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전작 <내부자들>과 <마약왕>에서 욕망을 좇는 사람들을 선 굵게 묘사했던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로 근현대사의 변곡점이라 할 만한 10.26 발생 40일 동안을 밀도 높게 그린다. 지극히 정치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우 감독은 정치적으로 접근하지도 공과를 평가하지도 않으려 했다고 못 박는다. 영화는 거시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기보다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이 행위를 하기까지 이면의 감정과 심리를 미시적으로 조명한다. 재평가와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기려 했다는 우 감독, 들뜨지 않고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쌓고자 했고 의도대로 성공했다.
전작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7)과 마찬가지로 <남산의 부장들> 역시 욕망을 맹렬히 좇는 사람들을 다룬다.
그들이 흥미롭다. 자기들 세계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말이다. 파헤치다 보면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이즈는 비교 불가겠으나 역학 관계는 비슷하지 않을까. 청와대가 무대가 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26 암살 사건 발생 전 40일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김충식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이 워낙 방대한 서사를 다룬다. 영화 한편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 없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잘 알려진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극 중 ‘박용각’(곽도원 분)의 파리 암살과 10.26이 불과 20일 간격이다. 아마 이 사실을 모르는 분이 꽤 많으실 거다. 박통을 향한 충성으로 그(김형욱)를 처리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총성으로 바뀌었는지 너무 의아했다.
10.26 원인과 이후 김재규의 행보에 관해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연출 방향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했다. 근현대사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10.26이 어떤 대의보다 균열된 감정과 관계의 파열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 시작은 질투, 시기, 집착, 충성, 애증 등 보편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 사태를 조명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를 통해 미시적으로 조명하려 했다.
정치 실화를 다루면서 비정치적 영화라고 밝힌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물에 대한 재평가 혹은 시선이 부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말했듯 김재규(극 중 ‘김규평’(이병헌 분))의 행보에 여러 가설이 있지만,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우린 여전히 미스터리하게 남기를 바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정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역사에 개인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지 않았고 역사 속에 살았던 인물의 내면과 감정에 방점을 찍고자 했다.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엔딩조차 상반된 진술을 병렬식으로 제시해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하나 박통을 그리워하는 태극기 부대와 그 시대 희생양 위에 태어난 촛불 시민들이 반목하는 현재, 영화의 소구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왜 그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파헤치려 했다. 정치적인 편견을 거둬내고 본다면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을 거다. 또 공과를 따지는 것도 아니기에 상반된 입장에 있는 두 집단 모두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게다가 연기 잘하는 쟁쟁한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볼만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전두환(극 중 ‘전두혁’(서현우 분))을 향해서는 노골적으로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유일하게 내면을 다루지 않은 인물이 바로 그분이다. 역사적인 팩트에 가장 가깝게 그렸다. 마지막에 그가 금고를 터는 신은 - 실제로 털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후 일인자 자리를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탈취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다.
원작을 스크린에 옮기며 주안점은.
일단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제목을 고수해 원작이 지닌 정신을 살리려 했다. 냉철한 시선을 가져오려 노력했고 덕분에 뜨거움을 억눌러야 했다. 마치 극 중 ‘김부장’(이병헌)이 된 느낌이라고 할까.
원작을 못 살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못 살려 아쉽다기보다 사실 원작의 초반부를 다뤄보고 싶었다. 초대 부장 김종필이 중앙정보부를 세우고 쫓겨나기까지 매우 흥미롭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로 한번 해보고 싶을 정도다. 원작에 롱코트를 입은 김종필과 차기 부장이 같이 걸어 나오는 사진이 첨부돼 있다. 그것을 보고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고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를 세웠던 인물이 1년 만에 내침을 당했다는 것에 그 내부사정을 잘 모르지만 강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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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톤을 어떻게 가져가고자 했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되 들뜨지 않고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쌓아가려 했다. 다행히 의도에 맞게 봐주시는 것 같아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다. (웃음)
극 중 인물들이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고 싶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픽션인 데다 그들의 행위보다 내면에 집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박통’(이성민 분)만 분장을 했다.
김형욱, 김재규, 차지철 등은 실존인물이라도 그 생김새를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너무 알려진 인물이라 어느 정도 싱크로율이 필요했다. 귀 같은 특징을 잡아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해 설득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래도 외양적으로 닮은 점이 전혀 없다면 이입하기 힘들고 몰입에 방해가 되거든.
한편으론 ‘차지철’(극 중 ‘곽상천’(이희준 분))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상도 든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너무 투명(?)한 것 아닌가.
실제로도 단순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반대로 김재규는 복잡다양한 면을 지녔고 말이다. 극 중 ‘곽상천’은 전혀 레이어가 없는 인물이다. 그에게 각하는 정말 메시아(신)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단순하기에 경호를 이유로 야밤에 청와대 주위로 탱크를 돌리고, 캄보디아 사례를 언급하면서 ‘싹 쓸어버리자’는 등 말도 안 되는 발언이 가능했을 거다.
명연기는 물론 명대사의 향연이었다. 개인적으로 ‘대사빨’에 능한 감독 중 한 명이 아닌가 한다. 대체로 원작에 있던 건가.
캄보디아 언급한 것과 ‘대국적’ 이 정도 표현은 가져왔고 나머지는 대부분 새로 썼다. 이전에는 사실 웃기려고 혹은 분위기 살리려 이른바 폼 잡는 대사를 쓰곤 했는데 이번엔 가급적 배제했다. 좋게 봤다니 다행이다.
‘박용각’과 ‘김규평’의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 양말을 부각한 점이 좋았다.
두 인물은 전, 현직 중앙정보부장으로 실제는 선후배이지만 극 중에선 친구 관계로 나온다. 복장에 엄격한 군인 출신인데도 결국 자신의 구두조차 챙길 수 없이 추락한다. 두 인물의 최후를 비슷한 분위기로 그려 일인자에게 버림받은 이인자로 두 인물이지만 한 인물처럼 보이길 바랐다.
궁정동 안가를 재현한 미술과 음악의 조화도 매우 좋았다.
조영욱 음악감독과는 연속 4편을 함께했다. 이번엔 대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음향과 사운드 모두 대사 밑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믹싱했다. 긴장감을 조성하되 인물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특히 음악 볼륨 조정에 신경 썼다. 들릴 듯 말 듯 귀 기울여야 할 수준으로 깔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차기작 준비는.
아직 계획이 없다. <내부자>,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을 계속하며 한 번도 쉬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휴식기를 좀 가진 후 대중의 반응에 따라 향후 차기작 방향을 결정할 것 같다.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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