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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공포는 각자의 이기심과 욕망에서 시작된다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 김도형 기자 이메일


시사회 끝나고, 개봉 전까지 손을 더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기술시사 다음 날 기자 시사였고, 그 이후로도 스케줄이 계속 많아서 손을 댈 수 없었다. 근데 굳이 어디가 잘못돼서 손을 본다기보다 영화를 하면서 계속 그런 마음이 들 것 같다. 만족이란 없으니까. 성격 자체가 자꾸 뒤돌아보는 성격이라.(웃음) 아마 시간이 있었다면 계속 건드렸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이랄까.

사실 감독 대부분이 만족이 없잖나. 근데 그렇게 하면 완성도 못 할 것 같다.(웃음)
내 경우는 오히려 후반작업이 길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다. 편집할 때도 편집하고 집에 가서 자다가도 문득 ‘아, 거기 잘라야 하는데’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설경구 선배가 나왔다. 추격 신을 찍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내가 여기 앞에 잘랐어야 했는데 하면서 되뇌고 있더라.(웃음)

본인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계속 혹사시키는 스타일인가보다.
혹사까지는 몰라도 그런 면이 좀 있다. 사실 굉장히 게으른 편이다. 여행 같은 것도 싫어하고 틀어박혀 있는 스타일인데, 영화 작업이 적성에 맞나 보더라. 지금까지 했던 어떤 일보다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만 생각하게 되더라. 옛날에 그런 거 있잖나. 내가 학력고사 세댄데 그 때는 9과목으로 시험을 봤다.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영어, 국어 이런 건 너무 하기 싫고 하면 수학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그랬다. 재미있었으니까. 지금 영화 작업이란 게 그런 느낌이다. 지금까지 해봤던 일 중에서는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계속 좋아했었나?
영화 마니아는 아니었다. 남들에 비해 유독 영화를 많이 보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냥 남들 보는 만큼 본 것 같다. 아마 건축학과 안 갔으면 영화감독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건축학과 분위기가 문화적인 지향성이 있다. 사진도 연계돼 있고. 농담으로 법대생들보단 영화 많이 봤다고 하고 다닌다.(웃음)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연출을 할 지, 촬영을 할 지 고민도 했었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
한겨레 문화 센터에서 단편을 찍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영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절에 한 번 찍어봐야겠다 싶었다. 당시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생활이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 월급은 적고 일주일 중 5일 야근에 이틀은 철야다. 출근 첫날부터 한 달간 일요일도 없이 계속 일만 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 보니까 내 생활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철야를 하고 아침에 퇴근하다가 그랑프리 극장에서 조조로 <초록 물고기>를 봤다. 깜짝 놀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영화를 방화라고 부르면서 한국영화여서 안 본다는 분위기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봤던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고, 단편을 찍게 됐다. 단편을 찍고 나닌 영화를 안 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

영화 마니아도 아닌 공대 출신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좀 유별난 능력인 것 같다.
사실 글 쓸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콤플렉스였고, 걱정의 가장 큰 근간이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되게 철저하게 쓴다. 진짜 괴롭게. 항상 즐겁지만, 너무 괴로워서 가장 하기 싫은 작업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도 7년 정도 쓰니까 늘긴 하더라. 첫 작품 보면 미쳤구나 싶겠지만.(웃음)

