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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에서 '유하'를 만나다.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기자간담회 때 병두에게 당의정을 입혔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요. 관객의 입장에선 꽃미남인 청춘스타 조인성을 캐스팅한 건,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긴장하고 있는 감독님의 필연적 선택이라 봅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스타성을 어느 감독이라도 아예 무시할 순 없잖아요. 20대의 스타 중에서 병두 역을 할 만한 배우들이 그리 많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조인성을 선택하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어요. 캐스팅하려고 만났는데 태권도4단이라는 말을 듣고 제가 혹했죠(허허).

조인성이 태권도4단! 혹시 4단 아닌데 불려 말한 것 아닌가요?
(하하) 속지 않았어요. 권상우는 워낙에 운동신경이 좋은 배우였지만 <말죽거리 잔혹사> 촬영 당시 대역을 써야 하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대역을 쓰니깐 리얼한 연출을 하는 감독으로서 리얼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성룡처럼은 아니더라도 무술을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고요. 인성이는 실제로 하는 것 보니까 태권도4단이란 말이 거짓말은 아니더라고요.(하하)

얼마 전에 조인성씨를 무비스트 이희승기자가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 사진보니 영화 찍으면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왠지 전보다 늙어 보이더라고요.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많이 늙었습니다 인성이......

조인성은 드라마에선 성공한 배우인 반면 영화에서는 별다른 흥행의 맛을 보지 못한 배우였잖아요. 상업성이 있는 영화를 찍는 감독 입장에서 이 점은 분명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고 봐요.
고민이 있었죠. 말죽거리 때하고는 저도 좀 다르지 않습니까? 그때는 지금보단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감이 조금 덜 했던 때이고 물론 지금도 자신 없기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력이 쌓였다는 느낌이 들어서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왔죠.

조인성씨가 영화에서 다 안 좋았지만 TV에서는 굉장히 좋은 배역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작업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없이 병두 역에 조인성을 선택하게 됐죠.

조폭성에 매혹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조폭성에 관객들이 쉽게 몰입하는 기반은 바로 조인성이다. 달리 말해 ‘매혹’되는 지점이 조인성의 육체라고 해석되요.
그게 상업영화가 갖게 될 수밖에 없는 한계인데요. 그 역할이 멋있고 영웅적인 역할은 아니지 않습니까. 굉장한 페이소스가 있는 역할인데. 조인성이가 하니깐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저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마치 말죽거리 할 때, 권상우가 옷을 벗고 운동을 할 때 관객들이 그렇게 반응할지 몰랐거든요. 오히려 찍을 때는 ‘고등학생이 저렇게 몸이 좋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권상우 보고 근육을 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딜레마가 좀 있습니다.

어쨌든 영화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조인성의 매력은 연기자로서의 매력이라고 봐요. 영화에서 조폭이 매력적으로 보였다면 그건 조폭을 연기한 조인성이 굉장히 잘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적어도 이 영화가 보고 조폭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할 것 같습니다.

<비열한 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은 폭력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수(권상우)가 고등학교를 그렇게 걸어 나와서 병두가 된 건가?
어떻게 보면 저는 그 연장선상이라고 봤어요. 현수가 나와서 재수를 했잖아요. 제가 볼 때는 대학도 못 갔을 것 같더라고요.(하하) 물론, 여기 나오는 병두는 중학교 퇴학으로 나왔지만 서도. 병두는 뒤통수를 때린 이후의 현수가 아닌가? 병두라는 인물을 그렇게 생각하고 썼습니다.

허문영 평론가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소년성’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그렇다면 현수 혹은 병두는 성장을 한 건가요? 비열한 거리에서
글쎄요. 분명히 어른이 된 세계죠. 아무래도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 세계이니깐. 그런데 어른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이 덧없다고 느끼는 나이’거든요. 병두는 욕망이 덧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면서 모호하고 허황된 욕망을 쫓아가는 불나방 같은 인물이죠. 그러면서도 죽는 순간 종수를 보면서 깨달을 수도 있었겠죠. “참~ 내가, 기를 쓰며 달려온 길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길이었는가!”를 병두의 마지막 눈길에서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걸 담아내는 과정이 관습적이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평단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고. 물론 감독님은 처음부터 장르의 컨벤션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다고 커밍아웃한 상태지만 말이죠. 이런 엇갈리는 평단의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렇게 보신 분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안 써요. 어차피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제가 짜놓은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 의 문제지, 그것이 어디서 많이 나왔냐? 안 나왔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럼 멜로드라마의 무수한 컨벤션들은 되풀이 안 됩니까? 장르영화에 나오는 그 컨벤션을 가지고 굳이 태클을 건다면 별로 할 말이 없죠.

