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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여성성은 별개 <프랑스여자> 김호정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프랑스 국적의 한국여성 ‘미라’가 있다. 배우의 꿈을 안고 오래전 프랑스 유학을 떠났으나 배우가 되지 못했고, 현지 남성과 결혼해 프랑스에 정착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한 그는 함께 공부했던 친한 친구와 후배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반짝반짝 빛나던 20대와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과 실패를 맛본 현재, <프랑스여자>는 미라의 시간과 공간을 환상적으로 유영한다.

미라는 경계에 놓인 여성이다. 김호정이 ‘미라’를 만났을 때 그 역시 경계선에 선 기분이었다. 여배우로서 나이 먹는다는 것, 점차 여성성이 사라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변화를 체감하며 혼란한 감정에 놓였었다. 하지만 나이와 여성성은 별개라는 것을 점차 깨닫는 요즘이다. '아줌마라', '나이 먹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앞세워 스스로를 놓지만 않으면 된다. 동료 배우의 맹렬한 활동에, 40대 이상 여배우의 입지가 점점 넓어지는 현실에 용기 얻는다는 김호정. 인위적으로 젊게 보이려 하기보다 주름, 잡티 등 노화 현상을 자연스럽고 멋지게 드러내고자 한다.


‘프랑스여자’ 미라를 연기했다.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나.
그는 국적이 프랑스인 한국여자다. 만약 테러 현장이나 사고로 죽으면 프랑스인으로 구분되겠지. 프랑스와 한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아슬아슬한 삶을 사는 여자로 해석했다. 프랑스하니 샹송을 듣고 와인을 마실 것 같지만, (봐서 알겠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계속 소주와 맥주를 즐긴다.

미라 역을 제안받았을 때(2018년) 경계선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세히 들려준다면.
TV 드라마를 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다.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차 여성성이 사라지는 역할을 하게 되더라.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야 할지, 배우로 어떻게 나아갈지 혼란스러웠다. 마치 미라처럼 말이다. 배우로서 꿈이 컸는데 막상 그런 배우가 됐는지에 고민이 많던 시기다. 시나리오를 보며 딱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았으나 원하는 것을 다 이루진 못했다. 그렇다고 잘못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웃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고,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더한가? (웃음) 흥행배우도 아니고, TV에도 간간이 나와 나를 낯설게 느끼는 분이 여전히 많지만 나쁘지 않다. 이런 낯섦도 괜찮은 것 같다. 어떤 매체이든, 어떤 장르이든 선택 가능성을 열어 놔서 그런지 확실히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다.

김희정 감독이 캐스팅 시 ‘김호정’ 외엔 떠오르는 배우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신의 어떤 부분에서 프랑스여자를 떠올렸다고 생각하나.
음, 낯섦?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이미지 덕분이 아닌가 한다. 90년대 20대 시절 연극 무대에서 나를 보고 기억했던 감독들이 종종 나를 찾아 주신다. 작가주의 감독에겐 배우보다 영화가 보여야 하기에 낯섦이 필요하거든. 예전에도 교포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프랑스여자’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꼭 짚어 설명할 순 없으나 ‘프랑스여자’ 하면 떠오르는 안 꾸민 듯 꾸민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이미지가 당신에게 있다. 프렌치 시크라는 말도 있지 않나. 실제 당신과 닮은 부분은. 또 대사와 감정 표현 등 연기하면서 신경 쓴 부분은.
미라 같은 면이 있기도 하겠지만… 평소 어두운 성격은 아니다. 다만 배우 입장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역에 끌리는 건 있다. 될 수 있으면 튀지 말자는 생각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극 중 미라는 예민하고 긴장한 상태라 그렇게 보이려 했으나 솔직히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했다. 당시 느꼈던 경계선에 서 있는 감정을 영화에 털어 넣었다.

<프랑스여자>를 비롯해 최근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하이에나>에서도 로펌 대표 변호사 김민주로 강한 여성 파워를 보였다.
최근 <부부의 세계> 김희애 배우도 정말 멋지지 않았나. (웃음) 40대 이상 배우들이 설자리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동료 배우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요즘 코로나로 외출하기 힘들어 넷플릭스 통해 드라마를 자주 보곤 했다. 예전 영화에서 봤던 젊고 예뻤던 배우가 나이든 지금도 너무 멋지고 섹시하더라. 여전히 여성성을 지니고 있는데 나도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 인위적으로 젊게 보이려 하기보다 주름, 잡티 등 노화 현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거지. 우리나라 영화나 방송계도 점점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인식이 많이 변했고 말이다. 솔직히 내가 어릴 때만 해도 50대 여배우 이러면 정말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강했거든. 외국 특히 프랑스는 나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들었는데 <프랑스여자> 하면서 확실히 알았다.

어떤 점인가.
프랑스 여자들은 나이 얘기 자체를 안 한다고 한다. 할머니가 돼도 곱게 차리고 꾸며 자신의 여성성을 끝까지 지킨다고 하더라. 미라 남편을 연기한 프랑스 친구에게 무심코 나이가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거기서 나이가 왜 나오냐 뭐 이런 거지. ‘아줌마라’, ‘나이 먹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프랑스여자>
<프랑스여자>
 <프랑스여자>
<프랑스여자>

여러 상황을 가정하면서 <프랑스여자>를 따라갔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미라의 비밀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영화에서 보면 약간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지점이 있으나 시나리오에는 아주 짜임새 있게 잘 나와있었다. 마치 영화를 그대로 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연극 이야기도 나와서 흥미로웠다. 다만 극중 등장하는 연극 <하녀>, <배신> 등을 모르는 일반 관객이 이해할지 다소 의문이 들긴 했다.

