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 촬영하는 걸 보니 포즈가 꽤 능숙하더군요.
자꾸 하다 보니까. (웃음)
의류 모델로 처음 데뷔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한번 하고 쭉 쉬었어요. 본격적인 방송 일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와서 시작했고요. 물론 처음 연예 분야의 일을 시작한 건 그 때가 맞긴 하죠.
우연히 친오빠와 동행했다가 관계자 눈에 띄어서 뽑혔다던데.
얼떨결에 찍게 됐죠. 그런데 학교에서 그런 걸 못하게 해서 대학에 들어간 뒤 다시 활동해야 했어요. 제가 예고를 나왔는데 저희 학교는 절대 연예 활동 불가였거든요. 그래서 몰래 몇 번 찍곤 했죠. 방학 때나 주말에.
예고라면 오히려 더 관대할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군요.
저희 학교는 절대 금지였어요. 학교 내에서 그런 차이를 두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는 건 이미 그 전부터 연기자로서의 삶을 동경했다는 것이겠죠.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막연했죠. 사실 예고 같은데 가보고 싶어하는 여자애들이 있잖아요. 저도 사실 교복이 예뻐서…….(웃음) 어쨌든 그렇게 고등학교에서 연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꿈도 굳히게 됐어요. 공부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학교에서 한 학기마다 우리끼리 연극을 한 편씩 준비했는데 그런 과정 덕분에 연기를 배우는 게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솔직히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왜냐면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이렇게 진짜 활동하게 되는 친구들은 많지 않거든요. 결국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기회를 만나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셈이네요.
결국 그 당시 막연하게 생각했던 걸 일단 현재로선 이룬 셈입니다.
선배들보면 전공자가 졸업을 해도 정작 이름이 알려지는 분은 몇 명이 안됐거든요. 한 학년에 50명이 지원해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과연 나에게 기회가 올까 싶기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와서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땐 그냥 연기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어린 마음에 뭔가 하나만 해도 크게 느껴졌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한두 달 사이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고, 예전엔 오디션을 보러 가야 했지만 이젠 날 찾아주는 상황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그래서 저 휴학 많이 했습니다. (웃음) 졸업을 되게 늦게 했거든요. 진짜 힘들게 졸업했어요. 계절학기까진 아니지만 인터넷 수업을 꽉 채워서 듣기도 했죠.
그런데 연예인은 편하게 졸업한다는 오해도 있잖아요. 심지어 그런 이유도 공격받는 경우도 있고.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웃음) 생각보다 깐깐하고요. 레포트도 잘 내야 되고, 출석 체크도 꼬박꼬박 몇 번 이상은 해야 되고.
오히려 더 엄격하게 규정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없진 않았어요. (교수님이) 너한테 점수를 더 주고 싶어도 남들에게 형평성이 어긋나 보일 수 있다는 말씀을 종종 해주셨어요.
첫 방송 데뷔는 연기자로서가 아니었죠.
<천생연분>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죠. 그러니까 방송 첫 데뷔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한 셈이죠.
그리고 연기자로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건 시트콤 덕분이었고요.
<논스톱4>하기 직전에 <그녀를 믿지 마세요>나 <요조숙녀>라는 드라마도 하긴 했죠. 그 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장에 갔고, 여러 선배들에게 기가 눌렸던 기억도 나요. 하지만 <논스톱4>는 또래들과 노는 것처럼 연기한 거 같아요. 처음을 생각하면 정말 긴장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나긴 하네요.
또래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편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극중간부터 투입된 상황이었는데 이미 그 친구들끼린 워낙 친해져 있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처음엔 낯설었죠. 그래도 또래인 덕분에 많이 친해졌어요.
제가 그때 사무실 문제도 있었고, 학교를 마치는 문제가 있어서 조금 일을 쉬다가 다시 나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공백? 그런 게 있었죠.
두 번째 영화이자 3년만의 영화 현장인 셈인데 낯설진 않았나요?
