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신적 유산인 신화는 세계 어느 나라의 것이든 비슷한 구석이 있다. 전혀 혈연관계가 없어 보이는 문화권의 신화인데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표준 모티브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중 하나가 금기의 테마다. 그리고 아담이나 판도라 같은 유명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그 금기는 지켜지는 법이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 금기를 깨버리면서 자신의 삶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을 인용하자면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인 셈이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영국의 민담 ‘잭 더 자이언트 킬러’와 동화 ‘잭과 콩나무’, 그리고 원형적인 신화가 한데 엮여서 만들어진 영화다.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는 신화다. 마법의 콩을 교환한 수도사는 잭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콩이 물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남긴다. 그의 말대로 콩이 물에 닿지 않았더라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기는 깨지고, 평범한 농사꾼 소년이 식인괴물과 맞서 싸우고, 하프와 금자루, 암탉을 찾아 돌아온다. 거인과 싸우는 것, 뭔가를 훔쳐 돌아오는 것 역시 신화의 단골 모티브다. 영웅이 모험의 소명을 받고, 여행을 떠나 시련을 겪고, 마침내 승리를 얻은 뒤 인간 세상에 홍익을 가지고 돌아온다. 입문-시련-귀환으로 이루어지는 영웅 신화의 전형적인 기승전결이다.
영화는 이런 안정된 이야기 구조에 거대한 스펙터클을 적절하게 얹어놓았다. 영화적인 표현방법으로 보자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잔혹한 몬스터물이 아니라 일반 판타지물에 가깝다.(물론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의 제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잭과 일행이 거인들과 사투를 벌이는 활극은 의외로 비중이 크지 않다. 특히 잭이 거인들의 땅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담담할 정도로 조용하다. 다소 지루하다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유주얼 서스펙트>로 명성을 얻은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작답게 긴장과 여운을 자아내는 완급은 인상적이다.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거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스크린을 꽉 채우는 파괴적인 액션은 단연 압권이다. 거인들의 외형적인 특징을 디테일하게 강조해서 각각의 개성을 부여한 것도 눈에 띈다. CG의 사용도 가능한 자제했다. 예를 들어 콩나무는 합판과 고무, 석고 등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과한 눈요기로 치장하는 대신 탄탄한 이야기의 골격과 적절한 연출로 이루어낸, 잘 만든 판타지 영화다.
2013년 2월 28일 목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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