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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눈동자의 날쌘돌이 <봉오동 전투> 류준열
2019년 8월 2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뺑반>으로 기분 좋게 인사하며 새해를 열었던 류준열. 이후 여의도 증권가를 무대로 한 <돈>으로 3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티켓 파워 과시했던 그가 <봉오동 전투>로 관객을 다시 찾았다. 무명의 독립군이 힘을 모아 쟁취했던 최초의 승리 ‘봉오동 전투’를 극화한 영화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이장하’로 청명한 눈동자와 빠른 발을 지닌, 가슴 깊이 뜨거움을 간직한 인물이다. ‘이장하’가 되어 산과 계곡을 누비며 100년 전 승리의 현장으로 관객을 강하게 이끄는 류준열. 자주 보니 반갑고 매번 다른 모습이라 더 좋다.

영화 관련 이야기하는 게 참 즐겁다고 했었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에 앞서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와 영화 개봉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다.
현재와 같은 사회 분위기를 예상했던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영화가 공개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채 100년도 전에 실재했던 승리의 역사 아닌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희생된 무명의 독립군을 조명하고 감사를 환기했으면 했다.

첫 등장 신부터 실컷 이야기해 보자. (웃음) ‘장하’(류준열)가 다소 늦은 감 있지만, 매우 멋지고 강렬하게 등장한다. 머리를 짧게 쳐 더 그렇게 보인다.
시나리오상에 청명한 눈빛을 가진 청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읽으면서 ‘이장하’와 ‘청명’이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비단 ‘장하’뿐이 아니다. 봐서 알겠지만, 다른 독립군 모두가 형형한 눈빛을 지녔다. 행색이 남루하고 볼품없을지 몰라도 이미 청명한 인물들이다. 짧은 머리를 좋아하는데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몰라 마음대로 자를 수 없던 차에 이번에 짧게 해봤다. 좀 더 짧았으면 좋았겠지만, ‘황해철’역의 (유) 해진 선배 역시 짧은 쪽은 선호해 그보단 약간 길게 갔다.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작품마다 남다른 각오로 임하겠지만, 이번 <봉오동 전투>는 그 중에도 각별했을 터다.
캐스팅 자체가 감동이었고 시나리오 받고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뤘던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승리의 역사를 그린 것 아닌가. 현재를 살면서 과거 나라를 빼앗겼던 역사가 먼 이야기로만, 실감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말했듯 아직 100년도 안 지난 과거다. 지금 당연하다고 누리는 자유와 풍요가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영화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또 전쟁물 혹은 역사물은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좋았다.

영화 전후로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발전 혹은 변화했을 것 같다.
처음 ‘봉오동 전투’ 하니 예전 수업에서 막연하게 배웠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상황과 감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감독님과 ‘장하’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그에게 어머니와 같은 누나를 잃는다는 것은 국민이 나라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해도 좋을지 물으니 감독님께서 매우 좋아하셨다. 딱 그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었다. 누나를, 엄마를 뺏긴다면 당연히 되찾아 오고 싶을 것 아닌가.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캐릭터를 발전해 나갔다.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됐을 것 같다. 산을 수백 번 오르락내리락 배우들이 한 고생이 스크린 너머로 생생히 전달되는데, 한편으론 정말 산을 잘 타더라!
여러 보조 출연자와 배우, 스태프를 통틀어 해진 형이 넘버 원, 제일 산을 잘 타셨다. 난 솔직히 힘들면서 괜찮은 척한 적도 있는데 형은 안 힘든 척이 아니라 진짜 힘들지 않은 거였더라. 심지어 차 안타고 걸어갈 정도였다니까! 피지컬 팀이 영화 촬영 기간 내내 밥 먹고 나면 체하지 말라고 등 두드려주고, 다리 접질리지 말라고 압박 붕대로 일일이 감아주는 등 세심하게 관리해 준 덕분에 다행히 모두 부상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생한 만큼 성장도 했겠다. (웃음)
나야 다 준비된 상태에서 연기만 한 거니 뭐.. 이번 영화는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했다. 필요한 장비와 소품들을 다 짊어지고 올라가고 내려와야 하니 말이다. 배우들이 도와주려 해도 못 하게 한다. 혹시라도 부상당하면 촬영에 지장이 생기니까. 우리가 마실 것, 덮을 것, 입을 것들을 스태프들이 운반하는데 옆에서 빈손으로 있자니 얼마나 죄송하던지…확실히 이전과 다른 감사함을 느낀 남다른 현장이었다.

‘장하’가 혼자 작전 수행하러 산을 타는 모습이 한마디 날다람쥐 같다고 할까, 그야말로 날쌘돌이더라. (웃음) 손가락 등 길쭉길쭉한 체형 덕을 본 것 같다.
흠,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준열 씨밖에 안 떠올랐다고 하시면서 캐스팅 제안하셨는데, 뭐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하하.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 스틸컷

국.찢.남(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실적인 모습이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국찢남’은 사실 홍보하면서 사용한 건데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다. 연기하면서 그 시대, 원래 그곳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거든. 전체적으로 서 있는 모습 -총을 쏠 때조차도- 에 신경 썼다. ‘장하’가 가볍지 않은 캐릭터라 그의 성정에 어울리게 행동하고 반응해 우스워 보이지 않도록 했다.