프랑스에 살던 미라가 오랜만에 귀국해 함께 공부했던 친구와 후배들을 만난다. 미라는 배우의 꿈을 접었지만, 그들은 연기, 연출 등 현업에 종사 중이다. 즐겁게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독 미라만 기억을 못 하거나 그의 기억만 왜곡돼 있다. 이유가 뭘까.
미라가 후배 ‘성우’(김영민)에게 예전에 우리가 같이 잤냐고 물어보는 대목이 있다. 그게 상대의 감정을 떠보거나 확인받기보다 진짜 기억이 안 나 물어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연기했다. 왜냐면 유학 떠나기 직전 미라는 후배와 같이 여행을 갔으나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20대 가장 잘 나갈 때이고 외국에 나갈 생각에 솔직히 주변에 신경 쓸 여력이 없던 거지. 그렇게 외국에 나갔는데 배우의 꿈을 이루지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도 못하는 등 좋지 않은 현실에 놓여있다. 심적으로도 무너진 상태다. 당연히 자기가 잘 나갔던 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을까.

프랑스어 연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어가 발음이 어렵지 않나! 정말 고생했겠더라.
감독님을 많이 괴롭혔다.(웃음) 2018년에 촬영했는데 그전에 감독님이 (비공식적으로) 찾아와서 역할을 제안했었다. (내가) 할 테니 프랑스어 선생님을 붙여 달라고 했다. 나중에는 마음이 급해져 빨리해야 한다고 재촉하기도. 프랑스에 거주한 적은 없지만 여행을 오래 한 경험이 있어 그들이 쓰는 제스처나 감정 표현 등을 많이 관찰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싸우면 말이 빨라지거든. 내가 그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임박해선 대사를 통째로 외웠고, 발음하기 힘든 단어는 좀 수월한 발음의 단어로 아예 바꾸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 역을 맡은 프랑스 배우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좀 일찍 들어왔다. 계속 귀찮게 했지, 뭐. 여러 사람이 도와줘 가능했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는 부끄러워 프랑스 스태프들을 피해 다녔다니까! 이번 시사 때 프랑스 친구들이 왔는데, ‘배우는 배우구나, 감정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연기했네 ’라고 해서 좀 용기를 얻는 중이다.

미라의 후배 ‘영은’역의 김지영, ‘성우’ 역의 김영민과의 케미가 좋더라. 관계가 돈독한, 진짜 선후배 사이 같은 느낌이랄까.
김영민과는 정말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내가 한창 연극할 당시 공연의 코러스로 온 적이 있는데 그게 그의 데뷔작이었다. 몸으로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신체 트레이닝이 정말 잘 된 배우고,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는 한결같은 친구다. 개인적으로 친해 공연이나 영화 나오면 서로 보러 간다. 이번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봤는데, 아주 재밌더라. 김지영은 <화장>(2014) 시사회 때 처음 만났는데 첫날부터 술 마셨었다. 그는 극 중 ‘영은’ 그 자체다. 정말 똑같고 너무 소탈하고 예쁘다. (개인적으로) 제일 예쁜 것 같다. 프랑스 촬영 신이 없는데도 프랑스까지 와줬고, 촬영 끝난 후 둘이 남아 여행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20대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한참 어린 후배들과 호흡 맞췄다.
20대 ‘성우’를 연기한 백수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할 때 연기가 너무 좋아 눈여겨보던 후배다. 이번에 감독님께 적극 추천했다. 미라가 계속 신경 쓰고 언급하는 후배 ‘해란’역의 류아벨은 에너지가 아주 강한 친구로 촬영하면서 그 점이 아주 좋았다.

<프랑스여자> 때 특별히 체중을 감량한 건가. 평소보다 더 슬림 해 보이더라. 또 평소 관리는 어떻게 하나.
미라의 이미지에 맞춰 살짝 예민한 모습을 보이려 감량했다. 생각처럼 잘 안돼 나중에는 정말 적게 먹었다. 영화 속 모습을 보니 너무 뺐나 싶기도 하더라. 요즘엔 요가를 하고 있다. 연극할 때는 무대 트레이닝을 하니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할 경우는 해야 한다. 조금 먹고 많이 걷고 요가하고 촬영 있으면 촬영하고. 특별히 관리하기보다 아주 단순하게 생활한다. 내 평생 한 번, 1년만 실컷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배우는 다 그렇다. 조금 먹고 운동하고 그래야 유지할 수 있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으로 만날 수 있나.
김성제 감독의 <보고타>를 콜롬비아에서 촬영하다 코로나로 중단하고 들어왔다. 아마도 내년에 촬영 재개할 듯하다. 들어와 자가격리하는 동안 떡볶이, 치킨, 맥주 등을 먹었더니 4킬로가 확 쪘더라. 다시 풀떼기 먹으며 빼고 있다.(웃음) 또 OCN 드라마 <써치>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마 가을쯤 방영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소소한 행복 거리가 있다면.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고, 영화나 공연 등 일 얘기하는 것? 너무 먹을 것 얘기만 했나! (웃음)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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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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