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잘 봤다.
중반까지 좀 지루하지 않나?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열혈남아>는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은근히 강렬한 영화여서
그냥 책보고 선택했지.
<공공의 적2> 때 무비스트와의 인터뷰를 보니 감독과 제작자를 보고 선택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물론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와의 인연도 있었겠지만 이정범 감독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완전 신인이던데.
<역도산> 끝나고 <공공의 적2> 급하게 들어가면서 살을 무리하게 빼서 그 당시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오래 쉬었다. 그러던 차에 승재형(차승재 대표) 책을 한 번 보라고 그냥 던져 주더라. 그래서 보는데 너무 잘 써진 거야 이게. 굉장히
시나리오를 먼저 읽어봤는데 소설같이 읽히더라.
맞아. 송해성 감독님 같은 시나리오를 좋아하는데 느낌이 굉장히 비슷하더라. 소설 같이 읽혀 내려가는 게. 그래서 바로 감독 좀 보자고 했지. 그러니깐 감독을 시나리오 읽고 나중에 본 거지. 그 담날 윤상호 이사하고 감독하고 봤어. 밥 먹으면서. 검증이 안 된 감독이긴 한데 이 정도의 책을 쓸 정도면 영화도 잘 찍지 않겠냐는 믿음이 있었다.
재미 여부를 떠나서 워낙에 밑바닥까지 드러나는 감정의 영화여서 그런지 영화보기가 그리 수월하진 않았다.
큰 일 났다. 망했다.
나는 사실 그렇지 않은데. 나에겐 사실 모자란 부분만 보여 갖고. 초반 중반 윤제문씨(대식 역) 등장하기 전까지 그 부분에 대해 기술시사회 끝나고 나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 감독도 조금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부산영화제까지 크게 고치는 건 아니지만 끝까지 매달려 보겠다고 신인의 자세로.
역시 이번 영화에서도 당신의 표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라. 어쩔 때는 그 장면의 상황보다 당신의 표정만이 기억에 선명히 남을 때도 있다. 지금까지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다 합쳐서 말하는 거다.
내가 생각할 때는 되게 어리버리 역할인데 그런데 작품의 감독님이 OK를 했으니까 그게 선택이 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NG를 내고 다시 했을 텐데 감독하고 맞았으니까 내가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을까. 시나리오에서 원하지 않는데 내가 일부러 더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 당신만큼 억울한 표정 잘 짓는 배우는 없기 때문이다. <실미도>가 천만이 넘은 이유 중에 포스터에 나온 당신의 그 한 맺힌 표정이 단단히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하하)
(허허) 억울한 표정... 아! <실미도> 포스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그때 포스터 찍은 사진작가의 이름이 뭐더라. 뭐였지~ 기억이 안 나네? 여하튼 내가 워낙 사진 찍기 싫어라 하잖아. 그래서 싸우다가 그렇게 나온 거야. 다섯이서 이렇게 찍었는데 나만 남으라는 거야. 맞다 오형근 사진작가가 설경구씨는 남으라는 거야. 그래서 집에 간다고 그랬더니 한 시간만 남아서 자기랑 싸우재. 싫다고 하면서 내가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어. 사진 찍기 싫어서. 그래서 ‘에이 씨~’ 이러다가 그 표정이 나온 거야. 몰입돼서 나온 게 아니라 사진 찍는 게 서러워서 나온 거야.
<열혈남아>에선 타인을 향해 당신의 감정이 쏟아지더라. 자기 기분 꼴리는 대로 심술부리고 거침없이 욕도 하면서 말이다.
뭐 전에는 안 그랬나? 나쁜 놈 한 적은 없다.
대부분 나문희(김점심 역) 선생님과의 관계를 대안 모자(母子) 사이로 미리 판단하고 영화를 볼 텐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것만 가지고서는 두 인물 사이의 감정을 설명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재밌더라.
응. 이게 되게 묘한 영화인 게 무슨 잔혹극 멜로도 아니고 또 무슨 남자영화도 아니다. 솔직히 기술시사 보면서 울진 않았는데, 책 보고선 울었거든. 그냥 묘한 거야.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진짜 서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처음 만났거나. 한선(치국 역)이 같은 경우도 재문(설경구 분)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신출내기인데다 조직에 발을 제대로 못 담가서 그게 믿음직해서 벌교까지 재문이가 데리고 간 거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첨 본 사람들이고. 이렇게 다 관계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일주일 동안 깊은 관계를 맺고 나를 이렇게 뭉클하게 만드는 게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의리를 지키려는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개체가 다 틀린 어떤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하나로 되가는 게.......... 조폭영화도 아니고 더더욱 멜로영화도 아닌데 말이야.
