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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니아로서 창피하지 않을 작품을 할겁니다! '가능한 변화들' 정찬!
2005년 3월 19일 토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정찬을 만나기 전에 사실은, 조금 얼어있었다. 많이 생각하고, 열정을 다하면서 순간순간 많은 느낌을 간직하고 싶지만, 부족한 존재인 탓에 현실은 늘 변변치 못한 모양새로 초라하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쉽지않은 오뚜기 게임을 지속하는 와중에, 정찬과의 만남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슬그머니 안기는 것이었다.

그가 쓴 글, 그가 스크린속에서 보여주는 연기, 그가 이런저런 매체에서 남기는 말들. 그런 모든 것들이 회오리바람처럼 한데 혼융돼, 쭉정이같은 빈 속내를 들키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인터뷰 직전까지, 불안한 시계추로 똑딱이고 있었다.

정찬은 똑.똑.한 배우다. 그와 가진 길지 않은 인터뷰 시간동안, 기자는 스크린 안팎에서 보여진 그의 시니컬한 표정과 언행들이 대중을 어필하기 위한 이미지메이킹이나 쇼가 아니었음을 또렷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고단한 삶이지만 맵고, 다부지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그리하여 그 들끓는 열정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염시키는 사람들. 카페안의 음악 소리가 정찬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삼켜버리는 예민한 순간에, 삶의 고민들, 그 욕망과 상실, 끝장을 보려는 예술정신 등등 뭔가 날카롭고 아픈 생의 감각들이 밀려들었다. 왠지 모르게 정찬은 그러한 내면의 파장을 일으키는 매력있는 배우였다...

드라마 <토지>를 비롯해 요즘 근황은요?
<토지> 찍고 있구요, 10월에 방영되는 TV문학관. 또, 영화 두 편 진행 중이에요. 아직 계약서를 안 쓴 상태라 구체적으로 말씀 못 드리지만, 아마 둘 다 좋은 역, 선한 역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모일간지 인터뷰 기사 보니까 민노당 활동에 대한 언급이 메인처럼 나왔던데 그런 외적인 활동이 부각되는데 부담이 생기진 않나요?
음, 민노당 분들이 들으면 되게 섭섭해 하시겠는데요. 별로 활동 안 하는데...

지금 보면 정찬씨한테 붙은 수식어는 그렇게‘의식있는 배우다’, ‘지적인 배우다’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담이 있을 듯 한데요.
별 부담은 없구요, 대외적인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활동을 잘 못하는게 부담스럽죠. 음, 한편으론 그런 이미지가 굳혀지지 않을까라는 부담이 있어요. 어차피 제 본업은 연기자니까 연기자한테 따라붙는 국한된 수식어, 혹은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런 활동을 한 이유도 있거든요. 다가 아니라 이유 중의 한 부분인데, 그쪽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게 아이러니하죠. (웃음) 결국 만들고 깨고, 만들고 깨고 하는 그런 작업들이 더 어려운 거 같아요.

<로드무비>는 1년만에, <가능한 변화들>은 2년만에 개봉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진 않았나요?
아니요. 마음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에. (웃음) (<로드무비>로)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고, <그집앞>이라는 영화는 첫 노개런티 영화고, 여성영화제에서 몇 번 상영된거 외에는 없었거든요. 오히려 첫 작품인 (민병국) 감독님이 노심초사 하셨을 것 같아요. 모스크바, 베를린, 이태리, 도쿄, 왔다갔다 하시면서 감독님이나 투자하신 분들, 저희 천사같은 사장님은요.

이번 <가능한 변화들>에서도 느낀건데, <로드무비>도 그렇고, 정찬씨 연기나 캐릭터는 분명 흡입력있고 인상적이지만, <로드무비>에서 황정민씨가 맡았던 ‘대식’이나 <가능한 변화들>에서 김유석씨가 맡은 ‘종규’에 비해 강렬함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찬씨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아, 그럼요. 거기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로드무비>같은 경우는 황정민씨 배역도 얘기가 됐었어요. 음, 제 첫 영화이기도 했지만, ‘변화의 묘’랄까 이런 것들을 너무 많이 욕심내면 오히려 언밸러스한 상황을 만들어서 영화를 깍아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TV에서 구축한 이미지 때문이라도 황정민씨가 했던 노숙자 배역을 했다면 확실한 이미지 변신이 됐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만에 하나 역부족이면 영화의 마이너스적 요인이 되는 거죠.

