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시리즈)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쫄깃한 재난 블록버스터 VS 사족 무성한 재난 영화
은영 항공재난이라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에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의 초호화 배우진, 그리고 <연애의 목적>(2005)부터 <관상>(2013) <더 킹>(2017)까지 작품성 겸비한 흥행작을 연이어 내놓은 한재림 감독 작품이라는 데서 기대가 컸던 작품인데요. 한마디로 실망이에요.
금용 저는 재미있게 봤어요. 일단 초반부가 흥미로웠고, 여러 메시지를 담았지만 지나치게 사회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또 후반부로 갈수록 신파가 강해진다는 의견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보는 내내 쫄깃하게 봤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늘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재하 영화를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전반부의 플러스 요인을 후반부의 마이너스 요인이 다 깎아 먹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는 생각이에요. 중반부는 그냥 납득할 만하다 정도의 수준이었고요. 뒤로 갈수록 1절, 2절… 요즘 말로 뇌절하는 느낌이었어요. 장단점이 뚜렷해서 영화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올 것 같아요.
은영 사족에 사족에 사족, 거듭되는 신파, 이런저런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뭐 다 이해한다 쳐도 결정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지점이 뭐냐면요. 하와이행 비행기 그러니까 인천에서 호놀룰루까지 왕복 16시간 정도거든요. 일부러 찾아봤어요!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잠깐 들린다 해도 20시간 정도인데 이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특히 ‘인호’(송강호)는 어렵게 구한 치료제가 변형된 바이러스에도 효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몸에 바이러스를 투여하잖아요. 몇 시간 안에 그 반응을 알 수 있다는 게 참…. 판타지나 공상 과학 영화가 아니니 최소한의 현실성은 담보해야 하는데 말이죠.
재하 항공 테러인데 그 수단이 바이러스라는 점이 무엇보다 신박했어요. 보통은 폭탄 등 물리적으로 실체가 있는 방법을 동원하니까요. 이 바이러스 테러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궁금했는데,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돼 버린 거죠. 바이러스는 그 원인을 찾는 데도 백신을 개발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속성이 있어요. 그러니 치료제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가 다시, 없는 쪽으로 선회하는 데다 급기야는 자기 몸에 투여하는 사람이 등장해요. 이때 전 ‘인호’의 딸이 너무 불쌍하더군요. 엄마는 비행기에 타고 있고, 아빠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잖아요. 게다가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착륙을 거부당하면서는 바이러스 테러 자체를 활용하기보다 정치·외교적으로 풀어내는 모양새이기도 해요. 그러다가 자국에서조차 착륙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죠.
은영 그러니까요. 국민들은 치료제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기의 착륙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리고, 탑승객들은 이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비행기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게 되죠. 급기야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착륙하지 않겠다고, 다 같이 죽는 방향을 택하잖아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고 할까요. 이때 임시 기장인 ‘재혁’(이병헌)을 비롯해 승객들은 정말 그들만의 감동의 도가니에서 절절 끓더군요!
금용 고백하자면(?) 전 이병헌 배우가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이 대사할 때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웃음) 평소 신파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지도요.
금용 전 재미있게 봤다고 했잖아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라는 ‘진석’(임시완) 캐릭터가 신선했어요. 그가 사는 곳이 강남의 재개발 아파트라는 설정이나 뛰어난 학자였던 엄마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같은 가족 이슈 등 사회문제를 많이 담고 있지만, 보면서 이런 점이 크게 인식되지는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진석이 비행기를 타는 등 테러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과 인호가 항공 테러를 제보 받아 진석의 뒤를 캐내는 과정을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초반부는 매우 긴박해서 끝까지 흥미롭게 봤던 것 같아요. 또 재혁의 어리지만 배려심 많은 딸,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 학생들을 챙기는 인호의 아내 그리고 저 혼자 살려고 이기적으로 구는 비즈니스석의 남자까지 재난을 맞닥뜨린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준 점도 좋았어요.