특히, 점심과 재문이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은 연애장면처럼 보이더라. 그 전에 <사랑을 놓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멜로영화를 찍은 당신이지만 어떤 커플보다 연애느낌이 잘 살았다고 본다.(하하)
살갑지가 않죠. 말도 툭툭 던지고. 그게 쌓여져서 그렇게 쌓여진다는 게 묘한 거지. 엄마라는 게 말이야. 재문이는 일찍 죽은 엄마에 대한 정을 못 잊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선이 엄마, 복수를 하러 간 놈의 엄마(나문희), 중심에는 엄마라는 게 있다. 나문희 선생님 역이 그냥 내가 복수하러 가는 민대식의 엄마이기보다 세상의 엄마 같은 느낌이지. 감독이 그러더라고. 이 영화를 보고 엄마한테 전화 한번하면 좋겠다고 다들.
확실히 마지막 장면에선 다들 그런 생각을 하겠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자기 자식 구하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게 설경구한테도 해당되는 안타까운 마음이지.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경우 제목만 봐서는 무슨 조폭영화나 액션영화를 상상하겠더라.
아니다. 이 영화 보면 열혈남아가 없다. 이런 무대뽀 열혈남아가 어디 있어. 난 갱영화, 액션영화였으면 이 영화 안 했을 거다.
<역도산>도 그렇지만 <열혈남아>처럼 몸도 많이 쓰고 심리적인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는 영화를 하면 보는 나는 배우가 꼭 탈진할 것 같아 걱정된다.
그렇지. 그래도 막 드러내고 그러는 것은 없었으니까 거의. 역도산과 비교해서는 편한 편이었다. 일단 몸 쓸 일이 덜 했으니까.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술렁술렁. 이렇게 흔들면서 했으니까.
감독님 아이디어다. 조한선이 담배를 안 피다가 필 때, 자기도 모르게 끊어서 피게 되고.
영화 끝나고 사람들 극장 앞에서 다들 담배 폈다. 마지막 장면에선 꽤 많은 사람들이 울기까지 해서 그런지.
많이 울 일이 아닌데. 정말 사람들이 울던가? 죽을 놈이 죽은 거고 죽을 라고 해서 원망스러운 거고. 조한선은 죄책감이 드는 거고. 이 영화의 마지막만 봐도 다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 아니겠어.
개인적으로 나는 시장통에서 재문이 점심을 찾는 장면이 긴장감 있는 장면으로 느껴지긴 보다는 어린 아이가 엄마 잃어버려서 애타게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표정이 꼭 시장에서 엄마 잃어버린, 금방 울 것 같은 아이처럼 보이더라. 그런데 음악은 당장 살인이라도 날 것 같은 배경음악이 깔려서 안 어울리고. 그 장면에서 음악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쥐뿔 아는 것 없는 사람이 이런 말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 그게 재밌다. 그러네. 정말 괜찮네. 음악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식으로 풀어보자고 감독한테 꼭 말해야겠다. 훨씬 더 영화의 정서와 잘 맞을 수도 있어 보인다. 꼭 참고하겠다.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파격에 가까운 할머니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나문희 선생님이 <열혈남아>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색깔은 다르지만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것 같다. 나문희 선생님은 이 영화에 어떻게 캐스팅 되었나?
감독은 처음에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강력하게 나문희 선생을 캐스팅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뭐 그것 때문은 아니더라도 그분 자체의 아우라가 대단하다. <주먹이 운다> <너는 내 운명> 때부터. <주먹이 운다>에서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것뿐만 아니고 내 생각에는 점심 역할에는 나문희 선생님이 딱이었다. 처음 감독 만날 때부터 내가 막 우겼지. 처음에는 8:2이었는데 나중에는 6:4로 캐스팅 비율이 옮겨지더니만 결국 같이 작업하게 된 거지. 정말 어느 정도 그 분이 열심히 하냐면 책(시나리오)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현장에서 보고 또 보고 한다니깐.
실제 나문희 선생님은 수줍은 많은 성격이라고 들었다. 연기하면서도 실제 엄마같이 느껴졌겠다.
