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된 배경은 1960년대, 인적이 드문 산골마을이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늑대소년> 속 세상은, 지구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법한 시공간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 ‘가을날의 전설’로 끝날 이야기처럼. 건강이 좋지 않은 유약한 소녀 순이(박보영)는 가족과 함께 시골로 요양을 온다. 그러던 어느 날, 헛간에서 야생의 늑대소년(송중기)을 발견한다. 야생에서 홀로 자란 소년은 흡사 들짐승 같다. 소녀의 어머니(장영란)는 그런 소년을 거두지만, 소녀는 소년이 내심 못마땅하다. 하지만 소녀가 소년에게 ‘철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정을 주자 철수는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김춘수의 ‘꽃’처럼, 소녀에게 오직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늑대소년>은 산문보다 운문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는 언어가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결들을 품고 있다. “가.지.마.” 이는 짐승의 울부짖음밖에 모르던 소년이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다. 비록 어눌한 발음이지만 단 세 마디가 일으키는 파장은 그 어떤 유려한 대사보다 강력하다. 영화 속 ‘무언의 언어’들은 기어코 관객의 눈물을 훔치고 만다. 이 영화가 잔잔한 잔상을 남기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랑들이 자존심 앞에서 무너지고, 돌아서고, 쉽게 사그라지던가. 영화는 당대가 잊고 있던 감수성을 장면 하나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 전시해 낸다.
<늑대소년>은 철저히 감수성에만 기대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늑대소년>의 개성이라 부를 만한 부분 역시 감독 스스로가 감수성을 포기하려 드는 지점들에서 발견된다. 이는 철수의 존재를 파헤치려는 외부 인물들이 등장하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정상적 양태를 즐기는 조연캐릭터들이 끼어들면서 영화는 멜로에서 기괴한 느낌의 코믹극으로 변모한다. 부조리한 느낌의 캐릭터들은 사실 감독의 전작에서도 발견되는 요소다. 아쉬움이라면 전작에선 이러한 캐릭터들이 극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 것에 반해, <늑대소년>에서는 도리어 극의 흐름을 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태를 연기한 유연석 캐릭터도 필요 이상으로 비호감으로 설정된 감이 있다. ‘늑대소년’ 송중기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작품 전체의 촘촘한 결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면, 이 영화가 ‘이야기보다 분위기’로 읽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늑대 퍼포먼스를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 낸 송중기의 매력도 빼 놓을 수 없다. 소녀의 “기다려” 한 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며 고개를 낮추는 송중기는 소녀와 이모팬들의 마음을 천만번은 족히 흔들고도 남는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철부지 백수 천지웅이나, <착한남자>에서 냉정하게 표정을 숨기고 있는 강마루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관객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늑대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어려워 보인다. 늑대 주의보는 이미 발령됐다.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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