이야기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영화에서 카메라의 존재 즉, 감독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캐릭터에 몰입하기도 쉬웠어요.
저도 아무래도 반골 기질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 어떤 영화들, 최근 주류를 이루는 한국영화 조류가 아무래도 좀 파편화되어 있는 이미지만 쫓고 있지 않나 싶어요. 드라마보다는, 이야기보다는 감각적인 이미지가 주가 되는 영화를 관객들이 확 받아들였다가 극장 나갈 때는 확~ 휘발시켜 버리는 것 같아요. 영화들도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인생은 스토리이기 때문에 인생을 전달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카메라는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고 판단 내렸죠.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게 구닥다리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거잖아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게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너무 스타일리쉬한 영화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고전이죠, 반동이기도 하고요. 제 나름대로는 이 자체가 나 자신한테 불온한 작업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시인이었잖아요. 시라는 것은 음미하는 문학인 반면에 시인이었던 감독님이 만든 영화는 딱딱 떨어지는 명확한 문장을 읽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시와 영화는 궁극으로 가면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영화는 스토리로 짜여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시적인 기운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단지, 시라고 하는 게 고독의 해독이 필요한, 뭐랄까? 고도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극단의 상상력이 발동해야 되죠. 그런데 아무래도 영화는 대중들이 알기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메시지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관념에서 일상으로 변환을 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시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지죠. 그 안에 이야기를 숨겨놓은 거지만, 영화는 이야기가 이미지보다 앞서야 하거든요.

제가 유하감독님 시집 밖에는 안 읽은 문학소녀!라서 ‘관념이 일상으로 전환’이라는 말뜻을 잘 이해 못하겠네요. ㅠㅠ
이야기라는 것은 차곡차곡 벽돌 쌓듯이 캐릭터들을 설명해주고 그 인물들한테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그걸 통해 영화를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시와는 다르죠. 시는 굳이 화자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지는 않잖아요? 자신을 투영해서 읽는 게, 시라고 한다면 영화는 주인공 병두에게 관객이 동일시를 일으키는 겁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플롯팅이 잘 짜여 있는 게 영화죠.


영화 오프닝을 가족 속의 병두로 한 것도 감정이입을 더 유발하기 위한 감독님의 의도적 장치였나요?
처음부터 땅에 묻는 장면으로 시작하거나 아파트에서 돈 받으려고 소리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면 그 인물한테 누가 감정이입을 하겠습니까? 저 인물도 집이 있고 우리와 다르지 않게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지루할지 모르겠지만 끌고 가는 거죠. 그래야만 그 인물이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감정이입을 할 테니깐. 조폭이 나온다면 관객은 일단 그들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요. 그들의 거친 생활을 보여준다면 굉장한 감정적 파장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식구가 나오고, 누이동생한테 핸드폰도 주는 병두를 먼저 본다면 관객은 좀 더 쉽게 병두에게 자신을 이입시킬 수 있겠죠.

마지막 룸살롱 장면은 가족이 해체되고 목적에 의한 유사가족이 형성된 느낌을 주거든요. 영화 처음 장면과 포개어지면서도 대치된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룸살롱 씬은 조폭이 소비되는 구조로써의 트라이앵글이어요. 뭐냐면, 조폭을 소비하는 당사자인 황회장이 있고 소비되는 당사자인 종수가 나오죠. 종수는 병두의 분신이자 대몰림을 받은 존재라고 보면 되요. 그 다음에 조폭성을 중개하고 매개하고 또한 전파하는 감독(남궁민)이 있고. 이 트라이앵글에 이어 사회가 굴러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등장인물만 차이가 있지 왜 같은 장소의 룸살롱 씬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거죠?
첫 번째도 마찬가지여요. 거기에 감독은 없지만 계속해서 두목이 바뀌잖아요. 완전히 소비된 사람은 퇴출되고 그 다음에 소비될 사람이 나오고, 이런 거에 대한 도식적인 배치였죠.

