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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같이 가벼워진 어깨로 연출을 즐기기도” <보호자> 정우성 감독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최대한 담담하게, 사부작사부작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에게 영화 개봉 소식을 알리려 노력할 뿐이죠.” 여름 대작들의 홍수 속에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신예 정우성 감독의 개봉 소감이다. 평소 좋아하는 영화와 감독은 많지만 그들을 따라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만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이번 작업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노선을 미리 정하고 걸어가기보다 눈앞의 것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향이라는 정우성 감독,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자신도 궁금하단다. 연기하랴 연출하랴 어깨가 무거운 와중에 촬영장의 의자가 의외로 편하고 적성에 맞았다는 정우성 감독을 만났다. 때때로 연기 없이 연출만 하는 씬에서는 마치 깃털같이 가벼워진 어깨로 연출을 즐기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보호자>는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감독으로 영화제를 찾은 소감은.

사실 그때는 이렇게 떨리지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에서는 같이 웃고 또 어떤 장면은 박수치면서 같이 본 유쾌한 관람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언론시사회를 하니 이제야 떨리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첫 연출작치고는 상당히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어떻게 인연이 닿게 된 건가.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머릿속에서 늘 그려보곤 했었고, 언젠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하진 않았고 언젠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마침 내정되었던 신인 감독이 갑자기 사의를 표한 데다 영화 <감시자들>부터 함께 한 프로듀서의 권유가 있었다. ‘기왕 출연하기로 한 것 연출도 하지’ 라는 마음으로 단순하게 결정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클리셰한 스토리와 구성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도전이었다. 이 도전을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첫 연출 도전이 나름의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보니 배우와 감독 그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어떻게 다르던가. 또 적성에 맞던지? (웃음)

배우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면 되지만, 연출자는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책임이 따르는 것 같다. 극의 톤앤 매너와 분위기, 개성 등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하는 불안감이 크다. 평소에도 단순히 연기만이 아니라 현장의 작업자라는 마음으로 임해서 그런지 이번에도 현장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적성에 맞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웃음)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촬영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좋았지만, 연기를 겸할 때는 확실히 피로감이 커지더라. 내 분량이 없을 때는 깃털같이 가벼워진 느낌으로 더 신나게 연출할 수 있었다.

배우 출신이라 유리한 점도 있었을 터이고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 같은데.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과 별개로 연출자로서 출연진과 스탭들에게 입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평소의 친근감이 한편으로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또 ‘감독’이라는 내 새로운 얼굴과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신뢰감과 부담감이 공존한 작업이었다.

부성애, 분노와 복수 등 뜨겁게 끓어오를 포인트가 여럿인데 전체적으로 절제된 톤앤 매너를 지향했다.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 같다.

원치 않는 상황에 빠진 ‘수혁’(정우성)의 리액션, 그러니까 그의 반응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결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10년 만에 출소한 그에게 변모한 사회는 낯설고 또 자신이 몰랐던 가족까지 생겼다. 갈피를 잡을 없는 상황에서 분명한 건 폭력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마음을 지닌 수혁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한편으로 답답해 보일 수 있어서 이를 상쇄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세탁기라 불리는 해결사 ‘우진’(김남길)과 조직의 이인자 ‘성준’(김준한)이다. 우유부단함과는 거리가 먼, 거침없는 인물로 그렸다.

수혁은 여타 액션 누아르물의 주인공과 달리 압도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아마도 폭력 속의 비폭력적인 인물이라 그런 것 같다.

맞다, 그는 폭력에 속했던 자기를 후회하는 전사를 지닌 인물이다. 사랑하는 ‘민서’(이엘리아)를 찾아가겠다는 일념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었고 마침내 만났다. 그리고 비로소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미션은 ‘아이 아빠가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는 민서의 말이다. 이에 따르려 하지만, ‘평범함’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수혁이다. 전방위로 몰아치는 폭력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덜 폭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딜레마에 빠진 남자를 그리고자 했다.

유니크한 누아르지만, 한편으로 서사의 공백이 크다는 시선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호자> 서사의 큰 줄기는 수혁이 딸 ‘인비’(류지안)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곁가지 서사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의도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수혁, 성준, 우진 모두 의도한 상황이 아닌 거다. 성준은 수혁을 제거하고 싶었을 뿐, 민서나 인비라는 존재조차 몰랐다. 우진과 ‘진아’(박유나) 역시 인비를 납치할 계획은 아니었다. 상황을 주도한 인물이든 어쩔 수 없이 엮인 인물이든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몰린 인물들의 감정을 메인 키로 삼았다. 시각에 따라 그 과정에서 공백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항공샷(부감샷)이 많은 점도 특이하고 액션의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굉장히 임팩트 있더라. 선택과 집중한 느낌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한밤중 도심 추격씬과 터널씬이 특히 멋졌다.

