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굳이 하나하나를 꼽아보자면 여러 이유들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작업은 아마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 만족스러움의 대부분은 장만옥으로부터 파생되었음에 틀림 없으니까요. 차고 넘치는 감동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영화 [영웅]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본작의 최대 무기는 캐스팅일 테지요.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에 고난이도 액션으로 유명한 견자단까지 그 면면은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만합니다. [영웅]이 기존의 무협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 세계적 배우들의 심리묘사가 중시된 까닭이지요. 영화의 상당부분이 [와호장룡]의 전철을 밟고 있음과 아카데미를 겨냥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이 캐스팅의 매력을 거부하기는 힘듭니다.
본작은 어차피 [와호장룡]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에서는 단연 [영웅] 쪽이 우위에 있지요.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화살 씬에서 그 정점을 이루어냅니다.
반면에 디테일 쪽은 [와호장룡]에 미치지 못합니다. 파검과 비설의 관계는 충분히 애절하지만 리무바이와 수련의 사랑에서 오는 여운만큼은 아니고, 와이어 액션도 다소 뒤진다는 느낌이지요. 다만 영화 초반 무명과 장천의 대결, 실제 무술의 고수라는 이연걸과 견자단이 벌이는 대결 장면은 [영웅]의 모든 액션 씬 중에서 가히 백미라 할만합니다.
뭐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심정이지요. 스크린 속 장만옥을 볼수 있었음만으로, 내게 있어서 [영웅]은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