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와 6번째 인터뷰다. 이참에 ‘친(親) 무비스트 배우’로 지정할까보다.
오, 오늘이 6번짼가. 무비스트는 예전부터 봐왔던 영화 매체다. 생존하기 힘든 영화 전문 온라인 매체 중,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웹진 아닌가.
‘친 무비스트 배우’ 맞다니까. 평소 인터넷을 즐기나? 우리 내부에선 ‘인터넷을 자주 하는 배우’로도 소문 나있다.
음, 평상시엔 잘 안한다. 일 해야지, 술 먹거나. 하하. 그렇지만 영화가 개봉할 때, 그때 집중적으로 인터넷을 하는 편이다. <카운트다운> 시사를 하고, 요 며칠 또 열심히 웹 서핑을 하고 있다. 인터넷 반응으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배우 입장에선 아무래도 첫 시사 이후의 반응이 궁금하니까.
술이라… 이것도 혹시 음주인터뷰인가? 사실 무비스트 기자들끼리 내기했다. “정재영이 분명 지난밤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나올 것이다”, “에이, 이번엔 아닐 거다” 라면서 말이다.
아쉽게도, 어젠 술을 ‘못’ 마셨다. 일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하하. 안 그래도 사진 찍는 분들이 만날 구박한다. 술 좀 먹고 오지 말라고. (웃음) 내가 워낙 술을 좋아한다. 술이 들어가면 좀 쌩쌩해지는 타입이거든. 그래서인지 ‘야행성’이다. 촬영도 밤 촬영이 편해. 그런 생활 패턴을 바꾸려고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 학교는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웃음)
(웃음) 영화 잘 봤다. <카운트다운>은 국내 시사 전, 토론토에서 먼저 환대받았다. 그때 영화를 처음 본 건가? 어땠나, 생각한대로 나왔던가?
중간 편집과정에서, 가 편집본을 한 번 봤었다. 그땐 불필요한 게 많았다. 그런데 토론토 시사 때 보니, 굉장히 정리가 많이 돼있더라. 일단 템포감이 좋았다. 슉슉슉슉~ 빠른 전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뭐, 마지막 부분에서 찬반론이 나뉘기도 하는 것 같지만.
‘태건호’의 병원 씬 말인가?
그 이후부터. 시사 후 즉각적인 반응들로만 볼 때, 태건호의 회상 씬에서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좋은데, 굳이 단점을 꼽자면 영화 전체의 템포감에 비해 마지막이 늘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는 거지. 인터넷 보니까 그런 말들이 올라오더라고.
꼭 그렇진 않다. 작품 할 때만 그런 거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완전히 게으르다. 귀찮은 거 싫어하고, 옷 차려입는 거 정색하고.
안 그래도 인터뷰 사진들을 보면 유독 캐쥬얼한 모습들이 많더라.
이래 뵈도 오늘 입은 건 협찬이다. (웃음)
기자간담회에서 캐스팅 이유를 묻는 질문에 허종호 감독이 그러더라. “전도연, 정재영을 캐스팅 하는 데 이유는 없다. 한국의 모든 감독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일 것”이라고.
그거는 멘트다, 멘트! 아무래도 공식석상에서의 질문이니까. 술 먹고 다시 한 번 물어봐라. 하하하.
그래도 감독들이 아끼는 배우는 맞는 것 같다. 왜 <이끼> 때 캐스팅을 두고도 말이 많지 않았나.
맞다. <이끼>의 ‘천용덕 이장’ 캐릭터 캐스팅 당시 안티가 좀 있었다.
그 때 강우석 감독이 “오히려 이게 나의 유일한 선택이자 굿초이스라는 느낌이 든다. 이 선택이 맞고 영화가 잘된다면, 다 정재영 덕분”이란 말을 했다. 무한 신뢰를 얻고 있더라.