예산과 공간의 제약으로 다양한 액션 연출에 어려움이 있었다. 인물의 감정을 살리고, 예를 들면 오프닝의 경우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기분을, 또 전체적으로 시원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도록 부감샷을 사용했다. 도심의 추격 씬은 고가도로를 활용해서 공간을 다층적으로 구현했고, 터널 안이라면 사제폭탄의 위력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더라. 쫓고 쫓기는 직선적인 움직임과 이러한 움직임의 반전에 효과적인 터널을 대비시켰다. 고가도로 추격씬은 국민대학교 앞에서 촬영했는데 미리 허가받아 통제한 상태로 진행했지만, 언제 어떻게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서 굉장히 신경이 곤두섰던 기억이 난다. 추격씬의 핵심은 스피드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긴박함과 안전 두 가지를 동시에 신경 쓰며 촬영했다.

수혁의 차를 활용한 호텔 로비 액션 시퀀스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닌, 수혁에게 어떤 큰 의미를 지닌 매개로 보인다.

수혁의 분신 같다고 하겠다. (말했듯이) 그는 새 삶을 살겠다고 세상에 나왔지만, 모든 것이 낯설다. 익숙한 건 그가 타던 차와 그 차의 좁은 공간뿐이다. 자꾸 그 차 안으로 파고 들어가곤 한다. 특히 원치 않는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폭력에 직면해 스스로 폭발하려 할 때 그렇다. 자신을 해하려는, 그러니까 자기를 잠식하려는 폭력적인 감정에 맞서 차 안에서 잠시 웅크리며 이러한 감정을 뿌리쳐 버린다. 자동차 액션은 이러한 수혁의 마음이 반영된 장면이다. 사실 찍으면서 ‘잘못해서 세트를 부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었다.(웃음) 자동차 동선을 미리 디자인하고 들어갔고, 그 안에서 드리프트를 해야 했는데 실수로 세트를 들이받아 버리면, 그다음에는 어떤 걸 활용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봐서 알겠지만, 분수가 있지 않나. 분수가 깨질 상황과 이에 대한 대처를 상상하며 촬영했었다.

수혁-성준-우진의 삼각구도인데 김준한과 김남길 두 배우를 캐스팅한 배경은.

성준 역의 김준한 배우는 예전 <박열>부터 인상깊게 본 터였다. 함께 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쫑파티에서 언젠가 같이하고 싶은 마음에 연락처를 받아 뒀었다. 마침 <보호자>를 연출하게 됐고,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성준’ 역에 잘 어울리겠다 싶어 제안했다. 우진은 보다시피 하이텐션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캐릭터라 캐스팅에 조심스러웠고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김남길 배우가 ‘제가 형 앞에서 하는 것처럼만 하면 되는 거죠?’ 하길래, ‘바로 그거!’라고 하며 순조롭게 진행했다.(웃음)

엔딩크레딧에서 김성수 감독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각별한 마음인가 보다. (웃음)

감독님은 나를 영화인으로 처음 받아주고 인정해 주신 분이다. 많을 걸 제안하고 질문해 줬다. 촬영 중에도 커피차를 보내주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애정과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

일명 ‘청담부부’로 불리는 절친인 이정재 배우가 <헌트>로 지난해 여름 감독 데뷔를 했고, 호평받았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보호자>를 다 끝낸 상황에서 <헌트> 촬영에 들어갔었다. 연출의 힘듦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헌트>를 한다고 하길래, ‘경험해 볼 만한 고생’이라고 하며 그냥 웃었던 것 같다. 다만 순간순간 엄습하는 외로운 시간이 어떨지 알기에 지치지 않게 한 두발 떨어져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었다.

얼마전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 펼친 연기가 화제다. (웃음)

내 주변 사람이 ‘SNL 속 나’를 본다면 그렇게 낯선 모습은 아닐 거로 생각한다. 평소 웃음을 중요시하고 또 좋아해서 실없는 농담도 많이 해 봤다. 내가 툭 뱉은 말에 누군가 웃으면 좋겠고 혹시 ‘짜증 나’ 이런대도 기분 좋을 것 같다. 영화 홍보 차 나갔지만, (체면 차리며) 콘텐츠 고유의 결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청자들과 호흡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서 맘껏 즐겼던 것 같다. 개그맨분들의 연기 열정과 실력에 정말 감탄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나가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자 좀 이른 감이 있는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연출을 앞으로도 하고 싶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예전부터 생각해 놓은 이야기가 몇 있는데 이 중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액션이 될지,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이야기가 될지는 결정 못 했지만, 꼭 할 거다. (웃음)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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