<불신지옥>의 이야기는 정말 좋다. 철저한 시나리오 덕분인가? 꾸준히 시나리오를 써 온 전문 작가의 솜씨가 느껴진다.
고맙다.(웃음) 근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제 뭔가 규정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스스로 전문 작가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쓰고 돈을 받는 것에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7년 동안 써봤더니 쓰는 즐거움은 좀 알겠더라. 또 다른 시나리오를 평가할 정도는 되겠구나 싶다. 사실 2005년, 2006년에 한 번씩 데뷔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와서 합리화하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때 데뷔 안 했던 것이 잘했구나 싶다. 그때보다 지금이 시나리오에서 더 여유가 생겼고, 첫 작품 엎어지고 나서 하루 종일 시나리오만 생각하고 작업만 계속 하니까 늘긴 느는구나 싶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감독이나 작가로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 가다. 그게 큰 고민이고, 그걸 어떻게 재미나게 전달할 것인가도 생각을 해야 한다. 걱정인 것은 나이가 있다 보니까 올드해질까봐.(웃음) 근데 봉준호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 이준익 감독님, 그런 분들을 믿고 있다.(웃음) 솔직히 걸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건 열심히 하다보면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감독이 겨우 됐으니, 감독으로서의 유일한 희망은 다작이다. 길게 다작하고 싶다.
길게 다작을 하기 위해서는 안타 정도는 계속 때려줘야 다음 기회가 오잖나?
다들 그 얘기를 하더라. 사실 나도 불안하다.(웃음) 솔직히 <불신지옥>이 안타가 될지 뭐가 될지 아직은 잘 모르니까.

근데 흥행 여부를 떠나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투자자나 제작자가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개봉을 하고 스코어를 보면서 배운 게 많다. 다작을 하고 싶은 이유는 그만큼 배우고 싶어서다. 끝이 없으니까 할 때마다 전 작품보다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의 흥행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있지 않다.(웃음) 근데 그게 성이 안찬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흥행에 성공한다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영화는 시나리오의 승부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로 배우 마음도 움직이고 투자사나 제작사도 움직인다. 근데 지금 박스오피스 보면 상업적인 밸런스에 대한 반성도 든다. 또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다. 조금 더 상업적인 것을 써볼까 하지만 내 것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또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왜냐하면 <불신지옥> 썼을 때 스스로는 굉장히 상업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웃음)

대중의 심리를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건 영화 자체의 질적인 부분과도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불신지옥>은 좋은 평은 받고 있잖은가.
사실 이런 좋은 평가가 기껍다. 이런 평가를 예상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극심하게 욕은 먹지말자 하는 정도였다. 근데 생각보다 좋게 봐준 것 같다. 약간의 가산점도 있는 것 같다. 만약 공포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냥 욕 안 먹는 수준에서 끝났을 지도 모르는데, 공포영화다보니 상대적인 가산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영화가 공포영화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을 해도 데뷔하는 기분으로 원점에서 생각할 거다. 다만 상업적인 밸런스는 좀 더 신경쓰면서.(웃음)

오랜 시간동안 감독 준비를 했다.
실제로 하루 종일 시나리오 쓰다가 머리 식힐 겸 다른 영화를 보는 것까지도 일로 친다면, 거의 안 쉬고 일했다. 2003년 데뷔하려고 시나리오 아이템 트리트먼트 만든 이후부터 지금까지 쉬어 본 적이 없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고민했고, 걱정했고, 거의 아무 것도 안하고 한 달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만 쓴 적도 있다. 그동안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됐던 것 같다. 몰입도가 높은 분야였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했다. 이제 <불신지옥> 털어버리고 다른 이야기로 그럴 수 있기 바라고 있다.

시나리오 작업 속도는 빠른 편인가?
그렇지 않다. <건축학개론>이라고 처녀작으로 준비하던 작품은 2시간짜리 이야기를 거의 5년간 썼다. 한 고가 나오는데 10개월이 걸린 적도 있다. 감정을 다루는 게 너무 힘들다. 공포영화는 무섭게 하는 거니까 상황을 제시하는 거지만, 멜로드라마는 힘든 부분이 있다. <불신지옥> 시작할 때는 이런 장르도 처음이고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겠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빨리 나왔다. 2고, 3고도 쭉쭉 잘 나오니 신기하더라. 여기에는 여러 가지 주변 요인도 있었다. 그 전 회사는 약간 자유방임주의였는데, 이 회사는 빨리 하자며 종용하는 동기부여도 있었다. 쓰다가 느는 것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근데 진짜 는거 맞나? 그래야 하는데.(웃음) 근데 7년간 데뷔 준비하면서 딱 하나 교훈으로 얻은 것은 시나리오는 빨리 써야 한다는 거다. 영화 찍을 시간이 없으니까.