응. 엄마 몇 살이지?(설경구는 나문희를 현장에서도 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딱 우리 엄마 나이더라.
당신가 비교해 아직 경험이 일천한 조한선이 당신에게 가려 연기가 제대로 안 살까봐 우려했는데 그냥 우려였을 뿐이더라.
촬영하면서도 현장의 분위기라는 게 있고 그 분위기를 타는 놈이고. 몇 작품 안했지만 한선이한테 ‘네가 아마 가장 잘한 작품일 거다’라고 얘기를 했었다. 한선이 자체가 이 작품에 굉장히 열의를 보였다. 장소 헌팅도 따라다닐 정도였다. 스텝들하고 헌팅도 같이 다니면서 열심히 했다. 내가 이쪽 찍고 한선이가 저쪽을 찍는 경우 내가 모니터 보면서 한 번 더 가자 그러면 이 새끼도 자기도 한 번 더 가자고 한다. 그렇게 욕심내더라.
혹시 <연리지> 보셨나요? 그 영화 기자들 사이에선 원제목보다는 뚜껑열리지로 통했다. 그 만큼 영화의 만듦새, 배우들 연기, 스토리에서 평균이하의 점수를 받은 영화였는데 그거 때문이라도 <열혈남아>에서 조한선을 전과는 달리 보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껑열리지? (하하!!) 그거 고대로 써주세요. 촬영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얘기는 둘이 많이 했다. 에이~ 정말! 웃기다. 하하~
예전에 <열혈남아> 촬영현장공개 당시 케이블TV에서 인터뷰한 화면을 봤다. 당신이나 조한선 참 말 못하더라. 리포터는 방방 뛰는데, 그 언발란스한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편인가?
한선이가 말을 안 해. 그래서 내가 했잖아. 둘 다 말주변도 없고 말을 정말 못해. 불임성이 없는 편인데 친해지면 말을 잘 하는 편이다. 술 먹으면 말을 하는 편이지. 현장에서 그렇다고 말 없지는 않다. 나대는 편은 아니지만 현장가면 재미있게 노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한선이도 마찬가지고
그럼 지금 내가 재미없는 질문에 재미없게 인터뷰 진행해서 대답 잘 안해 주는 건가? 전에 무비스트 인터뷰 때에는 떡볶이 먹어가면서 서대원기자(현 무비스트 편집장)하고 재미있게 인터뷰 했던 것 같은데?
응. 좀 질문이 재미없네(킥킥~)
ㅜㅜ;;
정말 내가 그때 말 잘했어? 나 미친 것 아니야. 사실 <공공의 적2> 때에는 말 많이 했어. 영화를 막 씹었어. 홍보하는 애들 옆에서 땀 흘리고 난리였어. 아마 그 영화 찍기 싫었다고 내가 얘기까지 했을 걸. 일단 대사가 입에 붙지도 않고 와 닿지도 않는데, 잘난 척 하는 대사였잖아. 많이 씹었어. 자신한테 남는 말을 해야 하는데 변희봉 선생님을 상대로 일장연설하고 너무 잘난 척하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럼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어떤 캐릭터가 맞춤옷을 입는 것처럼 잘 맞는 것 같은가?
나는 잘난 척 하는 캐릭터가 맞는데, 너무 나 같아서 싫었나?(크크~) 둘 다 안 맞아. 그렇다고 깐죽대는 캐릭터(재문 역)도 그다지....
그렇다면 멜로 역할이 잘 맞는 것 아닌가?
아흐~ 닭살 닭살 시러! 그런데 <사랑을 놓치다> 같은 경우는 그나마 둘이 막 사랑하는 영화가 아니었어. 둘이 사랑한다고 손잡고 다니는 것 닭살이어서 못해.
확실히 당신이 선택한 멜로영화에서 캐릭터들은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인물들이다.
다 머뭇거리는 역할이지. 실제 내 성격도 그래. 확 못 다가가고.
쎈 역할이나 쎈 영화를 찍고 나면 대부분 힘 빼고 찍을 수 있는 소품영화를 차기작으로 많이들 선택하는 추세다. 당신도 그런 이유로 멜로 영화를 선택한 게 맞나?