근데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모든 감독에게 있어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는 자기 자식과도 같다. 자식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를 사랑하지 않으면 작품을 못 만드는 거다. 미워하면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겠나. 설령 별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 작업을 시작했더라도, 함께 호흡하며 사랑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물론 배우도 마찬가지다. 사전 프리 프로덕션에서부터 감독과 배우가 호흡을 차근차근 맞춰가면서, 그게 사랑으로 발전해야 작품이 잘 나오는 거다. 서로 ‘사랑’ 해야 한다.
오. 그걸 ‘사랑’이라고 표현하는구나!
그렇지. 그 사랑이 뭐, 꼭 동성애 이런 건 아니고. 으하하하.
초기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란 얘기를 거쳐, “강우석 감독의 페르소나”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카운트다운>의 인연이 이어지면, 허종호 감독의 페르소나가 될 수도 있겠네?
그러려면 몇 작품 더 해야겠지. 한 감독님과 연달아 세 작품 정도를 같이 하면 그런 소리가 딱 나오더라. 강우석 감독님 같은 경우는 서로 호흡을 맞춰봐서 그런지, 시나리오도 안 주시고 “하자!” 하신다. 그럼 난 “아, 예. 하겠습니다.” 이럴 수밖에. 근데 항상 실망을 안 시킨다. 하하. (유쾌한 듯) 하여간 난 모든 감독들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 (넉살) 하하하하.
안 그래도 무비스트 ‘보자마자 한마디!’ 기사 봤다. (헛!) 원래 무비스트를 보면, ‘잘’ 본 건 빨리 써. 그야말로 보자마자 한마디다. 근데 ‘못’ 본 건 안 나오더라고. 하루가 지나도 안 나오고 이틀이 지나도 안 나오고…. 나도 다 안다. 십년을 봐오고 있는데, 무비스트를.
음…. 다른 얘길 좀 해보자. 9년 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전도연과는 어땠나. 9년 새 정재영은 감독들의 신뢰를 얻는 주연배우가, 전도연은 ‘칸의 여왕’이 됐다. 한 마디로 둘 다 ‘거물’이 된 거다. 사석에선 종종 봤겠지만, 그래도 둘이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나니 어떻던가.
서로 연기하기가 편했다. 도연이는 성격이 아주 솔직하다. 그리고 그게 일로도 이어져 솔직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상대배우도 연기에 솔직한 자세로 몰입하게 된다. 어떤 남자 배우라도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는 거다. 전도연이라는 패턴이 그렇다. ‘전도연만 잘 나왔다’, 이런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상대배우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또 저렇게 하면 저렇게 받쳐줄 줄 아는,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배우다. 잘 맞을 수밖에.
전도연이 그처럼 본능적인 배우라면, 본인은 어떤 배우인가?
난 목표가 그거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이건 어떻게 보면 반신욕 같은 얘긴데, ‘연기는 가슴으로 하되, 하기 전엔 머리로 충분히 생각을 하자’는 거다. 그래야 내 연기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목표고…, 항상 머리 아니면 가슴 한켠이 모자라는 한계를 느낀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걸 극복해 보려고 하다가 끝나는 것 같다. 머리와 가슴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때처럼, 또 다시 ‘18세 이상 관람가’다. 열심히 찍었는데 너무 높은 등급이 나오면 아쉬울 것 같다. 관객이 그만큼 제한되니까.
그렇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이건 무조건 높은 관람등급을 받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후 영화 분위기가 많이 조정돼, 내가 초반에 예상했던 것 보다는 관람등급이 낮춰질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초반 거칠었던 시나리오가 촬영을 하면서 상당히 가벼워졌거든. 가볍고 스피디한 부분들도 강조되고. 그런데 결국 ‘18세 이상’이 나와 버렸네. 아무리 가볍게 가려고 노력했어도, 작품 기저에 깔려있는 폭력성이라든가 영화 분위기 자체에서 본질적으로 밝은 부분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캐릭터들 직업만 봐도 연변 폭력조직에 사기전과범, 채권추심원까지… 밝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걸 밝게 만들려고 노력한 거지. 이야기 흐름도 뭐 애를 다 죽어가게 만들고, 또 거기서 외면하고 돌아서고…. 사실 15세가 봐도 공감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좋은 등급이라고 생각하지 뭐. (웃음)
그럼 <카운트다운>은 어떤 사람들이 봐야할까.