<불신지옥>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굉장히 일상적이면서도 낯설다.
현재까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일상성이다. 공포도 일상적인 공포가 더 무섭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형식적인 면을 감당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데서는 재미를 못 느낀다. 스타일리시한 영화는 보는 것이 좋지, 만드는 것은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지 않다. 살아있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즐겁다. 공포영화도 그렇게 접근했다. 머릿속에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불신지옥>이 가장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흥미도 높았다. 공포장르가 데뷔하기 쉬운 장르라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 전에는 오랫동안 쓴 시나리오가 캐스팅이 안 돼서 무산됐다. 그래서 캐스팅 트라우마가 굉장히 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인감독이 A급 주연배우와 함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솔직히 이렇게 시나리오가 괜찮은데 배우가 없어 영화를 못 찍는다는 생각도 했었다.(웃음) 그래서 캐스팅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4~5년 동안 계속 시나리오 썼는데 캐스팅 도장 하나로 영화 제작 여부가 결정된다는 게 굉장히 억울했다. 시스템은 알겠지만 너무 소모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적인 측면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면으로는 강박이 있었다.
‘믿는다’는 행위 자체, 현대인들은 작은 거라도 뭔가를 믿어야 산다. 광신이 공포를 불러오는 아이디어는 정말 좋은 생각이다.
사람들끼리도 믿음이 다르면 말이 안 통한다. 소통이 불가능해지면 공포가 된다.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지극히 옳은 일이고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군인이 사람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가정과 같은 거다. 어찌보면 종교도 지금 성전을 치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는 무찔러야 할 적일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가끔 사회면에 나오는 종교적인 참극 기사들에 ‘과도한 믿음이 부른 비극’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러니하다. 과도한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역설적인 의미다. 믿음은 과도한 게 정상이다. 그래서 믿음인거다. 그럼 적당한 믿음도 있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믿음으로 살고 있다. 그 적당한 믿음이라는 것이 기복적인 성격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원할 때만 간절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종교가 상당히 개인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좀 공격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런거다. 직접 본건데, 일요일날 대형 교회 주차장에서 예배 마치고 나온 어른들이 주차 문제로 쌍욕 해가면서 싸우는 장면. 아이러니하지 않나? 그런 것이 영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도 엄마는 광신도의 모습이지만, 종교의 본질보다는 기복적인 측면이 강한 사람이다. 물론 나중에는 너무 순수한 믿음으로 승화된, 역주행적 믿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종교가 있나?
어렸을 때 성당을 다니긴 했는데, 지금은 딱히 없다.

적당한 믿음이었나 보다.
그렇다.(웃음) 캐스팅 전날 배우들 연락기다리다가 잠 안 오면 새벽 미사 다녀오고 그런다.(웃음) 물론 좀 쑥스럽지.

종교나 믿음에 대한 관심이 평소에도 있었나?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중학교 때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교회 열심히 다니는 한 친구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어서 “너는 교회 다니는 애가 그러냐?”고 얘길 했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속으로는 찔리나보다 싶으면서도 이건 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 2때 이미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수는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지.(웃음) 결국 기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넘버3>에 나오는 죄가 무슨 죄냐 죄지은 놈이 죄지라는 대사처럼, 종교가 무슨 죄가 있겠나? 결국 사람들의 이기심과 기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인물 설정에서 성경의 에피소드를 하나 인용한 게 있다. 모세가 십계를 받기 위해 산을 올라가고, 모세를 따라온 군중들이 일주일인가 열흘인가를 산에서 기다리는 건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왔더니 그새를 못 참고 송아지 동상 만들어서 제사를 지낸다는 얘기. 사람들은 믿을 것이 부재하면 다른 무엇으로 채워야 하고, 계속 기복을 해야 하는 습성이 있다. 각자에게 기복의 의미가 없으면 쉽게 용도폐기 한다. 나 돈 벌게 해주면 되고, 내 병 고쳐주면 되고 하는 식이다. 대상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다 옳은 게 되는 거다.