오디션과 미팅을 거쳐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 출연하게 됐지만 사실 그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죠. 카메라 위치도 파악하지 못해서 많이 헤맸어요. 이제 막 데뷔해서 한참 시작할 때라 촬영장 자체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요조숙녀>까지 병행하게 됐었죠. 영화 현장이나 방송국 드라마 현장이나 다 나름대로 어렵고 헷갈렸어요. 하지만 <바르게 살자>는 여유를 지니고 했던 거 같아요. 모든 배우들과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고 덕분에 제 모든 걸 열어서 작품에 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현장에 대한 적응력과 연기적 영향력과의 상관 관계를 깨닫게 된 셈이군요.
제가 영화를 두 편밖에 못해본 상황이었지만 그런 거 같아요. 크랭크인 전부터 장진 감독님이나 라희찬 감독님,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대학로에 모여서 연극처럼 연습했거든요. 연습이라고 해서 맨날 대본만 읽는 게 아니라 사담도 나누고, 그래서 나중에 편하게 찍을 수 있었나 봐요. 주로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까 연습도 그냥 편하게 앉아서 했죠. 여기가 은행이라고 해, 그냥 여기엔 네가 앉아있어, 이런 식으로. 재미있었어요. 삼척에서 한 3개월 정도 촬영했는데 촬영이 없을 때는 다 같이 찜질방도 가고, 가족처럼 지냈죠.
<바르게 살자>에서 시골의 평범한 은행원을 연기했죠. 솔직히 외모가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아닌데 역할에 잘 어울리는 인상이더군요.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어요. 감독님은 정말 시골인 삼포 시내에 있는 은행 직원 같은 외모를 원하셨던 거에요. 그런데 저보고 다른 배우들보다 연예인처럼 생겼다면서 어떡하냐고, 고민을 많이 하시는 거에요. 난 별로 그런 소리 못 듣는데, 그러니까, 아니라고, 이 중에서는 영은 씨가 제일 연예인 같다고, 어떡하면 좋냐고. (웃음) 사실 감독님이 되게 수줍음이 많으셔서 말도 잘 못하시는 분이거든요.
라희찬 감독님 말이죠? 결국 해결책은 찾았던 건가요?
“영은 씨 어떡해요.” 그러셔서 제가, “머리 자를까요?” 그러니까, 잘랐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주저 없이 단발로 잘랐어요. 제작자로 참여한 장진 감독님이 어떤 영화에서라도 자신이 특출하게 돋보이는 배우보단 어떻게 하면 서로가 같이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영화로서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좀 더 촌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머리를 잘랐죠. 노 메이크업이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그 즈음에 머리를 잘라보고도 싶었어요. (웃음)
조금 빡빡하죠. 일일드라마는 일정이 길기도 하고요. <미우나 고우나>는 8개월 정도 찍었어요. 처음에는 야외 촬영과 세트 촬영이 유동적으로 변해서 힘들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야외 며칠, 세트 며칠, 이렇게 날짜가 명확히 정해져서 오히려 미니시리즈보다도 편해지더라고요. 미니시리즈는 너무 왔다 갔다 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차라리 스케줄이 규칙적이니까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겠군요. 미니시리즈는 변수도 많고 현장 상황도 돌발적인 경우가 많긴 하죠.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는 대본도 늦게 나오고 계속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일일드라마가 편했던 거 같아요. 고정적인 스케줄이 8개월 동안 있었던 거잖아요. 회사를 다니듯이.
출퇴근 하는 기분이었군요. (웃음)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도 그런 지점에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사전 준비과정에 할애되는 시간도 다르고요.
영화는 긴 시간 동안 작품을 준비하니까 하나씩 깊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드라마 같은 경우는 시간에 쫓기고, 장소에 쫓기고, 이래저래 쫓기다 보니까 뭔가를 그냥 일차적으로 빨리 생각해서 바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 같고요. 그런데 솔직히 <구세주2>는 리딩을 많이 하긴 했지만 현장에서 워낙 많이 변했기 때문에. (웃음) 영화 같지만 좀 자유분방한? (웃음)
혹시 전편 <구세주>는 보셨나요?
예. 그럼요.
