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몇 번째 인터뷰인가. 릴레이 인터뷰 하느라 힘들어 보인다.
정말 지쳐있다. 감기까지 걸려서 몸이 말이 아니다. 홍보사에서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어볼 수밖에.
- 남은 힘을 내서 인터뷰 잘 해보자.
에휴. 힘을 내서(웃음)
- 머리를 짧게 잘랐다. 영화에서는 긴 머리로 나오는데, 혹시 심경의 변화가?
그냥 한 건데. 지금까지 한 번도 숏 컷을 안 해봤다. 그래서 시도해봤는데, 머리 감을 때 가장 좋다. 빨리 감을 수 있어서.
- 강단 있고, 자기주장 강한 강지우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긴 머리 보다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감독님도 그런 말씀 하셨는데, 영화도 자르고 찍을 걸 그랬나.(웃음)
- 기자간담회 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이번 버전이 좀 달라졌다고 들었다.
부산 버전에 있었던 장면이 빠지고, 새로 삽입된 장면이 있다. 강지우가 윤지우(김효진)에게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리는 장면이 부산 버전에는 없었다. 영화제 상영 후 그 장면이 없다보니, 강지우가 윤지우를 왜 떠났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재편집을 하신 것 같다.
- 개인적으로 부산 버전과 지금 버전 중 마음이 드는 건 무엇인가?
지금이 훨씬 좋다. 부산 버전보다는 조금 친절해졌으니까. 그럼에도 언론시사회 후에 보신 분들은 꽤 어렵다고 하더라.(웃음)
차돌! 돌?
- 맞다. 차돌! 수많은 풍파를 거처 강해진 차돌처럼 강지우도 부모의 부재로 인해 사랑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마음이 차갑고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아마 지우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건 부모의 부재일 거다. 어렸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가 제대로 품어주지 못했으니까 심리가 불안정해졌다고 본다. 보통 누군가에게 깊은 애정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주거나 받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데, 지우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랑 자체를 불편해 한다. 사랑이 영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우는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게 두렵고, 그래서 상대방보다 먼저 이별을 얘기한다.
- 사랑 앞에서 비겁한 인물인데.
자기 힘들다고 남들에게 ‘땡강’이나 부리고.(웃음)
- 그러고 보니 <똥파리>의 연희와는 상반된 캐릭터다.
비슷한 점도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연희 동생인 상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 <똥파리>에서 연희는 엄마 같은 포근한 모습이 있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반대되는 역할을 맡았다. 전혀 반대되는 인물을 맡았으니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재미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가?(웃음) 모르겠다. 제작보고회 때도 말했지만 지우를 연기하면서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잘 지냈지만 혼자 있을 때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 그래도 되는 건데,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혼자 마음고생 많이 했다.
동성애 연기가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실제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사랑에 빠져야 하잖나.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그건 다 똑같다고 본다. 실제로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강지우처럼 여자를 좋아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도 해봤고.
- 극중 강지우와 윤지우의 인연은 수갑을 같이 차게 되면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강지우가 어떻게 자신과 다른 윤지우를 사랑하게 된 거라 생각하나?
아까도 얘기했지만 강지우는 뭔가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정상적인 삶은 포기한지 오래다. 연애는 하지만 상처받는 걸 싫어해서 이별을 밥 먹듯이 하고 말이다. 아마 강지우는 똑같은 옷을 입힌 마네킹을 떨어뜨리며, 일탈을 경험한 윤지우에게서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했을 거다. 처음에는 “이런 미친 X를 봤나”하면서 욕을 해댔지만, 그 행위자체가 재미있고, 자신과의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한 거지. 수갑도 마찬가지다. 윤지우는 “수갑을 차고 있으니까 꼭 위험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 강지우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거다. 윤지우와 수갑을 찬 상태에서 예전 남자친구를 불러다 섹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짜릿한 일탈을 즐기는 강지우의 모습이 더욱더 확실해진다.
- 예전 남자친구를 ‘뻥’ 차버리는 강지우는 윤지우와 연인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지우는 윤지우를 불쌍한 예전 남자처럼 ‘뻥’ 차버린다. 그 계기가 바로 윤지우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하고 나서다.
미래에 대한 거부감. 이런 관계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계속 마음속에 담고 살았던 강지우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있을 수 없다. 예전 남자친구에게도 “이젠 너한테 낯선 느낌이 없어”라고 떠나잖나. 낯선 느낌이 없다는 건 익숙해졌다는 말과 동일하다. 익숙해지면 이별할 때 더 힘들어지니까 그전에 떠나는 거다. 오랫동안 같이 지낼 생각이 없으니까. 윤지우랑은 안정적으로 오래 지내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강지우 인생에서 보면 윤지우를 만났을 때의 순간을 그렸을 뿐이다.
보통 사람은 아닌 거지.(웃음)
- 강지우와 윤지우가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장면이 있다. 사랑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잘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하는데.
강지우가 독단적으로 이별을 말했지만, 마음 편하게 떠났겠나.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사랑은 다 똑같다. 아무리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야. 사랑에 빠지면 힘들고, 사랑에 빠지기 전 떠날 거야.”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쉽나. 진흙탕에서 싸울 때도 서로 사랑하지만 이제는 다시 그 때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둘은 알았을 거다.
- 그럼 강지우에게 사랑은 제목처럼 창피한 건가?
사실 창피하다는 윤지우에게 나올법한 말이다. 얼굴 붉어지고, 설레는 그런 감정은 윤지우에게 해당된다. 강지우는 조금 다른 감정이지.
- 김수현 감독도 멜로를 처음 시도한 걸로 알고 있다. 그것도 동성애를 소재로. 연기에 대한 특별한 주문이 있었나?
기억을 잘 못하는 것도 있는데, 감독님이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머릿속에 강지우 캐릭터를 확립한 상태였고, 강지우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가 갔다. 특별히 감정 표현이나 연기의 방향성에 대해 감독님이 요구하는 건 없었다.
- 일반적으로 동성애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최근에 소준문 감독의 <REC 알이씨>를 봤다. 그 영화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쁘고, 아름다웠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남남커플이지만 내 과거나 현재, 미래에서 나올 법한 사랑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입하고 봤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어떤 관객이 예전에는 동성애 영화를 볼 때 힘들었는데, 이번 영화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어떤 관객은 <창피해>는 괜찮았는데, 남자커플이 나오는 <REC 알이씨>는 보기 불편했다고 하더라.
그래도 의식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보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개봉하고,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늘어난 걸 보면 말이다.
- 두 영화 모두 보통 사람들의 연애담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여자끼리의 사랑이야기지만 상대방을 구속하고, 그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공감대 형성이 <창피해>가 갖고 있는 힘이라 본다.
사랑이 중요하게 나오는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동성애에만 초점이 맞춰있는 것 같다. 그냥 보통 사랑이야기인데 말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도 중요하지만 두 인물의 성장을 그린 것 또한 영화의 힘이라 생각한다. 아! 성장이란 단어는 재미없어서 안하고 싶었는데.(웃음)
- 왠지 ‘성장’이라는 단어가 나올 것 같더라.
(웃음)어쩔 수 없다. 재미가 없어도 이게 최적이다.
-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성장한 모습이다. 재미없는 단어라도 이게 최적임을 알아 달라.(웃음)
삶을 살면서 일련의 사건들이나 경험을 겪으면서 변해가고, 뭔가 달라지고, 이런 것들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배우의 꿈을 꾸면서 그 길을 열심히 가려고 노력했는데,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이 좋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라 생각한다. 지금보다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으니까.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