각자의 이기적인 욕망이 믿음의 대상을 만들었고, 결국 소진이 그 대상이 됐다.
제작보고회 때 말했지만, 교회 다니는 친구들 보면, 물론 적당한 믿음이겠지만, 답답한 일 있으면 점보더라. 목사님은 그런 얘기 안 해주니까. 물어보기도 쑥스럽고. 시집 언제 가요? 오래 살아요? 명예운은 있어요? 이런 걸 어떻게 물어보나. 다 마찬가지다. 어려운 일 있으면 의존하고 싶어 한다. 미래는 불확실하니까.

이야기를 완성시킨 데에는 배우들 연기도 큰 몫을 했다.
나도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들 연기를 잘 했는지.(웃음) 캐스팅의 기준은 연기력, 그것뿐이었다.

계속 눈여겨 봐둔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가?
검증 안 된 배우는 이창직 선배(경비원 역)밖에 없었다. 이창직 선배는 그때 처음 봤다. 하지만 프로필을 보니 너무 훌륭해서 걱정은 안 했다. 그 외 문희경 선배, 영남씨(장영남) 같은 경우는 염두를 하고 있었고, 승룡씨(류승룡)야 연기를 워낙 잘 하고, 상미씨(남상미) 같은 경우는 연기만 잘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주연 배우로서의 지명도나 뭐 그런 부분들. 다각도로 보면서 그 또래 연기자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잠재력 있는 배우를 선택한 거다. 상미씨 만났을 때도 <불신지옥>을 통해 잠재력을 터뜨려 주겠다고 했다. 근데 잘 됐나 모르겠네.(웃음) 아무리 시장성이 있는 배우라도 연기력이 담보가 안 되거나 소질이 없어 보이면 캐스팅하지 않는다. 은경이(심은경)는 오디션으로 봤는데, 단연 발군이었다. 목사나 복덕방 아저씨, 잘린 신이지만 편의점 손님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개인적으로는 남상미와 장영남이 창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최고더라.
사실은 재촬영한 장면이다. 영화하면서 고집이 상당히 셌었는데, 이 작품 하면서 좀 너그러워졌다. 그 장면 재촬영은 투자사와 제작사의 요구였다. 처음에는 모자를 깊이 쓰고 다 졸라매서 눈만 보였다. 좀 엉뚱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그랬는데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별명이 미쉐린이었으니까.(웃음) 그래서 재촬영했다. 당시에는 월권이다 연출권 간섭이다 하면서 농담섞인 반항도 했었다. 그래서 재촬영은 하지만 편집에서는 내가 좋은 것을 고르겠다고 했었다. 근데 편집하면서 보니까 재촬영한 게 더 좋더라.(웃음) 안 그래도 불친절한 영환데 엉뚱한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중에 아침 대표인 이정세 대표가 그 얘기 하면 나를 굉장히 비웃고 그런다.(웃음)
전체적으로는 좋았는데, 영화 후반부가 아쉽다는 말이 많다. 구구절절 설명까진 아니더라도 마무리가 명확하지는 않다.
나도 아쉽다. 엄마가 마지막 옥상에서 하는 대사가 길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른 부분은 후회 없다. 편집에서 잘라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근본적으로는 시나리오 자체가 길게 써진 게 문제였다. 마지막을 친절하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중언부언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소진이를 진짜 귀신 들린 아이로 봐야 할까?
그게 제일 큰 테마였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리뷰를 보면 재미있는 게, 각자의 해석이 다르다. 엄마가 마지막에 “거봐 소진이 일어났잖아”할 때 희진이 돌면서 본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테마다. 당연하게 소진이 다시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당연하게 엄마가 과도한 믿음으로 헛것을 봤다고 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감독인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거다. 공포영화 가지고 너무 심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런 것이 재미라고 생각했다.

