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이름은 영화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다. 쉬운 예로 왕가위 감독하면, 미학적으로 빼어난 영화들이 떠오르고, 팀 버튼 하면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머리 속을 멤돈다. 곽경택이라는 이름에서는 <친구>, <챔피언>과 같은 남성성 짙은 작품들이 생각나고, 김기덕 감독은 세상에 대해 삐딱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렇다. 유명한 감독들에게는 나름대로 색깔이 분명히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고 <반 헬싱> 같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미이라>가 생각난다. <빌리지>, <싸인> 같은 작품들은 처음부터 감독을 스타마케팅의 축으로 삼고 영화를 홍보한 작품들이다. 멜 깁슨, 브루스 윌리스 보다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적 감수성이 관객들에게 훨씬 크게 어필한 탓이다.
그렇다면, 올 겨울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손꼽히는 <알렉산더>라는 작품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인가. <플래툰>이 그랬고 <7월 4일 생>과 <U-턴>, <애니 기븐 선데이>가 그랬듯이 올리버 스톤의 영화라 함은 상당히 정치적이면서 전쟁에 대한 감독 개인의 의사표현이 분명한 작품이 일단은 연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알렉산더>의 개봉 전부터 올리버 스톤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영웅에 대한 이야기와는 필시 다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예언이 쏟아졌고, 그 예언은 현실로 드러났다. 콜린 파렐,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안소니 홉킨스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등장보다도 오직 올리버 스톤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에 <알렉산더>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플래툰>이라는 걸작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영화인생은 작가주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을 만났을 때부터 결정지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평단의 호평 속에서도, 수상과 흥행성공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 아래서 영화를 익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보증수표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완성도와 흥행은 별개의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였는지 올리버 스톤은 11편이나 되는 시나리오를 써서 할리우드에 입성했음에도 그 11편의 시나리오가 단 한편도 영화화 되지 못하는 불운함으로 본격적인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쓰레기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던 <악마의 손>의 각본과 연출로 데뷔전을 치룬 올리버 스톤은 이어 <살바도르>를 저예산으로 만들어내지만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을 당하고 만다. 실의와 좌절 그리고 영화계의 외면 속에서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등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을 기사회생 시킨 것은 다름 아닌 <플래툰>의 성공에서부터다. 500만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영화사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던 프로젝트. 하지만 평단은 올리버 스톤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월남전에 직접 참전했던 경험을 살려 전쟁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전쟁으로 희생되어야 헀던 젊은 영혼들에 대한 슬픈 전쟁영화 <플래툰>은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여전히 명작으로 추앙 받고 있을 정도다. 물론 이미 <살바도르>의 완성도를 지켜본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그가 쓴 이전의 시나리오들을 영화화 하기 시작했었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 그 유명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코난>, <스카페이스> 등이다.
그리고 계속된 올리버 스톤의 정치적인 영화들
이후 사회성 짙은 작품을 연거푸 만들어 내는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를 시험하듯이 도전적인 작품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 <토크 라디오>등은 필시 미국 사회의 치부를 건드리고 비판하고 있음에도 <플래툰>의 충격으로 인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한다. 그러나 고만고만한 작품들로 약간 주춤하던 그의 행보는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한 또 다른 반전영화 <7월 4일 생>을 내 놓으면서 다시 한번 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세기의 미남을 덥수룩한 외모의 전쟁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올리버 스톤의 노력은 다시 한번 아카데미상에 도전하게 했고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으로 화답 받게 되었다. 이후 극도로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JFK>와 록가수의 일대기를 통해 사회 변화와 문제점을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도어즈>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필시 흥행에는 성공치 못했지만 끊임 없이 회자되고 읽혀지는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올리버 스톤의 브랜딩이 진행되었다.
다시 한번 전쟁의 상처를 다룬 <하늘과 땅>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외곡된 시선을 버리지 못했다는 다소 심드렁한 반응을 얻고, <내추럴 본 킬러>의 극단적인 폭력은 미디어와의 대립을 낳는 결과를 얻는 등 다시 한번 슬럼프에 빠졌던 올리버스 스톤 감독은 미국 정치계의 치명적인 치부인 <닉슨>을 만들어 내면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한 감독으로 찍히고 만다. 데뷔시절 같았으면 또 다시 방황의 길로 들어섰겠지만, 이제는 어떤 경지에 이르러서 인지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래리 플린트> 같은 문제작을 제작하거나 <에비타>의 각본을 쓰는 등 오히려 상황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다.
이후 그가 내 놓은 작품은 보다 개인적이면서 그 작은 이야기에 사회적인 이슈를 담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숀펜, 제니퍼 로페즈, 닉 놀테, 클레어 데인즈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U-턴>이 그랬고, 미식축구를 정치에 빗댄 알 파치노,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가 그랬듯이 러브 스토리와 스포츠를 사회와 정치로 빗대어 이야기하는 그의 솜씨는 그가 아직까지 감독으로서 역량은 다시 한번 검증하는 결과를 낳는다.
꿈의 프로젝트 알렉산더, 올리버 스톤식으로 태어나다!
그런 올리버 스톤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시도한 대작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알렉산더>가 그 주인공. 제작비만 2억 4천만 불을 쏟아 부은 <알렉산더>의 규모는 역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작을 모두 합한 것만큼이나 거대하다. 캐스팅도 이전 그의 작품들만큼 화려한데, 콜린 파렐,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 발 킬머, 자레드 레토 등 출연진만으로도 감독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올리버 스톤에 의해 재 해석 된 <알렉산더>는 그 위용 때문에 다른 영화사에서 다른 배우들을 데리고 준비하던 같은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결정적인 되기도 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언론은 예전 그의 작품에서처럼 열띤 찬반 양론을 펼치며 영화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영화에 대한 결정적인 평은 관객들이 직접 내리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영웅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그리스 본국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이 걸리는 등 다양한 이슈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벌써부터 아카데미 영화제에 강력한 후보로 손꼽히는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인물이자 어쩔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객체로서 그를 다루며 스펙타클한 영상을 배경으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올리버 스톤의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궁금하게 여기지 않을 수는 없는 올 겨울 최고의 액션 대작 <알렉산더>는 12월 31일 국내에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