최고의 배우진 VS 과한 배우진
재하 ‘역시 송강호다!’ 싶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납득하게 하는 데다 간혹 웃음까지 터지게 하는 건 전적으로 그의 개인기 덕분이에요. 20년 넘게 비슷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매번 맡은 역할 그 이상을 해내는 배우라 진정한 대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은영 연기하면 손에 꼽히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잖아요. 솔직히 감히 하향 평준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우 한 명 한 명 워낙 네임드다 보니 분량을 일부러 챙겨준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으로 국토부장관 ‘숙희’(전도연) 캐릭터인데요. 도대체 왜 국토부장관이 바이러스의 원출처인 외국계 제약 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몸싸움을 벌이나요? 또 마지막 청문회 장면은 왜 있는 거죠? 거기다 부기장(김남길)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재혁’이 대신 조종하게 되는 상황인데,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부기장이 재혁의 말에 일일이 대꾸해주는 것도 너무 웃겼어요. 물론 둘 사이의 과거 개인사를 해소하고 이를 통해 재혁이 비행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설정이겠지만요. 그걸 꼭 말로 해야 했을까요. 그냥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금용 비행기 안에서 분투하는 이병헌, 비행기 밖에서 해결책을 찾는 송강호,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힘쓰는 전도연. 이렇게 세 축으로 그들의 입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게감 있는 전도연 배우가 국토부장관을 맡은 건 이상하지 않은데, 캐릭터 자체가 다소 비현실적이고 붕 떠 있기는 했어요. 전 (전도연 배우의) 분량이 적아서 아쉽지, 워낙 연기를 잘해서 그런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어요. 재난 상황에서 아이를 지켜야 하는 아버지로 분한 이병헌 배우는 캐릭터 자체가 원체 전형적이라 크게 새로운 점은 없었어요.
재하 <비상선언>에서 제일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코 임시완 배우죠! 그의 죽음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금용 동감입니다! 임시완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이코패스 살인마 캐릭터에 잘 어울릴지는 몰랐어요. 이전까지는 잘 생기고 예쁜, 청춘 캐릭터를 주로 했잖아요. 배우 특유의 느리면서도 조곤조곤한 말투가 있는데, 이 톤으로 ‘승객들이 다 죽기를 원해’ 이런 대사를 치니까 느낌부터 확 달랐어요.
이 장면은 좀!
재하 미국과 일본 그리고 자국에서도 착륙을 거부당하고, (지상에) 내려 간다고 했다가 안 내려 간다고 입장을 바꾸는데 마치 상대 없는 밀당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보면서 기함을 토한 대사도 있습니다. (웃음) 마지막에 비행기가 뺑글뺑글 돌면서 이병헌 배우가 비상착륙을 시도하잖아요. 이를 지상의 상황실에서 지켜보면서 ‘연료가 조금 남았었나 봅니다!’ 하면서 중계하는 장면에서는 ‘제발 설명하지 마!’ 이런 심정이었어요.
은영 맞아요. 상황 하나 하나를 다 짚어주고, 이를 또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하잖아요. 관객이 스스로 캐치할 여백이 때론 필요한데 말이죠. 너무 다 설명하려는 데서 (감독이) 어떤 강박감이 있나 싶었어요. 특히 마지막 국토부장관 청문회에서 숙희가 진석이라는 인물을 정의하는 장면은 정말 ‘굳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러닝타임이 140분으로 긴 편인데 쳐낼 건 쳐내고 좀 더 콤팩트 있게 가져가지 않은 부분이 아쉽습니다.
금용 저도 청문회 장면은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에요. 또 제약회사 앞에서 (송강호와 전도연 배우가 벌이는) 두 번의 육탄전 역시 별로였어요. 그렇지만 다양성 차원에서 규모 있는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를 시도한 점은 높이 사요. 관객으로서는 좋아하는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고, 장르적으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진 점도 확실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_<비상선언> 스틸
2022년 8월 3일 수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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