제가 생각할때도 <로드무비>의 ‘석원’은 TV에서 구축한 이미지의 최종판이죠. 제가 맡았던 맨날 전문직에 여자 둘 사이에서 멜로만 하던 인물이 쇠락해서 홈리스가 되고, 인생의 또다른 눈을 깨우친다가 된다고 할까. 그렇게 제 이미지 선상을 잡는게 보편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고사를 했어요.

음, <가능한 변화들>에서는 사실 ‘종규’역을 하고 싶었죠. 전작에도 그런 역할을 했으니까, 배우로서 당연한 욕망이고 욕심인데, 제가 딱 들어갈때쯤 벌써 모든 캐스팅이 끝났더라구요. (웃음) 또, ‘종규’역을 맡은 사람이 제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유석이 형인데, 우리들끼리 얘긴데, 차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에요? (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의 동일선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두 캐릭터는 다르다고. 두 영화가 다르듯이 말이에요. 나름대로 새로운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했죠.

<가능한 변화들> 기자간담회때 감독님이 워낙 단답이시라, 정찬씨가 거의 모든 질문들에 성실히 답변해 주셨잖아요. (웃음)
(웃으며) 제가 총대를 매서 그래요. 유석이형 옆에서 대답 안 하고 가만있잖아요.

민병국 감독님이 끝나고 ‘미안하다’라든가 그런 말씀은 안 하셨나요? (웃음)
그런 말은 안 하셨고, 처음으로 미안하다구 그러시더라구요. 찍을 때 감독님이 뭔가 화두처럼 던지시거든요. 그럼 우리가 찾아가는 건데, 감독님과 취향이 맞든 불화가 생기든 화두를 찾아가는 과정에선 분명히 공부를 하게 되니까 저는 그런 부분에 목적을 둬서 불만은 없거든요. 영화가 2년여만에 결국 개봉되니까, 감독님이 한 그 말은 왠지 좀더 쉽게 만들었어야 되지 않았나. 배우들하고 좀더 쉽게 대화를 했어야 되지 않았나. 그런 의미? (웃음) 잘 모르겠어요. 감독님이 그러시니까 ‘예’하고 말았는데...

기자간담회때 민병국 감독님이 이렇게 말했었잖아요. 배우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에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도 알고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본인도 그땐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말해서 사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거든요.
(고개 끄덕이며) 그러니까 질문을 받으면, 저희는 또 감독님하고 작업한지 2년여가 지났잖아요. 이거저거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라는게 벌써 형성이 됐기 때문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죠. 전가하는건지 아니면 묵비권 자체가 영화에 대한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만은 않거든요. 최소한 이것이 답이다라고 마치 플레이스테이션의 오락 매뉴얼처럼 답을 해줄 순 없어도, 여러 가지 가정선상에 있다라고 최소한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여러 계층의 관객들이 보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얘기해줘야 할것 같았죠. 근데 그 정도도 표현을 안 하시니까...

정찬씨도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예전에 봤던 느낌과 지금 개봉을 앞두고 본 느낌이 다른가요?
네. 달라요. 전주영화제때는 그냥 ‘내가 저렇게 연기를 했구나’정도였는데, 지금 와서 봤을땐 ‘나한테 저런 위선적인 이중성이 있구나’라는 생각,‘어, 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갖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날 저녁에 스탭들하고 회식을 하는데 별로 있고 싶지가 않더라구여. 그런 생각 때문에 너무 불쾌한 거에요. 마치 ‘생활의 발견’처럼 나를 새롭게 발견한 거 같아서. (웃음). 그래서 먼저 나왔어요. 나와서 극장에 혼자 가서 영화를 봤죠. 다른 사람들의 연기, 얘기를 보면 풀어지니까.

어떤 영화를 보셨는데요?
영화를 좀 잘못 골랐어요. <숨바꼭질>을 봤는데 제가 호러, 심리스릴러 되게 좋아하는데 대배우도 저런 실수를 하는구나 생각했죠. (웃음) 보고 나오니까 좀 풀어지긴 했어요.

