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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함’과 싸우고 ‘좀비’를 조종하고, 안방과 극장에 스며든 <군체> 구교환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그야말로 '구교환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구교환이다. 호평 속에 막을 내린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러블리한 밉상 ‘황동만’으로 안방극장에 묵직하게 스며들더니, 어느새 단숨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군체>의 서늘한 빌런 ‘서영철’로 변신해 극장가까지 특유의 색채로 물들였다. 올해 첫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기분 좋은 신호탄을 쏜 영화 <만약에 우리>에 이어, 그야말로 매 작품 관객의 마음을 정확히 파고들며 흥행 연타석 중이다. 친근함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온도를 보여주는 배우 구교환을 만났다. 작품마다 관객의 마음에 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그에게 흥행 소감을 묻자, “홈런은 관객분들이 치시는 것이고, 저는 그저 투수의 마음으로 관객을 향해 묵묵히 공을 던져드리는 중”이라며 특유의 위트와 담백함이 묻어나는 답변으로 응수한다.

드라마 <모자무싸>의 황동만 캐릭터와 영화 <군체>의 서영철 캐릭터가 동시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길거리나 일상에서 이러한 화제성을 직접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길을 가다가 구교환이 아닌 "동만아!"라고 불러주실 때 가장 크게 체감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 큰 영광이고 감사하다. 지금은 동만으로서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간혹 영화를 보신 분들이 “영철이"라고도 불러주시는데, 극 중 악행 때문인지 괜히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웃음) <군체>로 칸영화제에 갔을 때는, 해외 분들은 내 본명을 모르시니까 나를 "콜로니(군체) 서영철"이라고 부르시더라. 들으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요즘 들어 부쩍 내 이름 대신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배우로서 가장 기쁜 일이라 마음껏 즐거워하고 있다.

<모자무싸>의 황동만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실제 구교환과의 싱크로율이나 닮은 점이 있다면.
사실 나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굳이 닮은 점을 꼽자면 '옷 스타일'과 '머릿결' 정도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내 개인 옷을 많이 입고 나오기도 했다. 황동만이라는 인물은 나보다 훨씬 솔직한 사람이다. 굉장히 투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솔직한 인물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다만 내 과거에도 황동만 같은 시간이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무언가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업을 사랑하는 태도는 아주 많이 닮았다.

<군체>를 전적으로 '황동만 식'으로 평가해 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웃음) 또 <모자무싸>에서 황동만이 <군체>를 바라볼 때 감정워치는 어떤 색으로 표시될까.
감정워치는 아마도 쨍한 초록색일 듯. 그리고 그때의 감정은 한마디로 '재밌다'이다. 황동만식 표현이라, 이건 박해영 작가님의 몫일 것 같은데 (웃음) 구교환 식으로 쉽게 말하자면 다시 말하지만, 그냥 '진짜 재미있다'이다. (웃음) 일단 좀비가 단순히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업데이트된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지 않나. ‘영화라는 매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고 내게 질문한다면, 나는 단연 '재미'라고 대답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군체>는 재미라는 궁극적인 요소에 아주 훌륭하게 도착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명대사가 많기로 유명한 <모자무싸>인데,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꼽는다면.
사실 대사보다는 인물들의 관계성이 참 좋다. 극 중 동만이에게는 '경세' (오저에)같은 친구가 있지 않나. 서로를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그런 경세 같은 존재가 참 부럽고,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그런 존재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옥섭 감독인 것 같다. 대사는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 성동일 선배님이 하이파이브를 건네실 때 내가 뜬금없이 가위를 던져보는 것 같은 시도들을 좋아한다.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보고 지금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묘한 모호함을 주는 것, 그게 배우로서 나의 '추구미'다. 그 장면의 감정이 모호해야만 관객이 그 장면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체>는 무려 1670만 명을 동원한 <왕과 사는 남자> 보다 빠른 흥행 속도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천만 관객에 대한 기대나 공약이 있나.
흥행 숫자에 대한 부분이나 천만 기대는 내가 아니라 배급사인 쇼박스가 할 일이다. (웃음) 내 입장에서는 <군체>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내가 연기한 서영철이 스크린에 구현된 것 자체로 이미 완성이자 최고의 보상이다. 물론 많은 분이 봐주시면 좋겠지만 숫자는 내 영역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연상호 감독님 역시 저예산 영화 <얼굴>을 만들 때나, 상업 대작인 <군체>를 작업할 때나 완벽하게 똑같은 마음과 태도로 임하셨을 거라 확신한다.