맞다. 사실 <열혈남아>를 <사랑을 놓치다>보다 먼저 결정했다. 근대 차승재 대표한테 양해를 구했다. 너무 쎈 것만 계속 하다 보니까 ‘나 또 <열혈남아>에서 칼부림하면은 내가 힘들 것 같다’면서 말이다. 이 얘기는 추창민 감독한테 미안한 말이기 때문에 오해 없게 잘 말해야 하는 부분인데 조금 쉬어간다기보다는, 조금 힘을 빼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승재형한테 양해를 구했다기보다는 원래 <열혈남아>가 여름배경이었다. 내가 바로 못할 것 같으니까 기다려주면 감사하고 안 기다려주면 말고. 그런데 다행히도 기다려줘서 배경을 겨울로 바꿔줬다. <사랑을 놓치다>는 조금 힘 빼고 한 다음 <열혈남아>를 하게 된 거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전라남도 벌교다. 우리 아버지 고향이 거기여서 영화를 보는 내내 친근했다.
사실 벌교에서는 조금만 찍고 장항, 서천 이런데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그랬나.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벌교의 풍경과 영화에서 당신이 입고 나온 추리닝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추리닝은 대체 어디서 구해 입는 건가?
밋밋한 추리닝은 내 스탈 아니고 보락새, 연보라색 추리닝 영화에서 입었다. 밋밋한 추리닝 싫어.
드라마 <에이전트 제로>에도 출연한다는 소식 들었다. 설경구의 브라운관 나들이. 그런 닭살스런 멘트는 안 어울리고 줄곧 스크린만 고집하다 TV출연하게 된 이유는 뭔가?
일단 공중파 방송이지만 사전제작으로 제작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출연진도 손예진, 차인표 빵빵하고 제작사도 메이저고 그래서 나름 고액의 출연료? 가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호호).
아니야. 한재림 감독하고 얘기를 했는데 영화하고는 많이 달라서 많이 배웠데. 그러면서 나보고 해보라고 권유하더라고 한 번 해보는 게 나쁘지 않을뿐더러 장점을 발견하게 될 거라면서 말이야.
혹시 스스로가 스크린에서 자신의 얼굴 보기가 지루해진 면도 없지 않아 그게 이유가 돼, 드라마 출연까지 하게 된 면은 없는가?
지루하면 안 되지. 잠깐 몇 개월 7~8개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것뿐이다. 영화는 자꾸 쭐여서 쭐여야 되고 압축하고 압축해서 짧게 만들어야 하는데 드라마는 이야기를 풀어서 하잖아. 그런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 매번 압축해서 하는 것보다 시간을 좀 널널히 갖고 풀어보는 것도 해보고 싶었고. 또 그게 방송이고
결국 연기 잘하는 배우는 활동영역이 넓어지는 거다. 하지만 칭찬도 많은 들으면 거북하다고 매번 설경구 연기 짱!이야 이런 칭찬만 듣는 것도 당신 성격으로 봐서 싫어라 할 듯하다.
에잇! 뭔 소리야 몰라~~
피해가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본인 스스로 연기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그건 말도 안 돼. 나는 항상 신인 같이.............. 항상 긴장하고 항상 연습하고
<박하사탕>으로 설경구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지만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선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만화가로 출연한 당신을 먼저 기억하다.
사실, 연극을 하다가 영화 단역으로 두 작품 정도 했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 때도 단역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출연한 거다. 알바개념으로 출연해서 그런지 개봉이 언제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3~4일 촬영하면 300~400을 그 자리에서 현찰박치기로 주니까. 그때는 그런 것밖에 생각을 안 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역시도. 하고 나니까, 그 때 처음 영화와 관련돼서 인터뷰라는 걸 해봤어.
응. 그러면서 쭉 영화를 하게 됐다. 사람 팔자라는 게 웃기더라고. 생각 없이 했고 내 영화라고 생각된 적도 없는 데 말이야.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스텝도 모르고 낯설고 그랬어. 주연배우들도 있는데 내가 그리 중요한가. 그런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라. 웃기지? '저 사람 누구야?‘ 이런 말 그 영화 이후 많이 듣게 됐어.
기자들도 처녀들에 대해서 많이들 물어보지 않던가?
