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족이 말썽이다. 아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모 광고의 정신을 배반하는 맥클레인의 철새습성이 문제다. 1,2편에서 관계가 소원해진 아내 때문에, 4편에서는 애비를 호구로 여기는 딸 때문에, 초가 수당도 안 나오는 ‘다이 하드’한 일에 휘말렸던 맥클레인이 이번에는 집 나간 아들로 인해 시간 외 업무에 시달린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아들 잭(제이 코트니)이 중범죄를 짓고 모스크바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맥클레인은 러시아로 날아간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망나니인 줄 알았던 아들이 알고 보니, CIA 요원이었다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반전! 존은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과 팀을 이뤄 테러범들과 맞선다.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이하 <다이하드5>)는 <다이하드 4.0> 이후 5년 만에 나온 작품이다. 하지만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보상해 주기엔, ‘다이하드’ 정신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전편들이 보여준 톡톡 튀는 유머감각이 실종됐고, 1,000억 원을 투입한 액션도 전형적이라 아쉽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맥스페인> <오맨>이라는 ‘망작’을 내놓은 존 무어가 메가폰을 잡았을 때부터?(실제로 그가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에 <다이하드> 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었다.) <에너미 라인스> 이후 주가하락중인 존 무어가 행여 <다이하드> 시리즈를 통해 부활하나 싶었는데, 헛된 희망이었다. 존 무어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맥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맥클레인의 유행어 “이피 카이 예이 씨방새야! Yippie ki yay mother fucker!”(모든 시리즈에 나온다)가 어김없이 등장하긴 하나, 무너져가는 영화를 구해내진 못한다.
어쩌면 <다이하드 5>가 망쳐 놓은 건, 1~3편의 영광보다는 <다이하드 4.0>의 성취인지도 모른다. <다이하드 3> 이후 12년 만에 나왔던 <다이하드 4.0>은 모두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액숀’을 참맛을 보여주며 시리즈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다이하드 5>는 <다이하드 4.0>가 일군 성과를 후퇴시킨다. 4편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속에서 영리한 액션들을 주조했다면, <다이하드 5>는 규모의 액션에만 집중한다. ‘강약 중간 약’이 없고, ‘강강강강’만이 있다. 액션의 디테일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조악하다보니, 전체 크기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조롭게 느껴진다. 존 무어는 액션의 묘미가 엄청난 물량공세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한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액션보다 더 큰 아쉬움은 캐릭터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특별함은 구수한 입담의 소유자 존 맥클레인의 캐릭터에서 나왔다. ‘얻어터지는 상황’ 속에서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농담을 던지는 맥클레인의 유머감각은 그가 시티븐 시걸이나, 람보 등의 영웅들과 왜 다른가를 보여주는 전매특허와도 같았다. 하지만 <다이하드 5>에서는 그 유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는 아버지를 ‘존’ 이라 부르며 깔아뭉개는 아들을 등장시켜 존 맥클레인의 화를 돋우려 하지만, 둘 사이의 화학작용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유머가 줄어든 자리에 들어 선 건, 낯 뜨거운 부정이다. “그 땐 열심히 일하는 게 최선일 줄 알았어”라는 존의 고해성사를 아들이 우연히 엿듣게 되는 식의 장면은 다소 부담스럽다. 의도치 않게 사건에 휘말려 왔던 맥클레인이 아들을 위해 먼저 사건에 뛰어든다는 점 역시 그를 평범한 액션 영웅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엄밀히 말해 <다이하드 5>는 다이하드라는 이름을 지우고 보면 그리 공격당할 영화는 아니다. 화려한 액션이 있고, 볼거리도 다양하며, 러닝타임도 96분으로 오락영화로서 적당하다.(등급을 위해 잘려나간 분량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하지만 <다이하드5>를 보러가면서 ‘다이하드’를 지우고 가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전편을 모르는 어린 관객이라면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와 관련된 각자의 추억 하나를 가지고 갈 게 분명하다. 존 무어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존 맥클레인에 대한 추억에 오점을 남기고 만다. 오~맨!
2013년 2월 7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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