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비아그라를 팔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남파 22년차 간첩 김과장(김명민). 그의 신경은 온통 먹고 사는 문제에 쏠려 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니라 물가 상승과 아내의 잔소리일 뿐이다. 그런 김과장의 삶이 북한 최고 암살자 최부장(유해진)의 등장과 함께 흔들린다. 최부장의 목표는 한국으로 망명한 리용성 외무성 부상 암살! 임무 완수를 위해서는 암살을 도울 요원들이 필요하다. 최부장의 명령을 하사 받은 김과장은 멤버 규합에 나선다. 이때부터 영화는 잠시 케이퍼 무비로 빠진다. 부인과 사별한 후 다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윤 고문(변희봉), 부동산 중개를 하며 혼자 애를 키우고 있는 강대리(염정아), 농촌 총각으로 살고 있는 우대리(정겨운) 등 남한에 침투해 있는 간첩들이 속속 소개되며 하나의 팀을 이룬다.
코미디와 액션과 퀴어 멜로 등이 뒤섞였던 <의형제>처럼 <간첩>에도 온갖 장르가 동거한다. 코미디로 시작한 영화는 케이퍼 무비와 액션을 거쳐 가족드라마로 선회했다가 다시 코미디로 회귀한다. 하지만 장르 배합 능력에서 두 영화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의형제>가 다양한 장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숙함을 보였다면, <간첩>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일을 도리어 그르친 경우다. 특히 전후반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통에 영화 전체가 산만한 인상을 남긴다.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생계형)간첩을 보여주겠다”는 초반 목표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좋을 뻔했다. 생활고에 처한 간첩들의 실상을 보여주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생활상이 나와야 했다.
김명민, 유해진, 염정아, 변희봉, 정겨운. 개성 강한 배우들의 조합은 흥미로운 편이다. 이들 사이에서 파생될 강력한 에너지가 상상된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초심이 흔들리는 와중에, 인물들의 관계도 설득력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장르의 난립만큼이나, 캐릭터간의 겉도는 분위기가 문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최부장이 첩보드라마에서 뚝 떼어 온 인물같다면, 남한 간첩들은 영락없이 코믹드라마에서 걸어 나온 인물들이다. 캐릭터 사이의 이질감 탓에 이들이 함께 암살계획을 실행하는 것 자체가 뭔가 엉성한 느낌을 준다. 피해는 고스란히 배우들에게 돌아간다.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 온 염정아도, 처음으로 스크린에 도전하는 정겨운도, 이미지 변신을 꽤한 유해진도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코믹함을 빼고 근엄한 이미지로 변신한 유해진의 도전은 보상 받을 길이 없어 보인다. 유해진이 맡은 최부장은 <쉬리>의 최무영(최민식)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다. 새로운 옷을 입은 유해진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의 변신을 받쳐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혼자 겉도는 이미지가 돼 버렸다.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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