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05년,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우리들의 증조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들은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하는 것이 문득 궁금하다. 야구광 김현석 감독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한국야구사’를 펼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엔 조선 최초, 최강이었던 황성 YMCA 야구단이 있었다. ‘황성 YMCA가 다른 팀을 꺾는 것은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져야만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두던 박세리, 박찬호의 쾌거를 날밤까고 보는 동안엔 더러운 정치판 그리고 부패한 사회의 온갖 비리와 모순을 잊을 수 있어 마냥 기뻐했고, 대리만족 또한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 YMCA 야구단 >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신인감독의 데뷔작이 많았던 올해. 또 하나의, 그렇지만 확연히 수준이 다른 데뷔작을 추가한 김현석 감독은 특이하게도 <사랑하기 좋은 날>,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의 야구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주로 써왔었다. 특히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노팅 힐>에 앞서 만들어졌던, 유명 배우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주인공 남녀가 처한 상황 묘사의 진실성, 그리고 리얼하고 코믹한 대사들로 인한 오락적인 측면에 있어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이력을 가진 감독에다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장하는 제작사 명필름의 네임 밸류, 캐스팅 1순위인 송강호, 김혜수 등의 호화 출연진, 일제 시대를 그린 시대극임에도 서사적이거나 드라마 위주로 가지 않은 고정관념을 깬 코미디적 요소까지. < YMCA 야구단 >은 여러 모로 성공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관객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에 충분하다.
후자인 감동은, 스포츠에 있어서는 뭐니뭐니해도 게임의 승리에 있다. ‘돼지 오줌보 축구공’만 차다가 야구공을 처음 본 이호창(송강호)이 ‘공이 작아졌다!’라고 외치고 ‘스트라이크’를 못 알아들어 빼어날 수, 던질 투, 즐거울 락자를 쓴 ‘수투락’으로 일러주던,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수준이던 황성 YMCA 야구단이 드디어 일본군 클럽팀과의 경기를 맞아 훌륭하게 게임을 치르는 통쾌함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더욱 훌륭한 것은 이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의 왕복이 능숙하게 연출됨으로써 페이소스까지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 최초, 최강 베쓰뽈팀의 이야기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모종의 압력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독립 운동과 황성 YMCA 야구단의 항일 정신을 애써 조화시키려는 노력이나 친일파 아버지를 둔 포수 류광태(황정민)와 ‘을사 50적단’인 투수 오대현(김주혁)의 만들어진 듯한 갈등구조를 보면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관객된 입장에서 기분좋은 휘돌림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야구를 소재로 한우물을 판 끝에 ‘코믹 스포츠 시대극’ < YMCA 야구단 >을 미끈하게 뽑아낸 김현석 감독은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