전작은 최성국 씨와 신이 씨의 개인기 향연이었죠. (웃음) 그리고 속편의 이미지를 안고 가는 만큼 배우를 비교하게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수순일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씨를 대신해 본인이 투입되는 것처럼 느껴도 이상한 일이 아닌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 의아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들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어떻게 하다 그걸 하게 됐냐? (웃음) 사실 최성국 선배님 캐릭터만 전편과 같고 나머지는 다 다르죠. 한 캐릭터만 그대로 쫓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거라 <구세주2>는 전편처럼 코미디만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다면 안될 거 같아요. 멜로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신이 선배님이 전편에서 코믹한 개인기를 많이 하셨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분명 코믹에 주안점을 둔 것도 사실입니다. 그만큼 뭔가 부담되는 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웃겨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꼈을 수도 있고.
그런 부담 정말 많았어요. 코미디 영화니까 나도 여기서 뭔가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대표님이나 감독님, 최성국 선배님에게 그런 고민을 얘기하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말씀 드리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편하게 하면서 군데군데 조금씩 네가 생각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맞춰나가면 된다고 말해주셔서 그때부터 편하게 했죠.
사실 최성국 씨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저희 (매니저) 오빠도 얼굴만 봐도 웃긴데 넌 어떻게 연기를 했냐고 하던데요. (웃음) 저도 정말 맨날 그렇게 웃기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사실 되게 진지하세요. 의외의 모습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그래서 선배님이 하는 말씀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을 못했던 적도 있어요. 너무 진지하게 다 말씀하셔서,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그랬죠. (웃음)
그 외에도 의외라고 생각되는 지점은 없었나요?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선배님께서 거의 다 내셨거든요. 그리고 대본에 주어진 것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야, 이 부분 재미없지 않냐? 우리 다시 한번 대사 맞춰보자.” 이러면서 수정해 나가고. 사실 뭔가 건성으로 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노력도 많이 하시고 의외였어요.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랬죠. “의외신데요?” (웃음)
최성국 씨의 애드립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당황스러운 적은 없었나요?
의외지만, 애드립 전엔 저한테 다 말씀해주셨어요. “내가 여기서 이렇게 가려고 하는데, 내가 이렇게 애드립 치면 넌 어떻게 반응할 거 같아?” 그러시면, 전 “이렇게 할 거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하자.” 이런 식이었죠.
최성국 씨와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낯가림이 심하다고 했는데 누가 먼저 상대에게 접근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리딩했어요. (웃음) 아무래도 제가 낯가림이 있는데다가 경력 15년 차의 대선배님이니까 제가 접근하긴 어려웠죠. 그런데 감독님까지 포함해서 셋이서 리딩을 정말 많이 했어요. 사실 리딩이라기 보단 둘러앉아서 작품얘긴 조금하고 사적인 얘기 많이 하고, (웃음) 그러면서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나중에 말씀하셨어요. “이영은, 친해지기 힘들었다.” 그랬더니 최성국 선배님도, “야, 나보다 힘들었냐? 난 죽는 줄 알았어.” (웃음) 이러시는 거에요. 그때야 알았죠. “아, 전부 다 힘들었구나.”
현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코미디 영화라서 조금 다르게 느껴진 부분은 없나요?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웃음) 솔직히 말씀 드리면 10월 중순에 촬영이 들어가서 12월 말에 끝났어요. 거의 드라마 찍듯이 되게 빨리 찍었죠. 하루에 몇 컷이 아니라 몇 씬을.
개봉일이 급하게 잡힌 감이 있습니다.
지금 많이들 급하십니다. (웃음) 촬영 끝나고 편집도 하고 좀 늦어질 줄 알았는데 배급이 바로 잡히는 바람에 급해졌죠. 사실 저희는 개봉일을 일찍 잡으려 했지만 배급이 좀 늦어질 거 같아서 천천히 준비했나 봐요. 그런데 배급이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홍보도 급해졌죠. 저도 이번 주에만 예능 프로그램만 몇 개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예능은 사실 오랜만 아니었나요?
데뷔 때 이후론 오랜만이죠.
요즘 예능은 좀 무시무시하죠. 상대를 희화화시키려는 독설이 대단하니까요.