대사가 별로 없어 눈빛과 표정으로 ‘장하’의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독전>(2018)의 ‘락’(류준열)을 비롯해 대사 없는 역을 한 적이 있고 어느 정도 훈련이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군인 혹은 무사를 연기하는 게 힘들다고 배웠던 생각이 나서 예전 연기 노트를 찾아봤다. 제대로 서 있는 것만으로 군인의 많은 부분을 표현할 수 있더라. 극 중 ‘황해철’(유해진), ‘마병구’(조우진)는 소탈한 모습으로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지점이 있는 반면, ‘장하’는 혼자 겉도는 느낌이 있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극 중 혼자 튀거나 겉도는 것을 경계하고 지양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고 감독님을 찾아가 상담했었다.

원신연 감독님의 반응은.
‘장하’가 오늘은 이랬으니 내일은 좀 친근한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면 안 되겠냐고 하니 감독님께서 지금 톤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설득당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감독님의 판단이 옳았고 또 선배님들의 내공에 깜짝 놀랐다.

놀란 이유는.
극 중 ‘마병구’(조우진)가 ‘장하’를 가리키며 “쟤는 우리랑 각이 달라”, 또 ‘황해철’(유해진)이 ‘장하’에게 “넌 여전히 웃지 않는구나” 이런 대사가 있는데 그게 다 애드립이었다. ‘장하’ 혼자 어울리지 못하고 튈 것을 우려한 내 고민을 선배들이 캐치해 그가 혼자 겉도는 이유를 제삼자의 입을 통해 설명해 준 거지. 정말 대단한 관찰력과 연기력 아닌가!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 스틸컷

승리라는 결과를 알기에 고난의 과정을 보면서도 한편으론 안심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후반부 여러 파의 독립군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에서는 울컥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하지만, ‘장하’의 최후? 에 대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미 그런 설정이었다. 알다시피 ‘장하’는 극 중 가장 빠른, 산을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날다람쥐처럼 누비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다리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신체 부위인데 목숨 대신 잃게 된다. 우리 영화가 숫자로만 기억되는 이름 모르는 독립군의 희생을 조명하고 승리의 쾌감을 주려고 했기에 비극적인 결말은 지양했다. 너무 아픈 이야기보다 희생과 승리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면 된다.

교과서에 단 몇 줄로밖에 표현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촬영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속상했다. 찾아보려고 해도 자료가 거의 없었다. 일본군 입장에선 패배의 전투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동굴, 막사 장면 등을 촬영하면서 독립군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싸웠는지 새삼 깨달았다. 우리야 상상을 더 해 만들어진 세트에서 촬영하고 일이 끝난 후 안락한 곳에서 쉴 수 있지만, 그분들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생활이었겠나. 수시로 울컥울컥했었다.

<택시운전사> (2017) 이후 유해진과 두 번째 호흡이다.
그때는 데뷔 초라 쑥스럽고 낯도 가리고 또 대선배님이라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이번 촬영을 통해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할 정도의 사이가 됐다. 얘기하다 보면 닮은 지점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관계라는 게 문득문득 너무 좋다. 예전에 유지태 선배가 누구와 친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사실 배우 중에 친한 친구가 없던 때였는데 당시 선배님이 직업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면 좋을 거라고 조언하셨었다. 선배의 조언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가벼운 질문 하나 하자면, 유해진 배우와 닮은 점은.
음.. 일단 외모? 농담이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해진) 형 역시 운동하고 움직이는 걸 아주 좋아하신다. 또 여행에 관심이 많으셔서 서로 여행지 정보를 공유하고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아주 잘 통한다. 요즘 형이 ‘여튼’ 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는데, 어제는 뜬금없이 ‘여튼’ 이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형이 ‘ㅋㅋㅋㅋ’ 이렇게 답장이 왔다. 또 네 개그가 나보다 위라는 말이 있다면서 형이 다른 건 다 양보하고 참아도 그건 안 된다고 확실히 못 박으시더라. (웃음)

<뺑반>으로 2019년을 시작해 바로 <돈>으로, 또 한여름에 <봉오동 전투>로 관객을 찾는다. 자주 만나 반갑고 매번 다른 모습이라 더 좋다.
요즘 익숙함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아직 차기작이 안 정해져서 다음번 만남까지 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일부러 휴식기를 두는 건가.
그렇지 않다. 휴식이야 기회 될 때 틈틈이 하면 된다. 다음 작품을 쉽게 결정 못 하다 보니 우연히 쉬게 됐다. 본격적으로 쉬어 보니 휴식이 그다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안 하니 오히려 이것 저것 다해야 할 것 같이 마음만 분주해지고 며칠 쉬니 몸이 말을 듣지 않더라.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사진 찍는 거다. 많이 찍고 전시회도 찾아가고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다.


2019년 8월 2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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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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