<가능한 변화들> 포스터 촬영때 술을 좀 마시고 찍었다는 후문이 있던데요?
술을 마시고 안마시고는 별로 중요한것 같진 않구요. 전 베드신 찍을때도 술을 마셔보고 찍은 적이 없는데, 어차피 베드신보단 차라리 속편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중요부분은) 화이트로 가리고, 사진작가분도 감독님 친형님이시고 하니까. 오히려 처음에 술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풀이를 해나가는 과정은 사실상 여자배우분들의 동참을 위해서 한 건데...(웃음) 뭐, 그러다 보니까 영화가 마치 두 남자의 영화인 것처럼 됐는데 그렇지 않아요. 네 명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자들의 환경, 이중적인 심리 등에 대해서 신소미씨나 윤지혜씨가 맡은 인물들에 여자분들도 공감할 거라 생각해요.

<로드무비>도 그랬지만 이번 <가능한 변화들>도 평단쪽에서만 주로 좋아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인데...
어, 기자나 평론가들도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요?

그런가? (웃음) 아무튼 일반시사회 반응을 봐도 관객들이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음, 관객들을 많이 배려 안 했죠. 초기에는 비현실과 현실에 대해서 두 톤으로 분명하게 설명해주자, 연기톤까지도, 뭐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가 모호한 선상으로 가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저도 딱히 할 말이 없어요. 감독님의 의지고, 마인드니까.

걱정스러운게 <로드무비>도 흥행이 안 됐었는데, <가능한 변화들>도 그러면 어떡할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관객들이 뒤늦게 발견(?)하는 식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당연한 거 아니에요? 관객들이 뒤늦게 발견한다...글쎄요...그러기에는 좀 많이 힘들고 불쾌함을 유발시킬 수 있는 영화니까. <버팔로 66>같은 경우는, 물론 비슷한 영화는 아니지만, 뭐랄까 좀더 포용적이에요. 코믹한 부분도 분명히 내재돼 있고, 사이사이에 마치 주사기로 주입하듯이 감정을 쭈욱 몰고가는데, 우리 영화는 배에 깍지낀 손을 올려놓고 멈춤없이 두 시간 동안 지켜봐야 하잖아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요.

내가 만약 7,000 내지 8,000원을 내고 장르영화적 재미를 느낀다든가 좀 간편하게 내 삶에 대해서 뭔가 얻고싶다라는 사람들한테는 불편하죠. 그래서 솔직히 얘기해서, “많이 봐주세요”그런 식의 말은 못하겠어요. (웃음)

<가능한 변화들>도 내러티브가 두고두고 얼마나 치열하게 분석될진 모르겠지만 <로드무비>의 경우, 나중까지도 참 재밌는 평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토니 레인즈같은 사람은 ‘오해받은’, ‘미래의 걸작’, ‘위대한’식의 평가를 내린 반면, 국내 모평론가들은 ‘이성애자를 불편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성애자를 감동시키는 영화’라는 식으로요. 혹시 읽으셨나요?
저는 양쪽 말 다 수용해요. 우리나라쪽 평론가들이 하신 얘기...김인식 감독님이 들으시면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가 퀴어 영화는 아니에요. 냉정히 말해서요. 어떤 면에서, 동성애자의 입장이나 동성애자가 갖고 있는 일련의 상처, 정확히 따져놓고 본다면 부적절하게 표현된 부분들이라든가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근데 제가 나온 영화라서 그런게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나라 로드무비 중에는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마니아 입장에 서서 얘기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선 장르적 특성이나 소재주의적인 부분도 잘 차용했고, 전개방법도 무리없었고, 괜찮았던 것 같아요. 자화자찬 같지만. (웃음)

그리고 전 <가능한 변화들>도 일종의 로드무비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 그러냐면 로드무비는 진짜 비주얼 그 자체가 로드무비라는 장르적 특성 그대로 살려서 가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여행에 대한 이미지 그대로 갖고 있는, 그런데 <가능한 변화들>은 그런 여행을 하되, 풍경만 보는게 아니라 지질학적 특성이라든가, 또는 그 근처 수목의 특성을 조사하면서 지나가는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이면에 숨겨진 애증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가는 영화.

일종의 내면로드무비요?
네.