사실 연기를 하다 보면 대본에 주어진 몫을 따라가기 때문에 상대방이 대사 치면 내 대사 치고,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는 것에 익숙해지죠. 그런데 이들은 서로 막 얘기를 하니까요. 그러니까 특히 연기자 입장에서는 언제 말을 해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생기죠. 저분이 얘길하는데 내가 끼어들면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지, 그런 걱정이 있어서 조금 어려웠던 거 같아요. 애드립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는데 정말 현장에서 재미있게 찍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될 거 같아요. 사실 아무도 기대는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카피도 그렇잖아요. 안다, 아무도 기대 안 한다는 거.
그것도 최성국 씨 아이디어인가요?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내시는 거 같아요.
어쩌면 배우가 단순히 연기자로서뿐만 아니라 기획자로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덕분에 저도 자연스럽게 뭔가 참여해보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사실 예전 같았다면 OST를 위해서 노래해라 그랬을 때, “저 진짜 노래 못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발뺌했을 텐데 이번엔 그냥 연습해서 노래 부르고 있고. (웃음)
분명 본인에게 새로운 자극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상업영화로서 첫 주연작인만큼 의미가 크죠. 아까 여기로 오는 길에 영화관 앞에 포스터가 걸려있는 거에요. 막상 보니까 신기했어요. <구세주2>는 상업영화로서 첫 주연작이기도 한만큼 의미도 크죠. 한편으로 촬영장에서 많이 배웠던 거 같아요. 대표님이 편집실에 놀러 오라고 해서 처음으로 영화 편집실에 가보기도 했어요. 제가 영화를 몇 편 안 했지만 어쨌든 편집실을 왔다 갔다 해본 적은 처음이었죠. 대표님과 선배님이 거기서 제 장단점에 대해 이야길 해주더라고요. “넌 웃을 때 저렇게 웃어. 그런데 이렇게 웃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여배우로서 이런 점이 장점이지만 이런 점은 단점이기 때문에 네가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많은 걸 새롭게 배워온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제게 그냥 이끌려간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로 상의를 많이 해주셨나 봐요. 덕분에 저도 모르게 영화에 대한 애착이 생길 수도 있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공동작업으로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겠네요.
물론 제가 편집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면서 연기를 한 건 아니지만 편집실에 가서 편집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뭔가를 배우는 기분이 들었죠.
처음엔 원래 멜로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러다가 두 번째로 받았을 때, 코미디가 조금 첨가돼서 내용이 변했었죠. 오히려 예전 멜로 시나리오보다 재미있게 느껴져서 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 때까지도 원래 <구세주2>라는 제목이 아니긴 했죠.
원래 시나리오는 멜로였다는 말이죠?
원래 시나리오는 멜로였고 코믹한 느낌이 아니었죠. 지금의 최성국 씨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멋진 남성이 등장하기도 했고요. 캐릭터도 많이 변했죠.
본인 캐릭터도 많이 변했나요?
처음보단 좀 더 순수하고, 맑고, 엉뚱하고, 들이대는? (웃음) 원래는 좀 청순 가련한 느낌이었어요. 오래 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랬던 거 같네요.
사실 본래 본인의 이미지가 다소 밝은 편으로 인식된 바가 없는 건 아니죠. 아무래도 웃는 표정이 먼저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고요. 원래 성격도 마찬가지일까요?
밝고 명랑한 편이죠. 그런데 낯을 많이 가려요. 사람과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의외로 조용할 땐 되게 조용하기도 하고요.
연기를 하면서 성격이 변한 건 없나요?
오히려 데뷔하기 전에 낯도 안 가리고 명랑쾌활 그 자체였던 거 같아요. 오히려 일하다 보니 낯도 많이 가리게 되고, 좀 폐쇄적으로 변했죠. 그러다가 <바르게 살자>로 다시 많이 열린 거 같아요.
왜 그렇게 변하게 됐을까요? 어떤 특별한 경험이라도 겪은 건가요?