황회장 밴드는 정말 압권이었다. 지대로 원맨쇼를 보여주더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요?
제가 캐스팅 한 것은 아니고 누가 소개를 시켜줬어요. 강남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고. 그 전에 그 사람을 저는 만난 적이 없어요. 룸살롱을 간 적은 있어도...(허허)

영화가 꽉 짜인 스토리대로 가기 때문에 관객들이 숨 돌릴 틈 없이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관객들을 위해 쉬어가는 장면이나 서비스 차원에서 삽입한 장면 같은 게 있나요?
저는 늘 영화 찍으면서 관객들한테 서비스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인성이 노래하는 장면은 서비스 차원 족으로다 길게 갔죠.(하하하~)

굴다리 액션씬은 정말 잔혹했다. 내가 야구방망이로 맞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들의 처참한 싸움을 카메라가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병두의 시선으로 카메라가 전환한다. 상철(윤제문)이 상대 조직원의 배를 찌르는 장면을 병두의 시선으로 카메라가 담고 있더라. 다른 액션에서는 그런 전환이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은 반면에 말이죠.
병두의 인생을 바꿀만한 포인트뷰가 필요했어요. 업장을 맡기로 한 상태에서 두목이 상대 조직원을 찌르지 않습니까. 그 일로 인해 명필이란 경쟁자한테 업장이 넘어가게 되고, 병두의 인생도 전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되죠.

<비열한 거리>에서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는 놈이 없더라. 병두 입장에서 보다보면 병두도 비열한 놈이라는 생각을 잊고 보게 된다. 병두는 분명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인데 말이죠.
피해자라기보다는 걘 영문도 모르고 싸우는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자기업장을 지키겠다고 싸우는 거겠지만 마치 조직원들도 직장인들하고 똑 같아서 상사가 내린 결정에 의해서 무조건 가서 해야 되니깐,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외피만 조폭일 따름이지.

하지만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 조인성이 낭만적으로 그려진 것도 사실이잖아요.
낭만성을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데 누구나 20대 때에는 사랑의 감정 다 있지 않습니까? 그걸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지. 때문에 거기 나오는 인물들도 사랑을 하는 거죠. 사실 현주라는 인물도 별로 현실적인 비전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하루 종일 서 있어야 되는 서점 여직원 굉장히 힘든 직업이거든요. 거기다 소녀가장이어서 시골에 돈 붙여야 하고. 병두와 현주는 서로를 거울처럼 보면서 사랑을 느끼는 거고. 어떻게 보면 서로의 처지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게 사랑이 기반이 된 연민이겠지만 그런 것 속에서, 이 영화가 조폭영화이기 이전에 조폭영화 외피만 썼을 뿐이지, 이 시대 청춘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요.

29살이면 서른 살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나이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거든요. 사실 서른 됐는데 아무 것도 해 논 것 없고 가정도 이룰 고민도 해야 되고 강박과 불안감에 시달 릴 수밖에 없어요. 모호한 욕망에 시달리며 그러한 욕망을 가진 청춘들을 병두라는 개인에게 표현하자는 거였어요. 그런 낭만성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가?

캐릭터의 구체성 때문에 <비열한 거리>가 관습적이면서도 새로운 영화로 보여요.
만약에 정말로 장르영화로써의 조폭영화를 찍으려고 했으면 제가 찍을 매력을 못 느꼈을 거여요. 어차피 말죽거리도 10대의 상실감, 어른이 될 때의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상실감을 담은 영화였고 <비열한 거리>도 직장인, 생활인일 수도 있는 일반인들이 30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가지고 있는 욕망이랄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랄지,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랄지 이런 거에 대한 얘기했어요.