그러니까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나를 잘 모르는 스크립터 여자애가 편집실에 들어가서 편집할 때 임상수 감독님하고 막 싸웠대. 나중에 <송어>(감독 박종원) 고사 지내고 뒤풀이 할 때 임상수 감독님이 그러더라. 솔직히 자기는 내가 등장하는 씬 중 3씬을 자르려고 했다고. 생각해봐 6씬 나왔는데 3씬 자르면 뭐가 남아. 여하튼 그 스크립터 친구가 나 나오는 장면 한 장면이라도 편집하면 안 하겠다고 했대. 뭐, 자기의 감각을 믿어달라고 하면서 엄청 우겼대나 그래서 나 나오는 장면은 한 장면도 못 잘랐다고 감독이 그 때 얘기해 주더라고.
어머! 그 사람이 그럼 가장 먼저 설경구라는 배우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네요? 어떻게 그 스크립터 분하고 연락은 하고 지내나?
한 번 연락하고 책을 나한테 던져 줬는데 보니까 별로더라고. 그것 때문에 실망을 해서 그런지..... 어째어째 시간이 흘러 부산에서 결국은 만났어. 장수형(경향신문 배장수 기자)이 스타의 데뷔라는 주제로 이 일 기사로 쓴 적도 있어.
그때 그 스크립터 분이 설경구씨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배우 차승원이 연기상을 하나라도 더 받았을 텐데......
하하~~~ 아 그때 내가 더 받았어야 하는데.
<국경의 남쪽> 때 차승원씨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의외로 상복이 없다는 질문을 하니까 차승원씨가 설 모시기 배우가 18개의 연기상 중 17개 받아갈 때 그 나머지 하나를 자기가 받았다고 그러면서 그에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내가 그 시상식 끝나고 시상식 관계자한테 전화를 했어. ‘왜 나 안줘? 안 줄 거면 후보에도 올리지나 말지’ 그랬더니 그 양반이 그러는 거야. 나는 제외시키고 뽑았다고. 사실 그해에 나 그렇게 상 많이 안 받았어. <박하사탕> <오아시스> <공공의 적> 합쳐서 20개 받았나. 그 이후에 2002년도에 황금촬영상 하나 더 받았고. 사람들이 시상식에 내가 오면 취미생활하려 왔냐고 그랬어. 설경구의 취미생활은 상 받는 것.
그래도 상이라는 게 받아도 받아도 받고 싶은 것 아닌가?
안 받고 싶어. 안 받고 싶다고 하면 건방지다고 하겠다. 내가 항상 상 받으러 올라갈 때 인상을 쓰면서 단상에 올라가거든. 표정으로 봐서는 이게 좋아하는 건지 안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를 거야 아마. 되게 미안해. 다른 후배들한테 후보로 올라온 사람들한테 많이 미안하더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뭔가?
골고루 받았는데. 그게 그러잖아 상이라는 게 그 전에 받으면 연말에는 좀 잊히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상들이 돌아가는 데, 나 같은 경우는 끝까지 간 거야. 희한하게 말이야. 청룡 때는 진짜 홀가분하게 갔어. 이창동 감독은 안티조선이어서 아예 작품을 출품 안 했고 <공공의 적> 하나만 올라갔다. 영화가 전년도 11월 말에 개봉했으니까 잊혀 질 때가 된 거잖아. 그런데 내 이름을 또 부르는 거야. 아~ 그때는 죽겠더라고. 이렇게 말하면 건방진 것 같지만 진짜 죽겠더라고.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면서 다른 후보들한테 미안하고. 실은 상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해서 강우석 감독님하고 자장면 먹고 편하게 놀러 가는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석한 거거든. 거기다 <오아시스>도 안 올라온 상태니까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지.
다들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 혹은 시상식에 상 받은 설경구를 기억하겠지만 영화 <유령>에도 출연했더라고요. 실은 몰랐다. 그래서 인터뷰하기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정말 출연한 것 맞나? 못 본 것 같은데.
어디 나왔는지 나도 몰라.
지금까지 보면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뭔가를 상실한 인물들이다.
주변 인물이지. 주변인물. 그나마 <역도산>이 중심에 있는 인물인데 결국엔 가장 아웃사이더였지. <공공의 적2>에서의 강철중도 권력을 갖고 있는 주변 인물이었지. 검사는 바른 말만 해.
왜 자꾸 설경구에게는 그런 역할만 들어오고 본인은 하는 건가? 뭔가를 상실한 캐릭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좀 편하게 하면서 인기와 돈 두 마리 토끼 잡는 배우들도 주변에 널려 있는데, 당신만 힘들게 가고 있는 것 아닌가?
