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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드라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티홀> 김은숙 작가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 하정민 기자 이메일


개인적인 감정을 먼저 털어놓자면, 사실 필자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파리의 연인>(2004)은 조금도 새롭지 않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대놓고 밀어붙이는 뚝심에 매료됐으나 뒤로 갈수록 일관성을 잃어버린 인물들의 행동으로 점차 동의하기 힘들었고, 대통령의 딸과 경찰을 연인으로 내세워 '역 신데렐라 스토리'를 표방했으나 인물의 특별한 신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실패한 <프라하의 연인>(2005)으로부터는 공감도 새로움도 얻지 못했다. 영화 <약속>의 원작 <돌아서서 떠나라>를 리메이크 한 <연인>(2006)은 '3부작 연인 시리즈의 최종판'이라는 수사 외에는 더 이상 붙일 것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멜로 드라마였다. TV드라마 국을 배경으로 한 <온에어>(2008)는 중반부까지는 '한' 개성하는 캐릭터들과 스토카토식의 '대사빨', 활력 넘치는 이야기에 열광하며 '닥본사'했으나 결국 '짝짓기'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에 반발심이 생겨서인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뒷심부족 탓인지 후반부에는 적잖은 인내심을 발휘해야했다. 김은숙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2006)과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는 눈물 한 스푼, 웃음 두 스푼의 사랑을 보여줬던 김은숙 작가의 러브스토리가 온전히 '신파'라는 우물에 빠졌을 때의 결과를 보여줬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이들은 알아차렸으리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필자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들을 대부분 보았다. 더욱 솔직히 고백하자면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챙겨본 드라마도 있다. 이번 <시티홀>도 차승원, 김선아라는 배우들의 이름값에 대한 기대감보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라는 이유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에 대한 이런 모순적인 감정이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작품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크고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상위를 차지하는 시청률이 그 증거다. <시티홀> 역시 방영 첫 회 부터 수목극의 강자로 올라서며 김은숙 작가표 드라마의 브랜드 파워를 다시 한 번 인증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단순히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 시청자의 심보가 아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는 '뻔하지만 보게 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김은숙 표 로맨틱 코미디의 힘

김은숙 작가의 이야기는 분명하다. 러브스토리. 그것도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예쁘지 않지만 귀여운 여주인공과 까칠하지만 다정하며 능력 있지만 소탈한 남주인공의 상큼 발랄한 사랑이야기다. 김은숙 작가는 사회적 신분도 성격도 전혀 다른 남녀가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하다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대한민국 드라마들이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설정을 노골적이다 시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쿨한 감성과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최근 트렌디 드라마의 대세와도 멀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발랄하되 통속에 가깝고 곧 죽어도 해피엔딩을 고수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인물들은 가난한 유학생과 재벌2세(파리의 연인)이거나 대통령의 딸과 경찰(프라하의 연인) 아니면 의사와 깡패(연인), 여배우와 매니저(온에어)다. 일반인으로서는 당체 감정이입을 하기 힘든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로맨틱 코미디의 인물들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대리만족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오랜 세월 반복을 거듭해 이제는 진부하다는 말조차 사용하기 어려울정도로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따라간다. 하지만 그의 드라마를 한두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런 전형성이야말로 김은숙 작가의 힘이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꿈꾸는 로맨스는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긴 힘들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판타지를 황홀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의 로맨스는 전형적이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정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전적이고 그만큼 낭만적이다.

장르에 확실하게 충실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대중이 로맨틱 코미디에서 기대하는 판타지를 제대로 끌어올려 보여준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드라마만큼 사랑의 환상성을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게 구현한 드라마는 없다.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적인 모든 장치를 동원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연애담을 직조하고 모자이크한다. 평생 한 번 써볼까 말까한 달달한 대사와 낯간지러운 장면들은 수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러브스토리의 재현에만 그쳤다면 대중이 높은 시청률로 화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인들의 유치한 밀고 당기기에는 사실적인 연애의 감정이 녹아있고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하는 유머는 전형성으로 밀어붙인 과장된 이야기에 활기찬 생명력을 부여한다.

