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신의 한 수: 귀수편>(이하 <귀수편>) 이야기에 앞서 얼마전 개봉한 <판소리 복서>에서 ‘김 관장’ 연기가 아주 좋았다.
걱정했는데 편집이 잘돼서 다행이었다. 영화 보러 가려 하니 외진 곳에 있는 극장에서 조조와 밤, 하루에 단 두 번 상영하는 거다. 정말 극장 찾는 게 일이더라. <귀수편>이 <판소리 복서>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좋다고 내심 기대했는데 <판소리 복서>가 너무 빨리 내려서 아쉽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똥 선생’을 맡아 맛깔스럽게 영화의 맛을 더한다. 연기 톤과 방향은.
주인공 옆에 따라다니는 친구, 많은 분이 <타짜>의 ‘고광렬’(유해진)을 예로 드는데, 같은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일단 다르게 보이고 싶었고, 코믹하면서 진지하게 가려 했다. 그런데 다크한 인물 사이에 나까지 너무 진지해져 버리면 극 전체 분위기가 무거워져 버리니 그 수위 조절이 관건이었다.
리건 감독이 원한 방향은.
웃기지 않아도 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진지하게 해도 좋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하니 OK를 안 하는 거다. 알고 보니 진지하면서 웃기길 원하셨더라. 그래서 진지하되 어떻게 하면 위트를 선보일지 신마다 고민했었다. 찍으면서도 그랬고 개봉한 지금도 맞게 했나 싶고 좀 더했어야 했나 생각되는 장면도 꽤 있다.
애드립이 많았다고 하던데.
너무 많아 어느 것이 대본에 있던 건지 아니면 애드립이었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번엔 모든 대사를 살짝 자신감 없어 하는 어투로 끌고 갔다. 왜 말미를 살짝 내리거나 작게 얘기하는 것 말이다. 그래야 코미디에 있어 꺾기처럼 행동과 태도를 바꿀 때도 자연스럽게 전환이 가능하거든.
좋은 쪽으로 만화 같다는 게 중론이다. 시나리오를 본 첫 느낌은.
그야말로 만화구나 싶었다. 수련한 후 도장깨기 하듯 복수하는 전형적인 무협지 이야기라고 할까. 사실 대부분의 액션 장르가 크게 보자면 권선징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스타일 있게 영화적으로 만드냐의 문제다. <본> 시리즈처럼 리얼하게 혹은 <배트맨>처럼 판타지같을 수도 있을 거다. 우리 <귀수편>은 거의 게임에 가깝다. 사실 말은 좀 안되지 않나.
어떤 면에서 그토록 말이 안 되는지? (웃음)
음, 가령 일색 바둑을 생각해 봐라. 어떻게 흰 돌로만 바둑을 둘 수 있나! 서로 자기 돌이라고 우기면 그만인데? 또 봐서 알겠지만, 극 중 등장하는 악당들이 나름 신의를 지키는 악당이다. 사실 ‘귀수’에게 패한 후 손을 자르지 않아도 되는데 약속했다고 굳이 지킨다. 그래서 우리 영화의 미덕이 신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즉 만화 같은 우리 영화의 미덕은 신용이요 주제는 ‘똥 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바둑판이 인생이라 치면 그는 가늘고 길게 산다. 결혼도 하고 포르쉐도 사는 등 최후의 위너 아닌가!
주물공장 시퀀스에서 ‘똥 선생’이 비록 ‘귀수’(권상우)처럼 멋진 액션을 보이진 않지만, 공중에 매달려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촬영하면서 고생 많이 했겠더라.
CG로 연출한 것 아니냐고 묻는 분이 있는데 모두 직접 연기했고, ‘귀수’가 추락하는 장면 제외하고는 스턴트도 없었다. 배에 끈을 감고 한 20~30초 걸려 올라간 후 5분 정도 연기하고 내려오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배에 힘이 몰려 정말 아프다. 힘을 꽉 준다고 주는데도 그렇다. 내가 연기하는 부분 외에도 ‘귀수’와 ‘외톨이’(우도환)가 싸울 때 뒤에서 그야말로 병풍처럼 매달려 있어야 했다. 원래 3일 예정이었는데 너무 힘들어하니 내가 잡히는 장면을 몰아줘 이틀간 촬영했다. 나중에는 우는 데 그게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첫날 뭣도 모르고 밥 먹고 촬영 들어갔다 너무 고생해서 다음 날은 그냥 굶었다. 처음엔 물에 점점 빠지는 상황이었는데 겨울이라 위험하다고 주물공장 용광로로 장소가 바뀐 거였다. 물의 경우 저체온증이 올 수 있어 15분 이상 촬영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랬다면 짧고 굵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이틀을 내리 고생했다. 여하튼 올해 최고로 힘든 이틀이었다. 나중에는 촬영장에 가기 싫을 지경이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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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선생’의 생존 능력은 무얼까.