말죽거리나 비열한 모두 감독님의 자전적 얘기라고 하던데, 감독님은 실제 그 나이 때 정말 현수 혹은 병두 같은 삶을 사셨나요?
자전적인 얘기라는 게 맞는 말이어요. 어차피 주인공한테 자기를 투영하잖아요. 제가 10대 일 때 정말 현수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들어가서 폭력을 알게 됐고 버스에서 만난 여학생 때문에 가슴앓이도 해본 적 있고. 누구나 그 당시에 그러했겠지만. 저는 조폭은 안 해봤습니다만(허허) 병두 나이 때 병두처럼 진짜 막연한 욕망을 가지고 달려갔던 것 같아요. 욕망의 덧없음을 이제는 알죠. 남들도 많이 질투 해보고 30살이 된다는 거에 굉장한 두려움도 있었고.

감독님은 확실히 자기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에 하나네요.
어차피 예술 하는 사람은 자기로부터 출발합니다. 제가 29살 때 대박이 났거든요. 당시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가 단기간에 10만부가 팔렸으니깐 굉장히 큰돈도 만져보고 그랬죠. 그런데 연이어서 영화가 실패를 하게 됐죠. 결국 병두의 29살에서 30으로 넘어가는 그 인생과 저의 인생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상징적으로....

병두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감독님의 인생을 대입하고픈 욕심에 감독을 영화 속에 등장시킨 건가요? 사람들은 감독(남궁민)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서브플롯이라고 표현하던데.
조폭영화 하려고 취재를 하는데 이 취재과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영화감독이 건달을 취재하는 게 이게 영화인 것 같고, ‘어~ 재밌네’ 하면서 갑자기 그쪽으로 터닝을 하게 됐죠.(하하)

작가가, 감독이 펜대와 메가폰을 잡는 이유는 자기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일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시를 쓰던 분인데 이제는 영화감독이 되셨잖아요. 시보다 영화가 좀 더 자기 생각을 전파하기 용이하던가요?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자기 생각을 관객이나 독자에게 전파를 하고 싶어 하죠. 자기생각을 공유하고 싶고. 시는 아무래도 소주자의 장르이니깐 다수자의 장르로 옮겨가서 많은 사람들과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분명히 있었죠.

그걸 그래서 이루셨나요?
그런 매력은 있어요. <비열한 거리> 영화평들이 올라오는 걸, 제가 지금 가끔 읽고 있거든요. ‘나는 정말 비열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정말 인생은 이런 거구나’ 제 영화를 통해 인생을 뒤돌아보는 그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제 의도를 ‘참 많이 알아주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기분이 좋거든요. 시에서는 맛보지 못한 것이잖아요.

조폭을 다루고 있지만 <비열한 거리>는 일상인인 우리의 모습을 빗댄 작품 맞네요.
이게 절대 낡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실 속에 만연되어 있는 아직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말죽거리는 과거의 향수를 통해 현실을 얘기한 거라면 <비열한 거리>는 현대의 거리에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경우잖아요. 말죽거리 때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말죽거리는 노스탤지어를 외피로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제도 대한 얘기거든요. 지금의 교육현실과 학생들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시스템이 예전이나 다를 게 없지 않느냐에 대한 얘기를 78년 말죽거리에 있는 학교에 빗댄 거죠. <비열한..>은 삼류조폭 집단을 통해서 현실의 얘기를 한 것뿐입니다. 말죽거리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감독님은 한국사회를 ‘비열한 거리’라고 비유했다면 지금 한국의 거리는 응원의 거리입니다. 지금 여기 광화문에서 오늘 열릴 토고전을 대비한 응원 준비가 한창인데요. 어떠세요?
한국이란 사회가 아직도 자신의 스트레스나 욕망을 다양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가. 우리나라 거리는 욕망이 응집되어 있고 부유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렇다고 우리나라 K리크가 만원을 이루지 않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스트레스나 욕망을 발현하고자 나온 거죠.

