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사생활과 관련된 논란 이후 2년 만의 복귀작이다. 당시 박훈정 감독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고집해 화제가 됐는데.
그 때 박훈정 감독님의 심정은 내가 알 길이 없다. 나와 함께 가기로 결정해주신 게 송구스럽고, 또 감사하고, 만감이 교차했던 거 같다. 감독님과 스튜디오앤뉴 제작사 대표님이 논의한 끝에 '너만 괜찮으면 우리는 끝까지 할 생각이 있다'고 얘기해주시더라.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다. 사실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영화가 더 미뤄지거나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두 분 뜻이 그렇다면 나도 따르겠다고 했다.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겠다.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촬영하면서 후회할 틈도 없었고, 그저 감사했다. 오로지 이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괜찮아졌다는 말은 좀 조심스럽고,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이번 작품이 복귀작인 동시에 스크린 데뷔작인데.
기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많이 설?다. 내 첫 영화인데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걱정도 됐다. (웃음) 언론시사회라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스크린 속 내 모습을 도저히 못 보겠더라. (웃음) 얼굴이랑 연기가 TV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화면에 보이는데, 내 연기의 단점만 보여서 소리 지를 뻔한 게 여러 번이다. 특히 영어로 대사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일어날 뻔했다. (웃음) 강우 선배가 '처음에는 다 그래. 괜찮아'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더라. 보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좀 익숙해졌다. 매 장면 열심히 했지만, '만약 이렇게 했다면?'이라는 아쉬움은 계속 드는 것 같다.
극중 ‘귀공자’에 대해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다. 본명도, 나이도, 출신도, 왜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배우 입장에서도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겠다.
대본을 보기 전부터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들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서 진행할 수 있고, 감독님이 수정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지만 대본을 읽으면서 ‘왜?’라는 의문이 너무나도 많이 떠올랐다. (웃음) ‘귀공자’가 왜 ‘마르코’를 따라다니는지, ‘귀공자’는 누구인지, 이름은 왜 또 ‘귀공자’인지 나름대로 캐릭터의 전사에 대해 생각했지만 혼자서 상상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 감독님께 질문하면서 1시간 넘게 산책했던 거 같다. 귀찮을 정도로 많이 질문을 했는데,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설명해주시더라. 그렇게 캐릭터를 구체화했다.
박훈정 감독이 생각한 ‘귀공자’와 당신이 해석한 ‘귀공자’가 비슷하던가.
‘배우는 연출자의 말’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물론 연기하면서 배우의 견해도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쓰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대본을 읽다 보면 여러 감정과 생각이 생기고 그걸 좇아가게 되는데, 그건 사실 연출자나 작가의 정서가 아니라 대본을 읽는 당사자의 정서다. 내가 생각한 ‘귀공자’와 감독님이 생각한 ‘귀공자’가 처음부터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든 시퀀스를 감독님 버전, 내 버전 두 번씩 찍었다. 둘 중 어떤 버전이 선택됐는지는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시사회 때 보고 알았다. (웃음)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둘의 간극을 좁혀 나가면서 촬영했다.
감독님은 좋은 연출자이자 좋은 형이다. 동네 형처럼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예전엔 걱정이 많았는데 감독님과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감독님을 닮아가더라. ‘좋은 게 좋은 거지,(거고,) 그냥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웃음) 감독님이 인터뷰나 방송에서 굉장히 긴장한 모습을 봤는데, 그게 되게 의외였다. 사실 조곤조곤한 타입과는 거리가 먼 분이다. 현장에서는 남자답고 와일드하시다. 농담도 좋아하고 유쾌하고 잘 웃으신다. 밀크티도 좋아하고. (웃음)
<마녀> 때부터 감독님의 팬이었다. 만화적이고, 판타지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액션과 세계관이 인상적이더라. 누구나 판타지를 꿈꾸지 않나. 그걸 채워주는 연출자가 바로 박훈정 감독님인 거 같다. 그런 감독님의 세계관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기대가 됐다. 우리 작품으로 말하자면 ‘마르코’의 서사는 충분히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 ‘귀공자’라는 만화적인 캐릭터가 자리잡고 있다. 감독님께 ‘귀공자’에게 초능력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시더라. 나로서는 마블 주인공이 된 거 같아서 좋았다. (웃음)
현장에서는 어땠나.
처음에 감독님께서 내가 욕하는 게 특히 어색하다고 하시더라. 또 분노했을 때 참는 연기는 필요 없고, 더 분노하는 연기가 필요하다고 하셨던 거 같다. 연출자의 말을 알아듣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한 스타일인데 그래서 감독님이 처음엔 나를 많이 의심했다고 하더라. (웃음) 대신 중, 후반부에는 감독님이 원하는 디렉팅을 빠르게 알아들었다. 이런 걸 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믿음이 좀 더 생기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 <폭군>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한 번 경험해봤다고, <폭군> 때는 적응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웃음) 감독님도 첫 장면을 제외하고 큰 디렉팅이 없었다. 첫날에는 '너는 그거보다 더 잘 할 수 있어'라는 말만 하신 거 같다. 첫 장면을 찍고 나서 카메라 감독님이 손뼉을 쳐주시더라. 감독님과 잘 맞는다는 걸 증명했다는 생각도 들고, 칭찬받는다는 게 그 어떤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다음 장면 찍기 전까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딱 3일 후에 그 기분이 사라지더라. '역시 나는 부족하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웃음)
어째서?
이번 작품이나 <폭군>에 한해서가 아니라, 연기를 하다 보면 연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 같다. 연극도 해보고, 드라마도, 영화도 다 해봤는데 아직도 ‘연기란 뭘까?’, ‘어떻게 연기를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생긴다. 동료 배우들, 선배들과 고민을 나눠봐도 명확하게 답을 해주는 분들이 없더라. (웃음) 연기하다 막히는 장면이 있으면 감독님보다 더 좋은 걸 생각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자괴감 든다. 그건 모든 배우가 다 비슷하지 않나 싶다.
주변에 늘 하는 얘기지만 연기력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웃음) 나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선배들이 보여준 좋은 레퍼런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그들을 보면서 빌드업하고 있다. 나만이 가진 장점을 찾고, 연기력을 향상시켜서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
사진제공_스튜디오앤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