<만약에 우리>에 이어 <모자무싸>, <군체>까지 그야말로 거침없는 '흥행 연타'를 날리고 있다. 캐릭터에 '구교환을 한 스푼 얹으면' 인물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변한다는 호평이 자자한데, 이렇듯 매 작품 흥행 연타를 이어가는 본인만의 캐릭터 구축 비결은 무엇인가.
그 비결은 현장을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캐릭터와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만약 "여기서 <군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나와라"라고 하면, 나는 연상호 감독님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 크다.

흥행 연타라니! (웃음) 사실 나는 타자가 아니라, '포수가 시키는 대로' 던지는 투수다. 여기서 포수는 감독님이나 촬영 감독님, 혹은 쇼박스나 와우포인트 같은 제작사일 수도 있다. 포수가 사인을 주면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던질 뿐이다. 작품이 매번 순항하는 것 역시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던지고 싶은 구질보다는 포수가 원하는 구질을 잘 던져왔기 때문에 이런 기분 좋은 흥행 연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번 <군체>는 사실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 혼자 달린 게 아니라 각 배우가 저마다의 구간에서 바통 터치를 잘하면서 엔딩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모든 콘텐츠는 절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건 앞으로 100번을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다. 현장의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쳤기에 이런 연속적인 흥행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과 영화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에 이어 이번 <군체>까지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연상호 감독이 구교환을 '치트키'처럼 활용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현장에서 본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실제 친구끼리 만나서 "너는 참 이게 좋아", "너 대단해" 같은 칭찬을 오글거려서 안 하듯이, 감독님과 나도 서로 칭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 역시 대놓고 "감독님 짱이에요" 하지는 않지만,(웃음) 누구보다 감독님을 깊이 좋아하고 신뢰한다. <얼굴>같이 잠깐 등장하는 작품까지 포함해서, 연상호 감독님과는 항상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다. 이건 단순히 우정이라기보다는, 배우로서의 이 시기 그리고 동시대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애틋함에 가깝다.

이번 <군체>를 작업하면서 연상호 감독님께 새롭게 느낀 점은, 매번 작업할 때마다 새로울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거다. <군체>를 통해 최규석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주: <군체> 각본은 연상호, 최규석) 처음 연기해 봤는데, 감독님과의 시너지를 보며 '또 새로운 연상호의 서사시가 탄생하겠구나' 싶었다. 연상호 감독님은 예산의 크기와 상관없이, 항상 본인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뚝심 있게 만든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억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타고난 창작자다. 그런데 거기에 대중적인 재미까지 장착했으니, 그의 스토리에는 늘 진심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배우가 구교환’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웃음)
감독님이 아무래도 기사 헤드라인을 멋지게 만들어 주시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웃음) 연상호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현장의 모든 배우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시는 훌륭한 능력이 있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배우에게 그 캐릭터만의 특별한 요소를 심어주신다. 그만큼 캐릭터성과 배우 본연의 매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역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신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연상호 감독님과 함께 작업해 본 모든 배우가 공통으로 느끼는 장점일 것이다.

많은 관객이 <반도>의 '서대위'와 <군체>의 '서영철', 두 빌런을 비교하곤 한다. 배우로서 두 인물의 차별점을 어떻게 두고 연기했나.
많은 분이 두 캐릭터를 비교해 주셔서 나 역시 궁금증이 컸었다. 내가 해석하기에 <반도>의 서대위는 늘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불확실성의 빌런'이었다면, <군체>의 서영철은 강한 확신과 본인만의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빌런이다. 그래서 두 인물의 퇴장 방식과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나 다르다. 서영철은 서대위보다 훨씬 더 나쁜 놈이다. 그래서 후반부 퇴장할 때 일부러 아무런 사족이나 미련 없이, 아주 깔끔하게 퇴장하고 싶었고 그렇게 연기했다.

극 중 서영철이 좀비들을 완벽하게 조종하고 교감하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눈빛이나 기이한 몸짓 등의 디테일은 어떻게 구상했나.
내 상상 속에서는 공기 중에 일종의 어떤 '회선'이 존재한다고 설정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하얀색 점액질 같은 것들이 서로를 연결해 주는 '공유기' 역할을 하는 거지. 그 공유기를 통해 통신이 이루어지고,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고 믿으며 세세한 설정을 잡아갔다. 목을 꺾는다든지 고개를 기이하게 움직이는 제스처들은 대본에 이미 정교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나는 통신의 신호 세기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 표현했다. 초반에는 불완전한 통신이라 와이파이가 두 칸만 뜬다고 생각해서 거칠고 툭툭 끊기게 움직였다면, 와이파이가 다섯 칸 가득 다 뜨는 순간에는 아주 매끄럽고 완벽하게 통신하는 식으로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움직임의 스펙트럼을 넓혔던 것 같다.

