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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엘리멘탈> 이채연 애니메이터
2023년 6월 19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국내에서 게임 애니메이터로 일하다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에 감흥 받아 유학을 결심, 캐나다에서 10년여 커리어를 쌓은 후 픽사에 입사했다. <버즈 라이트이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등의 작업에 참여한 그는 이번 <엘리멘탈>에서 물과 불의 주요 캐릭터를 구현했다. 디즈니·픽사 작품 중 ‘풍선에 매달린 집’의 아이코닉한 이미지와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의 <업>과 사람의 심리라는 딥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낸 <인사이드 아웃>을 특히 좋아한다는 그를 만났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디즈니·픽사 입사 후 첫 작품인 <버즈 라이트이어>(2022)에 이어 <엘리멘탈>에 참여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배운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버즈 라이트이어>가 리얼리티한 스타일이라면 <엘리멘탈>은 카툰 같은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사실 어떤 스타일도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너무 빠른 시간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작업해야 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덕분에 애니메이터로서 크게 성장한 기회가 됐다.

이 영화는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가 사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불 ‘앰버’와 물 ‘웨이드’의 특별한 우정과 사랑을 주요 테마로 다양성과 화합을 전한다. 담당한 파트는?

주로 앰버와 웨이드를 표현했다. 이들은 불과 물의 특징을 지닌 것이 아닌 고유한 성격을 가진 불과 물 그 자체였기에 그 밸런스를 맞추기가 까다로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 캐릭터 위에 물을 얹거나 불이 붙은 모습이 아닌 적당하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 물과 불의 속성을 지녀야 했다. 형태와 속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 뒀다. 특히 물 ‘웨이드’가 그랬는데, 대략 1만 개 정도의 컨트롤러를 움직여 적당히 꿀렁꿀렁한 질감을 표현해야 했다. 너무 젤리같이 보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탱탱볼 같아도 안 돼서 그 경계를 찾느라 고심했었다.

불 ‘앰버’는 비주얼적으로 충격이더라, 그 흔들림이라니! 불을 의인화하며 참고한 자료는. 또 피터 손 감독이 특별히 당부한 포인트가 있다면.

웨이드는 꿀렁이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 워킹을 부드럽게 갔다면, 앰버는 좀 더 흔들리도록 했다. 또 앰버가 화를 내면 보라색으로 변하는 데 이때 라이팅을 어떤 방향에서 얼마만큼 들어오게 할지 등에 관해 세심한 조율이 필요했다. 덕분에 유난히 각 파트 간의 협의가 많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레퍼런스는 일단 실사에서 찾았다. 애니메이터들이 모여서 가스렌지를 켜고 그 움직임을 공부했었다. 또 2D 애니메이션에서 불을 표현한 부분을 찾아서 참고했고, 이를 구현한 전문가를 초빙해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앰버가 비호감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셨다. 불인 앰버가 화를 낼 때도 너무 세게 보이지 않도록 당부했다.

작업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감독님은 처음 7년을 예상하고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타트할 당시는 지금 같은 기술력이 없어서 좀 더 더디어졌다고 들었다. 프리프로덕션까지 포함하면 애니메이션 작업은 총 1년 반 정도이고, 내 경우는 마지막 6~8개월 무렵부터 투입됐다. 이때 70~80명의 애니메이터가 함께했었다. 렌더 팜을 코어로 주로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폭파됐을 정도로 헤비한 VFX 작업이었다.

특히 마음에 들거나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앰버가 웨이드의 가족과 만난 후 싸움 아닌 싸움을 하다가 오토바이 체이싱하는 장면이 있다. 웨이드의 부모로부터 ‘이런 걸 해보는 게 어때’하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 앰버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시퀀스다. 보라색 빛으로 앰버의 혼란한 마음을 표현하고 여기에 여러가지 효과를 더해 완성했다. 빌드업부터 표현까지 감정의 흐름을 잘 보여줘서 개인적으로 뿌듯한 장면이다.

4원소 중 흙은 그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인상이다. 겨드랑이에서 잎이 난다고 흙이라니! (웃음)

아무래도 불과 물의 이야기라 소홀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물 불 공기는 계속 움직이는 데 비해 흙은 그렇지 않기도 해서… 나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가 좋냐고 질문받으면 일부러 ‘흙’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존재감 희미한 그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고 할까! (웃음)

애니메이터 출신 감독이 여럿인데 시기상조겠지만, 직접 연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최종목표는 감독이다. (웃음) 자아실현의 일환으로 언젠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해외에 살며 느낀 감정이나 고독 등에 관한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게임 애니메이터로 출발했다. 캐릭터 애니메이터와 차이점이 있을까.

시작인 만큼 게임이 내 뿌리라고 생각해 오다가 캐릭터 애니메이터로 옮기며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배우보다 더욱더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분야더라. 중간에 유비소프트의 ‘와치독’으로 게임에 잠시 돌아간 적이 있는데, 기대와 달리 의외로 지루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액션과 동작에 집중하는 게임보다 캐릭터를 만들고 표정과 움직임을 구현하는 과정이 보다 더 흥미롭다.

애니메이터에게 디즈니·픽사는 꿈의 직장이 아닌가. 작업 환경과 프로젝트 참여 기회 등 궁금해할 분이 많을 것 같다.

자율적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데 이에 스트레스받기보다 오히려 성장하게 된다. ‘내 샷’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크다. <버즈 라이트이어>와 <엘리멘탈> 모두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퀘스트 메일을 먼저 보내 합류한 케이스다. 특히 <엘리멘탈>은 (한국계) 피터 손 감독님과 내적인 친밀감도 있었고, 이민자 이야기라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글로벌 애니메이터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지 조언한다면.

당연히 영화를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이 많아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나아가되 그 과정에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한 공감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떤 서사와 캐릭터를 만나도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흥행하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K-콘텐츠에서 애니메이션은 유난히 고전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은 뭘까.

음…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모여야 좋은 창작 문화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인재가 모여야 애니메이션이 발전할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까. 이러한 인재를 모을 수 있는 버짓(예산)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에게 특히 소구할 포인트를 꼽는다면.

피터 손 감독님이 한국에 애착이 큰 만큼 <엘리멘탈>은 나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왕왕 등장하는 한국적 정서와 문화상도 그렇고 한국 애니메이터가 많이 참여했으니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한국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 한다. 나도 예전에 그랬거든.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3년 6월 19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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