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없지만 웃음은 유효하다. 거룩한 계보
kharismania 2006-10-19 오후 5:51:26 718   [2]
대한민국 영화계의 화두는 몇년째 조폭이다. 가끔 극장에 상영되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개 중하나는 조폭들이 등장하곤 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이 소통되는 방식은 둘 중 하나다. 흉물스러운 뒷골목의 생태를 비열한 사회와 매치시키거나 유치하지만 코믹스럽게 희화화되는 대상으로 몰락시키거나.

 

 대한민국이 과연 조폭성으로 점철될만한 근거가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아니다. 단지 영화는 먹히는 코드를 잽싸게 물었고 그 코드가 여전히 유효할 따름이다. 그 극단적인 비열함으로 소통되는 암묵적세계관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사회의 불합리한 면모를 편법적으로 대변하는 도플갱어를 발견하는 셈이다.

 

 장진은 마치 만담가와 같다. 그의 유머는 한박자 늦은 타이밍을 노린다. 지리멸렬한 것 같지만 촌철살인의 칼날이 쑥 하고 튀어나온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보가 터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웃음은 절대적으로 신뢰되는 절대적 장기이다. 또한 그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규모적 비범함은 평범하게 일축된다. 킬러들의 냉혹함에는 수다의 푼수끼가 얹혀지고(킬러들의 수다)살인사건의 취조현장에는 한바탕 살풀이와 굿판이 난데없이 벌어진다(박수칠 때 떠나라). 그런데 이번에는 조폭이다. 장진이 그리는 조폭세계.

 

 아는 여자에 이어서 동치성이 한번 또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역시 정재영이 연기한다. 마치 정재영의 또다른 페르소나인양. 혹은 장진의 든든한 오른팔인양. 동치성과 정재영, 그리고 장진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연대감을 영화에 실어 나른다. 어쨌든 전작에서 운빨 꽤나 없던 3류 야구선수 동치성은 배경을 바꿔서 우직하면서도 싸움에 일가견있는 폭력조직의 묵직한 건달로 돌아왔다.

 

 이 영화가 들이미는 코드의 중심은 남성들간의 우정과 의리이다. 그것도 어릴때부터 이어오던 불알친구들의 계보이다. 조직을 위해 작업(?)하다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치성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줄 알았던 친구 순탄(류승용 역)을 만난다. 그리고 치성과 함께 조직세계에 입문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주중(정준호 역)은 친구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회사에 충실히 다니는 회사원이라는 스스로의 명분처럼 여전히 조직을 위해 헌신한다.

 

 일단 이 영화 역시 조폭성이라는 비열한 정서를 빗나가지 못한다. 세상에 믿을만한 깡패새끼는 없다는 극중 치성의 대사처럼 이용가치가 없는 하수인은 내치고 짐이 된다면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는 그들의 정서는 이 영화에서도 유용하다. 그리고 그런 정서 자체가 영화의 비극성을 뚜렷히 부각시키며 우정이라는 작품적 화두를 부각시킨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죽마고우가 함께 폭력조직에 입문해서 결국 소모품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안에서 연대되는 것은 상황속에서도 끈끈하게 유지되는 우정이다. 마치 말없이 뒤에서 듬직하게 자리잡은 존재감처럼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우정의 존재감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적 기반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장진의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 이전영화와는 다른 지극히 순행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는 것이다. 연극작가 출신답게 그의 이야기는 항상 우발적인 개연성을 띤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회전하면서도 순발력있는 짜임새를 갖춘다. 이는 그의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는 면이기도 하다. 구조적인 독특함은 어필되지만 순탄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잡는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유별난 장기임에는 확실하다. 허나 본 작품은 조금 다르다. 물론 아기자기하게 끼어드는 소규모적인 돌발성의 나열은 존재하지만 덩어리진 사건의 개입은 발견되지 않는다.

 

 실종된 장진 특유의 이야기를 메꾸는 것은 그의 오른팔 정진영과 최근 장진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류승용이다. 정재영은 특유의 구수함을 토대로 전라도 깡패의 어리숙한 의리와 우정을 잘 살리고 그의 오랜 친구 순탄을 연기하는 류승용은 비중은 작아도 묵직한 인상을 남기며 치성의 뒤를 받쳐준다. 그리고 투사부일체에서 코믹한 건달을 연기한 정준호는 두친구와는 다른 노선의 영역에 자리하면서 상대적으로 영화의 갈등선을 구축하는 장치적 효과를 거둔다.

 

 영화에서는 두개의 조직이 등장한다. 상하위계질서가 뚜렷하고 조직적인 체계가 잡혀보이는 치성의 원(原)조직과 교도소에서 만난 후(後)조직, 즉 '사랑과 평화'이다. 서열의 관계가 뚜렷하고 가오가 서지만 실상 치성의 옛조직은 의리따윈 쉽게 저버린채 체면구겨지는 줄도 모르고 조직의 유지에 급급하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는 서열도 없고 쳬계도 없지만 서로를 엮는 끈끈한 연민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돕는다. 결과적으로 다섯의 사랑과 평화는 치성을 내친 조직원 몇십명과 붙어도 이겨낸다. 영화의 과장된 상황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합지졸의 숫자적 우위가 진실한 감정으로 엮인 소수정예를 이길 수 없다는 감정적 진리를 어필한다.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의리를 내세우는 그들의 염치없는 행위를 조롱하듯이. 그리고 수많은 영화들이 그 허상을 내세웠던 남성들의 의리. 즉 세월앞에, 혹은 사회의 강압앞에 무색해지는 우정담은 이 영화에서 명예를 돌려받는다. 물론 조폭들의 유명무실한 의리적 가오는 체면을 구기지만 어린 시절부터 탄탄하게 기반을 다진 세남자의 우정은 유효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야기의 진행방향에 맞춰 선이 약해지는 감정적 집약도이다. 동치성이라는 선 굵은 인물에 비해 그와 대비되는 조직은 무시하고 싶을 정도로 약해빠졌다. 그래서 동치성이 성님이 되가꼬 내 눈치나 봐야 쓰겄냐며 한탄처럼 괴성을 지르는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 계기도 되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선이 맥없이 종결된다는 점도 감안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은 특유의 기발한 유머적 상상력에 있다. 특히 다양한 캐릭터들이 조합되며 좌충우돌처럼 튕겨져나오는 예상치 못한 엉뚱함을 웃음으로 엮어내는 기발함은 이 영화에서도 확인된다. 단순히 우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황이 아닌 작은 사건이 꼬리를 물어 개연성을 생성하는 이야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필살기다. 특히 전투기가 추락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어쩄든 이 영화는 기존의 조폭영화들과 그 궤를 달리하는 차별성의 획득에는 실패한 듯 하지만 정서적인 무난함에 안착한다. 물론 이 영화의 방점이 조폭성의 비열함이 아닌 남자들의 우정담이라는 점에서 감정적 궤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말그대로 조폭성은 그 사소한 우정을 돋보이게 하는 첨가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 영화가 불만스럽다면 그것은 장진이라는 네임밸류에 대한 기대감 떄문이며 이영화가 만족스럽다면 그것 역시 장진이라는 이름에 대한 네임밸류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중 가장 대중적인 트렌드인 것만 같다.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죽이고 대중적인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것처럼. 진화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서 묻어나는 웃음은 유효하다. 하지만 본인의 색을 버린-놓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웃음에서 그의 전작들과의 비교가 불가항력처럼 느껴지는 것만 같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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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계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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