18세 이상! 하하하하.
(웃음) 맞네. 극 중 ‘태건호’는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인물이다. 얼핏 냉혈한 같기도 한데, 알고 보면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품고 산다. 가난에 대한 설움도 한편에 있고…. 많은 사연을 품은 인물인데, 감정표현을 좀체 안한다. 캐릭터는 어떻게 잡은 건가?
많은 고민 끝에 나온 캐릭터다. 감독님하고 계속 상의를 했다. 좀 더 밝게 가는 건 어떨까, 아니면 아예 양아치 같은 캐릭터로 가는 건 어떨까, 별별 생각을 다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처럼 나왔다. 너무 밝고 가벼운 캐릭터로 가버리면, 이야기 뒷부분이 무너져 진실성이 떨어질 것 같았거든. ‘태건호’가 무언가를 안고 살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겨야, 나중에 그가 반성을 해도 면책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뒷이야기가 생뚱맞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따른 최종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그 얘기만 들으면 진짜 칙칙한 영화다. 하하하. 그래서 영화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과 전 스텝이 상당히 고심했다. 이야기가 한쪽으로만 기울면 자칫 영화가 너무 무거워질 수 있으니까.
‘태건호’가 기를 쓰고 살려고 한 이유가, 아들 ‘유민’에 대한 마지막 기억 한 조각을 찾기 위해서였나?
응, 그런 거일 수도 있지. 그런데 이유가 딱 하나는 아닌 것 같아. 아들에 대한 기억 찾기와 더불어, 지난 삶에 대한 억울함도 있고, 자신을 찾기 위해서로도 볼 수도 있다. 또,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살고 싶은 이유도 있다. 삶의 무게감이 역으로 발동하는 거다. 간단한 얘기는 아닌 거지. 그리고 그건 어떻게 보면 관객에게 맡기고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인물인데, ‘태건호’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두 개 정도 있다. 하나는 영화 후반부, 병원에서 하는 말이다. “아빠가 미안하다, 아가야.” 여기서 그가 아들을 두고 ‘아가야’라고 하는데, 사실 걔가 ‘아가’라고 부를 정도의 나이는 아니잖나. 그런데 굳이 ‘아가’라고 한 건,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는 걸 보여주는 거다. 그가 힘들지 않았을 때,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자아내기 위한 거다. 그리고 ‘아이러니’의 뜻을 말할 때도 좋았다. 상대한테 아이러니의 정의를 이야기 해주고, 직접 찾아보기도 하지 않나. 그건 그만큼 우리가 쉽게 쓰지만 잘 알지 못하는 말이란 얘기다. 말미에 “천사 같은 유민이의 아빠가 나라는 게 아이러니다”라고 한 말도 상당히 마음 아팠다.
그러게. ‘아이러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고 인상적인 말이었다.
응. ‘태건호’의 첫 대사가 이거다. “…그건 반성만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남의 심장에 칼을 꽂으면서 살아야 한다.” 참 잔인하고 무서운 말이지.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성공하려면 그래야한다고들 하잖나. 사실 우리 영화랑 같은 날 개봉하는 <의뢰인>의 출연배우들도, 알고 보면 다 나와 친한 사람들이다. (웃음) 그렇지만 불가피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아이러니다.
영화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뭐라고 생각하나?