소진한테 있던 귀신이 희진을 지나 형사의 딸로 옮겨갔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시나리오 쓰면서 좀 독특한 작업을 했다. 결과론적으로 좋은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한 가지 이야기를 한 가지 생각에 맞게 전개 시키다가 그 중에서 한 요소를 빼서 다른 데로 옮겨 그 이야기 자체를 허술하게 만드는 형식이다. 그리고 빼낸 요소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조직했다. 한 쪽으로 생각이 쏠리다가도 그 요소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게끔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해서 열린 결말이 나오도록 했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생각의 비중이 달라지길 원했다. 이야기 설계 자체는 그런데 이런 형식을 즐기는지는 모르겠다. 소진이가 무서워 보이기도 하지만 몸이 아픈 아이라는 식으로 복합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수경과 경자도 마찬가지. 수경이 진술할 때의 수경과 경자가 진술할 때의 수경이 다르도록 했다.

그런 점은 재미있더라.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어 더 흥미로웠다.
그것도 그렇고,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문제도 그런 식으로 해놨다. 정민은 명백한 자살이지만, 귀갑은 애매하다. 비록 CCTV에 찍히긴 했어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호하다. 수경과 경자도 마찬가지로 풀어갔다. 믿고 싶은 것만 믿게끔.

공간도 인상적이다. 복도식 아파트라는 구조를 통해 색다른 공포를 만들어냈다. 특히 창을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공포다.
굉장히 중추적인 이미지였다. 동시에 이걸 너무 많이 쓰게 될까봐 스스로 자제를 하기도 했다.(웃음) 지금도 많이 나오잖나? 여기서 2번 더 썼으면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집단 주거에서 오는 공포가 있다. 계단식 아파트는 사생활 보장이 잘 된다. 근데 사생활 보장이라는 것이 결국 차단을 의미한다. 복도식은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안도이기도 하지만 공포스러운 면도 있다. 좌우로 사는 집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과 또 복도에서는 추락의 이미지도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적인 요소를 희진의 아슬아슬하고 날 선 이미지와 연결시켰다. 공간의 아찔함과 폭력성도 함께. 복도의 난간은 바로 떨어질 것 같이 낮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공간이다. 마치 권총 한 자루 옆에 두고 사는 그런 느낌이랄까.

한국적인 느낌이 강한 익숙한 일상의 이미지가 좋았다. 여기에 회색톤의 영상이나 사운드 효과로 그 효과를 높였다.
앰비언스(공간 배경음) 쪽에 신경을 많이 썼다. 믹싱 기사님한테 속삭이듯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보통 영화에서 들리는 앰비언스는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조용하면 집합주거라는 느낌이 안 드니까. 아무도 안 보이지만 벽 뒤에 다른 집이 있다. 실제로 혼자 살면 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밤이 되면 특히 더 잘 들린다. 안 들리던 것이 들려서 그렇다. 있지만 안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을 계속 드러내는 작업을 컨셉으로 했다.

