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은 못하다.’라는 말을 할 관객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지닌 파급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2001년 <무사>이후, 근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정우성은 컴백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이때까지의 청춘스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캐릭터로 연기변신을 했다기에 그의 모습이 자못 궁금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베일을 벗은 그의 연기를 본 느낌부터 말하자면 정말 정우성이 연기한 캐릭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바보스러운 면과 껄렁껄렁하면서도 능청스러운 겉모습하며, 구수한 사투리를 구김 없이 구사하는 능력, 그러면서도 자신의 근육질 몸매와 터프한 이미지마저 은근슬쩍 풍기는 정우성의 모습에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얼굴 또는 외모로 거는 승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력으로 거는 승부수의 첫 번째 관문인 <똥개>는 서른을 넘은 정우성에겐 배우의 길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해서 어머니와 목숨을 맞바꾸게 된 똥개(정우성)는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삶과는 약간의 담을 싼 채 경찰인 아버지와 단둘이 유유자적 살아간다. 그런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개 한 마리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동거동락을 해오는데, 축구부 선배들의 지나친 과욕으로 인해 개를 잃고, 그때부터 철천지원수로 지내게 된다. 여기서 똥개는 주인공의 어렸을 적부터 생긴 유일한 별명이다. 물론 그에게도 이름은 있다. “차철민” 이라는 본명이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99% 똥개로 불린다. 영화가 시작하고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이름을 알 수 있긴 하지만, 축구부복을 입고 뒤로 돌아설 때, 등 부분에 큼직하게 써있는 글자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록 똥개라는 별명이 싫지 않고, 이름보다 별명에 더 익숙해져 있다지만, 자신에게도 세 글자로 된 이름이 있다는 무언의 시위를 상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날, 그에게 아버지가 데리고 온 정애라는 여자애가 나타나는데, 그전까진 남자들만 계속 등장하다가 처음으로 여자를 등장시키면서 영화를 약간 야릇한 분위기로 이끌며, 새로운 내러티브들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리고 일명 MJK라는 한 모임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예전에 자신의 개를 먹어치운 선배들과의 전초전도 짐작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MJK가 무엇의 약자인지 알게 되는 순간, 폭소와 함께 그들 역시 똥개처럼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똥개>라는 영화가 너무나도 좋았던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같이 정우성을 비롯한 김갑수, 엄지원등의 주연급 배우들의 확실한 연기실력과 대뜩이와 그 일행들로 이어지는 조연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활약상, 그리고 안마시술소의 윤략녀 같은 단역 배우들까지 호흡을 척척 맞춰가며 완성도를 더했다는 것이다. 꼭 웃음을 줘서가 아니라 약간은 일관성 없이 오버가 삽입됐을지언정 일반 중산층을 밑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름대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만의 행위로 상징되는 약간의 사회성 짙은 풍자와 반드시 철민과 진묵(김태욱)의 사이 같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 한번쯤은 어느 누구와 진땀나게 겨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싸웠고, 멍까지 들었다는데, 서로에 대한 격한 감정까지 가졌던 것은 아닐는지..) 비록 단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간다지만, 옳고 그름은 가릴 줄 알고, 자신의 행동이 이 사회의 법에는 저촉될지언정 절대 나쁜 행동이 아님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철민이기에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동생에게까지 막말을 해댄다 해도 친구에 대한 의리 하나만큼은 김민종 부럽지 않으며 그러기에 마지막에 살짝 드러나는 그 감동은 100% 철민에게서 나온 것이고, 관객들은 영화의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느끼고 지나가야 한다.
<똥개>를 말할 때 솔직히 곽경택 감독의 이름은 들먹이기 싫었다. 아니, 이 영화의 감독이 곽경택이라는 사실이 싫었을 수도 있다. <챔피언> 이후, 불거져 나온 유오성과의 잘잘못 때문이 아니라 영화판에서 일하는 같은 사람들끼리 (배우와 감독이라는 직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갔던 그런 안일한 자존심들이 싫었다. 그래서 <똥개>를 정우성의 영화라고만 말하고 싶다. 올 여름은 정말 한국영화의 세상 같다. 초여름에 <매트릭스2>에 잠깐 승기를 뺏겼었지만, 그 이후부터 계속 이어지는 한국영화의 승승장구, 이번 주말 <싱글즈>에 이어 다음주엔 <똥개>를 비롯해 <원더풀데이즈>, <청풍명월>이 1위 자리를 놓고 다툴 예정인데, 승자가 누가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다음주 월요일(19일)날 발표되는 박스오피스에서 1위~4위까지 한국영화가 차지하지 않을까...?!
사족 나도 로데 오거리(?!)에 한번 가보고 싶다. 흐흐~!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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