영화 제목이 원래는 ‘마이 썬(My Son)’이었다. 그런데 왠지 눈물 쏙 빼는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좀 아닌 것 같더라. 왜, 특히 남자들은 그런 영화 싫어한다니까. 안 그래도 전반적으로 무거운데, 제목까지 그렇게 가면 무슨 할리우드의 숀 펜이 나오는 육중한 영화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시나리오 수정 이후, 제목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고, 나도 찬성했다. 그래서 <카운트다운>이 된 거다. 카운트다운, 뭔지는 몰라도 어떠한 특정 시간에 다가간다는 느낌이 있지 않나. 그게 영화 속에서 ‘태건호’의 생사를 얘기하는 걸 수도 있고, 과거를 찾는 걸 수도 있다. ‘차하연’한테는 돈에 대한 집착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아들과 딸에 대한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갈 수 있는 좋은 제목인 거다. (웃음)
응, 난 그런 것들이 아주 좋았다. 감독님의 디테일함이 배어있는 지점들이다. 그런데 또 그걸 싫어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 그저 인물들이 생각 없이 쫓고 쫓기다가 사랑에 빠져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중간 중간 드라마가 계속 밝혀지고, 인물들은 막 물에 빠지고 병실에 누워있고 그러니까 말이다. ‘태건호’가 간암 선고 받은 것도 ‘의사의 오진’, 이래 버리면 좋았을 텐데.(웃음) 분명, 하하 웃으면서 끝나는 영화를 기대하고 (시사회에) 오신 분들도 있을 거다. 사기꾼에 채권추심원, 조폭…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하니까 그저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소동극 같아 보이기도 하잖나. 뭐, 그런 부분이 실제로 있기도 하고.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부정이 강조된다. ‘차하연’의 모정이 ‘태건호’의 부정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 영화가 부정을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거였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아무래도 이야기의 시작점이 그거니까, 다양한 요소를 선보이며 영화가 진행된 것 같다. 사실 초기 시나리오에선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더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가게 되면 현재의 드라마가 과거에 치어서 다치게 되더라. 그래서 많은 부분을 빼버리고 지금의 결과물이 나오게 된 거다. 액션과 드라마가 공존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생뚱맞지 않게 잘 엮어 나가느냐가 영화의 관건이었다. 이런 형식의 이야기가 대중을 이해시키면 새로운 영화가 나오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들로 출연한 ‘유민’이가 실제로도 아프다고 들었다. 감독이 현장에서 “정재영이 분위기를 잘 유도해서 아이의 즉각적인 반응-연기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은 아이와 호흡을 맞추며 연기했던 때를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았다. 특히 “‘태건호’와 정재영이 충돌하는 시간”이었다고 말 한 게 기억난다.
감독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도 그렇고. 나랑 ‘유민’이가 사이좋은 아빠와 아들 설정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니까 아이 반응을 끌어오는 데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빠’ 배우라는 사람이 막 던지고 때리고 하니까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근데 또 연기니까 그냥 가야하고…. 그런 부분들이 난감했다. 게다가 그 씬들은 리허설도 없었다. 테이크를 한 번에 가야지 여러 번 반복하면 아이한테도 내성이 생긴다. 그러면 연기가 안 나오게 되고 서로 힘들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아이의 반응을 유도해 내며 촬영을 하다보니까 연기가 살아있게 나오더라. 하지만 결과물이 잘 나와도 마음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촬영장 한 편엔 늘 아이의 실제 어머니가 계셨는데, 너무 죄송했다. 아역 연기자면 뭐 연기자니까 하고 넘어 갈 텐데, ‘유민’이는 그게 아니니까 말이다.
‘유민’이는 ‘태건호’의 아들이고, ‘차하연’의 ‘딸’로 ‘Miss A’의 민(이민영)이 출연한다. 걸그룹 ‘Miss A’는 원래 알고 있었나?
음…. 만나서 알게 됐다. 처음엔 이름이 ‘미쓰에이’인 줄 알았다. 하하하하. 연기 쪽에선 신인 아닌가. 그리고 내가 가요 프로그램을 잘 안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엔 과거만큼 가요 프로그램이 많이 없지 않나? 아, ‘M-net’을 봐야 하는데, 내가 그 채널을 잘 안 본다. 워낙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웃음)
그럼, 집에선 항상 TV를 켜놓고 산다. 가요 프로 말고도 다른 볼 것들이 많다. 자주 보게 되는 채널은 내셔널지오그래픽. 거기 <동물농장> 이런 프로그램들 하지 않나. 내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아니면, 아예 한 번 가볍게 보고 끝낼 수 있는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도 좋아하고. 아! 최근엔 (정)진영이 형이 진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자>를 본다. 재밌더라. 보면서 형한테 문자도 보내고, 피드백도 잘 한다. 하하하. 그리고 요샌 IPTV 덕분에 지난 프로그램들도 찾아서 볼 수 있지 않나. 편리한 세상이다.