영화 속 영화 <남부건달 항쟁사>도 그렇고 감독님이 펴낸 시집도 그렇고 특정 지명이 많이 들어가네요.
그러게요. 잘 모르겠어요. 시도 그렇고 자꾸 지명이나 거리가 들어가네요. 정신분석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요. (허허)

농담이지만 감독님이 집이나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커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도 해봤어요.
(하하) 제가 산책을 되게 좋아합니다. 지금도 양재천을 7년간 걷고 있는데 걸으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요. 거리에서 떠올리니깐 자꾸 걷게 되는 것 같네요(하하)

감독님이 조폭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폭을 직접 취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그들을 만나 취재한 얘기들을 버리고 새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왜 그들에게 들은 얘기를 버리고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거죠?
그들의 말을 자꾸 듣다보니깐 우리가 생각하는 특별한 활극이 없더라고요. 그냥 일상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우리랑 똑같이 장래 걱정하고 좋은 스폰서 만나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하고. 돈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똑같잖아요. 저도 특별한 활극 모험의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갔었는데 그냥 사는 얘기만 듣고 오다 보니깐, 건달과 민간인의 경계가 해체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 거죠.

지금 감독님의 목소리도 그렇고 우아한 태도에서도 느껴지지만 선한 사람 같거든요. 그런데 액션은 어쩜 그리 살벌하게 찍으세요?
고등학교 시절 제 스스로 나한테 무서울 정도로 어떤 사람을 때릴 때 그런 면이 보이던데요.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때려야 할 때가 있거든요. 저는 덩치가 컸으니까 우습게 보이지 않기 위해 뭔가 보여줘야 했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그렇게 만드는 면도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아무래도 그렇게 습득된 폭력적 에너지가 나오는가 봐요. 어차피 조폭영화이다 보니 액션이 필요하잖아요. 대충 찍을 거면 저는 원래 안 찍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이보영과 조인성의 베드신이 있었는데 이보영씨가 꺼려해서 뺐습니다. 침대에서 키스만 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요. 전 대충 하는 건 안 합니다(하하) 액션도 마찬가지여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볼 수 없던 마치 현장에서 바로 목도하는 듯한, 싸움 그 자체를 표현해보자 해서 그렇게 찍었어요. 별로 영웅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 말이죠.

천호진씨가 말죽거리에 이어 이번에도 출연한다. 그가 연기하고 상징하는 건 결국 아버지다. 그 캐릭터 자체가 뭘 의미하는지 관객들이 알기 쉽게 한 캐스팅이었다고 본다.
일단, 천호진씨가 노래 실력이 뛰어난 배우죠. 황회장은 인자하면서도 사실 굉장히 비열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면을 천호진씨가 표현을 잘 해줄 것 같아 처음부터 천호진을 생각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죠.

천호진의 얘기가 나왔다면 선우은숙씨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그간의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이미지하고 완전 다른 이기적 부모로 나온다.
선우은숙씨가 부잣집 마나님 같은 이미지잖아요. 그러면서도 선한 이미지도 강하고. 오히려 전 그걸 망가뜨려 출연시켜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종혁을 영화 속 영화인 <남부건달 항쟁사>의 주연으로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시켰더라. 전편에 나왔던 배우들이 나와서 그런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가 연작이란 느낌이 자연스레 오던데요.
처음에는 이종혁을 할까? 이정진을 할까 고민했는데 종혁이로 결정을 본 거죠. 종혁이는 제가 말죽거리로 데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애정이 가는 배우입니다. 제 영화에 또 출연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어 종혁이를 캐스팅한 것도 있지만 그 안에 나오는 배우가 너무 무명이면 사람들이 볼 때 좀 치기 어리게 볼 것 같아서 알려진 배우를 출연시키게 된 거죠.

감독님의 분신일 수도 있는 감독 민호(남궁민)가 마지막 장면인 룸살롱에서 지은 표정이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표정이었어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도 있을 것이고 또 종수(진구)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내가 어쨌든 친구를 어떻게 해서 출세를 하게 됐는데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심정이잖아요. 그런 복합적인 면을 표현해 달라고 요구했죠.

많은 사람들이 민호에게 유하 감독님을 대입해 볼 텐데요. 실제 감독님이 민호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요?(하하)
저는 아마 신고 못했을 거여요. 아니 애초부터 쓸 엄두도 내지 못해겠죠.