소진 캐릭터에 대한 영화 외적인 설정이나 배경은 무엇인가?
실제로 찍었다가 편집한 신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평화롭던 시절의 가족의 모습. 엄마가 꽃가게를 하고 꽃집에 희진과 소진이 교복을 입고 있는 회상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소진이 교통사고가 난 직후의 병원 장면이다. 희진이 병실에서 엄마를 위로하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래”라고 하면, 엄마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보기에도 멀쩡한데 왜 병원에서는 그런 소리를 하냐”고 답한다. 또 희진이 아빠를 찾는 소진한테 “아빠는 이제 돌아가셨다”고 하면, 소진은 “아니야 어제도 아빠 와서 나 보고 갔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엄마에게는 광신의 조짐이, 소진에겐 신기의 시작이 보이는 장면이다. 복합적인 설명이었는데 굳이 설명 안 해도 되겠다 싶어서 뺐다. 근데 지금 불친절하다는 말들을 하니까 약간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 신의 목적은 엄마의 합리화다. 성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상황 자체를 견디기 힘드니까.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비주얼도 독특하고 특징적이더라.
무서운 이미지가 형식적으로 흐르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나마 형식적인 것은 경자가 자루를 벗는 장면 정도다. 근데 어차피 그건 판타지니까. 대신 캐릭터마다 이미지를 차용하게 된 모티프가 있다. 귀갑의 경우, 초중고등학교 때 공포의 상징인 군인이나 정권 그 자체다. 쉽게 말해 꼰대들. 그때는 고등학생들이 담배피면 어른들이 바로 따귀 때리고 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도 애들 단체로 ‘빠따’를 마음껏 때리던 시절이었고.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뜨악’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옛날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수경 같은 경우는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오는데, 일단 엉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옛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차용했다. 그때 오리털 파카가 처음 나왔을 땐데, 9시 뉴스에서 구속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용의자가 2명이었는데 오리털 파카를 입은 4명을 더 만들어 기자들을 현혹시키고 그랬다. 얼굴 안보이게 하고 모자 푹 뒤집어써서. 뭔가 기분 나쁘고, 무섭기도 하고, 기괴하고, 찜찜한 이미지였다. 경자 같은 경우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자루를 생각했다. 옛날 사형수들이 자루를 뒤집어쓰고 형을 당하는 모습에서. 시야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공포지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즉각적인 이미지가 어떤 게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최소한 우리는 <링>의 사다코처럼 머리 산발하고 뭐 이런 식은 피하는 게 목표였다.

중간에 자루를 쓰고 나오는 비디오 화면의 이미지는 희진의 초자연스러운 상황들과 연결되는 이미지다.
희진의 접신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보통 우리는 접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해 본 사람이 없으니. 그 신 자체가 어찌보면 유일한 반칙 신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척 한거니까.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접신이란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묘사하긴 힘들다.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구성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장면을 따로 넣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희진이 놀이터에서 새를 보는 장면은 신기가 있다는 은유적인 표현인가?
수위에 대한 고민을 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다면 곤란하지만, 예민한 사람한테는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수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꿈이라는 뉘앙스를 준 장면이다. 또 예민한 사람들이 눈치를 챈 설정 중에 희진이 계속 하는 기침도 있다. 이건 신병이라고 설정했다. 그런 식의 장치들을 계속 만들었다. 흘러 넘어갔던 어떤 단서가 창대하게 드러나면서 사건이 되는 것, 그것이 미스터리 장르고 이야기의 쾌감이라고 생각한다.

새가 치아를 쪼아서 가져간다.
아까 얘기했던 시나리오의 구축 과정에 관한 것이다. 한 가지 흐름을 만들어놓고 그 중에서 하나를 빼서 엉뚱한 걸 넣는 방식 중 하나였다. 대충 뭔지는 느낄 수 있지만, 혼란스럽고 명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거다. 사실 새가 치아를 쪼아가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꿈이니까. 꿈에서 치아가 빠지는 건 굉장한 흉몽이다. 해몽을 보면 주변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대표적인 꿈이다. 그 정도의 근거만 설정해뒀다.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 신에서 새가 위협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근데 쪼는 것밖에 없잖은가. 날개를 펼쳐 따귀를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웃음)

형사 태완이 “그게 말이 돼?”라는 대사를 자주 한다. 관객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셈인데.
대변인이고, 그래서 태환이 무릎을 꿇는 것이 최종의 목표였다. 시나리오 쓸 때 트리트먼트 대신 신 리스트 작업을 먼저 한다. 100개 정도 신을 만들어 엑셀에 쭉 써놓고 중요한 맥락을 설정한다. 인물 등장, 설정, 사건의 시작 등을 하면서 한 3,4개 적었을 때부터 태환의 굴복이 있었다. 중요한 지향점이다. 근데 시사회때 사람들이 웃더라. 좌절했다.(웃음)

