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은 퇴근길에 우연히 전철 안에서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보게 된다. 그 이후부터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귀신들은 그를 공포에 빠져들게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기면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연(전지현)이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정원은 자신의 설명 못할 공포를 그녀가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잊어버린 기억을 듣게된 정원은 더욱 혼란과 공포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나 연 역시 말못할 상처가 가득했던 여인이었고 그녀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내가 어릴 적 방과후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 구멍가게에서 파는 작은 사탕이 있었다. 하나에 50원짜리하는 사탕이었지만 꽤나 그럴싸한 모양새를 가고 있던 그 사탕은 아이였던 나의 눈에는 보석마냥 소중하게 보이곤 했다. 그러나 사탕의 맛은 꽤나 밍숭밍숭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맛을 참아가며 매일 그 사탕을 사먹는 이유는 그 속에 든 껌에 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배어 나오는 그 껌 때문이었다. 내게 <4인용 식탁>은 어릴 적 사먹었던 사탕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TV 어느 방송을 틀어봐도 10분 이내에 얼굴을 한번이라도 꼭 보게 되는 전지현의 지명도와, 주연을 맡은 박신양의 발군의 연기력과 흥행력에, 무더위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영화라는 플러스 요인까지 등에 업은 <4인용 식탁>은 분명 그럴싸한 '포장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신예 이수연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명확히 인지시키는데 실패를 한다. 물론 <텔미 썸씽>의 장윤현 감독처럼 관객들과 게임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할말이 없어지겠지만 적어도 영화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큰 줄기를 스스로 놓아 버렸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주인공인 정원과 연은 영화 내내 톤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한다. 영화 내내 면면이 흐르는 모노톤의 화면처럼 목소리도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지만 그들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긴 힘들다. 자신이 영화에 들어가 배우들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멀찌감치 떨어져 방관자의 입장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영화에 몰입하기 쉽지 않은 큰 이유인 듯하다. 이는 분명 예상외로 맛없던 '사탕'의 맛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4인용 식탁>에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매력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나리오의 힘이다. 행복한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상징하며 가족 개개인이 주인공일 수 있는 공간인 가족용 식탁을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 매개체로 구성한 것은 분명 독창적인 것이다. 또 한가지는 조명의 힘이다. 연이 화면을 채울 때는 모노톤의 차가운 조명으로 그녀의 얼굴을 비춰 황폐해져 가는 그녀의 속내까지 비추는 듯 하고, 활기찬 희은의 모습을 바라볼 땐 따스한 색의 조명으로 결혼을 앞둔 신부의 쾌활함을 잘 표현해준다. 4인용 식탁의 의자를 내리 쏘이고 있는 강렬한 집중 조명은 앞에 앉은 연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고 싶어하는 정원의 강렬한 욕망을 나타내는 것 같고, 조명의 범위를 벗어난 어둠은 믿어야 하는 진실과 믿고 싶어하는 사실 사이의 망설임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극 중 희은이 보여주는 소용돌이 모양의 할로겐 조명은 정원이 잊고있던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이런 자기 몫을 다하는 요소들이 <4인용 식탁>의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묻어 나오는 '껌'의 맛을 보여준다.
<4인용 식탁>은 분명 잔뜩 높아져 있는 관객들의 '기대'에는 못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높아져 있는 관객들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국내 관객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색다른 맛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수연 감독은 분명 기존의 공포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아직은 낯선 맛에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리지만 언젠가는 그가 만드는 영화의 맛에 관객들의 입맛이 길들여질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보여준 것보다 많은 이수연 감독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