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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아니라 긍지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2019년 8월 19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서는 국민의 기세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2019년 여름. 때마침 일제강점기 한국 무명군의 승리를 그린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가 개봉해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촬영 중 강원도 정선 일대의 환경을 훼손한 사실과 이른바 ‘국뽕’을 우려하는 일각의 시선까지 맞물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지만, 원신연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하는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이던 1920년 일어난 ‘봉오동 전투’를 영화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하는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다. 우리에게 저항과 승리의 전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봉오동 전투는 국권을 피탈 당한 상황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다.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공식 기록됐고 일본군도 인정했으며 중국 상해시보에도 실린 사실인 만큼 상당한 의미가 있다. <봉오동 전투>는 모든 걸 승리의 관점에 맞춘 이야기다.

같은 해 발생한 청산리 대첩은 유명하지만, 그 몇 달 전 일어난 봉오동 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블라인드 시사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때도 봉오동 전투를 아는 분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관객이 <암살>(2015) <밀정>(2016) 같은 영화를 선택해 주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는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는 투자 받기도 힘들었다. 아픔, 두려움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무조건 망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작품은 고증의 정확성 여부와 역사 왜곡 논란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연출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부분은.
제일 걱정한 건 왜곡 문제다. 인물이 그 시대에 서 있는지, 혹시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보여서 관객에게 괴리감을 주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해서 관객의 흥미를 끌어내고 집중도를 끌어 올리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관객이 최고의 전투력으로 러일전쟁,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한 무명의 사람들과 그 시대를 그대로 느끼길 바랐다. 남아있는 기록을 중심으로 고증의 오류가 없도록 철저하게 조사해서 만들었다.


영화 연출에 참고한 사료가 있을 텐데.
독립기념관에서 보관 중인 ‘봉오동부근전투상보’를 참고했다. 일본의 월강추격대 대장이 전투가 끝나고 쓴 것이다. 당시 포로(극 중 박희순)가 존재했고, 적(조선 무명군)이 북으로 퇴각해서 추격 중이라는 등 그의 증언에 따라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에도 근거가 있었다. 논문 등 각종 참고 자료에서 모은 ‘설정집’이 따로 있었을 정도다. 아마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다.(웃음)

봉오동 전투가 일어난 곳은 사방을 둘러싼 산악지대로 독특한 지형을 갖췄다고 들었다. 극 중 전투 장면 구현에 공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진짜 봉오동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만강을 건너 16km 정도를 더 가고, 실제 전투지는 그보다도 훨씬 멀다. 그곳 자연과 풍경은 조선과는 정말 다르다. 산과 산 사이가 아주 멀고 나무가 많지 않다가도, 원시림같이 울창한 곳도 나타난다. 그야말로 대륙의 느낌이다. 하지만 직접 가지는 못했다. 중국 측에서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 않아 촬영이 위험하다고 했다.

실제 촬영은 어디에서 진행했나.
최대한 봉오동과 비슷한 곳을 찾느라 강원, 경기, 경상, 제주 전국 팔도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삼둔자 마을(현재 중국 길림성 화룡현) 옆에는 실제로 강이 있다. 그래서 촬영 장소도 곁에 강이 있는 곳으로 섭외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드론으로 찍은 장면이 없어서 알지 못하겠지만 삼둔자 마을 촬영은 한탄강 옆에서 진행한 거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안심이 됐다.

규모 있는 상업 영화 팀을 이끌고 전국 각지를 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전투 영화 특성상 촬영 전 지역청에 허가를 받아야 할 일도 많았으리라고 본다.
촬영 전에는 장소 섭외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반전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내고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설명해준 뒤에는 단 한 군데도 안 된다고 한 곳이 없었다. 엔딩크레딧을 보면 알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장소를 제공받은 영화는 아마 관객도 처음일 거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마음을 다해 도와주셨다. 현장 응원을 나와준 분들도 있다. 아마 다들 긍지를 품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강원도 정선군 일대 촬영으로 주변 환경을 훼손해 벌금, 과태료를 물고 공식적인 사과를 했는데.
책임을 느끼고 공식적으로, 충분히 사과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달라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문제가 된) 정선 촬영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 문제는 원주지방환경청의 허가를 이중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관련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 하는 분들로 인해 (그런 상황을) 알게 됐고, 그들과 회의를 거쳐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완성되면 한국영화감독협회,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에 배포할 예정이다.

원주지방환경청의 지적을 받고도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촬영을 강행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지금 단계에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부정적인 일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제작사와 환경단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더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영화에 관한 비판적 평가는 어떤가. ‘국뽕’ 혹은 ‘신파’는 우리나라 상업 영화 다수가 피해가기 어려운 비판 지점이기도 하다.
‘국뽕’이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이길래 영화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지 싶어서 직접 찾아봤다. 일단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라에 ‘히로뽕’을 합친 말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기들의 모든 걸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 이야기를 ‘국뽕’이라고 한다면, 난 할 말이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 아닌가. 그건 ‘국뽕’이 아니라 긍지다.

실제 봉오동 전투와 무명군을 두고 ‘국뽕’을 말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본다.
영화 만드는 사람은 잘 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해 신파를 끌어낼 수 있는지 말이다. 대부분은 선을 넘고 싶어 한다. 그래야 폭넓은 관객층을 하나의 감정으로 이해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청년만 보는 게 아니라 3~40대, 6~70대도 본다. 단순한 감정을 보여줘야 모두 감동한다. 하지만 요즘 관객들은 영화가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자극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지 않나. 결국 관객이 판단할 것이다. 그들이 ‘국뽕’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천상륙작전>(2016) <군함도>(2017) <나랏말싸미>(2018) 등 실제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최근 들어 유독 많은 잡음에 휩싸이는 듯싶다.
창작은 즐거운 작업이다. 자신이 만든 것에 생명력을 부여하면 그걸 본 관객이 재미를 느끼거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래서 순수창작영화에는 계산하기 어려운 확장성이 있다. 반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 제한이 있다. 조심해야 할 것도 훨씬 많다. 그래서 위축될 때가 많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좀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즐거운 일은 없지만, 내가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관객이 알아봐 준다면 그때는 즐거워질 것 같다.

사진 제공_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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