서영철의 악랄함에 비해 스크린 속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인 빌런으로 다가온다. 그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오프닝부터 서영철의 목소리로 강렬하게 문을 여는 구조도 독특했다.
관객분들이 매력적으로 봐주셨다면, 그만큼 극 중에서 서영철이 ‘세정’(전지현)을 필두로 한 생존자들을 제대로 궁지에 몰아넣고 확실한 장애물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체>에서 빌런이 매력적이라는 건 주인공의 앞길을 완벽하게 가로막아 짜증을 유발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물론 매력이라는 건 개인의 취향이라, 어떤 관객분들은 서영철을 볼 때마다 당장 패고 싶을 만큼 얄미워하시기도 한다. (웃음) 빌런이 오프닝부터 등장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서영철의 묵직한 목소리로 영화를 여는 방식을 통해 작품 전체의 장르적인 긴장감과 관객의 호기심을 초반부터 한껏 높이려는 감독님의 탁월한 연출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빌런으로서 서영철의 퇴장 장면에 대한 본인의 만족도는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서영철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깔끔한 퇴장 방식을 아주 좋아한다. 서영철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나 선역이 아니라 명백한 빌런이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관객들에게 개운함을 안기며 돌아가셔야 할 분이다. (웃음) 빌런이 처절하고 확실하게 죽는 것만큼 장르 영화에서 큰 쾌감을 주는 건 없다. 마땅하고 훌륭한 퇴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만의 소소한 농담을 보태자면, 서영철의 영혼이 사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몸속으로 쏙 들어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죽음 아닌 죽음'의 상상도 혼자 해봤다.

영화 속의 일명 '3대 워킹 씬(영철 워킹, 세정 워킹, 현석(지창욱) 워킹)'이 관객들 사이에서 큰 화제다. 촬영 당시 의도한 부분인가. 후반부 대규모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엔트밀 장면에 대한 비하인드도 궁금하다.
우리가 촬영하면서 ‘자, 이제부터 역사에 남을 3대 워킹 씬을 만들어보자!’ 하고 찍은 건 절대 아니다. (웃음) 우리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이 직접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주시고 특별한 시선으로 봐주시는 거라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후반부 엔트밀 장면은 정말 압도적인 100% 풀 세트였다. 둥우리 빌딩 사거리를 그대로 현실에 재현해 놓은 엄청난 스케일의 세트장을 보고 현장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배우는 그렇게 실감 나는 완벽한 공간에 서 있으면 저절로 그 세계를 믿고 연기하게 된다. 덕분에 내가 진짜 그 거리의 주인인 양 활보하며 훨씬 당당하게 임할 수 있었다. 감염자들이 떼로 몰려와 불타는 거친 장면이었지만, 실제 비하인드는 ‘컷’ 소리만 나면 배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어디 다친 데 없냐’라며 서로 안부를 다정하게 묻기 바빴던 훈훈한 현장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대선배 전지현과의 호흡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실제 현장에서 함께 연기해 본 소감은 어땠나.
모니터를 보면서 속으로 '와, 진짜 연기 잘하신다'라는 감탄을 끊임없이 했다. 내가 워낙 전지현 선배님의 오랜 빅팬이다 보니, 작품을 함께 하면서 혼자 속으로 엄청 친해졌다고 오해를 하고 있기도 하다. (웃음) 이번에 작업하면서 느낀 건데, 극 안에서 완벽한 적으로 만나는 역할을 할 때 오히려 배우 간의 실제 친분이나 유대감이 깊을 때 연기적으로 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더라. 서로 인간적으로 가까운 만큼, 극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더 멀고 서늘한 대립 관계를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실제로 마주한 배우 전지현의 모습은 내가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알고 있던 멋진 대스타 전지현의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대중의 기대를 한결같이 충족시킨다는 건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훗날 누군가에게 그런 멋진 배우이자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전지현 선배님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혼자 열심히 써 내려간 시나리오가 하나 있긴 하다. 물론 선배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신다. (웃음) 선배님은 영화 <도둑들>의 예니콜 같은 통통 튀는 얼굴부터, <암살>의 시대를 담은 얼굴, <베를린>의 습기 가득하고 건조한 얼굴까지 정말 수많은 이채로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만약에 내가 연출을 하게 된다면 그 얼굴의 도움을 받고 싶다. 어떤 장르를 해도 어색함이 없는 최고의 배우시다.