<박하사탕> 때문에 그런가. 박하사탕이 워낙에 쎄니까. 그런데 그런 역할이 재미있어. 더 비어있는 역할이 재밌고 다 갖고 있는 역은 재미가 없어. 왜냐면 할 게 없거든 다 갖고 있으니까.
<박하사탕> 때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열혈남아> 거의 마지막에 가서 정말 감정적으로 아주 힘들고 복잡한 연기를 했다. 그 장면을 보니까 나는 당신이 무서워 보일 정도였다. 감정의 몰입을 극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장면 찍고 나면 탈진해서 쓰러지지 않나?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모든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서 걱정된다.
안 쓰러져. 난 체력이 좋기 때문에. 체력으로 버틴다 설.경.구!(하하) 근대 무비위크에서 왔지?
무비스트에서 왔는데요. 아니 지금까지 무비위크라고 생각하면서 인터뷰 하고 있었나?
어~ 나는 무비위크인 줄 알았어. 또 실수 했네;; 작년에 어디랑 인터뷰 했는데, 잡지 이름 까먹었다. 사진 안 찍는 조건으로다가 했는데 마지막에 편집장이 와서 ‘혹시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디하고 인터뷰 하신 줄 아시죠?’라고 물어보는 거야. 근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명함을 요렇게 밑에서 꺼내서 살짝 봤어.(하하)
변신하는 배우가 어디 있어. 한 명도 없어. 그냥 하는 거지.
그래도 지금 촬영 중인 박진표 감독의 신작 <그놈 목소리>에서는 아나운서인데다 지금까지 역할과는 다른 것 같다. 거기다 <열혈남아>에서는 깐죽대는 연기를 보여주면서 전과는 다르게 감정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뭐랄까...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놈 목소리>에서는 무척 부드럽고 가식적인 역할이야. 아이가 유괴 당했는데도 감정을 눌러. 유괴범하고 통화하면서 질러대면 아이한테 무슨 일 날까봐 못 질러. 계속 전화로 잘못했다고 말하고. 한마디로 속물 얘기 하는 거지. 가진 자의 속물.
여하튼 엘리트 아나운서 역할 아닌가. 많이 배운 자, 아나운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당신이 대학시절 쓴 연극연출론이 지금도 후배들 교과서로 쓰인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인가? 공부도 잘 하는 설경구. 반대로 기자는 F로 성적표를 도배질한 적이 있다. 부럽다 정말.
아직도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후배들이 만나면 내가 쓴 연극연출론이 모범답안이라고 말 하더라. 사실 그게 내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고 실은 그 과목 교수님하고 싸움이 붙어 그렇게 된 거다. 군대 가기 전에는 평점이 1.xx였다. 수업도 안 들어가고 낮술 먹고. 하여튼 그 교수님이 점수를 짜게 주는 걸로 유명했다. 그 양반에 사전에 A는 없다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다른 과목은 몰라도 저 교수 수업만큼은 A를 받겠다 결심하고 작정하고 매달린 거지. 한마디로 싸움을 건 거야. A플러스를 받으려고 쓴 건데 A주대. 찾아가서 따졌어. 왜 이게 에이플러스가 안 되냐고. 그 교수님 말에 따르면 에이플러스가 어떻게 나올 수 있냐는 거야. 그래도 여차여차해서 점수를 정정 해줬는데 91점에서 94점으로 올려주더라고. 그럼 모해 95가 넘어가야지 A플러스인데.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받은 저 점수가 그 교수님 역사상 최고로 높은 점수였대. 결국 공부를 잘 한 건 아니라는 말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과목도 점수가 올라가더라고. 사실 장학금 받으면 돈 한 푼도 안 내고 학교 다닐 수 있는 거잖아. 갑자기 그 생각이 드니까 등록금 내는 게 무지 아까운 거야. 장학금 받으면 돈 10원도 안 내고 학교 다닐 수 있는데. 결국에는 졸업하는 마지막 학기에 장학금 받았어. 그래서 10원도 안 내고 졸업했지. 또 잘난 척 하는 소리로 들리겠다....;;
뭐 그렇게 듣고 싶지는 않지만(하하). 아무리 연기 잘하는 설경구라지만 나도 모르는 뭔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감독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좋은 감독들하고 작업도 많이 해왔고. 감독에게 기대하는 것 없나?
