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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尊]태극기 한번 제대로 휘날리겠다. 태극기 휘날리며
cinexpress 2004-02-04 오전 4:48:19 2633   [15]

한국전쟁은 참으로 매력적인 영화의 소잿거리임에 분명하다. 세계 강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둘로 찢겨진 것도 모자라서 서로간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3년에 걸쳐 피를 흘렸던 나라, 그런데도 정작 싸우는 당사자들은 왜 싸우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싸워야 했고,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나도 그 상처가 전혀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역사의 모든 원죄(源罪)는 바로 이 한국 전쟁에서 시작된다. 35년간 우리 민족을 괴롭힌 일제와 동포면서 일제의 발바닥을 핥던 더러운 친일파의 청산이 무산된 것도, 민주주의를 소리높여 외칠 때마다 잔인하게 군홧발에 묵살당하던 것도, 이 모든 원죄의 근원이니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이라는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소재를 세심하게 끌고간다. 강제규 감독의 연출은 영화초반 38선을 넘어 진격하는 북한군의 탱크를 보여주며 액션의 도가니로 영화를 몰고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타이타닉>, 그리고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에서 보았던 액자구조의 이야기로 현실에서 과거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다음, 한국전쟁이 있기 전날의 행복함을 보여준다.

강제규 감독은 블럭버스터 영화를 지배하는 5분의 법칙을 추종하는 대신, 그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끄집어내는 소통구로 초반 20분을 할애한다. 느닷없이 벌어지는 총격전보다, 비록 상투적일지라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이러한 배려는 최근 연이어 실패한 한국산 블럭버스터들이 갖추지 못한 세심함이다. 그리고, 굳이 영화의 전반부를 전쟁장면으로 도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관객의 시선을 잡을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전쟁의 아픔을 두 형제의 모습을 통해 선명히 드러낸다.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기에 모두가 악에 받쳐 총을 겨누고, 주먹을 휘두른다. 이 곳에는 이념도 사상도 논리도 끼어들 틈이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병사들은 무모한 명령이었지만, 라이언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목표라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앉아서 굶어 죽느니 달려나가 적의 대가리를 하나라도 더 날려버려야 한다는 생존의식만이 남아있다. 아니, 빨갱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악에 받친 절규만이 남는다.

진태는 점차 전쟁에 미쳐가고, 진석은 그런 형에게 반감을 키워간다. 형제간의 대립은 곧 시대상의 반영이다. 한 사람이나 다름없던 형제의 대립은 모두가 미쳐가는 시대에 나타나는 정신분열증과 같다. 강제규 감독은 행복의 파괴에 이어 광기의 전염을 소스라칠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양민을 학살하는 국군의 적인 북한군을 향한 분노가 아니다. 죄없는 사람들을 이유도 모른 채로 전쟁에 끌어내고 총알받이로 죽게 만든 시대상에 대한 깊은 분노다. 진태의 광기는 시대상을 반영하지만, 그런 광기야말로 진석을 위한 마지막 이성이다. 그러나 진석은 진태의 그런 마음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형제의 우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미지 셰이크 기법을 이용한 카메라의 불안정함과 사방에 날라다니는 파편과 흙더미는 전쟁의 박진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막강한 화력이 투입된 전투장면은 제작비를 헛쓰지 않은 티가 나고, 평양 시가전의 모습은 <블랙 호크 다운>의 모가디슈 시가전이 부럽지 않을만큼 뛰어나다. 게다가 잡티없이 선명한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시각적으로 헐리웃의 왠만한 전쟁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화면을 보는 기쁨을 <태극기 휘날리며>는 기꺼이 선사한다.

이는 단지 특수효과의 공만이 아니다. 화면 구석구석까지 채워나가는 섬세함. <태극기 휘날리며>의 최대 강점은 역시 섬세함이다. 강제규 감독은 초반의 섬세한 배려로 관객을 스토리에 몰고 들어온 후, 관객의 예리한 눈을 구석구석 채워나가는 섬세함으로 만족시킨다. 그간 전쟁영화에서 화면 중심부는 파편이 튀어도 구석구석은 허전한 그런 장면을 종종 보아왔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이것은 스펙터클을 능가하는 '작은 배려의 성공'이다.

장동건과 원빈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전쟁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최민식, 김수로, 김해곤을 비롯한 조연들까지도 전쟁속의 처참함을 제대로 그려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차이를 둔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캐릭터를 잡으려다 원작 시나리오의 처참함을 못살려내고 캐릭터에 묻힌 <실미도>와 달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중심 캐릭터의 이야기가 그대로 영화의 서사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진석과 진태가 전염되어지는 광기도 해석력이 있고, 보도연맹의 가입자들을 처단하는 청년단의 대장마저도 역사와 서사속에서 충분히 배경이 설명이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당분간 잊기 힘든 영화가 될 것이다. 강제규 감독의 연출은 참으로 영악하다. 강우석 감독이 솔직하고 투박하게 관객의 마음을 자극해내서 흥행을 이끌어낸다면, 강제규 감독은 세심하게 관객의 감정과 심장박동 수를 계산해 영화를 만들어낸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와 같은 그의 전작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잘 계산된 장면들에 놀라다가 마지막, 감독이 의도한 감정선에 빠져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강제규 감독은 그런 그의 장기를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변함없이 표현해낸다. 전투장면 속에서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거부감없이 삽입하고, 극적인 전환을 준비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끝까지 쥐락펴락한다. 나는 이런 강제규 감독의 계산된 연출력이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 영화는 그런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속절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개봉을 늦추면서까지 매달리며 '정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라는 강제규 감독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至尊군의 Movie Box
http://blog.naver.com/cin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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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제작사 : 강제규필름 / 배급사 : 와이드 릴리즈(주),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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