드라마를 영화화 하거나 혹은 영화를 드라마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카운트다운>을 드라마로 다시 만든다면, 그래서 또 ‘태건호’ 역에 출연제의를 받는다면, 할 텐가?
음, ‘태건호’…. <카운트다운>, 이걸 드라마로 길게 간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거 재밌겠는데! 좀 더 가볍게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출연은, 허종호 감독님이 한다면 할 것 같다.
하하. 감독님을 끼고 가는 건가?
그렇지. (웃음) 솔직히 이 작품을 다시 다른 사람이 만들면 잘 만들겠나? 한 번 잡은 분이 해야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TV에선 잘 안 보인다. 드라마는 아예 생각이 없는 건가?
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이 있느냐, 이렇게 묻는 정도지 뭐 정식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다. 정식으로 섭외가 들어오면? 늘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영화처럼 시나리오, 짜임새, 함께 작업할 스태프 등등 이것저것 고려해봐야겠지. 그런데 내가 워낙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데 익숙해져서, 시놉시스랑 캐릭터 설명만 간단히 되어 있는 드라마 대본은 좀 낯설다. 그리고 그런 간단한 요소들만으로는 아직은 판단이 힘든 것 같다. 또 우리나라 드라마 작업 시스템이 썩 좋은 건 아니지 않나. 다들 너무 힘들게 작업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드라마 작업하면 술을 못 마실 것 같다.(웃음)
아까 <카운트다운>의 ‘아이러니’ 이야기를 했다. 배우 정재영 스스로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있다면, 뭘까?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20대부터 연기를 했는데, 그 전의 20년은 단 한 번도 연기자를 꿈꿔보지 않았었다. 꿈에서조차 말이다. 영화 관람도 그렇다. 학교에서 시험 끝나면 가는 단체관람 말곤, 어릴 때 따로 영화를 본 적도 없었다. 아, 초등학교 때 성룡 영화를 좀 보긴 했다. 그때 집 근처에 작은 극장이 있었는데, 극장에서 표 파는 누나가 우리 엄마랑 친했거든. (웃음) 그래서 성룡 영화 할 때만 가서 “누나, 저 왔어요” 하고, 표 얻으면 들어가서 보고 그랬다.
지금은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본다면서. 제일 최근에 본 영화는 뭔가?
요즘엔 외화를 많이 본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었다. 좋더라고. 그리고 TV에서 해주는 영화는 공짜니까 OCN, CNTV, XTM… 할 것 없이 막 돌리면서 본다. TV로 영화를 볼 땐, 아주 자극적인 장르를 좋아한다. 호러, 이런 것들! 집에서 혼자 영화 볼 때는 호러물을 즐긴다.
호러물을 보는 건 좋은데, 내가 직접 촬영하는 건 싫다. 막 피 칠하고, 누구를 따라다니면서 놀래 키고, 이런 것들을 직접 하는 건 별로다.(웃음) 호러영화는 재밌는 건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 그거 뭐더라…. 주인공들이 체코에 가서 이야기가 시작하는 영화, 시리즈로 2편까지 나온 영화 있는데…. 아! <호스텔>. <호스텔>은 정말이지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1편엔 남자들이 나오고, 2편엔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그걸 보고 생각했다. 어우, 동유럽에 놀러 가면 절대 안 되겠다!(웃음)
영화 얘기 할 때 눈이 빛난다. 그게 본인의 출연작이든 아니든. 그렇게 영화에 열정적인 정재영이, 배우를 안했으면 뭘 했을까?