병두에게 빠져 영화를 본다면 감독 민호가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놈으로 보일 듯한데. 사실 그렇게 의도하진 않은 거잖아요?
남궁민이 여기서 특별히 비열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글쎄요. 여기서 약간의 비열함이 맞물려 있다가 비극이 나고 자멸한 거지. 병두, 종수 스스로 자멸한 거지 누가 특별히 위해를 가했다고는 보지 않거든요. 민호도 정말 처음부터 병두에게 해를 끼칠 생각으로 덤빈 게 아니었고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위해를 남에게 가한 거잖아요. 그러다 협박이 들어오고 민호 입장에선 이거 혹시 병두가 시킨 게 아닐까 하는 오해가 생길 수 있죠. 그래서 고발을 하게 된 거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욕망 때문에 조금씩 상처를 주게 되고 상처가 오해를 낳고, 그게 눈덩이처럼 불면서 파국을 초래한 것뿐이죠. 누가 특별히 비열하다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룸살롱 씬이 끝나고 병두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건 민호가 회상한 거죠?
감독입장에서의 회상 장면이죠. 결국에는 누구나 다 병두의 바람처럼 자기 인생이 좀 더 멋지고 좀 더 품위 있고 좀 더 의리 있게 살기 바라지만 인생이라는 게 정반대로 살지 않습니까.

이 영화 전부 그런 얘기이고 아이러니로 충만 된 내용이기 때문에 마지막 병두의 얼굴을 통해서 관객들이 그런 느낌을 가지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 잔영 같은 병두의 이미지를 넣었어요. 약간 설명적인 부분이죠. 원래는 황회장 룸살롱 씬에서 영화는 끝나요. 그런데 주인공이 너무 일찍 죽는 관계로 관객에 대한 서비스를 주고 싶어서 넣은 거여요.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하하)

병두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서 그런지 완전히 이야기가 종결됐다는, 닫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느낌이라고 할까.
말죽거리를 찍고 나서 관객들하고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자기의 의문점을 갖고 나왔을 때는 불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어차피 대중을 위한 영화인데 아쉬움을 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문이나 아쉬움이 없도록 회상장면을 넣어 이야기의 종결을 보여준 거죠.

이창동 감독님 작품을 봐도 그렇고 문인출신 감독들은 확실히 서사에 강한 면모를 보이거든요. 아무래도 이야기에 집착하게 되나 봐요?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랄지 서사랄지 좀 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도 넓은 의미에 있어 문학의 영역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남다르게 서사를 중요시 합니다. 다음 영화는 거기로부터 벗어나서, 너무 외로운 작업이기도 해서, 좀 풀어놓고 다른 모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감독님의 영화는 한국사회의 가족주의 문제를 건드리고 또 그 안에서 마초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에게 가족주의, 마초성은 어떤 의미로 정립되어 있나요?
마초성에 대한 거는 다른 사람들도 아는 얘기고요. 저는 마초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고 있다고 봅니다. 가족주의 해체에 대해서는 깊은 의미가 없어요. 단지 가족주의 대한 저의 개인적 비판 혹은 영화 속의 뒤틀린 가족주의가 결국 가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잖아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부일처제로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가는 행위, 그게 인간들이 다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그거에 대한 회의감은 있어요. 대안적인 가족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어떤 건지 저도 확실히 모르겠지만.

폭력3부작의 마지막 편인 <가리봉동 블루스>로 바로 작업에 들어가실 건가요?
아니요. 다른 것 해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피도 많이 나와서 피 안 나오는 거로 한 편 작업하고 그 다음에 3부작의 마지막 편을 작업하지 않을까 싶네요.

글_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_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 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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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29 01:54
joynwe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모두 그만의 색이 담긴 것 같다...두 영화에서 한가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의 제목을 지나치리만큼 잘 표현한 영화라는 점이다...   
2008-09-07 15:16
mckkw
이제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려나   
2008-01-02 12:08
okane100
난 저 감독님이 참 좋더라   
2007-08-22 20:43
qsay11tem
차기작 기대되여   
2007-08-10 12:47
kpop20
비열한 거리 못봤는데 ㅠㅠ   
2007-05-26 16:23
ldk209
스타를 데려다 연기자로 변신시키는 유하 감독의 능력... 다음에는 또.. 어떤 스타를 변신시킬지...   
2006-12-27 10:49
park0203
다음작품기대할게요^^   
2006-10-2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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