개인적으로 아직도 기억이 나거든요. 채시라씨가 정찬씨를 소개하면서 “정말 잘 생기지 않았아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그때 저도 김지호, 배용준 등과 더불어 청춘스타로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잊혀졌고, <로드무비>로 다시 옛 생각이 뇌리에 콱 박히고...(웃음)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웃음)

저와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다른 인터뷰 기사를 찾아서 보니까 글의 흐름이 거의 비슷한 거 같더라구요. 정찬씨의 그런 출발, 그후 2001년도 사건이 터지고, 그러면서 뭔가 남다르고, 속깊은 행보를 걸어가는 배우라는 식의 구성이요. 어떻게 보면 정찬씨는 소문난 영화마니아고, 의식적인 부분에 있어서 일정하게 견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 사건’이 극적인 테마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사실 그런 부분도 있었거든요. (망설이면서)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제 동생이 운동권이었어요. 제가 대마초 사건으로 들어가기 정확히 일년전 용산경찰서에 지금은 없앤다 어쩐다 말이 많은 보안법, 이적표현물 간행 및 배포 죄목으로 2년간 도망다니다 잡혀서 들어가 있었어요. 그때 유치장 면회소에 저,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어요. 그리고 정확히 일년후에 제가 거기 들어와 있고, 동생, 아버지, 어머니가 면회를 하더라구여. (웃음)

제가 유치장에서 나와서 민변이나 이런 쪽에다 얘기를 했던 여러 가지 사항들이 있었거든요. 영장도 없이 제 인권 자체를 무시하고 현장을 찾아와서 소변검사를 하자 했는데 사실 절대 나올 리가 없는데 3개월전부터 나왔다라면서, 자백을 유도하는 그런 상황들...나중에 서류에 올라갈땐 없는데, 본인이 자백을 했다라는 식으로 자기네들 실적만 올리기위한 일종의 표적 수사...11월달만 되면 으레 연예인들만 건드리는 정치적 스캔들 언론플레이...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상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입맛이 싹 달아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 정말 많은 극적인 변화들을 주더라구요. 정말로요.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을때 심지어 절반이 변화했다면, 내가 직접 겪다보니까 100% 변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기사에 대해서 굳이 거부감은 없어요. 다만 중요한 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정치는 싫다, 그런 것들이 잘못돼 있다 어쩐다 생각만 있었지 행동을 한다든가 매스미디어에다 내 의사를 표명한다든가 그러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보안법 피해자 가족들이나 운동권 가족들 등을 보면서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실제로 제가 겪으니까 알겠더라구여. 그래서 요즘 망언을 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해요.

음, 대마초 사건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고르는 시각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글쎄요, 드라마나 영화에선 사실상 제 캐릭터적인 만족이나 욕심, 또는 제가 앞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되고 영역을 넓혀야 하는 부분, 제 비즈니스니까 일적으로 생각을 해요. 심지어 경제적인 부분까지 다 고려해서 말이죠. 다만 살아가는 지침들 사이에 그런 것들을 접목시키죠. 어차피 제가 현재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둥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어떤 일에 기부를 하더라도 경제력이 있어야 되니까...일은 일이고 제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그냥 가치관이라는 생각이에요.

<가능한 변화들>에서 정찬씨가 맡은 ‘문호’는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는 결혼생활이지만 뭔가 답답하고 질식할 듯한 분위기를 느낀다는 점에서 사실 저런 남자들 많을거야라는 느낌을 던지거든요. 예전에 어떤 기사에서, 정찬씨가 해가 지날수록 한 여자를 책임진다는 것이 자신없다는 얘기를 한 걸 봤는데, 혹시 결혼과 관련해 문호와 같은 느낌 때문에 주저하시는 부분도 있나요?
네. 가정을 구성한다는건 대단히 중요한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이란 특성이나 그런 것들이, 굳이 특성이라고 하면 여자분들이 뭐라고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베이스는 어차피 동물이잖아요. 여성의 동물적 특성도 있듯이 말이에요. 그걸 이성과 교육과 지식과 지혜로 많이 컨트롤하는거죠. 그런 면에서 결혼안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웃음) 최소한 내 자신의 양심이라든가 또는 많은 약속을 깨지 않는다는 면에서...자유로울 수 있고...

