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고 있는 하늘은 이미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언제부터 먼지 쌓인 동화 속에 숨어버린 무지개는 그러나, 여전히 신비로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날이고 오래된 책장을 훑으면 후드득 영롱하게 떨어지는, 흐려진 세월에도 선명한 일곱 빛깔이란.
그래서 무지개는 기억 속의 판타지이다.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린 그것은, 우리의 촉각이 닿을 때마다 놀랄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뿜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무지개는 옛 사랑과 연결된다. 무의식 속에 접어둔 어떤 사연은 아무리 긴 시간을 건넌 후에도 그 짜릿한 울림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법. 더욱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일곱 색깔의 조합이란 가장 유치하면서도 찬란한 사랑의 감정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의 진술에 의해 조각난 단서들은 아기자기한 비밀을 던지며 진수의 추적을 요리조리 따돌린다. 대체로 무난하게 이어져 가던 사랑의 추적과정은 그러나, 채혜영의 등장으로 삐끗한다. 가장 높은 긴장감을 유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그 캐릭터는, 오히려 조작된 혐의가 짙은 어색함으로 이야기에서 툭 튄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등장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스르르 꼬리 내리고 마는 퇴장까지도 덜 다듬어져 거칠다.
초반부, 진수의 과거와 현재로 갈라져 있던 영화의 두 줄기는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진다. 스릴 넘치는 옛 사랑의 추격전 또한 희석된 채 싱거워지고, 이제 남은 일이란 뒤엉킨 하나의 물줄기가 연애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 뿐. 숨소리에 묻어나는 기억, 시야와 일치하는 환상의 플롯은 [오버 더 레인보우]의 사랑 또한 필연과 동여매 버린다. 숱한 러브스토리의 고전적 교훈 '사필귀정'이란 떨어지는 신선도에도 불구, 역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든든한 보증서임이 틀림없다. 사람이 사랑을 공감하는 한.
[오버 더 레인보우]는 사랑의 기억을 건드리는 영화이다. 잊혀진 사랑을 현재로 소환하려는 진수의 간절한 노력에는 일종의 향수와, 미지의 세계로의 동경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얽혀 있다. 경험된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익숙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느낌. 회상 속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낯선 감상. 영화는 많은 이가 공유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거슬러 식상한 사랑의 풋풋한 틈새를 노린다.
어긋난 사랑이 만나는 과정. '영화니까'로 압축되는 사랑의 운명은 '영화라서' 위안과 희망을 안긴다. 비 내리는 두 마음이 어울려 구름 걷고 난 장면에 맺히는 무지개는 분명 손에 잡힐 듯 하다. 친구의 시시콜콜한 연애담처럼 알콩달콩 재미있는 영화. '비를 타고 오는' 사랑 속 이정재의 경쾌한 몸놀림도 즐거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