<온에어>, 김은숙 표 전문직 드라마

제대로 구현함으로써 김은숙 작가의 브랜드를 만들어준 전형성은 그에게 양날의 칼이다. 사실 그의 드라마는 전형성 때문에 비난을 더 많이 불러왔다. 현실성의 부재로 채널을 돌린 사람도 있었고, 과장되고 극적인 스토리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뻔한 이야기'에 채널을 고정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드라마를 외면했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뻔한 러브스토리'라는 등식이 성립될 때쯤 등장한 <온에어>는 역전의 위기에서 맞이한 적시타였다. 방송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온에어>를 통해 김은숙 작가는 일대 자기 쇄신을 도모한다. 소재를 확장해 자신의 드라마를 바라보던 외부의 시선과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낸 <온에어>는 김은숙 작가의 자기반영적 텍스트이자 고해성사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구축한 드라마 세계의 달콤한 허상을 스스로 까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연말시상식이 열리던 날 '국민요정' 오승아는 연기대상 공동수상자로 내정된 것을 알자 대기실에서 '주는 대로 받으라'는 매니저와 화끈하게 맞짱 뜬다. "연기파 배우한테 주자니 계약이 남은 오승아가 지랄할 테고, 연기 못하는 오승아한테 주자니 시청자가 지랄할 테니 나눠 먹고 떨어지라는 거 아냐. 대상에 공동수상이 어디 있어? 이게 개근상이야? 선행상이야?" 오! 이토록 싸가지 없는 여배우는 그동안 그의 드라마뿐 아니라 다른 드라마에서도 유례가 없는 캐릭터였다. 독하기로 따지면 오승아의 공동수상 거부로 인해 스타일 구긴 자칭 타칭 '시청률제조기', '흥행불패신화'의 '회당 2천만작가' 서영은도 만만치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서영은 작가를 통해 잘나가는 스타작가의 권력욕과 오만, 속물성을 자기 고백하듯 써내려갔다. 심지어 그의 작품 때마다 논란이 된 PPL 문제를 서영은이 대본과 PPL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는 장면을 통해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지나친 고백은 자기면죄부의 효과를 주기도 했다) 오버스럽고 희화화됐지만 '한 성질'하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카메라 뒤의 모습은 꽤나 리얼하다. 김은숙 작가는 한 드라마가 전파를 타기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로에게 쌍욕을 던지며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이내 드라마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뭉치는 방송가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예의 꼼꼼한 대본에 담아냈다.

그러나 <온에어>는 그의 색깔이 여전히 짙은 작품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사생활까지 조사해가며 대본을 완성했다"는 김은숙 작가의 말대로 <온에어>는 그동안 시청자가 '카더라 통신'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PD, 작가, 배우, 소속사의 알력다툼까지 사실감 넘치게 그렸다. 하지만 역시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것은 연애담이다. 김은숙 작가는 툭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배우와 매니저와 작가와 PD 사이에는 자의식 팽배한 긴장감뿐 아니라 러브라인도 진하게 깔아주면서 <온에어>가 전문직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임을 놓치지 않는다. 로맨스는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의 전면에 드러났다.