정찬씨는 주로 감독님들과 무척 친하게 지내셨을 것 같아요.
지적 허영인지 아니면 토론의 자유만 차용하는 건지 모르지만, 일단 뭔가 하나를 놓고 열정이 끓어서 계속 얘기하는 거나 대화하는 부분이 재밌어요. 분명히 의견차이가 있어서 충돌하더라도, 감독과 배우가 어떤 수직선상에 있다면 얘길 아예 안 하겠지만, 저는 수평선상이라 보거든요. 결국 두 사람의 의도는 ‘이 작품 잘 만들고 잘해보자’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예절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얘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아까 계약 앞두고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차기작들이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보면, 정찬씨를 평가할 때 ‘아, 정찬은 대중적으로 인지도있는 감독의 장르 영화보다는 아웃사이더적이고 뭐랄까 관념적인 영화에 출연한다’라는 식의 평가가 내려질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 이면은 좀 복합적이에요. 평가에 대한 반론, 아니, 제 나름대로의 얘기를 할게요.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는건 아닌데 첫 번째로, 저예산 인디영화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나리오 자체에 재미를 느꼈고, 도전해볼만한 가치를 느꼈고, ‘아, 이 영화에서 나의 어느걸 보여줘도 맞겠다’라는 식의 생각이 있어서 한 거죠.

두 번째는 굳이 장르영화, 웰메이드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영화들만 한다는거 자체가 기존의 어느 정도 틀을 갖추고 있는 배우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키고 있지 못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그런 영화들을 찍는 동안 스탭들이 제게 가르쳐줬어요. 누가 단편영화 찍는다고 하면, 노개런티로 품앗이해주는데 “배우는 그런게 있냐?” 하길래 “없는데요”했죠. 그때 대단히 부끄럽고 창피했거든요. (웃음) 그러면서 했던 게 <그집앞>이었고, <가능한 변화들>에서도 그렇게 개런티에 욕심을 안 부린거고, 1/3은 다시 재투자로 들어갔고...

세 번째는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저 배우를 잘 알든 모르든, 내 라인이 아니든 등등 이 작품에서 저 배우의 저런 가능성을 뽑아보겠다, 혹은 이미지를 차용하겠다 등의 생각이 나오면 TV에선 어떻게 어떻게 연락이 와요. 근데 영화는 그런 면이 없어요. 영화는 대단히 튼튼한 캐슬같아요. 자기 라인, 아, 이런 얘기하면...(웃음)

솔직히 우리나라는 ‘배우’를 ‘탤런트다’,‘영화배우다’, ‘연극배우다’ 라는 식으로 구분하는데, 제 머릿속에 박혀있는 배우라는 이미지는 ‘액터’에요. 매체적 차이에 따른 연기적 특성이 있는 거지, 배우는 다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슨 시상식에서 어떤 탤런트가 ‘영화쪽에 왔는데 이런 큰상을 주셔서 감사한다’식으로 말하면, 전 가끔씩 혈압이 올라가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TV로 데뷔해서 TV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로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부분이 사실상 저예산 인디영화인 부분이 있어요. 지금도 그러다보니까 제 영화마니아적 입장을 떠나서 거기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고 나름대로 감칠맛이 있더라구요. 들어온다면 전 웰메이드 영화를 거부하는 배우는 아니에요. 웰메이드 영화에서도 장르영화적 특성을 잘 살리고 재미가 있는 시나리오라면, 제 가치관 안에서 얼마든지 응할 수 있죠. 그런면에서 열려있어요. 다만 이야기의 진실성에 주안점을 두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장르영화 선택하기가 더 힘들어요.

<로드무비> 때문인지 스크린에서 발현되는 정찬씨 이미지와 달리 브라운관의 이미지는 어쩔때 굉장히 낯설거든요. 최근에 드라마에 많이 나오시는데, 드라마를 고르는 기준은 뭘까 가끔 궁금하구요. (웃음)
<로드무비>에서는 인간이 좀 날것같구 그러다가 TV를 보면 인간이 포장돼서 보이죠? (웃음) 연기톤이나 전체적인 캐릭터가요? (웃음) 저 자신도 너무나 잘 느끼고 있는 부분이에요. 근데 제가 매번 이미지를 깨는 작업을 100퍼센트 해나간다고 하면,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중에 정말 중요한 작품에서 보여줄 밑천이 없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약간의 스테레오타입적인 연기도 하지만, 드라마도 분명히 나름대로 노심초사해서 고르는 배역이라고 생각해요.

