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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은 가해자면서 피해자 <아들의 이름으로> 안성기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은 소중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는 자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그는 유독 한 손님의 호출을 기다린다. 왕년의 투 스타 출신 ‘박기준’(박근형)이다. 단골 식당에서 만나 가까워진 ‘진희’(윤유선)의 아버지가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결심은 더욱더 굳어진다. 이정국 감독이 연출한 <아들의 이름으로>는 피해자-가해자라는 대립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라는 호소력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해자면서 피해자인 ‘채근’으로 분한 배우 안성기를 화상으로 만났다.

요즘 건강과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영화를 보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컨디션은 아주 좋고, 건강도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개봉 버전은 아직 못 봤고, 작년에 편집이 조금 덜 된 버전으로 봤어요. 녹록하지 않은 환경에서 만들었지만,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개봉 버전은 좀 더 다듬어졌다고 해서 내심 기대 중입니다. (웃음)

<종이꽃>(2019)에서 광주의 트라우마로 의사가 아닌 장의사가 된 ‘성길’역에 이어, 이번에는 5.18 관련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채근’을 연기하셨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다는 점이 이번 <아들의 이름으로> 참여에 주효하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또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근대사에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고 영화적인 소재인 것은 맞지요. 하지만, 광주를 다뤄서라기보다 시나리오 자체에 끌렸어요. 작품이 지닌 진정성과 완전성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노개런티로 출연하셨는데요.
의미 있는 작품에 힘을 보태는 마음도 있고, 그간 몇몇 작품에 출연료 없이 참여했어요. ‘잘 되면 받는 거로 하자’, 뭐 이렇게 말이죠. 그러니까 이번이 생뚱맞은 시도는 아니에요.

<화려한 휴가>(2007)에서는 전직 군인 신분으로 저항군의 일원으로 싸웠는데 이번에는 상반된 입장입니다. ‘채근’은 어떤 인물인가요.
<화려한 휴가> 때는 오히려 연기하기 편했어요. 그때는 복잡한 감정이 없는 캐릭터였거든요. 이번 ‘채근’은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아들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이라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아들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양심과 죄책감,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들에 대한 개인적인 회한 등 이런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마음을 다잡으며 연기하셨나요.
나중에 복수까지 가는 상황이라 ‘채근’이 보이는 행동이나 생각이 감정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캐릭터가 단계적으로 구축돼야 복수에 대한 설득력이 관객에게 전해질 거로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도 필요했고요.

그간에 나온 영화가 5.18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는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가해자면서 피해자라는 모순적인 입장에 놓인 인물을 통해 반성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질타를 보내는데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영화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고 있죠. 5.18을 다룬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죠.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극 중에서처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화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반부, ‘채근’이 5.18 당시의 복장을 하고 산에 올라서 하는 행동에서는 광기라고 할지, 감정이 증폭된 모습인데요. 당시의 채근의 행동과 감정을 어떻게 파악하고 접근하셨나요.
그는 무등산에 올라 술을 많이 마시는 등 일부러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죠. 그 시퀀스에서는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가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 그런지 연기하면서는 다소 어색했어요. 굉장히 영화적인 장면인데 어떻게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네요.

채근의 ‘자기반성’이 잘 드러난 대사나 장면을 꼽는다면요.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것인가요.
채근이 고백하는 영상을 녹화하는 장면에 그가 광주시민에게 지닌 죄책감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포라 밝힐 수는 없지만) 엔딩 장면이죠.

영화의 70~80%를 광주에서 촬영했고, 연기자가 아닌 광주 시민들이 여럿 참여했는데요. 일반인과 호흡을 맞추고 연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호흡을 맞춰가셨나요.
주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편해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도록 내 딴에는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했어요. 덕분에 영화가 (다소) 아마추어적인 듯하지만, 사실감 있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등산에 오르고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고등학생을 혼내 주는 등 체력 소모가 크고 액션 연기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요.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음, (내가) 무등산을 굉장히 빨리 잘 올라갔어요. 이정국 감독이 뒤쳐질 정도였죠. 액션은 짧지만, 임팩트가 강해야 했어요. 벨트를 이용한 액션은 이 감독이 직접 알려준 겁니다. 벨트를 감는 법부터 말이죠. 다른 작품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액션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한다고 했는데 어색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원로배우인 박근형 배우와 함께 연기하셨어요. 모처럼 선배와 함께했는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같이 한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선배와 같이 작업한 각별한 시간이었어요. 막냇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좋았죠.

영화 외적인 질문입니다.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 김기영 감독을 언급해 화제가 됐는데요. 여러 편을 함께 작업하신 거로 아는데, 어떻게 김기영 감독님에 대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데뷔작 <황혼열차>(1957)의 감독님이셨죠. (기자 주: 안성기 배우는 1952년생) 그 후 대여섯 작품을 같이 한 것 같아요. 기억에는 좀 무서운 느낌이었어요. 목소리가 워낙 크셔서 목소리에 일단 겁을 먹었었죠. 또 기행이라고 할지, 남다른 감성을 가지신 독특한 분이셨어요.

64년이라는 긴 연기 인생에 기억에 남는 감독이나 동료를 꼽는다면요.
너무 많죠, 많지만 한 명을 꼽는다면 열 편 넘게 같이 한 배창호 감독입니다. 8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배 감독과 참 좋은 작품을 여러 편 했네요.

존경받는 선배님이신데요. 긴 시간 활동하면서 지켜온 신념이나 가치는 무엇인가요. 또 연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념이나 가치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요. 굳이 꼽는다면 한 명의 배우로, 또 어떤 개인으로 열심히 잘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거죠, 뭐. (웃음) 연기 동력은 영화 자체가 주는 매력입니다. 새로운 영화를 한다는 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느낌과 같아요. 장소, 사람, 이야기 모두 새롭죠. 항상 다르기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 19로 영화 산업 전반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100만 넘는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장의 관객수가 감소, 넷플릭스 등 OTT로 이동했는데요. 향후 극장을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온라인으로 보는 분도 많고, 생활패턴이나 취향에 따라 소비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빠져나가는 일부가 있겠지만, 대다수는 돌아올 것으로 믿어요.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차기작 등 근황을 알려주세요.
<페어 러브>(2009)를 같이한 신연식 감독과 이번 여름에 들어가기로 한 작품이 하나 있어요. 치매에 걸린 딸과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일상에서 즐기는 취미나 소소하게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커피는 늘 즐기고 있고 요새 조그만 정원이 있어 가꾸는 중이에요. 꽃을 심고 그 꽃이 피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습니다.


사진제공_엣나인필름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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