음… 원래 어릴 때 꿈은 PD, 기자 이런 거였다. 왜냐하면 어릴 땐 TV에 나오는 기자들, 그중에서도 해외특파원이 눈에 딱 들어오더라. 어린 마음에 기자나 PD는 해외에 나가 놀면서 일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마냥 자유롭고 멋지게만 보였던 거지.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런 건 못했을 것 같다. 기자나 PD분들, 은근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직업인 것 같아. 막상 했으면 성격에 안 맞았을 거다.(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자영업 하지 않았을까…. 일단 내가 뭘 하려면 규칙적이지 않아야 한다.(웃음)
그간 출연작을 보면 다양한 캐릭터, 또 그만큼 다양한 장르를 거쳐 왔다. 휴먼, 액션, 코미디, 사극, 스릴러… 스스로 어떤 장르가 가장 잘 맞는 것 같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역시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들이다. 물론 보는 것도 그렇고. 어릴 땐 시원한 액션물을 좋아했는데, 이젠 감동이 있는 게 좋다. 여러 가지 감동이 있겠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끌린다. 아니면 아예 ‘슈퍼히어로’ 이야기, 이런 게 좋은데 잘 안 들어오더라. 내 캐릭터가 그 쪽은 아닌가?(웃음)
그런데 출연작 중에 유독 로맨스물이 없다. 멜로를 꺼리는 건가? 이나영과 러브라인이 형성되나 기대했던 <아는여자>도 코미디로 그치고… 팬 입장에선 아쉽기도 할 거다.
음,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흔한 멜로 말고, 반전이 끼어드는 것! 그렇게 유머가 가미된 멜로, 아니면 아주 건조한 멜로 말이다. 그러니까 “사랑해”를 “사랑해”로 풀어가는 게 아닌, 다른 언어로 돌아가는 것들 말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굉장히 성실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데뷔 이후, 한 해도 안 쉬고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따져보니까 한 해에 두 편을 개봉시키는 게 보통이더라. 마치 근태에 충실한 회사원 같은 배우랄까.
음…. 1년에 2편까진 아니고, 2년에 3편 정도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한 해 이상 쉬면 잊혀 진다. (웃음) 나 같은 경우는 다른 활동을 전혀 안하기 때문에, 조금만 쉬면 ‘아, 쟤 이제 안하나보다’ 이렇게 인식될 수도 있고.
오! 누군가? 예전 인터뷰에서 만난 적 없나? 같이 오지 그랬어?
아, 그게… 실은 나도 정재영 ‘빠’여서…. (웃음)
으하하하하. 그래서 인터뷰 잡았구나? (웃음)
<카운트다운>이 11월에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섹션에 초청받았다.
응, 기대된다. 그런데 도쿄엔 감독님만 갈 것 같다. 나는 차기작 준비 중이라….
차기작이 <내가 살인범이다>지? 간단하게 영화 소개 좀 해 달라.
액션이 많이 가미된 드라마다.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주로 했던, 정병길 감독님이 만드는 본격 상업영화로 보면 될 것 같다. 난 거기서 처음으로 형사 역을 맡았다. 아직 초기 단계라 어떤 인물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좀 더 시나리오를 보고 만들어가야겠지.
<카운트다운>의 채권추심원과 <내가 살인범이다>의 형사. 이렇듯 전작과 차기작의 갭이 클 경우, 이를 어떻게 메우나?
끊임없이 현재 캐릭터와 상황을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전작의 느낌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현재 찍는 영화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 사실은 어제 차기작 리허설을 좀 했는데, 갑자기 ‘태건호’가 쑥 튀어나오더라고. 요 며칠 <카운트다운> 시사 및 인터뷰를 하면서 <카운트다운> 얘기를 하다보니까, 차기작에서 전작 캐릭터가 불쑥 튀어나온 것 같다. 순간, 스스로 당황해 ‘아, 아직 못 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카운트다운>의 개봉 카운트가 코앞이다. 국내 개봉에 임박해서 하고픈 말이 있나?
아, 정말 영화 개봉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네. 하고 싶은 얘긴 딱 이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해만 안 보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하하하.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