음, 어떤 영화에서 슈퍼 파워에 관해 묻자 ‘운’이라고 대답한 장면이 떠오르는군. 동물원에서 가장 관리하기 힘든 것이 맹수라고 하더라. 죽기 전까지 아픈 내색을 안 해 병에 걸린 것을 뒤늦게 발견해서라고 한다. ‘똥 선생’은 보다시피 조금이라도 위험하거나 아프면 자리를 피하고 즉시 티를 낸다. 화장실 액션 시퀀스에서도 바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지 않나. 하하하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가.
학생들이 무리 지어 있으면 보통 돌아가곤 한다. (웃음) 어느 날 집에 가는데 한 아저씨가 어떤 여자 팔목을 꺾고 핸드백을 빼앗아 탁탁 털고 있는 거다. 순간 무섭기도 했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마침 우리 아파트 입구라 용기를 내 소리를 확 질렀다. 아저씨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니 자기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여자에게 말하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여자가 택시비를 안 내 기사분이 받으려고 했던 거지.
겉보기에는 어디에서도 밀리지 않을 인상이다. 또 말술을 들이킬 것 같은 모습인데 술을 전혀 못 마신다고 들었다.
체질적으로 전혀 못 한다. 무명시절에 얼굴색이 붉다 보니 술 마시고 왔다고 오해받은 적도 있다. 같은 연극배우 출신인 김윤석, 송강호 선배 등이 일찍이 잘 된 것에 비해 난 <아저씨>(2010)로 얼굴 알린 때가 40살이었다. 농담처럼 술을 못 먹어 감독님들과 친분이 없어 그렇다고 얘기하곤 한다. 한때 술도 못해 사회생활도 못 해 자격지심에 혼자 술을 진탕 먹은 적이 있는데 바로 쓰러지더라.
<아저씨> 이후 주·조연을 막론하고 열심히 달려왔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다 애착이 가는데 연기를 조금 잘 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다. 가령 <계춘할망>(2016) 때 우는 장면인데 컷을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이 되는구나 싶고 연기가 발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모 예능에서 연기를 그만두고 호주 이민 갔다 돌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사연인가.
호주에서 페인트칠을 주로 했는데 저절로 면벽수련이 되더라. 그렇게 한 일 년 반을 살았다. 사실 페인트칠만 해도 생활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지만, 50대 60대 그리고 70대까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은 사 먹을 수 있겠지만 행복하지는 않겠더라. 돈을 벌면 행복할지 등 당시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한편으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용기 냈다기보다 갈 때도 또 돌아올 때도 에라 모르겠다는 이런 느낌이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유명해진) 지금은 행복한가.(웃음)
좋은 배우가 되면 행복하겠다 싶은데, 아직 좋은 배우가 안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힘들었던 시절에 비하면 경제적으론 행복해진 거겠지. 재미있는 이야기해줄까. 연극할 때 누군가 차를 가져오면 강원도로 떠나곤 했었다. 특별한 이유나 목적 없이 단지 차가 있으니 가는 거다. 그렇게 가서 바다 보고 아, 자유다 한 번 외치고. 지금 생각하면 바다가 왜 자유인지 좀 웃기다.(웃음) 지금은 차도 돈도 있는데 그렇게 훌쩍 떠나지 못한다.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다스리나.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로 집에 있는 편이다. 서른한 살에 호주에서 돌아와 말했듯 <아저씨>를 마흔에 찍었다. 오랫동안 쉬었기에 노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트라우마가 참 무서운 게 다음 작품이 안 잡혀 있으면 불안하다. (웃음)
<귀수편> 이후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무릎이 안 좋아 수술할 계획으로 차기작을 정하지 않았다. 무릎은 수술 아닌 재활 치료하는 거로 가닥을 잡았으니 이제 알아보려 한다.
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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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