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내가 겪고 있는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 러브스토리를 썼는데, 십대들의 이야기를 쓰는 건 조금 지루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년의 로맨스에 접근했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당신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스물 둘의 나이에 노년의 사랑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접근했나?
내 자신을 투영시켰을 뿐이다. 사랑은 보편적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영적으로 교감하는 하나의 느낌이며 감정이다. 사랑에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사랑의 경험에 비춰 솔직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갔다. 또, 주연을 맡은 마틴 랜도와 엘렌 버스틴, 두 명배우의 도움도 컸다. 우리는 서로의 철학과 나이듦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내게 노년의 삶에 대해, 그것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줬다.
말한 대로 마틴 랜도와 엘렌 버스틴는 할리우드에서 전설적인 명배우로 통한다. 그들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 졌나?
마틴 랜도는 큰 역할만을 고집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게 어렵진 않았는데, 내 나이는 속이고 건넸다. 내가 할리우드가 아닌, 시골출신이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예상을 못했는지, 처음 만난 날 마틴이 내가 스물 두살이라는 것에 굉장히 놀라더라. 하지만 나에겐 확신이 있었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나 자신을 어필할 수 있을 거란 확신 말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떤 부분에 두 배우의 마음이 움직였을까?
마틴과 엘렌은 열린 마음의 에너지 넘치는 사람과 일하는 걸 즐겼던 것 같다. 내 젊은 에너지가 그들로 하여금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함께 일하기에 괜찮은 사람이다.(웃음)
첫 데뷔작을 영화계 대선배님들과 함께 한 건 특별한 경험이었을 텐데, 두 분과의 작업은 어땠나?
묘했다. 전설적인 배우들과 일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 아닌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꿈꿨는데, 그것이 이루어져서 촬영하는 하루하루가 내겐 선물이었다. 작업하면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소중한 친구와 동료를 얻었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자, 내게 영감을 주는 분들이다. 그들에게 나도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당신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영화 작업 후에 사랑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나?
사랑과 인생은 항상 변화한다. 같은 상태로 오래 머물다보면 결국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아티스트에게 무기력함은 독이다. 사랑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경험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일부일처제와 사랑에 대한 견해는 많이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즐겁다. 그리고 변화 후에 다가 올, 사랑과 삶에 대한 또 다른 발견이 더욱 기대된다. 지금 이런 변화들을 나중에 영화로 만들 거다.
로버트와 메리(엘렌 버스틴)가 눈 속에서 춤추는 장면이 가장 좋다. 나는 촬영할 이미지를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려 놓는 편인데, 그 씬은 내가 상상한 게 거의 완벽하게 나와서 마음에 든다.
로버트와 메리가 키스를 할 때나 고백할 때 주변이 반짝이면서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낸다. 또, 로버트의 심리에 따라 화면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하는데, 평소 빛과 어둠에 관심이 많나?
시각효과로 분위기를 그려낸다거나, 색채로 관객들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기법에 관심이 많다. ‘빛과 색채’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내면의 감정까지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감독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멜로드라마는 아니다. 미스터리한 느낌이 중간 중간 있고, 종국에는 반전도 선사한다. 사랑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크리스마스 로맨틱 영화로 포장된 ‘실험적/감성적인’ 예술 영화다. 내 목표는 가능한 많은 관객층(특히 상업영화를 좋아하고 미스터리의 낯선 영화에 흥미가 없는)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예상치 못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게는 예술이며, 새로운 감정이 주는 뜻밖의 기적이다.
영화를 보다 보니, <노트북> <어웨이 프롬 허>도 살짝 떠올랐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뭔지 궁금하다.
먼저 <노트북>과 <어웨이 프롬 허>는 보지 못했다. 비슷한 영화는 일부러 보지 않는 편이다. 우연이라도 내가 그들과 비슷한 걸 만들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뭔가 완전하게 다른, 그 자체로서의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추상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의 다른 한 사람과 깊게 교감하는 그 느낌은, 에너지와 에너지의 연결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영혼의 재결합이다. 에너지들은 우주의 창조 속에 오랜 시간 연결되어 있는데, 사랑에 빠지면 그들의 역사는 함께 흘러간다. 사랑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기적과 같은 것이다.
<러블리, 스틸>은 “나이가 들면, 사랑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나?
사랑은 모두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이 영화가 느끼게 해 줬으면 좋겠다. 감정의 교감과 가족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각자의 방식으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 줬으면 좋겠다. 죽음의 운명은 피할 수 없지만, 사랑이 없는 공허한 삶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당신은 영화 외에도 음악, 미술, 뮤직비디오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이런 끼들은 어디에서 왔나?
눈을 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상상하다. 만약 당신이 뭔가를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고객이라면 나는 창작자이다. 나는 창작하기 위해 여기 있으며, 새로운 창작자 세대의 일부분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형태의 예술을 배워왔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나로 하여금 음악 제작, 편집, 작곡을 배우게 했다. 부모님이 예술가인 것도, 내가 뭔가를 창작하는데 일조했다. 나는 창작(음악, 영화, 그림)을 통해 내면을 느끼며 살아있는 느낌을 즐긴다.
별명은 없다. 내 친구들은 보통 나를 razzy(또라이?)라고 부른다. 내 행동이 과장되고 어린아이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미국에서 내 이름은 대체로 Nick이라고 쓰이지만, 나는 Nik으로 쓴다. 12살 때, 이름 철자를 바꿨다. 학교에 Nick이라는 이름을 쓰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다르고 싶었거든. 특별하게 보이고 싶었달까. 그때부터 내 이름은 쭉 Nik이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는 누군가.
친구들. 친구들 대부분이 예술가인데, 그들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현재 4편의 시나리오가 있다.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10대 청소년이야기, SF 신화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서 제작될 수도 있는)애니메이션이다. 그 외에 3개의 밴드에서 활동 중인데, 조만간 제작사의 지원으로 미국 투어를 할 계획이다. 내 좌우명은 쉬지 않고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이다. 내 내면은 항상 예술적 표현을 위해 준비되어 있으며, 나의 인생은 창작을 통해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내 작품이 지구 저편에 소개된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어렸을 때 다른 나라에 가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교감할 수 있다니, 신난다. 우리는 각자 다른 문화, 다른 견해,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예술과 영화로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깨닫는 게, 결국 인간의 감수성은 같다는 거다. 미국에서 제작된 괴짜 로맨틱 영화가 지구 반대편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한 나라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다. 정말 멋진 일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로버트 나이가 됐을 때, <러블리, 스틸>을 꺼내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나? 혹은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나.
내가 어떻게 느낄지, 어떻게 느끼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느낄 것에 대해 미리 정해 놓고 싶지 않다.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사진제공_(주)에스와이코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