그렇다기 보단 촬영장에서 선배님들과 얘기하는 걸 불편해했나 봐요. 옛날에는 일은 일, 친구면 친구, 그런 걸 분명히 구분했는데 요즘은 일하면서도 이렇게 어울릴 수 있구나, 라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사회 경험이 없던 시기라 민감했던 건 아닐까 같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계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같이 부딪히며 일하다 보니까 그런 구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현장에서 그냥 연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친구들과는 술도 마시고, 놀러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자주 만나요. 얼마 전엔 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 나가서 <즐거운 인생>이란 작품을 보고 왔어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러 다니는 거 보면 그 분야에 대한 관심도 있나 보죠.
사실 <미우나 고우나>하는 가운데 연극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장진 감독님이 ‘연극열전2’에 참여하는데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대본도 봤거든요. 캐릭터가 저랑 잘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해보고 싶었지만 일일드라마를 하다 보니까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었죠. 기회가 되면 연극도 해보고 싶어요. 노래를 좀 더 잘 할 수 있다면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최근 <미우나 고우나>에서 연기한 황지영은 우울한 캐릭터였죠. 사실 기존의 본인 이미지를 배반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연기하는 당사자의 느낌이 궁금하군요.
우는 씬을 하거나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하면 이상하게도 저까지 정말 많이 침체돼요. 밝은 연기를 할 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죠. 저도 제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많이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미우나 고우나>에서 우울해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많이 다운돼 있었던 거 같아요.
연기적인 감정 몰입이 실생활에 주는 영향력이 있었다는 말이군요.
음, 제가 그렇게 큰 연기자가 아니라서 대답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약간 캐릭터의 내면을 따라 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밝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감정적 격차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남자에게 버림받으면서도 울고 매달리는 역할이라서 그 친구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그 친구가 돼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예전에 천방지축 캐릭터를 연기하면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서도 그렇게 행동했던 반면 <미우나 고우나>에서는 사랑과 이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만약 내가 남자랑 진짜 이러면 어떨까. 그랬더니 기분 나쁘고 좀 그렇던데요. (웃음)
아무래도 작품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부분 이외에 배우 혼자만 짐작하고 추측해 가야 되는 측면도 있었을 텐데요.
그때 이제 처음으로 어두운 연기를 하게 되면서 책을 정말 많이 봤던 거 같아요. 멜로적인 내용이라던가 뻔한 느낌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글을 많이 읽었죠. 사랑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나마 대신 느껴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 친구들 중엔 벌써 결혼 고민하는 친구가 많죠. 그런데 아직 저는 그런 생각까진 못해봤어요. 사실 둔하기도 해서 이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진 못하는 편이에요. 막연하게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누군가에게 소개받고 그럴 수 있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사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게 배우에겐 중요한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여배우에겐 더욱 그럴지도 모르죠. 조금 단순한 대입일지 모르지만 사랑에 대한 경험이 배우에게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멜로의 깊이가 결정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아무래도 저는 그런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죠. 대신 이제 책을 통해 감정을 많이 느껴보려고 하지만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멋진 남성을 만나 연애해보고 싶어요.
데뷔 초엔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어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이미지가 한정적으로 소모된다는 걱정이 있었나요?
데뷔 때 워낙 발랄한 말괄량이 느낌의 연기를 많이 했으니까 대중들은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감독님들도 그런 한정적인 역할을 시키려고 하셨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는 언제나 한번 저런 비련의 여주인공 한번 해볼까, 언제 한번 저렇게 섹시하고 도발적인 거 해보나, 그런 고민이 많았죠. 저도 성숙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떤 선배한테, 나는 지금 같은 순수하고 맑은 역할보단 성숙한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내 이미지를 너무 한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다고 그랬더니 저를 한심한 듯이 바라보면서 말씀하셨어요. 네가 배우를 1,2년 할 게 아니라 계속할 거라면 그런 고민하지 말라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어리광스럽고 말괄량이 같은 연기를 3년 후에 할 수 있겠냐고, 못한다고, 나이 먹어가면서 네 걸 하나씩 만들어가면 되는 거지, 그걸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그게 맞더라고요.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 있는 거니까요.
사실 아직 어떤 역할이 제 자신한테 맞는 역할인지 저도 잘 모르죠.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 갑자기 변해버리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하면서 찾아보고 싶어요. 제 옷이 뭔지.