있다. 둘이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등산도 같이 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 알려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품 얘기만 하면 너무 재미없다. 영화라는 게 작품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씬은 이렇게 찍자 이러면서 그런 얘기만 하는 것 별로다. 이번에도 <열혈남아> 이정범 감독하고도 그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촬영하기 전에. 둘이 절에 갔는데 감독이 절을 하더라. 좋은 작품 만들게 도와달라는 식으로 절을 하면서 나보고도 하라는 거다. 그래서 안 한다고 했다. 나중에 혼자, 절에 그런 방 있잖아 쪽방 같이 작은방, 거기서 혼자 절했다. 이 영화 잘 되게 해달라고.
툭 깨놓고 말하면, <열혈남아> 완전 재미만 추구하는 상업영화가 결코 아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영화지만 관객들이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의 결을 재미있게 봐줄지 아닐지는 영화를 미리 본 나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분명 웃기고 눈물 나게 만드는 영화인데도 말이다. 설경구의 영화이기 때문에 또 어느 정도 흥행력을 검증받은 스타배우이기 때문에 영화의 상업적인 성공면도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당신이 있다고 본다. 관객들이 <열혈남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봐주었으면 하는지 말해 달라.
당연히 재미있게 잘 봤으면 좋겠지. 그래도 흥행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열혈남아>는 진짜 모르겠더라고. <사랑을 놓치다>도 스크린 수는 물론 작았지만, 평일은 원래 관객이 별로 안 들잖아 그런데도 씨네시티 극장에 사람이 꽉 찼었대, 관객이 안 드는 평일인데도 말이야. 그런데 그 담날에 모든 극장에서 거의 다 내린 거야. 그때가 <왕의 남자>가 흥행기록을 깨려고 할 시기였거든. 스크린쿼터축소반대 시위할 때는 작은 영화! 작은 영화! 이렇게 외치면서, 막상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서서 이런 영화를 나서서 제끼더라고. 작은 영화를 보호해야한다면서 나서서 그러는 거야. 스크린쿼터 있을 때도 못하던 사람들이. 아! 갑자기 정치적 발언 나온다. 100분 토론에 나와서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이 스크린쿼터 있을 때는 왜 못했는지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들었다. 잘 되고 있었거든. 스코어는 더디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정말 속상했어 그때. 강우석 감독님한테 그래서 바로 전화했지.(<사랑을 놓치다> <왕의 남자> 시네마서비스가 투자/배급한 작품이다) <열혈남아>는 솔직히 정말 모르겠어. 배급의 논리에 의해서 휘둘릴 수도 있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폭파시키고 비주얼 있고 스케일 큰, 돈 100억 쳐들어서 만들어야 하나? 그걸 또 해야 되나? 솔직히 그거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공공의 적2> 찍고 생각이 든 게, 작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마침 그 시점이 작은 영화가 떨어져 나가는 시기여서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이상하게 참 속상하다. 작은 영화가 배우에게 포만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작은 영화라기보다는 인물 갖고 매달리는 사람 갖고 매달리는, 비주얼에 매달리기 것보다 솔직히 말해서, <역도산>은 다는 케이스이긴 하지만 개인 인물을 다뤘다. 반면 <실미도> 같은 경우는 허무하더라. 배우로서 내가 갖고 가는 포만감은 없고, 나는 그 사건을 다룬 한 인물일 뿐이고, 영화는 그 사건 전체를 다뤄야 했었고. 물론 이게 배우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떠나서 배우에게 집중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인물에 집중하는 영화가 좋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하여튼 그 시점이 스크린쿼터 축소되고 작은 영화는 쳐내는 시기였어. 지인들 주려고 <사랑을 놓치다> 표를 샀는데 돌리지를 못했잖아 그래서 강우석 감독님하고 소원해졌어.
엥? 정말요?
(하하) 엊그저께 통화했어.
그럼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홍보해도 좋지 않을까? 방송 쇼프로에 나온다던지.
영화는 오락프로 나와서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코미디 영화면 몰라도. 방송 출연해서 다 된다면야 빤스라도 입고 나갈 수 있다. 사실 이래저래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방송 안 나가는 영화가 어디 있어 요즘?
인터뷰 하는 것 무척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홍보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싫어라하면서도 인터뷰 다 해준다고 다들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 아주 인기짱이더라.
난 다해!! 짜증내면서도 다 해. 오히려 나를 인터뷰하는 기자들이 미안해 갖고 인터뷰하면서 내 눈치 보잖아(하하~)
취재_ 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_ 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 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