무엇인가를 신격화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섭고 위험한 일이다. 반면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신격화란 초자연적인 것도 있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믿고 따르고 추종도 있다. 김정일이 그런 모습이다. 북한 보고 있으면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공포스럽다. 예전에 무슨 게임한다고 북한 여자들이 응원하고 그런 걸 TV에서 봤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그려진 현수막이 땅에 떨어졌다고 북한 여자들이 울면서 그걸 들어 올리더라. 깜짝 놀랐다. 한 개인의 신격화로서는 정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이성이 마비된 상태다. 지금의 상식 안에서는 너무 공포스러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사교들이 창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백백교라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이었다. 기록을 보니 백백교의 그 교주가 영험했던 모양이더라. 당시 지식인들, 교수나 공직자들 같은 사람들이 맹신하면서 모든 재산을 다 헌납했다. 그 사람의 모토가 ‘나를 믿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는다’였다. 실제 증언을 보면 믿지 않은 사람들이 기괴하게 죽은 일도 많았다. 더 놀란 일은, 그때 백백교 교주가 나중에 죽었는데 그 머리가 국과수에 있어서 그걸 돌려달라는 주문이 계속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추종세력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기억에 남는 공포스러운 사건으로는 시체가 전부 지붕에서 나왔던 오대양사건도 있다. 신념이 강하지 않으면 그런 짓 못한다. 듣기만 해도 무섭다.
<불신지옥>이라는 제목만 보면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도 강하게 든다.
<불신지옥>과 <비명>을 두고 고민했다. <불신지옥>은 선입견이 강하고, <비명>은 맥락이 없어 제 3의 제목을 찾다가 결국 <불신지옥>이 됐다. 그런 선입견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근데 좀 억울하다. ‘불신지옥’이라는 말 자체는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데, 유독 기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면서 마치 그쪽의 전문용어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사용권의 박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예수천국’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잖나. 근데 그렇게까지 많은 선입견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주변에서 이왕 할꺼면 더 세게 하지 그랬냐는 얘기도 있었다. 기독교를 단죄하지 그랬냐는 얘기도 들었다. 근데 애초에 이왕 뭘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제목 때문에 받은 오해다.

흥행여부를 떠나 곧 차기작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우선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웃음) 사실 감독이라는 직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니까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허술하게 시나리오 쓰면 당연히 안 되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해도 안 될 것 같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걸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민이다. 사실 나도 빨리 들어가고 싶다.

생각해둔 것은 있나? 방향이나 성격이라도.
아직은 없다. 이제부터 슬슬 아이템을 고민해야 한다. 공포영화만 생각하며 1년 반 정도를 살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너무 머릿속에, 마음속에 극악한 생각만 가득했다. 이제 반대로 밝고 훈훈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웃음) 특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소명이고, 즐거움이고, 이게 영화화 되려면 그런 밑바탕들이 필요하다.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더욱 BP가 신경 쓰인다. 영화를 계속 찍고 싶으니까.(웃음)

역시 균형의 문제로군.
그런 것 같다.(웃음)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10 )
kisemo
잘봤습니다~   
2010-03-24 16:00
again0224
잘 읽었습니다   
2010-03-23 01:04
youha73
잘 읽었습니다


  
2010-02-27 20:46
pretto
좋은작품 기대할게요~   
2010-01-27 10:04
ninetwob
잘보고갑니다   
2010-01-21 18:10
justjpk
잘 읽었어요.`   
2009-08-24 12:59
hrqueen1
함 읽어보니 영화는 어떨까? 궁금해지네요.....   
2009-08-24 08:59
mvgirl
젊은 감독이었군요..   
2009-08-23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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