하지만 선점했던 캐릭터 이미지가 선입견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캐스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겠죠. 자신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한정될수록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커지기 마련일 테고요.
예전에 엉뚱하고 발랄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정말 청순하고 서글픈 역할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결국 그걸 하게 되니까 하나씩 욕심이 더 생기는 거에요. 이젠 악녀역할도 해보고 싶고 또 여장부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고, 도발적인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물론 어울릴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거죠. 하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감독님은 모험하지 않으려 하고, 한정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니까 쉽진 않을 거에요. 하지만 제가 조금씩 변화를 얻을 수 있다면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젠 과거의 발랄했던 느낌으로만 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예전만큼 그렇게 많은 것 같진 않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자신의 대표작이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아직 저한테 맞는 게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정말 제 옷이라고 할만한 걸 입게 되면 그게 아마 대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죠. 아직 저에게 뚜렷한 무언가가 없지만 한편으로 그게 오히려 장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 가능성을 조정할 수 있잖아요. 사실 제가 연기생활을 오래 해온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다양한 역할을 많이 못해본 만큼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죠.
지금 제가 하는 생각들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좀 많이 고지식했었나 봐요. 좀 더 열려있었더라면, 어린 나이에 그걸 좀 더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서 크게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내 자신이 만약 그랬다면 연기생활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들죠. 사람들과 많이 친해질 수도 있었을 거고, 그랬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고지식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너무나 정석적인 행동이라 할까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예전엔 밤 10시만 되도 늦은 시간이라 집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려서 그런지 그런 건 나쁘다고 생각했나 봐요. 오랫동안 친했던 사람들이 아니면 마음을 잘 열지도 못했고요.
엄격한 자신의 틀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 기준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았던 거 같고요.
그 틀에 많이 갇혀 있었던 거 같아요.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죠. 그걸 20대 초반에 알았으면 사회 생활하는데 있어서도 지금과 달라진 부분이 있었겠죠. 그렇다고 지금 어려운 건 아니지만 좀 더 유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전엔 응석받이 느낌이 강했던 거 같아요. 융통성이 없었죠. 촬영이 끝나도 다른 배우들과 같이 얘기도 나눌 수 있는데 그냥 칼같이 집에 와서 그 다음 날 분량을 준비하고, 지금은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그리 됐지만 예전엔 그게 아니었거든요. 아무래도 신인으로서 느끼는 긴장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스스로 그런 바를 깨닫기 보단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언니들과 얘기하다 보니 많이 느꼈어요. 제가 아주 어린 나이에 데뷔한 건 아니지만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어느 정도 나름대로 얼굴이 알려진 상태에서 생활하게 됐잖아요. 그런데 그로 인해 경험치가 많이 부족해진 것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남들보다 경험하기 힘든 제약이 있다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죠. 그래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많이 해보려고 하고 있지만요.
처음 버라이어티 연예 프로그램으로 데뷔해서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고, <행복 주식회사>까지 진행도 맡았어요. 경험의 너비는 어느 정도 마련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깊이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요?
그게 지금 제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도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배우들은 예능프로를 안 하고 배우로서의 길을 걷는 분도 있고, 한편으론 병행하는 분도 있고, 이렇게 각자 자기 생각에 따르는 거니까요. 아직 저는 그런 것들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에게 맞는 것만 있다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재미있겠죠.
다른 장르에 비해 코믹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는 종종 그 작품의 성격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측면에서 의식되는 바는 없었나요?
저는 아직 고정적이거나 한정적인 이미지가 뚜렷하게 없어서 여러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미디라고 해서 그런 이미지에 한정될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오히려 새로운 분야고 그만큼 새로운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예전에는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는 게 많이 두려웠어요. 지금은 많이 변한 거 같아요.
두려움보단 욕심이 많아진 건가요?
제가 아직 뭔가를 확실히 이루지 못했지만 아직도 기회는 좀 더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만큼 좀 더 욕심이 생기는 거죠. 예전에는 단지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게 꿈이었다면 이젠 좀 더 큰 욕심이 자꾸자꾸 생기는 거 같아요.
2009년 3월 2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9년 3월 2일 월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