<시티홀>, 대한민국 정치의 리얼 판타지

이제 중반에 접어든 <시티홀>은 김은숙 작가가 로맨틱 코미디와 전문직 드라마를 다시금 접합한 드라마다. 무대는 현재 대한민국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정치판. 지방의 소도시 인주시는 여느 도시 중에서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인 비리에 무감한 도시다. 여당의 오랜 텃밭인지라 선거철이 돼도 여당도 야당도 모두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현 정치인의 부패를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같은 후보에 투표한다. 인구이동과 민심변화는 물론 정치부패에도 변화가 없어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노골적인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인주시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조국(차승원)의 표현대로 '고인물' 인주시에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인주시청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가 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연인 3부작'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누군가는 김은숙 작가가 시청을 배경으로 정치드라마를 썼다고 하면 덮어놓고 '시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전작과 마찬가지로 <시티홀>에도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 조국과 10급 공무원에서 시장으로 극적인 변신을 꾀한 신미래의 로맨스가 등장하지만 드라마가 방점을 찍는 것은 '정치'다. (조국과 신미래는 <파리의 연인>의 복제라 해도 될 만큼 전형적인 김은숙 작가의 남녀주인공이다)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현대는 초 민주주의시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시대가 우려할만한 사실이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라 암묵적 동조다' 등 주옥같은 명언으로 시작하는 <시티홀>은 인주시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꼬집는다. 회의장에서 높으신 분들이 맥락 없는 호통을 치는 모습이나 위기를 속보이는 임기응변으로 무마하고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을 '관광'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현실 뉴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렇다고 <시티홀>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정치드라마인 것은 결코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갈고 닦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유머를 버무린 풍자와 조롱은 딱 개그 프로그램만큼 날카롭고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안에 너 있다'처럼 뜨거운 멜로대사가 명대사로 꼽혔지만, <시티홀>에서는 '정치란, 정당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 떨리는 것' 같은 대사들이 명대사로 꼽힌다.

그러나 <시티홀>은 <파리의 연인> 못지않게 동화적 판타지 드라마이기도 하다. 평범한 30대 여성 신미래가 인주시의 원더우먼으로 나선 계기는 우연이었다. 동네에서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같은 존재인 신미래는 카드빚 2 천만 원을 위해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에 나가 기적처럼 1등을 하지만 시 예산을 빼돌릴 요량으로 미인대회를 주최한 시청은 그녀에게 달랑 100만원을 쥐어준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쓰린 마음을 다독이려던 미래는 시장이 점점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1인 시위에 돌입하고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얼떨결에 시장 선거에 나가 당선된다. 물론 미인선발대회 출전부터 시장 당선까지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 없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어쨌든 미래는 시장이 된다.

이정도 인생역전만으로도 신문 1면에 나올 법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미래를 시장으로 만들어준 건 조국의 정치적 지원이나 거짓 공약이 아니라 그녀의 따뜻한 품성이자 솔직함이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이 시장 못되란 법은 없지만 작금의 세태를 비춰보면 현실 정치에서는 가난한 유학생이 재벌2세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실현가능성 낮은 판타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반영적인 장치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곳에서 외치는 <시티홀>의 핑크빛 이상주의는 '말도 안 돼'라는 볼멘 불만 대신 이 판타지를 수긍하고픈 감정을 먼저 불러일으킨다. 종종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등장해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등의 크고 작은 실수도 눈감아 주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진짜 드라마의 싲작은 시장이 된 지금부터다. <시티홀>의 이상주의가 대안 없는 백일몽으로 그칠지 작게나마 개혁의 발판을 마련할지는 김은숙 작가의 펜 끝에 달려 있다.

만고불변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도 변하지 않을 듯 했다. 그만큼 그가 창조한 드라마의 세계는 견고했다. 하지만 찬사와 비난 속에 '연인 3부작'을 뚝심 있게 마친 그는 보란 듯이 다른 영역으로 발을 넓혀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아직 완벽한 성공이라고 단정 짓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성공한 변신이라고는 일컬을 수 있을 듯하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보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긴 셈이다.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총 18명 참여)
kisemo
잘봤습니다~   
2010-04-01 16:32
tonality
다음 드라마가 기대됩니다~^^   
2009-06-30 00:49
jkcy1211
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들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드라마 만들어주시길~~   
2009-06-25 15:48
okane100
이분 드라마 재미있어요.앞으로도 좋은 드라마 써주시길 바랍니다.   
2009-06-22 14:31
mvgirl
특별하다기보다는 너무 뻔해서...   
2009-06-20 18:30
river12424
진짜 잼있음 ㅋㅋ   
2009-06-19 18:43
plugplus
전문직의 달인같아요~~~   
2009-06-19 13:08
gunz73
시티홀 재밌어요!! 미래조국 짱 ㅋㅋ   
2009-06-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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