<토지>에서 ‘이상현’ 역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거든요. 박경리 선생님 작품은 옛날 <성녀와 마녀> 이후 두 번째인데, <토지>는 매번 주인공이 다르더라구요. 또, TV문학관을 하는 이유도 신경숙의 『새야새야』가 원작인데, 캐릭터가 너무 좋아요. 예전에 했던 어설픈 농아역보다 제대로 된 농아역도 할 수 있구요. 전 어렸을때 TV문학관으로 봤던 <삼포가는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거든요. 작품만 잘 찍으면 25~30년씩 계속 가게 되잖아요.

팟찌닷컴 등에 영화칼럼 쓰셨잖아요. 쓰셨던 글 지금도 가끔 보시나요?
동생이 CD로 구워줘서 집에 있긴 한데...가끔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술먹고 쓴건가 제정신으로 쓴건가 왜 이런걸 썼지 깜짝 놀라는 글도 있고...(웃음) 제 글이 칼럼이라고 말하기엔 좀 쑥스럽구요, 그냥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직업은 연기자인 액터지만, 영화마니아로서 쓴 영화에 대한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혹자는 배우인데, 연기자인데 그렇게 영화에 대한 많은 생각이 있다, 또는 많은 지식이 있다라고 알리는게 무슨 이유가 있냐고 물어요. 전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다라고 얘기하죠.

이런저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내가 물론 접목돼서 나의 일부분들, 어쩔땐 나의 다수가 보여지는 거지만, 내 직접적인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건 아니지 않냐. 그런 면에서 내가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는건, 내가 갖고 있는, 내 맘속에 있는 것들의 100% 발현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표현하는 욕망에 대한 만족을 위해서 쓰는 거다라고 얘기하죠.

물론 저도 어렸을때 <람보>같은 영화를 좋아했지만, 물론 <람보1>은 훌륭해요. (웃음) 그 시대에 그만큼의 코드가 나왔다는건 훌륭하죠. <람보2>도 재밌게 봤거든요. <포레스토검프>도 그렇구요. 그런데 커오면서 여러가지 지식들, 정보를 입수하면서 그안에 왜곡돼 있는,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그네들만의 가치관을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느꼈을때 그런 걸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나름대로 그런 시야를 넓혀야겠다 는 생각에 또다른 공부를 했던 거구요.

제가 칼럼들을 쭉 보면서 깜짝 놀랐던게, 어떤 글에선가 TV 프로그램명이 당일날 어떻게 바뀌었다는것까지 언급돼 있더라구요. ‘아니, 아침에 TV편성표까지 그렇게 꼼꼼이 보다니 놀랍다...’ (웃음)
집안에 조력자들이 많아요. (웃음) 진짜 어머니가 영화마니아시고, 동생도 극렬 마니아에요. 그 친구도 나름대로 자기가 속해있는 그룹안에서 영화쪽글을 쓰는 친구라서, 제가 이번에 나 뭐에 대해 쓸건데 너 아는 거 있어 물어보면 그 친구가 얘기해주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로 저한테 물어보구요.

최근에 모영화주간지에서 DVD코너도 맡았었는데, 다시 영화쪽 글을 연재해 보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
연재까지는...그냥 그간의 걸 다 모아서 책으로 내면 몰라도...(웃음)

혹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나 계획은 없나요?
아니요. 현재는 없습니다. 공부를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뭐랄까, 아직은 연기자 입장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더 많구요. 감독이라면 뭔가 창의적인 샘이 있어서 뭉클뭉클 나와서, 누군가 생뚱맞은 얘기를 할때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팍팍 들어야 하는데...저는 표현의 코드에 관한 미친 놈인것 같고 그런것까진 아직 아닌 것 같아요. 과거 20대때는 습작도 많고 잠깐 쉬는 시간에 누워도 영상이 머릿속을 지나고 그랬는데...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재밌게 읽은 책이 있다면요?
흠...글쎄요. 재밌게 본 영화들은 많아요. <콘스탄틴> 재밌었구요.