서영철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면을 너무 개성적으로 잘 표현했더라. 현장에서 연기할 때 본인만의 생각이나 철학이 있나.
생각보다, 혹은 보기보다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내 연기에 개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개성을 스스로 흡수한다고 할까. 테이크가 끝나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수정 사항이 뭐냐고 먼저 물어본다. 이번에 촬영한 차기작 <정원사들>에서도 남동협 감독님한테 매 신, 매 테이크마다 수정 사항을 질문했었다. 만약 내 의견과 감독님의 의견이 다를 때면, 전적으로 감독님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다. 결국 편집실에 들어가는 건 감독님이기 때문이다. (웃음)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 내가 관여하지 않은 장면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반면 감독님은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컨트롤하는 분이라 그 힘을 믿는다. 나는 실제로 그 힘의 혜택을 아주 많이 본 배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의견을 무작정 고집하기보다 첫 테이크에 연기로 감독님을 슬쩍 '꼬셔보는' 건 있다. (웃음) 이 캐릭터에 이런 성질이나 의외의 면모도 있다는 것을 연기로 직접 보여드리는 식이다.

확고한 개성이 강점이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구교환 스타일'이 익숙함으로 소비되지 않을까 하는 직업적 고민은 없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고민을 할 시간적 겨를이 전혀 없다. ‘내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지?’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시작하는 순간, 그 잡념이 내 다음 연기에 아주 안 좋은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생각의 싹을 미리 차단해 버린다. 내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 과도하게 신경 쓰고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단순히 나라는 인간을 스크린에 '전시'하는 것에 불과해진다. 그것보다는 내가 참여한 작품 속의 온전한 배역 그 자체로 남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연기할 때는 언제나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중심에 두고 연기하되,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나만의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려고 노력한다. 그 시도를 좋게 봐주시고 개성이라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 전 진행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만약에 우리>로 호흡을 맞춘 배우 문가영의 수상에 진심으로 기뻐하더라. 스스로 수상 욕심은 없는지. (웃음)
상대 배우가 상을 받았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와 호흡을 맞춘 나 역시 연기를 잘해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웃음) 내 연기적인 요소도 그 수상에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함께 연기한 상대방이 상을 받는 걸 내 일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축하한다. 상대방은 멋진 연기상을 받고, 작품은 작품상을 받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꼭 받고 싶은 상은 오직 '인기상' 하나뿐이다. 인기상은 대중들이 나를 연기자로서 온전히 좋아해 준다는 가장 직관적인 증거니까, 인기상을 주신다면 언제든 정말 감사히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웃음)

감독 구교환으로서 향후 연출 계획은.
거대하고 거창한 일들을 연출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들이나, 일상에서 듣기 좋은 사소한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머리를 싸매고 거대한 담론을 생각하기보다는, 가볍고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향한다. 마침 올해 하반기에 영화 <사랑의 카운셀러>가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이옥섭 감독의 단독 연출작인데, 내가 제작으로 참여하든 어떤 모습으로든 힘을 보탤 예정이다. 현재 열심히 캐스팅을 진행 중이다.

배우로서 앞으로 새롭게 도달하고 싶은 목표나 다짐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 일은 미래에 가서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을 엄청나게 즐기자’ 주의다. 개인적으로 정동진 독립영화제를 정말 열렬하게 좋아한다. 정동진 해변부터 작은 초등학교 마당까지, 그 동네 전체가 영화라는 문화로 아름답게 물드는 풍경이 장관이다. 해변에 그냥 놀러 왔던 일반 관광객들도 어느새 그 영화의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버린다. 이번에 다녀온 칸 영화제도 정확히 똑같더라. 동네 전체가 오직 영화라는 하나의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공간 자체가 어디를 둘러봐도 전부 영화 속 풍경 같아서, 자유 시간만 나면 숙소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동네 노천카페에 앉아 함께 온 우리 <군체> 팀들과 그 소중한 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좋았다기보다는, 전 세계에서 오직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동네에 가득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흡사 거대한 '영화 동호회'에 온 것처럼,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안도감이 컸다. 거기서 ‘앞으로 내가 어떤 대단한 일을 해야지’ 하는 미래의 거창한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요즘의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자는 생각뿐이다. 지금도 안방극장의 황동만을 치열하게 즐기고 있고, 스크린 속 서영철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관객분들도 지금 내 안의 이 유쾌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극장에서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쇼박스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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