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툰> <JFK>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 올리버 스톤은 매번 정치사회적 소재를 끌어다 영화로 만들었다. 이번에 감독의 구미를 당긴 건 마약전쟁이다. 돈 윈슬로의 소설 ‘세비지스’를 원작으로 한 <파괴자들>는 제목만큼이나 내용 자체의 수위가 높다. 마치 <올리버 스톤의 킬러>를 복원한 듯한 광기어린 액션은 극한의 폭력성을 맛보게 한다. 전쟁터처럼 화염이 끊이지 않는 총격전, 대낮에 벌어지는 암살, 탈레반 포로 처형을 연상케 하는 살인 행각 등 자극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는 비정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야만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폭력으로 물들이는 것인지, 아니면 야만적인 환경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비폭력 주의자였던 벤이 오필리아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약 조직의 수장이 된 엘레나의 본 모습은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많아 주제 의식이 흐려진다. 이라크전에 참전해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촌을 보여주며 전쟁에 대한 상흔을 드러내고, 마약과 쇼핑에 취해 사는 오필리아를 통해 꿈 없이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한다. 벤과 촌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을 멕시코의 거대 자본이 집어삼키는 모습을 비추며 무분별한 합병으로 이익을 챙기는 대기업의 불편한 진실도 건드린다. 시간이 갈수록 과연 영화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후반부 삽입된 반전 또한 긴장감이 아닌 허무함을 안겨주며 감독의 연출력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25번째 영화를 만든 노장감독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큰 치명타다.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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