<콘스탄틴>이요? (웃음)
저는 의외로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을 충족시킨 영화들을 좋아하거든요. 토니 스콧의 <맨 온 파이어>도 재밌게 봤고, <에비에이터>는 마틴 스콜세즈 감독으로서는 왠지 몇 퍼센트 부족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오랜만에 <길버트 그레이프> 연기 보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역시 어렸을 때 저력이 있던 친구답게 자기것이 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아직도 그 소년같은 이미지는 안 없어지더라구요. 참 타고난 친구라는 생각인데, 디카프리오가 싫어하겠지만 어떤 면에선 뭔가 한번 변하면 조니 뎁을 충분히 누를 수 있는 배우인 것 같아요. <콘스탄틴> 혹평하는 분들 많은데, 전 대단히 재밌게 봤어요. 전 <드림캐쳐>도 무진장 재밌게 보는 인간이니깐. (웃음) 작품마다 기복은 있는데, 그 작가를 원체 좋아해요. 장르영화적 재미를 잘 살린 영화들은 킬링타임용이라고 해서 싫어하진 않아요. <트루로맨스>같은 경우는 제 베스트 DVD 중의 하나니깐...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내면의 것이 반영되는 제2의 외모를 가지게 된다고 하잖아요. 가끔 거울보면서 그런 생각 안 하세요?
제가 옛날 모습을 집에 스크랩 해 놓은 게 있어요. 사진 쫙 보면서 ‘이땐 이렇게 생겼구나. 뭐 똑같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한테 “엄마, 옛날 사진들하고 똑같지?” 그러니까 어머니가 뭘 정리하다가 힐끗 보더니 “늙었지!”그러더라구요. (웃음) 비수를 딱 꽂는데, 저희 집안이 좀 그래요.

뭐랄까 요즘은 남자배우들도 성형을 하는데, 조지 클루니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보고 있으면 최소한 남자배우는 저런게 멋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내면과 외면에 대한 자기성찰이 있느냐가 문제겠지만...뭐, 아직은 딱히 그런건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정찬씨 얼굴을 보고 있으면, 특유의 냉소어린 표정이 계속 잔상으로 남거든요...
네, 제가 그런 부분이 많아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냉정과 열정을 딱히 선택한다면 어느쪽이냐 그래서 양쪽 다라고 했는데....전 필이 꽂히면 끝까지 가요. 제가 정한 선상까지요. 예를 들어 스쿠버다이빙이면 라이센스를 꼭 따내요. 심지어 따고도 강사까지 가보자 그러면 강사까지 가요. 그리고나서 고스란히 장비를 팩해서 다락에다 올려놔요. 지금 연기자는 몇 년째 그러는 중이죠. 데뷔하고나서 지금까지 아직도 제가 원하는 선상에 도다르지도 않았고 도달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해요. 또 도달하면 어떻게 될지...고스란히 팩해서 딴걸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많은 길을 가야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연기자로서 원하는 선상은 어떤 건가요?
20~30년 후에도 방영이 된다거나 상영이 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너무 빨라서, 너무 많아서 그런 작품들이 과거에 비해서 점점 없어지긴 하는데, 제가 영화마니아로서 가진 가치관과 그 잣대를 댔을때 창피하지 않을 작품을 하고 싶어요. 끝나고 나서 “한번 미친듯이 했거든요. 작품에 대해선 전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그게 정점일 걸 같아요. 정점도 여러 가지로 찾을 진 모르겠지만, 지금 제 가치관하에서는 그게 정점이죠. 언제올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취재: 심수진 기자
사진: 이한욱
촬영: 이영선

6 )
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30 15:56
joynwe
이 영화는 그다지...   
2008-10-11 02:43
qsay11tem
좋은 연기를   
2007-08-10 10:13
kpop20
잘 봤어요 예전에 드라마에서도 좋은 연기 잘 봤어요   
2007-05-26 19:18
ldk209
좋은 배우....   
2006-12-30 08:03
bsjang74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가능한 변화들" 워낙 평들이 좋기에 꼭 보고 싶은 영화!! 기사 밑에 개봉일정과 상영관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는데...   
2005-03-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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