 통계적으로나 경험상으로 미루어 볼 때 두가지 사항에 대해 주로 거짓말을 합니다. 첫 번째는 군대얘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죠. 원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복무한 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최정예 부대이며, 스스로 ‘내 보직이야말로 자주 국방의 핵심이요 요체’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바람에 날아갈세라 금이야 옥이야 낳아 기른 아기가 옹알이를 막 시작하면 덥석 이렇게 말합니다. ‘앗! 돌도 안됐는데 우리 아기가 말한다! 천재가 틀림없어!’ 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로서의 거짓말은 시작됩니다.
사실 이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팀 버튼 감독의 최신작 <빅 피쉬>때문이죠. 쿨한 성격의 [에드워드 블룸]은 아내에게는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는 믿음직스럽고 정다운 이웃으로 인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윌]이 있습니다. [윌]이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지독한 허풍쟁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해주는 동화 같은 모험담에 빠져들곤 했지만, 병상의 초라한 모습에서조차 한다는 말이 ‘왕년에 내가 말이지~’라고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으니 어른이 된 [윌]은 화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윌]은 아버지를 이해해보려 노력을 하지요. 낡은 창고에서 우연히 찾아낸 옛 기록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줍니다.
이렇게 환타지 속에 녹아든 지극히 낙천적인 아버지와 현실적인 아들의 갈등과 화해가 <빅 피쉬>의 기본 줄거리 입니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퀀스의 연동을 통해서 아버지의 환타지가 아들에게 전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교감과 소통의 결과는 [블룸]의 꿈이자 이상향이었던 전설의 물고기 ‘빅 피쉬’를 만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비전을 이제 자신의 아들에게 전하는, 세대를 뛰어넘은 교감을 팀 버튼 감독은 ‘빅 피쉬’를 통해 상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빅 피쉬>는 빼어난 배우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출연진으로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팀 버튼’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는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장기인 특유의 지극히 인공적이면서 화려한 공간구성, 색채감, 기발한 상상력이 영화 전반에 걸쳐 가득 채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블룸]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판타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릴 적 앓았다는 알 수 없는 성장병, 작은 마을에 나타난 엄청난 거인, 신발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온통 잔디로 뒤덮인 마을과 괴짜 시인, 늑대 인간인 서커스 단장, 한국전에서 알게 된 샴쌍둥이 여가수 등등 [블룸]의 입을 빌어 전하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과연 팀 버튼의 솜씨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팀 버튼 감독의 시각입니다.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였기에 그의 작품 속에서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암울함이 주를 이루곤 했었습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비틀쥬스>에서는 분절된 가족의 관계를, <배트맨>시리즈에서는 고아로 자라난 [배트맨]과 부모에게 버림받아 악당이 된 [펭귄]의 싸움을, <가위손>에서는 외로이 살아가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통해 그가 가진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빅 피쉬>는 팀 버튼 감독의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죠. 아버지는 더 이상 무시당해도 마땅한 얼간이로도, 공격의 대상으로도 묘사되지 않습니다. 팀 버튼은 [블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윌]에게 변화된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근래에 아버지를 잃고,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버린 그에게 더 이상 그의 영화에서 가족주의에 대한 공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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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2003, Big Fish)
배급사 : (주)팝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주)제이브로, 포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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